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24)
운빨로 탑스타-24화(24/200)
제24화
예상치 못한 단역 연기를 끝내고 돌아온 오후.
이민기의 얼굴에서는 히죽히죽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후후, 후후후후.”
“민기 씨, 그렇게 좋아요?”
유선아의 말에 이민기가 화들짝 놀랐다.
“아, 혹시 제가 티를 너무 냈나요?”
“아뇨, 보기 좋네요. 그냥 이유나 듣고 싶어서요.”
“그게요.”
이민기가 오전에 있었던 단역 연기에 대해서 말을 늘어놓기를 잠시.
유선아는 화들짝 놀라서는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이었다고요?”
“네, 물론 편집 들어가면 대부분 잘릴 수도 있겠지만요.”
“잘리더라도 어쨌든 한 마디는 남을 거잖아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유선아가 고막이 떠나가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민기 씨 연기잖아요. 남들도 다 알아보겠죠. 어떻게 그걸 잘라내겠어요?”
“…….”
“당장 방영일만 돼도 시청자들이 난리일걸요? 이 사람 누구냐고.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아요?”
글쎄요.
기대되긴 된다만, 아무래도 나보다 그쪽이 더 기대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래도 공감해 주니까 좋긴 하네.
이민기가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단역이라도 뜨면 좋기는 할 것 같은데, 가능성이 그렇게 크진 않겠지만.’
작품 하나에 주역이 둘이라면 조역은 열이고 단역은 백이다.
단역 하나가 그렇게 조명을 받을 가능성은 작았다.
지망생들이 저 하늘의 별만큼 많다 보니, 신인들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시장이다.
작은 광고나 드라마에 1초 미만으로 스쳐 지나가는 배역조차도 따내려고 벌떼처럼 달려들 때가 흔하지 않았나.
‘그런 단역만 맡으며 희망 고문을 당하다가 커리어를 끝마치는 사람들도 되게 많고.’
당장 이민기 본인부터가 그렇게 살다가 생의 끝을 맞이했다.
과거가 다르니 배우로서의 가치관도 앞의 두 사람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민기 씨, 막 그런 이야기 많잖아요. 단역으로 발탁돼서 갔더니, 감독 눈에 발탁돼서 조연급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민기 씨도 그럴 수 있어요.”
“하하…….”
“이야, 그럼 민기 씨 앞으로 확 뜨는 건가?”
유선아와 김탁은 이제 막 신인 지망생이기에 단역에도 큰 기대감을 품었다.
업계의 희귀한 일화조차 자기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만큼.
하지만 이민기는 조금 달랐다.
‘그럼 좋기는 하겠네. 운이 엄청나게 따라주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잘 없지만.’
기대감에 현실을 조금 더 가미했다.
물론.
그런 이민기도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어, 민기 씨, 아직 있었네.”
“선생님.”
김아성이 연습실로 돌아오며 말했다.
“저쪽에서 한 번 보자는데?”
“저쪽이요? 저쪽이라면.”
이민기가 간과한 사실.
그건 바로.
그의 운이 실제로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응, 아까 드라마 찍은 제작진. 그쪽 작가가 민기 씨가 마음에 들었나 봐.”
“…….”
“놀랐지?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해.”
또 희귀한 일이라는 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것도.
이민기의 넋이 나갔는데 유선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거 봐요! 제가 알아볼 거라고 했죠? 분명 말했죠?”
김탁도 말했다.
“캬, 오졌고 지렸고 렛잇고.”
* * *
종합편성채널.
흔히 케이블 방송에서 여러 장르의 채널을 묶어 서비스하는 방송국이다.
원래 종편 방송은 보는 사람만 보는 가십거리 채널에 가까웠지만, 최근 들어서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드라마에서 제대로 대박을 친 것.
[가우라] [그녀의 보스] [하루 다섯 끼]분기마다 히트작이 1개씩은 터지며 바야흐로 종편 드라마의 시대가 찾아왔다.
