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98)
운빨로 탑스타-198화(198/200)
제198화
예체능을 지망하는 학생들에 대한 흔한 착각이 있다.
[걔네, 열심히 살잖아]진심으로 예술을 목표로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예술을 위해 안정적인 삶을 포기할 만큼 예술을 사랑했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외에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봐야겠다.
예를 들자면.
“아, 정글 모친 출타했나.”
지금 입으로 욕지기를 뱉고 있는 이 학생처럼 말이다.
타다다다닥!
딸깍, 딸깍!
마우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현란하기 짝이 없다. 모니터 속 화면도 쉴 새 없이 반짝인다.
학생은 지금, 인생의 전성기를 게이머로서 보내고 있었다.
“후, 이겼다.”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학생.
서로 아슬아슬하게 겨루다가 내 캐리로 한판 역전한 이 끝내주는 한 판이 끝날 무렵,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러했다.
‘한 판만 더 할까?’
돌아간다는 생각은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학생은 예체능 지망생이었다. 그것도 연기.
하지만 딱히 예체능을 사랑해 마지못해 예체능을 지망한 건 아니다. 그저, 공부가 싫었을 뿐이다.
공부만큼은 도저히 싫은데, 놀겠다고 하면 눈치가 보일 것 아닌가. 그래서 예체능 꿈나무라는 신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노는 고딩]이것보다는.
[연기자로 진로를 정한 고등학생]이게 더 간지 나니까.
보너스로 여자애들이랑 놀러 다닐 때도 둘러댈 말이 푸짐하고.
[야, 이 새끼 연기 공부한다니까. 나중에 영화관에서 볼지도 몰라.] [진짜? 그럼 나 연예인이랑 놀고 있는 거네?]그렇다고 정말로 연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화가나 가수보다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영화를 볼 때면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중에 해도 되잖아?’
학생의 진짜 상태를 말하자면 이러했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였다.
실패한 연기자보다는, 성공할 가능성을 갖춘 연기자 지망생이 실속은 없을지언정 더 그럴듯한 법이니까.
그렇게 게임 한 판을 더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참.’
문득, 학생의 머릿속에 뒤늦게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오늘, 새 연기쌤 만나기로 했던 것 같은데.’
부모님이 한 명 구해다 주기로 했었다. 전번에 얼굴도 봤지.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자기주장이 확실한 비주얼을 하고 있었고.
근데 이걸 어쩌나.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까먹어버렸네.
‘으음, 지금 만나 가 봤자 화만 낼 것 같은데. 자기 무시했다고.’
상황이 난처해졌다.
그쪽이 부모님한테 꼰질렀다가 잔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시팔.”
그렇다.
태만함에 젖어버린 학생이 머릿속은 여전히 이기적이기 짝이 없었다.
선생을 한참 기다리게 했음에도 죄책감은 없다. 오히려, 그로 인해 자기에게 돌아올 피해가 더 귀찮다.
이미 글러 먹은 인간이 되기 직전인 것이었다.
“에이 씨, 몰라.”
그렇게 게임 큐를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오, 여기 계셨네.”
학생이 앉은 의자를 붙잡고 돌린 사람이 있었다.
“……!”
어떤 미친놈이지.
당황한 찰나, 학생의 눈에 비친 남자의 모습은 썩 익숙한 것이었다.
“너.”
“너가 아니라 선생님이지.”
김아성.
지난번 그의 어머니가 소개해 주었던 선생이었다.
주연 자리는 못 차지하고, 단역과 조연을 전진하지만 사람 가르치는 거 하나는 기똥차다고 했던 사람.
“아이고, 찾느라 한참 고생했네.”
김아성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아시고.”
“고딩이 어디 놀러 가 봐야 학교 옆 PC방이지. 그리고 SNS 뒤져 보니까 아까 글 썼던데? 랭겜 할 사람 구한다고.”
“…….”
남의 SNS까지 뒤졌나.
작게나마 수치심과 함께 분노가 차올랐다.
‘선생이 이래도 돼?’
선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이건 정식으로 항의해야겠다.
