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26)
운빨로 탑스타-26화(26/200)
제26화
“야, 너 죽고 싶어!”
박태견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신인 앞에서 몸개그를 선보였다는 수치심과 비호감이 맞물려 그는 폭발하기 직전의 시한폭탄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민기의 생각은.
‘아니, 지가 먼저 넘어져 놓고 왜 이러지?’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촬영장에서 그를 처음 마주했을 당시만 해도 나름대로 반가웠다.
박태견.
불과 몇 년 활동하다가 은퇴했는지 사라졌지만, 어찌 됐든 그사이에 굵직한 작품 몇 개를 남겼다.
연기력도 썩 괜찮은 편.
데뷔 시기도 겨우 1년 정도 차이 날 뿐이니, 잘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무엇인가.
“너, 내가 우습냐?”
그가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눈 안 깔아?”
“…….”
“이 바닥에서 선배 대하기를 그런 식으로 하면서 오래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자기 혼자 어림없는 몸놀림을 펼치고는 왜 이러나.
이민기는 그러니까,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확! 씨! 눈깔아! 안 깔아?”
박태견은 아예 물리적으로 위협하듯 쫙 편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하, 이게, 지금 내가 장난치는 거로 보여?”
계속해서 협박이 이어졌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라는 거지?’
이민기의 머릿속은 눈앞의 남자가 아무리 급발진을 일삼든 그저 한없이 차분하기만 했다.
왜냐, 이 시장 굴러가는 구조를 겉핥기로나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
‘어차피 데뷔 1년 차 신인들끼리는 그게 그거다.’
바닥이 좁으니까 괜한 다툼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겠지.
그렇다고 구태여 숙여 줄 필요는 없었다.
하물며 박태견은 금방 은퇴할 사람 아닌가.
이 모든 사실을 종합적으로 파악했기에 이민기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제가요? 왜요?”
네 탓이라고.
그 말에 박태견의 이마에 핏줄이 한층 굵게 솟았다.
다음 순간이었다.
“확!”
박태견의 들어 올린 주먹이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이민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오?’
그저 이민기의 바로 눈앞 빈 허공을 스칠 뿐이었다.
아마추어의 어림도 없는 공격.
유치원생조차 눈만 똑바로 뜨면 피할 수 있을 텔레폰 펀치에 맞아 줄 만큼 이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이게!”
박태견이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앞서 한 것과 마찬가지로 빈 허공만 스칠 뿐.
안정적인 거리 두기 펀치.
박택견, 아니, 박태견의 몇 번이고 연이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후로 상황은 오히려 더욱 안 좋아졌다.
“어, 어, 어?”
신발 밑창의 물기가 덜 가셨다.
그대로 미끄러진 박태견의 신형이 화려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
통산 두 번째 다운.
“악!”
주먹을 헛치는 것도 부끄러운데 또다시 넘어졌다.
이쯤 되자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상해, 왜 안 맞지?’
이유는 멀리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원래 사람이 사람에게 주먹을 꽂아 넣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타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하체와 올바른 동작 그리고 정확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무엇 하나 박태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운이 나쁜 것도 있었고.
결국에는 분을 못 이긴 박태견이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 왜 피하고 지랄이야!”
“그렇다고 맞아 줄 수는 없잖아요. 배우는 얼굴이 생명인데.”
이민기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그 침착함이 박태견의 화를 한층 더 돋웠다.
‘이 새끼, 지금 나 놀리나?’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 박태견은 아예 물고 늘어지겠다는 듯, 이민기에게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민기의 다리가 100년 묵은 고목의 나무뿌리처럼 굳건하게 바닥에 박힌 채, 흔들림 없이 박태견의 태클을 받아냈다.
흔히 격투기에서 스프롤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정면에서 허리를 노리고 달려오는 상대를 위에서 아래로 꾹 눌러주면 완성.
태클을 저지하기에 안성맞춤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스프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하체와 올바른 동작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기 때문.
그리고.
‘의외로 버틸 만한데?’
이민기는 이 중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요즘 운동을 해서 그런가?’
[집 근처 헬스장]에서 권준용 관장의 손으로 벼린 몸이었다.그의 일대일 코치와 타고난 골격이 만나, 슬슬 일반인 이상 헬창 미만의 몸이 완성되었다.
