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7)
운빨로 탑스타-197화(197/200)
제197화
배우 중에는 종종 그런 타입이 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남의 연기 보는 건 잘하는데, 정작 자기 연기를 보는 눈은 별로야.]예리한 눈과 둔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작품을 볼 줄 안다. 연기를 볼 줄 안다. 연기를 분석하고, 어떻게 개선하면 되는지도 안다. 그걸 타인에게 전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기도 좀 미안한데, 넌 연기에 재능이 없다.”
스스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아성아, 조연이나 단역이라면 몰라도, 주연이 되려면 시선을 이끄는 한 방이 있어야 하거든? 이상하게 너한테는 그 한 방이 없어.”
“…….”
김아성.
그가 바로 저런 인물이었다. 타인의 연기를 볼 줄은 알되, 그걸 스스로 행하지는 못하는 사람.
만화를 볼 줄은 알지만 스스로 그리지는 못하는 초일류 편집자와도 같다. 요리를 먹을 줄은 알지만 만들 줄은 모르는 요리사와도 같다.
“아성아,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알아. 하지만”
하늘의 장난일까.
마침 이러한 자들에게 클리셰처럼 따라오는 고통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넌 연기에 맛이 안 살아. 차라리 가르치는 쪽이 나을지도 몰라.”
정작, 본인들의 흥미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하늘이 저주를 내린 것과도 같았다.
“그래도 네가 테크닉적인 면은 훌륭하고, 연기 보는 눈도 좋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강사를 노려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메시의 축구 재능을 타고 태어난 이가 화가를 꿈꾼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이에게 너는 미술에 재능이 없으니 축구 선수가 되라고 한다면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과연 기쁘게 생각하겠는가.
“뭔 거창한 말을 하려고 불렀나 했더니.”
김아성이 피식 웃고는, 식탁 위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지금 조연도 못 비빈다고 우습나? 형님도 내가 만만합니까?”
“야, 내가 싸우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는 저랑 길 가다가 마주치거든 아는 척하지 마쇼.”
우스운 일이다.
5년째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모셔 왔더니, 기껏 하는 말이 저따위라니. 연기자한테 너는 재능이 없으니까 연기를 접으라고 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말인가.
‘내가 얼마나 얕보였으면.’
딱 3년 뒤에 보자.
내가 꼭 배우로 성공해서, 예능 방송에 나와다가 오늘 일을 썰로 풀고야 말겠다. 재능 없다고 때려치우라고 권유한 사람이 있었다고 썰 풀고야 만다.
“야, 김아성, 너 거기 멈춰라. 진짜 나랑 앞으로 안 볼려고?”
멈추기는 누가 멈춰.
내가 그쪽으로 돌아가나 한번 보자
나중에 그쪽에서 와서 바짓가랑이 붙잡으면서 틀렸다고 사정사정한들 안 들어줄 거다.
‘두고 봐라.’
앞으로는 형님이 아니다.
경쟁자다.
그렇게 김아성이 마음속으로 각오를 굳히며 발걸음을 옮기기를 3초, 가게 카운터를 지나치려는 찰나였다.
“아성아, 가는 건 좋은데 네 몫은 네가 계산해야지.”
한마디에 김아성의 발이 멈춰섰다.
“…….”
“계산 안 하고 그냥 갈려고?”
사람이 가는 길을 붙잡더니.
자존심이 여름철 상온에 방치한 돼지고기처럼 상한 김아성이 눈을 도끼눈으로 뜬 채 뒤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형님, 절 뭐로 보십니까?”
“그럼 뭔데?”
김아성이 이를 으득 물고는 말했다.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겁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고 했다.
* * *
회식 자리가 끝난 뒤.
[내가 했던 말 잘 곱씹어 봐.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까.]김아성의 머릿속에는 오늘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말만 동굴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하염없이 반복되었다.
