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21)
운빨로 탑스타-21화(21/200)
제21화
다온 오디션에서 탈락했을 무렵, 이민기가 한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붙었겠지.’
그는 전적으로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어떤 이유로 탈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탈락에 다른 이유를 붙이고 싶지 않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지 않았다.
적어도 이민기는 그 오디션에 내정자가 있었다는 진실을 몰랐다.
몰랐기에 내상이 없었다.
상처받지 않았으니 변명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았기에 즉각 최선의 행동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음에는 더 잘하자.’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연기가 뭘까.’
양아치 연기는 엄밀히 말해서 당시 제일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탈락했다.
이미 한번 실패한 연기를 재활용하거든 같은 실패를 반복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양아치 연기를 한다고 해도 그냥 양아치로는 안 돼. 변화를 줘야 한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이럴 때면 가장 좋은 방법이 있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연기의 기본.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민기의 시선은 모니터를 넘어 현실로 향했다.
주위에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인물에게서 모티베이션을 얻어내 보자고.
그 결과 찾아낸 사람이 있었다.
[열하나! 열하나 반! 열하나 반의반의반! 열하나 반의반의반의반!]집 근처 헬스장의 관장, 권준용 관장이었다.
산수를 못 하는 것 빼고는 사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재밌는 편.
이민기는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연기에 접목해 보기로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해서 찾아냈다.
“회원님, 그거는요. 회원님이 PT를 한 달 치 15회만 결제하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고요.”
헬스장 양아치 트레이너라는 캐릭터를.
“원래 저희도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시는 건데, 저희 헬스장이 이번에 8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에~ 추가 할인이 들어가시는 거라서요. 원래 3개월 치 50회 해서 150만 원인데, 이번에는 특! 별! 히! 130만 원으로 추가 할인이 들어가셔요. 여기에 트레이너 재량으로 10만 원을 더 저렴하게 드리고,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추가로 10만 원 할인이 들어가시기 때문에.”
속이 보인다.
어설프게 영업을 뛴다는 게 뻔히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묘한 뻔뻔함과 맞물려 캐릭터성이 손에 잡힐 듯 살아났다.
‘어울리는 대본이 있어서 다행이야.’
불과 1년 년에 JC 배우가 참가했던 작품이 있었다.
작품의 제목은 [다이어트의 신].
그곳에 등장하는 트레이너가 굉장히 밉상으로 유명했다. 밉상이면서도 아예 미워할 수는 없다고 해야 할까.
잘못을 저지르고서는 미안하다며 프로틴 한 스쿱을 건네는 찌질미가 있는 캐릭터였다.
“봄에는 나른해서 운동 안 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운동 안 하고, 가을에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니까 운동 안 하고, 겨울에는 살쪄도 옷에 가려지니까 운동 안 하고. 그럼 대체 운동하실 거예요? 회원님?”
물론, 트레이너 특유의 갈구는 말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민기의 눈이 거의 사백안이 될 것처럼 뜨였다.
팔은 멱살이라도 잡을 양 뻗었다.
“야채랑 과일 먹으면 살 안 찐다고요? 회원님, 코끼리랑 하마도 초식동물이시거든요. 그런데 회원님은 운동량까지 적으시잖아요. 지금 사바나 초원이 우스우세요?”
입에서 구질구질하게 흘러나오는 말은 뻔뻔했다.
누가 봐도 헛소리다.
하지만 그 헛소리에서 도저히 귀를 돌릴 수가 없다.
원작에서 이 캐릭터는 만들다가 만 것 같은 어중간한 근육질을 자랑했는데, 마침 그게 딱 지금 이민기의 몸이었다.
여기에 유규언 대표의 심미관이 그 몸을 한결 더 돋보이게 했다.
‘할 수 있다.’
이민기가 보내온 지난 모든 시간이 짧은 연기 속에 농축되었다.
전생에 찾아낸 적성.
다온 연기에서 쌓아 올린 양아치 표현에 관찰로 얻은 트레이너의 행동 묘사.
권준용 관장의 트레이닝과 유규언 대표의 패션.