특히 하체를 집중적으로 단련했으니 안정성이 남다를 수밖에.
그리고 타이밍.
이건 운으로 얼떨결에 메우고도 남음이었다.
“익, 이익……!”
아무리 밀어도 넘어가지를 않았다.
‘이 자식, 대체 뭔데 이렇게 힘이 세? 겉보기에는 멸치처럼 마른 자식이.’
힘으로도 밀린다.
이쯤 되자 박태견은 울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겁박 지르려고 했던 건 실패했다.
휘두른 주먹은 전부 헛쳤다.
이어서 넘어뜨리기라도 하려 했지만, 힘으로 저지당했다.
“……저기, 그만하실래요? 좀 민망한데.”
게다가 이민기는 그를 놀리듯 여전히 차분하기까지.
심지어 나긋나긋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박태견이 악에 차 외쳤다.
“새끼야! 이거 놔!”
“그럼 또 저 때리실 거잖아요.”
“놓으라고!”
“배우님이 먼저 힘을 빼셔야 제가 놓든 말든 하죠.”
선배 배우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는 1년도 차이가 안 나니 선배 후배 가릴 것도 없다. 하지만 연극영화과에서 한 학년 차이로 갈리는 서열을 맛본 박태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
“…….”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세상 민망한 대치가 이어지길 잠시.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끄럽.”
마침내 소음을 신경 쓴 누군가가 마침내 대기실로 등장하더니 안색이 굳었다.
“헙.”
그 한 명으로 끝이 아니다.
하나, 둘, 셋, 넷.
“이게 무슨 일.”
“헉.”
“뭐야?”
차례차례 빠르게 몰려들더니 어느새 일곱 명의 사람이 되었다.
그중 한 사람, 박유찬 PD가 무리를 헤치고 빠져나오더니 난장판이 된 실내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두 분, 액션 연기하세요?”
* * *
사태가 대강 소강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가고, 네 명의 사람만이 대기실에 남았다.
당사자인 박태견과 이민기.
그리고 현장 책임자인 박유찬 PD와 마침 들렀던 김희진 작가였다.
네 사람이 한 책상을 두고 서로를 마주한 가운데.
“그러니까 태견 씨 말씀은.”
박유찬 PD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가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민기 씨가 바닥에 물을 뿌려놨다고요? 배우님 넘어지시라고?”
“예.”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요?”
“그러니까.”
“그리고 넘어졌다고 한들, 말로 풀어야지 그걸 왜 주먹으로 풀려고 하십니까. 애들 싸움도 아니고.”
“…….”
정확하게 정론이다.
그 말에 박태견의 고개가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타고난 다혈질로 달아올랐던 머리가 식고 나자, 이 상황이 얼마나 추했는지 그 자신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치심에 차 볼멘소리로 항변할 뿐.
“애초에 이쪽이 먼저 대기실에서 수상한 일을 하고 있었다니까요.”
“그래요?”
박유찬 PD가 한숨을 내쉬더니 이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기 씨, 대기실에 일찍 오셔서 뭐 하고 계셨나요?”
“대본 외우고 있었습니다.”
“흠, 잘하셨습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박태견이 아무리 억울해한들, 이민기의 알리바이에서는 따로 의심할 게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억울하다면 그건 이민기가 억울한 게 정상이고.
하지만 박유찬 PD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주연 배우랑 단역 배우가 싸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드라마 평가가 급격히 좋아져서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구름 위를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난장판인가.
대충 덮고 넘어가고 싶어도 누구 한 명 편을 들어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명색이 주연 배우를 내다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민기 씨한테는 잘못도 없는데.’
김희진 작가의 시선도 따갑다.
아무 말 없이 한 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그야말로 세상 한심하다는 눈빛 아닌가.
현장에서의 사람 관리는 전적으로 PD 몫이다.
무능하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결국, 상황이 이쯤 꼬이자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아예 CCTV를 까볼까요?”
그냥 다 짚고 넘어가자는 것.
하지만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진 사람이 있었다.
“예? CCTV요?”
박태견이었다.
그가 입을 뻐끔거리는데 박유찬 PD가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시죠?”
그곳에서 검은색 CCTV가 까꿍 고개를 들고 다소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방송국이다보니까 대기실에서 사고가 일어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최대한 저장해 두고 있습니다.”