이 흐름에 터보 엔진을 달기 위해서일까.
종편 방송국들은 거액을 들여서라도 유명 드라마 작가, 유명 배우를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시청자 확보에 기를 썼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있었다.
“PD님, 그분이 그렇게 괜찮아요?”
“네, 작가님도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드라마 작가가 PD를 권력으로 찍어눌러 버리는 것이다.
김희진은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다. 이름만으로도 작품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작가.
[김희진 드라마는 믿을 만하지] [최소 실패는 안 하잖아] [이번에 캠퍼스 스토리도 재밌더라. 이런 청춘 로코는 잘 못 할 줄 알았는데.]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그녀를 믿고 챙겨보는 시청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불안정한 종편 채널에서 신작을 제작하는 건, 공중파에 비해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박유찬 PD는 이제 막 입봉작을 맡은 신인 PD.
이러한 둘의 권력 관계가 김희진 작가에게 다소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한테 어떤 확신이 들었습니다.”
박유찬 PD는 이런 관계라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반길 사람이었고.
“그 배우가 신인인데도 아주 옹골찹니다. 촬영 분량 보셨죠?”
“PD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저도 기대가 되기는 하는데, 사실 단역이 단역인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김희진 작가가 얼핏 못마땅한 표정으로 커피 빨대를 빨았다.
“시청자 반응을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악역을 재등장시키는 건 작품 전개상 리스크가 크거든요.”
흔한 이야기였다.
작품 속에 악역이 인기가 있다고 해서 억지로 추가 등장시키지 않는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악역은 퇴장할 때 퇴장해야 아름다운 법이다.
시청자들은 매력 있는 악역의 재등장을 외치면서도, 막상 등장하거든 피로감을 호소할 때가 많았다.
‘신인 PD라서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김희진 작가가 박유찬 PD를 흘깃 보며 생각했다.
‘열정이 있는 건 좋지만, 가끔은 안정적으로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인데.’
보통은 작가가 밀어붙이고 PD가 안정적인 전개를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드라마라는 게 자못 이러한 PD와 작가의 티키타카를 통해 완성되는 게 있는데, 아무래도 종합편성채널이라서 그런지 체계가 다르다.
더욱이 그녀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드라마의 완성도였다.
‘분명 괜찮은 것 같은데, 딱 그 정도란 말이지.’
캠퍼스 스토리가 그러했다.
좋은 배우를 썼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큰둥하다고나 할까.
반응이 좋지만 정작 시청률이 미묘했다.
종편이라서 그런 건지, 작품 자체의 화제성이 모자란 건지.
지상파 드라마에 익숙한 그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칭찬을 받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드라마 작가는 작품성보다는 시청률로 평가받는 법.
시청률 20%짜리 막장드라마가 15%짜리 웰메이드 드라마보다 고평가를 받는 게 현실이었다.
‘각본의 완성도에는 문제가 없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이대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명작 드라마로 끝나겠지.
뭐든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도 여기서 더 망칠 수는 없어. 일단 얼굴은 보고, 아니다 싶으면 거절해야겠어.’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유찬 PD는 마냥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직접 보시면 작가님께서도 확신이 드실 겁니다.”
“여기 커피 괜찮네요.”
“그렇죠? 여기가 원두부터 좋은 걸 씁니다. 사장님께 이야기를 들었는데, 같은 무게당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거의 두 배 되는 걸 쓴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렇게 두 사람이 잠깐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띠링.
가게 안으로 두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껄렁껄렁한 남자 한 명과 마냥 순진하게 생긴 사람 하나.
하지만 잘생겼다.
김희진 작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 괜찮네.’
인상이 워낙 순해서 그렇지, 전체적인 느낌이 있다고나 할까.
일단 체격과 자세부터가 좋았다.
꾸미면 꾸미는 대로 잘 먹힐 것 같은 얼굴.
흔히 말하는 ‘천의 얼굴’ 상이었다.