모든 게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었고.
그 결과는.
“크크크큭.”
서정우 이사의 웃음이었다.
“크흐흐흐, 푸훗.”
연기를 진지하게 관찰해야 할 심사위원이 차마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예 고개까지 책상으로 내리고는 꺼이꺼이 웃었다.
‘웃었어?’
이민기가 역으로 당황스러워졌다.
그는 몰랐지만, 사실 서정우 이사는 웃음보가 헤픈 사람이었다.
이런 ‘트레이너 개그’에 한해서 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연기 자체는 성공했다는 게 확실한 상황.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는 건 일류다.
‘더 간다.’
이민기는 아예 도장을 찍어 버리기로 결심하며 말을 이었다.
“보여요? 머슬? 저도 지금까지 이 몸을 만들려고 정말 많이 고생했어요. 만져 봐요. 두껍죠? 딴딴하죠? 이게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하드 트레이닝과 최첨단 스포츠 사이언스. 그리고 식이요법. 하나라도 빠졌다면 이런 몸은 없었을 거예요.”
이민기는 그 말과 동시에 돌아서며 등을 넓게 펼치는 포징을 잡았다.
평소 집에서 거울 앞에 서면 한 번씩 해보던 그것이었다.
“회원님도 이런 몸 만들고 싶으시죠?”
아니다.
누가 봐도 그런 생각은 안 드는 몸이다.
말 그대로 이민기의 몸은 어중간하니까. 하지만 그 뻔뻔함이 곧 캐릭터의 생명으로 이어졌다.
“푸훕.”
서정우 이사에 이어 김아성 트레이너마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둘이 웃자 같이 온 심사위원도 눈치 안 보고 웃었다.
‘저 사람 대박이네?’
김태양은 이민기의 연기 아래 깔린 계산을 눈치채고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민기 씨가 재수 없게 느껴질 정도야.’
유선아도.
이 자리에서 웃을 수 없는 건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뿐이었다.
‘배우 오디션을 보러 온 거야, 희극인 오디션을 보러 온 거야?’
‘지금 장난해?’
‘이거 반칙 아닌가?’
즉.
이 모든 걸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민기가 찢었다.
* * *
오디션이 끝났다.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이민기는 마음 편하게 다른 이들의 연기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음, 생각보다 미묘하네.’
장학생들의 연기라는 게 썩 특별하지 않았다.
“네가 밟고 있는 땅. 이게 그냥 생겨난 건 줄 알아? 다 느그 선배님들이 학교 공부할 시간에 열심히 땅 갈아서 생긴 거야. 임마. 노가다꾼이 뭐 어쩌고 저째? 우리는 노가다의 민족이었어.”
뭐라고 해야 할까.
‘미묘하네.’
잘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냥 딱 그 정도라고 하면 적절할까.
이건 전적으로 이민기가 단역으로나마 현장을 경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들이 재능이 있다고는 하나, 전국에 재능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현장에서도 빛나는 사람은 드물었다.
더욱이 이민기는 이들의 실력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했다.
‘아쉬운데.’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원인.
그건 바로 이민기라는 사람 탓이었다.
‘아까 그 사람보다 잘해야 하는데, 어쩌지?’
‘분위기 차가운 거 봐.’
‘아까는 웃던데 왜 내 연기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지?’
이민기가 앞서 연기력으로 오디션장을 제대로 터뜨려버렸다.
이는 곧 다른 참가자들의 심리를 흔들어놨다는 것과도 같았다.
배우라는 건 아무리 계산적으로 연기를 하려고 해도, 심리를 배제할 수가 없는 직업이다.
[감정 없는 연기는 와인 없는 정찬과도 같다.]프랑스의 어느 유명한 배우가 한 말이다.
그 말마따나 한번 동요를 시작한 이상 연기를 멀쩡하게 펼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생각보다 저 사람들 그냥 그렇네.’
유선아였다.
