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27)
운빨로 탑스타-27화(27/200)
제27화
본격적인 [캠퍼스 스토리] 촬영이 이어졌다.
불과 완결까지 5화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민기가 씬 스틸러로 투입되면서.
극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 나타난 변화다.
어지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
하지만 그 반응은.
[민X민 연기] [신인 배우 이민기는 누구?]기사에서 증명되었다.
[화제의 단역, 이민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순수한 마스크를 자랑하지만 연기를 시작하면 소시민으로 돌변한다] [이 배우가 지난번에 그 야구장 응원남이라고?] [단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숙함] [현장에서 들어 보았다] [JC의 차세대 신인 배우로 밝혀져, 역시 JC, 아니나 다를까 JC]평가 자체가 좋다.
단역치고 좋은 건 물론, 대다수 신인의 첫 연기가 흑역사라는 걸 감안하자면 신인 배우의 데뷔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하지만 막상 그 당사자인 이민기는 어떤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 가면 갈수록 분량이 계속 늘어나는 것 같다?’
분량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분량 늘어나서 나쁠 이유는 없지.
배우로서는 기뻐하다 못해 하늘을 날아도 좋을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분량은 곧 몸값의 상승으로 이어지니까.
하지만 카메라 분량이라는 건 총량이 정해져 있고, 이민기의 분량이 늘었다는 건 다른 누군가의 분량이 줄었다는 뜻이다.
이 분량이 어디에서 왔는가가 문제인데, 이민기는 잘 알았다.
‘저 사람이네.’
박태견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민기와 촌극을 벌였던, 아니,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었던 그 배우 말이다.
그의 분량이 매 편마다 큼지막하게 토막 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이민기 그로서는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전생보다 갈수록 분량이 늘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존 [캠퍼스 스토리] 촬영 분량이 오롯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지? 대체 왜?’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그 디테일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브 남주의 공기화와 함께 말이다.
“…….”
하지만 이민기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장면, 원래 이거 아니잖아.’
지금부터 촬영할 장면이 있다.
이남욱 조교(이민기 역)가 여자 주인공의 장학금 추천서 문제를 해결해 줬다며 박X스 선물 받는 장면.
그런데 이민기의 기억이 맞다면 이거, [캠퍼스 스토리]에서 나름대로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이었다.
다만, 이남욱 조교가 아니라 원래 서브남주가 차지해야 할 장면일 뿐.
‘이걸 왜 내가 맡아.’
당황스럽다.
한편으로는 또 명백하다.
김희진 작가가 대본을 야금야금 수정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기존 서브남주를 공기화시키고, 그 자리에 이민기를 밀어 넣는 방식으로 말이다.
‘본인은 모르겠지? 몰라야 할 텐데.’
이민기의 눈이 스태프들 사이로 박태견과 마주쳤다.
그가 간이 의자에 앉은 채 상처 입은 개처럼 온몸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어떻게든 적개심을 표현하지 않으면 못 버티겠다는 듯 말이다.
그러더니, 이내 훽 고개를 돌렸다.
감정이 겉으로 다 드러나는 그 모습에 이민기가 속으로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어지간히 다혈질이구나.
‘왜 저 사람이 업계에서 금방 모습을 감췄는지 조금은 알 것 같네.’
누구랑 대판 싸운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민기의 눈앞으로 한 여자 배우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남욱 씨, 이따가 시간 되죠?”
“…….”
“남욱 씨?”
“아 참, 잠깐 무슨 생각 좀 하느라.”
이민기는 움찔 떨고는 답했다.
촬영 중이었지.
박태견에게 시선을 뺏긴 탓에 정신을 못 차렸다.
‘다시 촬영하나.’
그거 민폐인데.
스태프들한테 찍히면 어쩌나 싶은데, 그의 앞에 선 여자 배우.
그러니까 여자 주인공 ‘김하나’ 역을 맡은 한민서 배우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제대로 못 주무시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아까 수업 중에도 졸으시던데.”
평범한 걱정이 아니다.
대사다.
아무래도 연기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하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이민기가 그녀의 관심이 귀찮다는 듯 눈가를 긁적이며 말했다.