학생이 여전히 배은망덕한 마음을 먹은 다음 순간, 김아성의 다음 발언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선을 한참 넘는 것이었으니.
“와, 근데 게임 진짜 존X 못하던데.”
게임 실력 주장이 그러했다.
학생의 눈이 벙찐 찰나, 김아성이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랭겜만 2천 판을 넘게 하고 티어가 골드4? 뇌 비우고 마우스만 누른 건데? 혹시 그건가? 계정을 돈 주고 샀나? 아니지, 나였다면 대리랭을 돈 주고 시켰겠다.”
김아성의 입에서 외면하기 어려운 모욕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자고로, 옛말에 그런 말이 있었다.
남자들끼리 외모 욕은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게임 실력 욕만큼은 못 참는다고.
울컥한 학생이 항변하듯 외쳤다.
“그러는 지는 얼마나 잘한다고.”
“오?”
그다음 찰나였다.
김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내가 왼쪽 젖꼭지로 게임해도 학생보단 잘하지.”
“……!”
이 인간이. 지금 제정신인가?
그래도 선생 대접을 해 주려고 했더니, 사람한테 저런 식으로 되갚아?
마침내 분노를 참지 못한 학생이 욕지기와 함께 외쳤다.
“딱 보니까 실딱…….”
하지만 학생의 말은 차마 끝을 맺을 수도 없었다.
“아, 거 입 졸라 터네.”
김아성 트레이너가 그의 말을 끊으며 또다른 도발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꼬우면 함 뜨던가.”
* * *
2주 뒤.
“꺼억.”
동네 편의점에서 냉동 햄버거로 끼니를 떼운 김아성이 받은 전화 한 통이 있었다.
“예, 어머님.”
[선생님, 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학부모의 전화였다.
지난번 PC방까지 출강을 시켰던 그 학생.
“무슨 일 있었습니까?”
뭐라고 항의라도 할려고 그러나.
아, 다음 달 생활비 아직 덜 벌었는데. 환불은 안 된다고 선 그어야겠다.
김아성 트레이너가 확실하게 마음을 굳힌 순간이었다.
[감사해서 그렇죠!]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은 예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저희 아들이 요즘 얼마나 바뀌었는지 아세요?]“예?”
[선생님 만난 뒤로, 그동안 그렇게 가라 가라 사정사정을 해도 통 가질 않던 연습실에 살다시피 한다니까요? 게임도 거의 끊은 것 같고.]“아, 그래요?”
[선생님 수업 횟수도 늘려달라고 막 부탁하는데,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어서 저한테는 꿈만 같네요.]자식 교육에 흥분마저 잔뜩 묻은 목소리가 이어지기를 한참.
학생 어머니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선생님, 대체 어떤 일을 하셨기에 애가 이렇게 변한 거예요?]“음, 글쎄요.”
김아성이 턱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같이 게임 몇 판 했는데.”
[게임이요?]목소리가 얼떨떨해졌다.
게임을 하니까 갑자기 연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이건 좀 말이 안 되는데.
학부모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게임에 빗대서 수업을 진행하셨다는 건가요? 게임을 접목시켜서?]“뭐, 비슷하죠.”
비슷하긴 비슷하지.
김아성은 실제로 수업에 게임을 이용했으니 말이다.
{응, 허접. 자, 쓰레기죠?}
{아 진짜!! 한 판 더 해요!}
{에, 스앵님, 제가 허접이랑 게임을 왜 하겠습니까.}
그날, 김아성은 학생을 뼛속까지 탈탈 털어 우주로 관광을 보냈다.
새삼스럽지만, 김아성은 사실상 백수다.
학생이 연기자 지망생으로써 유사 백수라면, 김아성은 현역 백수에 가까운 존재.
그나마 학생은 학교라도 다니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4시간도 안 되는 김아성이 남는 시간에 뭘 하겠는가.
{쌤, 티어 어디에요?}
{마딱인데}
{…….}
마스터2.
학생이 즐겨하는 게임 속에서 약 상위 0.07%에 해당하는 랭킹이었다.
프로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역으로 일반적인 게이머의 실력은 뛰어넘어도 한참 뛰어넘은 실력.