하늘이 검은색이다. 별이 떠 있다. 주위에는 벌레들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찌익-찌익-찌익-
얼핏 보기에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광경.
하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시야를 낮춰 보면, 김아성에게는 조금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버스도 안 다니는 신림 달동네 언덕길. 절반은 사람도 안 사는 동네라.’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그것이었다.
삐익-.
방구석으로 들어온 김아성이 벽의 스위치를 더듬어 키자, 곧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 너무 안 했나.’
5평짜리 원룸 하나.
보증금 200에 월세 22만 원.
관리비는 4만 원.
위치는 열악하지만, 가격은 나쁘지 않다. 그나마 연기자 선배들에게 소개받아 싸게 계약했다.
“밥, 바라밥밥밥. 밥, 바라밥밥.”
김아성이 콧노래를 부르며 쌀을 물에 씻었다.
식사는 언제나 비슷하다.
인터넷에서 2박스씩 주문한 컵라면과 해 먹는 쌀밥이 그의 주식이었다. 밥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밥솥 하나면 밥, 누룽지, 숭늉까지 해 먹을 수 있었다.
단백질? 인터넷에서 계란과 냉동 닭가슴살 10kg을 쟁여놓고 먹는다. 가끔 할인하거든 돼지 앞다릿살이나 뒷다릿살도 사 먹는다.
몸이 재산인 배우이니만큼, 없는 형편에도 근육만큼은 알뜰하게 챙겼다.
“씨, 괜히 자존심을 부려가지고.”
식당에서 못 먹고 남기고 온 고기가 눈에 밟혔다.
오늘은 배에 기름 좀 칠해야겠네.
김아성은 이내 냉장고에서 하얀색 덩어리를 꺼내 들었다.
라드였다.
앞 정육점에서 버릴 거면 달라고 해서 공짜로 받아온 것. 가성비는 둘째치고 맛이 꽤 고소해서 좋아했다.
치이익.
불판에 팬을 달구고 라드를 비빈다. 그 위에 계란물과 섞은 밥을 올려놓고 비비기를 몇 초.
‘이때다.’
촤아악!
간장을 풀었다.
곧 김아성의 주식, 간장계란라드밥이 완성되었다.
“후, 후.”
종일 연습실에서 땀을 흘린 덕일까. 입안으로 들어간 밥알이 목구멍을 넘어가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위장으로 텔레포트했다.
“아, 잘 먹었다.”
순식간에 밥을 해치운 김아성이 씻지도 않고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만족스럽다.
저렴하고 낡은 집, 저렴한 밥.
이를 누군가는 기구한 삶이라고 하겠지만, 김아성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도 않았다.
‘굶어 뒤지지만 않으면 장땡이지.’
어쨌든 연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닌가.
페이를 받은 날에는 조금이나마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 가끔 열심히 한다고 사주는 사람들도 있다.
지망생이 뭐 호화로운 걸 바란다고.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실력을 더 쌓다 보면, 언젠가는 더 큰 기회도 주어지겠지.
대기만성이라고 했다. 칠전팔기라고 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했다. 옛말에 승리하는 사람은 승리할 때까지 버틴 사람이라고 했다.
“바라는 대로~.”
김아성이 바닥에 자빠진 채로 노래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평소였다면 슬슬 잠이 올 참인데, 도저히 눈이 감기질 않았다.
이유라면 알았다.
조금 전, 이제는 형님이 아니게 된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끝없이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꼭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는 없잖아. 네가 연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꼭 네가 스스로 연기를 잘하리라는 법칙은 없는 거지.]연기 지적 이야기일까?
아니다.
그 전에 들은 이야기.
[잘 생각해 봐. 넌 가르치는 건 잘한다니까.]교육 이야기였다.
귀에 딱지가 눌러앉을 정도로 들었던 교육자의 자질 이야기가 김아성의 머릿속에 몇 번이고 맴돌았다.