“조교가 다 그렇죠, 뭐.”
“저기요. 이거 드세요.”
한민서 배우가 이민기의 손을 쥐더니 그 사이로 무언가를 건넸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양강장제이자 직장인의 영원한 친구, 박X스였다.
당연하지만 PPL 상품.
이민기가 그 차가운 촉감을 느끼고 있는데 한민서 배우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고마웠어요.”
“예?”
“조교님이 교수님 설득해 주셨다면서요?”
“제가요?”
“모른 척하지 마세요. 이미 다 들었어요. 된통 깨지셨다면서요?”
“……그걸 어떻게 하나 씨가 아시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데요. 그럼 저 수업 있어서 가볼게요.”
김하나는 그렇게 할 말을 다 마쳤다는 듯 총총걸음으로 떠났다.
이어서 이민기가 그녀에게 받은 박X스를 멍하니 응시하더니, 그녀가 떠난 자리와 병을 번갈아 보기를 잠시.
피식 웃고는 뚜껑을 깐 순간이었다.
“컷!”
박유찬 PD가 외쳤다.
그 목소리와 함께 긴장이 빠져나가며 촬영이 중단되었다.
‘이크.’
이민기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어찌저찌 촬영을 마치기는 했다만, 아까 멍때린다고 시간을 잡아먹었던 게 기억에 걸렸다.
‘멍청아, 단역은 촬영에만 집중해도 모자란데. 찍히면 어쩌려고.’
박유찬 PD가 그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온 그가 이민기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울 만큼 가까이 마주선 순간이었다.
“민기 씨.”
그가 입을 열더니 말했다.
“이야! 아까 눈빛 연기 엄청 좋았어요!”
“…….”
칭찬이었다.
이민기가 벙쪄 있는데 박유찬 PD는 주위 사람들이 보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자기 할 말을 쏟아내기 바빴다.
“바로 그거지. 이남욱은 그런 캐릭터거든. 무심한 척하지만 사실 주위에 사려 깊다고 해야 할까? 이 완급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민기 씨가 찰떡이네요. 하하!”
“맞아요. 민기 씨, 방금 엄청 좋았어요.”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김하나’ 역을 맡은 여자 배우, 한민서마저 와서 그에게 따봉을 들이밀며 말했다.
“민서 배우님.”
“이상하게 민기 씨랑 호흡을 맞추면 저까지도 술술 풀리는 기분이 드는 거 있죠. 합 맞추는 연기가 익숙하신가 봐요.”
“…….”
“저 신인 때는 장면 하나 찍을 때마다 10번도 넘게 재촬영하고 그랬는데. 후후,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요.”
칭찬하고 싶으셨구나.
이민기가 아무런 말도 없어도, 박유찬 PD와 한민서 배우는 그를 중간에 마네킹처럼 세워둔 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기 바빴다.
“민서 씨는 처음부터 연기 잘했어.”
“민기 씨만큼요?”
“그건 좀 봐야겠는데?”
“어? 진짜요? 저 잘했다면서요.”
그 사이에 낀 이민기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박태견의 서브남주 연기가 남아 있었으니까.
‘내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배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태견이 느끼고 있을 억하심정 따위,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는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가 걱정이었다.
원래 서브남주의 분량을 잘라내고 그가 대체하거든, 시청자들이 어색하게 느끼지 않을까.
박혀 있던 돌을 빼낸 불청객 신세가 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민기의 고민은 일말의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민기 씨를 넣으니까 확실히 그림이 사네.’
김희진 작가가 괜히 잘나가는 작가겠는가.
바쁠 때는 쪽대본으로도 큰 그림을 그리는 그녀다. 흐름이 잡힌 와중에 배역을 조금 바꾸는 정도를 못 할 리가.
이 정도는 일상.
사소한 비중 조절은 그녀에게 있어서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도 간단했다.
오히려 쓸 카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작품으로 끝나면 어쩌나 했는데, 민기 씨를 세워두니까 작품 맛이 사는 것 같아.’
적어도 박태견보다는 낫다.