“…….”
순식간에 박태견의 기세가 쪼그라들었다.
무슨 유치원생 돌보는 것도 아니고.
이쪽이 원인 제공한 거 맞네.
박유찬 PD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도 이게 다 일하자고 모인 거 아닙니까. 앞으로 촬영할 분량도 남았고. 감정싸움 하나로 누가 맞니 틀리니 하면 서로 다 손해죠?”
“그건 그렇죠.”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꿀릴 게 없으니 다 짚고 넘어가도 상관없겠지만, 똥 묻은 개한테 죽창 꽂으려고 배우 인생 시작부터 몸에 된장을 바르는 건 사양이었다.
좋게 좋게 덮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리 나쁠 건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이게 박유찬 PD와 김희진 작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방법이기도 했고.
“예,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아까 그 난리는 없었던 거예요. 본 사람도 없고. 우리 모두 그냥 깔끔하게 잊는 겁니다.”
박유찬 PD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민기 씨, 동의하시죠?”
“네.”
“태견 씨는?”
“…….”
“태견 씨?”
“……알겠습니다.”
박태견이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는 듯 굴욕감에 젖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김희진 작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와중에 와서도 남의 시선이나 살피고.’
어찌 됐든 더 끌고 가긴 지겹다.
박유찬 PD가 대강 정리된 상황에 마침내 안도해서는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조금 있다가 리딩 시작이니까 가서 준비해 주세요. 민기 씨는 저랑 잠시 대화 좀 나누고 가십시다.”
“네.”
박태견이 먼저 대기실을 나섰다.
여전히 분을 못 삭여 씩씩거리는 발걸음으로 말이다.
박유찬 PD는 그 뒷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기를 잠시, 이민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뇨, PD님이 더 많으시죠.”
“나중에 술이나 한잔해요.”
“아, 요즘 식단 조절하고 있어서.”
“……민기 씨도 좀 캐릭터가 있네요.”
한참이나 팔짱만 낀 채 아무런 말도 없었던 김희진 작가도 거들었다.
“방금 일은 기억해 둘게요.”
그렇게 대기실에서의 사태가 대강 지나갔다.
* * *
옛말에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하였던가.
박태견은 소인배이기에 그의 복수는 몇십 분만에 찾아왔다.
“그럼 23번 씬 시작하겠습니다.”
대본 리딩.
육체적인 격차와는 상관없이, 배우로서의 실력을 맞부딪힐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23번 씬은 박태견과 이민기가 함께 연기하는 장면.
심지어 두 사람이 대립하는 씬이었다.
‘제대로 찍어누른다.’
박태견이 이를 악물었다.
앞서 느낀 패배감을 여기서 해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당장 사방에 빼곡 들이찬 배우들의 시선이 그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구하겠다고 했지만, 들을 사람은 다 들었겠지.
물론, 주위 배우들의 시선은 그와는 상관없이 이민기에게만 한껏 집중되어 있었다.
‘저 사람이 지난번에 그 사람이지? 그때는 상황이 좀 급했는데 잘 됐다.’
‘생각보다 인상이 순한데.’
‘현장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대본 리딩도 잘할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박태견이 대본 종이가 우그러지도록 강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네가 그 새끼야? 하나(여주)한테 못 할 말 했다는 자식이? 존나 범생이네.”
어조가 훨씬 굵었다.
적개심이 진하게 묻어나는 목소리.
이 장면은 서브 남주가 조교를 떠보는 장면이기에 굳이 세게 나설 필요가 없었지만, 박태견의 개인적인 감정이 묻었다.
‘어디 받아내 봐라.’
신인들의 흔한 착각이기도 하였다.
마냥 격정적으로 말하면 그게 감정표현을 잘하는 거라고 착각하기 마련.
하지만.
이민기의 대응은 침착했다.
“누구세요?”
감정이 없다 못해 어리둥절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불과 네 글자.
박태견의 존재감을 말끔히 지워버리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딕션 좋네.’
‘깔끔하고.’
‘캐릭터가 있네.’
모두가 속으로 이민기를 평가하는 한편.
대본 리딩에 참석한 김희진 작가가 작게 웃음 지었다.
‘역시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