이어서 실랑이가 있었고,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에 두 사람이 정한 규칙이 하나 있었으니.
{수업 준비 잘 해오면 끝나고 1시간씩 같이 랭겜 돌려준다.}
게임 약속이 그것이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대가로 게임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
“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그럼 다음 수업까지 준비 잘해서 오라고 말씀 부탁드릴게요. 저희는 원팀인 거 아시죠?”
뚝.
잠시 뒤, 통화를 끊은 김아성 트레이너가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운빨 오졌다.’
몇 달만 하다 여유 생기면 바로 때려치워야지.
* * *
약 7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포구.
‘아, 일하기 싫다. 개 싫다. 때려치우고 싶다. 아, 쉬고 싶다. 피자 마렵다.’
특강을 위해 잼 액팅스쿨에 방문한 김아성 트레이너가 푸념을 반복했다.
“아, 인생. 인생. 인생.”
날씨가 저렇게도 푸른데, 대체 이 날씨에 왜 학원 출강이나 와야 하는 건지.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
“아, 인생.”
김아성 트레이너가 찌뿌드드한 몸을 풀려는 듯 기지개를 반복했다.
‘여기 원장, 딱 봐도 일 대충 하는 사람 같던데. 그냥 적당히 하는 척만 하다가 튀어? 그래도 모를 것 같은데?’
마음만 같아서는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도망친다고 하면서 성실하게 일할 것을 그 누구보다도 김아성 트레이너 본인이 잘 알기에 결과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벌써 7년을 구르다 보니, 어느새 회사 전속 트레이너 자리까지 먹어버리지 않았나.
그래 봤자 하루살이 목숨이겠지만.
“아, 학창 시절에 공부 열심히 할걸.”
요즘 대기업들 초봉 엄청 세다던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복도를 한참 걷던 와중이었다.
“……!”
저쪽 복도 어딘가, 어딘가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역동적으로 발을 구르는 소리도.
‘뭐지? 이 시간부터?’
김아성 트레이너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아침 시작을 시작하기까지도 한참 남은 시간이다.
김아성 트레이너, 그는 할 짓이 없어서 그냥 미리 방문한 참이다만 저 학생은 대체 뭐지.
‘흐음, 구경이나 해 볼까.’
그렇게 슬쩍 고개를 창문 쪽으로 들이밀고 관찰하기를 한참.
김아성 트레이너의 눈빛에 작은 이채가 맴돌았다.
“오호라.”
생각보다 괜찮았다.
창문 안쪽으로, 홀로 연습하고 있는 학생의 연기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대의 사랑이 씨앗이라면 헌신은 물줄기라고. 그런 끝에 가정이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죠.”
계속해서 이런저런 연기를 반복하는데, 그 솜씨가 상당했다.
‘머리가 작고 다리는 기네. 몸이 유연해. 목소리도 딕션이 좋고. 마스크는 좀 자기주장이 약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천의 얼굴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흐음, 원장, 저런 사람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전체적으로 쓸만하다. 일개 수강생 수준이라고는 잘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뭐라고 해야 할까.
“……장난하나?”
미완성이었다.
구석구석에서 덜 가다듬은 흔적이 보였다.
아니, 가다듬었다고 말았다고 해야 할까.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나아가면 완성될 연기에서 무의식적으로 움츠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2%만 채우면 바로 뭐라도 될 것 같은데. 스스로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저 학생, 이름은 어떻게 될까.
‘원장한테 물어볼까.’
아니다.
말 섞기 싫다.
쾅!
한순간에 연습실 문을 벌컥 열어 재끼고 안으로 들어간 김아성 트레이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침부터 열심히 하네요.”
“……!”
그 짧은 인사에 한참이나 연기에 몰두하던 수강생이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 돌발 상황에 겁이라도 먹었다는 듯했다.
대체 왜?
몇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김아성 트레이너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즉시 물었다.
“여기 학생이에요? 이름은?”
“저.”
잠시 뒤.
학생이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민기입니다.
외전 – 김아성 완(完)
외전 – 저승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