그는 자기만의 연기를 하려 하지, 남에게 맞추는 연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큰 그림을 볼 줄 모른다고나 할까.
전형적인 신인 배우의 딜레마였다.
여기에 타고난 성격으로 인한 분량 욕심 문제도 있을 테고.
‘민기 씨는 괜한 욕심이 없어서 좋네. 남을 묻으려고 안 해. 응, 누구랑 붙여도 캐미가 살아. 게다가 누구랑은 다르게 눈치도 있고, 같이 한 작품쯤 더 찍어 보고 싶은데, 흐음.’
호감도가 한계치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김희진 작가는 겉으로는 티를 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서브 남주 교체는 그 누구도 모르게끔 조용하게 진행해야 할 일이니까.
물론, 그녀의 꿍꿍이를 완벽하게 꿰뚫은 사람도 있다.
‘각본이 왜 자꾸 나한테 돌아오지?’
이민기였다.
봤으니까 안다.
하지만 알아도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나 진짜 굴러온 돌 아니야?’
단역 주제에 촬영장의 중심이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니까.
티를 낼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한민서 배우가 붙어서는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이따 촬영 끝나고 다 같이 카페 가서 수다나 떨다 가려고 하는데, 어때요? 같이 가실래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럴수록 이민기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헬스장 약속 있어서요.”
“배우님, PT도 받으세요?”
“아뇨, PT는 아니고, 비슷한 거요.”
* * *
[캠퍼스 스토리]의 방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본디 보는 사람은 보지만, 그 보는 사람 안에서만 고평가를 받는 작품이었다.
어중간하게 낮은 시청률이 쭉 이어지는 그런 작품.
김희진 작가라는 유명 작가를 기껏 데려온 것치고는 성과가 미묘했다.
하지만 이민기가 ‘이남욱 조교’ 역에 투여되며 상황이 조금씩 반전되었다.
[캠퍼스 스토리 시청률 추이] [2.44% -> 2.51% -> 2.7% -> 2.89%]매 화마다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바야흐로 역주행의 시작.
인터넷 드라마 커뮤니티를 등지로 이민기의 연기가 입방아에 오른 덕이었다.
[제목: 오늘 자 이민기 등장 씬 모음] [댓글(41)] [나 최애 갈아타도 될 것 같아] [몇 살이야??] [이제 20대 중반이라는데?] [헐 나이보다 엄청 어려 보인다. 피부 관리 잘했나 봐] [ㅋㅋㅋㅋ 내가 보기에는 어려 보이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 [조교 나이니까 그냥 비슷하지 않아?] [잘생겼으니까 상관 없어] [저 피식 웃는 연기 하나는 최고다……맨날 내 옆에서 피식 웃어줬으면 좋겠어] [누가 피식 씬만 모아서 편집본 만들어 주면 안 돼?]그렇게 점점 오른 시청률이 최종화에 이르러서는.
[3.13%]종편 금토 드라마 기준 무난한 성공작의 척도라고 할 수 있을 시청률, 3%대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작가 이름값치고는 본전치기다.
하지만 그 본전치기를 해냈기에 이민기의 가치가 더 올라갔다.
그렇게 [캠퍼스 스토리]는 느슨해진 배우 업계에 긴장감을 가져다줄 신인 배우의 출사표가 되었다.
[다음 작은 뭐 찍는데?]한편, 이민기가 뜬 만큼 속이 뒤집히는 사람도 있었다.
‘저걸 우리가 데려갔어야 했는데.’
다온의 김종혁 이사.
그는 매 편마다 시청률을 체크하며 피를 토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이야, 저 친구 대박이네.”
그런 그의 옆에서 다온의 황인구 대표가 말했다.
“김 이사, 그러고 보니까 저 사람 우리 회사 지원했다고 했었나?”
“예, 그 지난번 오디션에.”
“그래? 그런데 왜 안 뽑았어?”
“…….”
몇 번을 말했는데, 당신이 안 들었잖아.
속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아랫입술을 질끈 무는데, 황인구 대표가 손을 휘휘 젓더니 말했다.
“흐음, 뭐, 이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됐고, 슬슬 우리도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