물론, 활용하려면 그만큼 연기력이 따라줘야 할 테지만 말이다.
‘배우 지망생인가? 아니면 일반인?’
김희진 작가가 혹시 하는 마음을 품은 순간이었다.
드르륵.
박유찬 PD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민기 씨! 여깁니다!”
“…….”
그 순간 김희진 작가가 물고 있던 커피 빨대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눈빛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저 사람이 이민기라고? 그 새로 출연했다는 단역?’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촬영본에서 봤던 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아예 다른 사람 같은데.
분명 촬영본에서는 사람이 세상 풍파에 찌들어 매사가 다 귀찮아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지금 이민기의 얼굴은 매사에 적극적이기만 했다.
이건 흡사 조교와 새내기의 차이와도 같았다.
‘닮기만 한 다른 사람 아니야?’
일단 자세부터가 반듯하다.
하지만 그녀가 어찌 생각하든 현실은 현실일 뿐.
이민기는 이미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PD님, 안녕하세요.”
“응, 민기 씨, 몇 시간 만에 다시 보니까 반갑네요. 이쪽은 우리 드라마 각본 맡으신 김희진 작가님. 인사드리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이민기라고 합니다!”
이민기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한 순간, 김희진 작가는 속으로 이미 결정을 굳혔다.
‘문제가 해결됐다.’
* * *
갑작스러운 캐스팅 변경이 일어났다.
바로.
[매주 시간 비울 수 있죠?] [네?] [다음 방송, 아니, 다다음 방송 분량부터는 민기 씨를 자주 보게 될 것 같네요.]방송국 측의 두 사람이 이민기를 더 자주 출연시키겠다고 결정한 것.
단역 일에만 익숙한 이민기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업계의 전설로나 들어왔던 일이 그에게도 찾아오다니.
그 주인공이 된 이민기가 한 생각은 이러했다.
‘역시 JC다.’
이 캐스팅 변경이 JC 덕이라는 것이었다.
‘후후, 후후후.’
손으로는 편의점 바코드 스캐너를 긁으면서도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역시 JC.
괜히 JC일까.
아니나 다를까 JC다.
기획사가 받쳐 주니까 단역 일을 맡더라도 다른 곳과는 다르구나.
조금만 열심히 해도 더 신경 쓰고 좋게 봐주는구나.
‘역시 오디션에서 백 번을 떨어지더라도 좋은 기획사로 가야 해.’
전적으로 이민기의 착각이었다.
JC와는 하등 상관없이 그가 연기와 외모를 잘 갈고닦은 덕분이지만, 그의 착각을 정정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착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려니 눈앞의 할아버지가 말을 붙였다.
“어이구,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
“아, 손님.”
“웃으니까 저도 힘이 나네요. 이거 드세요.”
할아버지 손님이 계산대 위로 핫바 하나를 올려놓고는 그대로 편의점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물 흐르듯 선물을 받은 이민기가 거듭 웃음을 터뜨렸다.
‘운이 좋군.’
사실은 단지 운이 좋은 게 아니다.
인상이 전생과는 완전히 달라진 덕이었다.
실패감과 피로, 피해망상에 찌든 이민기는 이제 없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이민기 MK.2.
지금의 그에게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매일 저녁 방해받을 일 없이 깊은 수면을 취했다.
양질의 식단과 운동을 병행한 결과, 피부부터 윤기가 줄줄 흘렀다.
모델 알바를 시작하며 돈 걱정이 줄자, 가만히 서 있어도 표정부터 밝아졌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는데, 이민기는 석탑을 쌓았다.
변화는 이미 착실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민기 본인만 모를 뿐.
‘후후,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후후. JC 만세. 후후후후후.’
* * *
며칠 뒤.
[캠퍼스 스토리]의 최신화가 공개되었다.그리고.
[제목: 익들아 최신화 봤어?]변화가 찾아왔다.
[이 나쁜 새끼는 뭔데 매력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