[너한테 훈수 들은 동기 놈들을 봐라. 지금은 하나 같이 자리 잡았잖아. 넌 남의 약점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니까. 아예 그 길로 가 보면 어떨지 몰라.]“…….”
진짜일까.
사람 보는 눈이 좋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그에게는 타인의 약점이 잘 보였다.
왜 뻔히 보이는 약점을 안 고치나, 저걸 왜 못 알아채는가가 이상하게 느껴질 만치 김아성의 안목은 탁월하게 좋았다.
[아성아! 네 덕분에 주연 붙었어!] [그 배우님이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달래요. 오빠한테 들은 지적이 계속 신경 쓰여서 거기에 집중해 보니까, 감독님한테 확 나아졌다고 칭찬 들었다네요.]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
하지만 김아성은 이 재능을 주 전공으로 살릴 생각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 연기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것 같아서.
교육이라는 건 배우로서 먼저 성공한 다음에나 고려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게 맞나.’
의심이 들었다.
‘내가 쓸모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가?’
굳이 고집을 부리는 게 맞을까.
남들은 다 뻔히 연기로 편하게 돈을 벌면서 연기자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그가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거 아닌가.
이 고집이, 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연기자로서의 길만 더 험난해지는 거 아닐까.
“…….”
평소였다면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우울 호르몬이 폭발하기라도 한 것인지, 좀처럼 잠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에라이.”
어느 순간, 김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핸드폰을 두드리기를 한참.
“예, 형님.”
김아성이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에 말씀 주셨던 그 일, 아직 자리 남아 있습니까?”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웃긴 새끼 아니야, 야, 너 나랑 연 끊는다며 이 무자식아.]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김아성이 눈을 조선 시대 무장처럼 부릅뜨고는 입을 열었다.
“여자 한 명 소개.”
[콜.]김아성.
그는 옛날부터 이상하리만치 여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 * *
몇 시간 동안 임대한 연습실.
“흐아암.”
김아성이 폐가 텅텅 빌 만큼 커다란 하품을 내쉬었다.
‘선생을 자기 사는 곳까지 오라 마라 부르고 난리야. 사람 피곤하게.’
오늘은 연기 수업을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다.
관악구에 위치한 자취방에서부터 강남의 모처까지 이동시간만 40분이 걸렸다.
왕복 시간을 고려하거든 피곤하기 짝이 없는 거리. 하지만 저쪽에서 택시비까지 내주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버스 타고 왔지만.
‘부잣집 아드님이라 그런가? 다르기는 다르네.’
받은 택시비는 그의 귀중한 양식이 될 예정.
하물며 수업비도 두둑하다. 그 정도 커리어를 가진 연기자에게는 더 바라기가 어려울 지경. 좋은 일감이라고 그리도 말하더니, 정말로 좋은 일감이지 않나.
그렇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앉아 있기를 한참.
“그런데…….”
김아성 트레이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언제 온대?”
오지를 않았다.
그 아드님이라는 사람, 벌써 수업 약속 시각에서 20분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올 줄을 몰랐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어 보자, 받지 않았다.
“…….”
이번에는 부모님에게 걸어 보았다.
들려온 말은 다소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 아이가 또,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마 PC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지난번 선생님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서요.]“PC방이요?”
[아마 동네 어디에 있을 텐데…… 아이가 게임 중독이라서.]기분이 심히 황당해졌다.
PC방이라.
기껏 비싼 돈 내고 선생을 불러놓고는, 그 돈이 아깝지도 않다는 듯 PC방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고 있다, 그 말인가.
김아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가 좀 꿍하게 생겼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수업 듣기 싫은가?’
물론, 김아성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수업에 지각하더라도 그만큼 쉴 수 있다. 일도 안 하고 돈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기엔 자존심의 문제가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
장유유서 조선 팔도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감히, 감히 선생을 무시해?
김아성은 아직 끊기지 않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지금, PC방이라고 말씀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