“지우야, 응? 이것 좀 먹어 봐. 엄마 이따가 저녁에 친구 만나러 가야 하거든? 냉장고에 찌개 끓여 놨으니까 데워 먹어. 학교 늦지 말고 가고. 참, 그리고 아빠가 물어보면 엄마 일 있어서 나갔다고 해.”
그녀의 연기에는 티끌만큼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평소에도 이민기를 옆에서 보며 함께 연기를 연습해온 덕이었다.
그렇기에 이민기가 아무리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고 한들, 이미 거기에 눈이 적응한 상태.
오히려 거기에 흔들리는 나머지 참가자들이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그 외에는 원래 태연한 김태양 정도일까.
‘대충 각 나오네.’
김아성 트레이너도 덕분에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참가자가 연기를 마쳤을 무렵.
“예, 차례대로 왼쪽 문을 통해 나가시면 됩니다. 심사 결과는 며칠 뒤에 개별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디션장의 참가자들은 보지 않아도 결과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이민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 설마 꽤 잘한 건가?’
합격까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지, 자기 자신이 잘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밖에 없었다.
컨디션은 가히 최상이었다.
이게 떨어진다면 어딜 가도 떨어지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좋다.
이민기는 결심했다.
‘이 정도면 집에 가는 길에 삼겹살 정도는 사가도 되겠어.’
자기 자신에게도 상을 주기로.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또 언제겠어. 권준용 관장님이 뭐라고 하시겠지만,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하지 뭐.’
잠깐 잘했다고 그사이 오만해진 이민기였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을 한껏 위장에 한가득 채운 채 오디션장에서 마지막 순서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저기요. 민기 씨.”
나가려는 그의 발길을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목소리는.’
뒤를 돌이켜 보니 서정우 이사였다.
그가 조금 전까지의 정색은 어디로 갔냐는 듯,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마저 띄운 채 말했다.
“이번 오디션, 좋은 결과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이민기는 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들으리라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이민기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 * *
며칠 뒤.
이민기가 갑작스럽게 불려간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오셨나요?”
원장실이었다.
잼 액팅스쿨의 원장, 박 원장이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 눈동자가 데굴데굴 돌아간다.
이민기는 그런 그가 불편한 듯 살짝 발을 뒤로 빼며 말했다.
“저기, 어쩐 일로.”
“별다른 건 아닙니다.”
박 원장이 다년간의 학원 운영으로 단련된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민기 씨와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어서 따로 시간을 내 봤습니다. 저희 학원에 만족하고 계신가 하는 그런 거 말입니다.”
“덕분에 잘 다니고는 있는데요.”
“아, 다행입니다. 민기 씨가 혹시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박 원장이 거듭 따뜻하게 웃었다.
마치 원래부터 이민기에게 엄청난 호의를 가졌다는 것처럼.
“앉으세요. 커피랑 녹차 중에 어느 게 좋으신지?”
“물이요.”
그 말에 박 원장은 손수 물을 떠다가 이민기의 앞에 놓기까지 하였다.
명백히 튀는 행동.
매 동작마다 이민기의 안테나가 곤두섰다.
‘왜 이러지?’
박 원장이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어색하리만치 갑자기 살가워진 대접이 고맙기는커녕 불편하다.
잼 액팅스쿨에 몸을 담았던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받았던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민기가 머릿속으로 당장 떠올린 추측은 이러했다.
‘잘하니까 이제 태도가 바뀐 건가.’
가증스럽다는 것이었다.
그간 학원에서 그가 받아왔던 대접이 어떠했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무시였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나아졌다고는 하나, 그전까지는 실패자 취급이 일상이었다.
주위 시선도, 선생님도, 원장도.
아무리 티를 내지 않아도 본인이라면 알음알음 알게 되는 게 있는 법이다.
물론, 김탁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박 원장에 대해서는 딱딱한 사람이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제 와서 친근한 척하는 이유가 뭐지?’
그렇게 이민기가 박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어색하게 느끼고 있는 와중이었다.
“오늘은 민기 씨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다음 순간.
이민기의 귀에 들려온 건, 그가 들으리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저희 학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아보실 생각이 없나 해서 불렀습니다.”
“예?”
“물론, 민기 씨만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