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29)
운빨로 탑스타-29화(29/200)
제29화
이민기의 공식적인 첫 배역 오디션 참여 작품이 결정되었다.
[언제까지고 푸르른].이 시기에 제작에 들어가고 꽤 화제가 되었던 범죄 스릴러 작품이었다.
스토리가 어떻게 됐더라.
‘형사 겸 살인마가 등장하는 작품이었나.’
형사가 자기 내부 정보망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던 게 마지막 장면.
‘죽일 사람을 죽인 게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는 씬에서 박력이 장난 아니었지.’
주역을 맡았던 배우가 워낙 실력 있는 배우였던 참에,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일 듯 머릿속에 훤했다.
하지만 이민기, 그가 맡은 역할은 주연이 아니다.
조연 중에서도 중간 혹은 그보다 아래 정도의 역할을 가진 캐릭터.
그러니까.
“배우님한테 딱 맞는 작품 같습니다!! 수사에 협조하는 일반인이라니, 그야말로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잖아요?”
일반인이었다.
형사의 옆집 주민인데, 평소 그의 거동을 의심하다가 무고하게 살해당하는 역할.
작중 살인마는 범죄자만 살해한다는 게 모토였는데, 여기에서 무고한 일반인마저 살해하며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나름대로 키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배역.
배역 자체는 좋다.
‘출연 시간은 짧지만, 잘만 하면 진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야.’
만족스럽다.
피해자 연기도 해 보고 싶은 참이었다.
잠깐 나오고 사라지는 역인 게 아쉽지만, 신인인데 가릴 게 뭔가.
‘응, 괜찮아.’
다만 문제는 이민기의 눈앞에서 신나서 조잘조잘 떠드는 사람이었다.
“배우님과 함께 일하게 돼서 제가 다 즐겁네요. 으하하하!”
“하하…….”
앞으로 그를 도와줄 매니저 되는 사람의 거센 목소리에 이민기가 웃어넘겼다.
‘이름이 박한모라고 했나.’
독특한 이름이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박한모.
‘집 가는 길에 갓 나온 두부 한 모 포장해서 묵은지에 뚝딱 한 그릇 하고 싶네.’
이민기는 목울대 끝까지 나온 생각을 간신히 도로 삼켰다.
어찌 됐든 사람 자체는 괜찮은 듯했다.
말이 어지간히 많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배우님이 이번에 출연한 작품 저도 봤거든요. 캠퍼스 스토리? 그거 너무 재밌어서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주말 이틀 만에 정주행했습니다. 언제 나오나 좀 지루했는데 배우님 등장하자마자 확 작품이 뜨는 거 있죠?”
운전대를 잡은 박한모 매니저의 입에서 계속해 수다가 쏟아져 나왔다.
“저 이런 청춘 작품은 다 좋아하거든요. 시트콤도 어지간한 거 다 챙겨봤어요. 바닥 뚫고 로우킥 같은 작품들. 하하.”
말이 많다.
이민기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자동차의 인위적으로 상쾌한 방향제 냄새가 합쳐져 한층 더 부담스러워졌다.
사람이 말이 많은 게 단점은 아니다.
오히려 업무가 고된 매니저에게 활달한 성격은 장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매니저가 축 가라앉아 있으면 배우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말이 많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단점이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신뢰성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앞으로 작품 관련해서도 상의를 많이 해야 할 텐데.’
맞든 안 맞든 호흡을 맞춰야 할 처지다.
신인이 대뜸 매니저 갈아달라고 항의하는 건 말도 안 되고.
애초에 신인한테 유망주라며 대뜸 매니저를 달아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역시 JC.
‘막상 호흡을 맞춰 보면 뭐가 맞을지도 몰라.’
이민기는 어찌 됐든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볼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저기, 이번 작품 말인데요.”
“언제까지고 푸르른 말씀이시죠?”
“네, 혹시 배역 오디션 모집 공문 내려온 거 읽어 보셨나요?”
“물론이죠. 아마 배우님보다도 제가 먼저 읽었을걸요? JC는 공문 내려오면 다 외우게 시키거든요.”
“……진짜로요?”
“예? 어떤 게요?”
“그 공문 내려오면 외운다는 거요. 진짜로 다 외워요?”
이민기의 얼핏 놀라서 던진 질문에 박한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한 열두 개 됐던 것 같은데. 메누하랑 커피와 그대랑 아름다운 치과의원 그리고 또……”
이민기가 받았던 공문들의 제목과 내용이 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맞는 내용에 이민기가 놀라서 물었다.
“이걸 다 어떻게 외우셨어요?”
“에이, 담당 배우가 촬영한다는 작품 파악도 못 하고서야 매니저 직함은 못 달죠. 하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오히려 안 그러는 게 문제라는 듯 고민도 없이 나온 대답.
그에 이민기가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일류 기획사다. JC는 매니저한테도 작품 내용을 전부 숙지시키는구나.’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담당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파악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니까.
이걸 못 하면 그게 더 문제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민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옛날 내 기획사는 대표가 내가 출연하는 작품 제목도 몰랐는데!’
말 그대로, 그가 겪었던 옛 기획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니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건 물론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직원 한 명한테 영업에 회계에 박스 포장에 배달까지 온갖 일을 떠맡기는 통에 몇 달에 1명씩 달아나고. 연락해도 잘 안 받고, 받는가 하면 이직했다고 하고.’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이민기가 치를 떨고 있으려니 박한모 매니저가 시원스레 웃더니 룸미러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미 오디션 보러 가는 길에 이런 걸 여쭙는 게 좀 늦었을 수도 있지만요. 배우님은 이번 배역 혹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글쎄요.”
이민기는 잠시 창밖을 보며 고민하다가 답했다.
“어렵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배역? 떨어질 수도 있겠죠.”
“에이, 그래도 설마 떨어질까요.”
“거기 감독님이 워낙 유명한 분이시니까요. 작품도 좋고. 제 생각에는 아마 실력 있는 분들이 엄청 많이 지원할 것 같아요. 거기 치이지 않을까 겁나네요.”
“하하, 너무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배우님이니까 잘 소화하실 겁니다.”
“제가 뭘요. 전 이제 막 한 작품 마친 신인인데.”
이민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는 거죠.”
“그러시구나. 최선은 늘 옳죠.”
다음 순간이었다.
박한모 매니저의 한참이나 들떴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다.
작게 호기심을 느낀 순간 그가 말했다.
“배우님,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요. 특별히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닌데, 배우님은 그 캐릭터랑 엄청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예?”
갑작스러운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지적 같기도 하고.
‘안 친한 사이에…… 지적을?’
지적이야 하려면 하는 거지.
하지만 서로 반쯤 초면이라 어색해서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몸부림치는 와중 아니었나.
이민기가 작게나마 경직된 사이 박한모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지금 배우님이 맡으신 배역도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배우와 배역 사이에는 인간 상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배우님 배역은 좀 건조한 캐릭터고.”
“그렇기는 하죠.”
“제가 생각하는 배우님 캐릭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음, 그래!”
박한모 매니저가 자기 스스로 납득할 대답을 찾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배우님이 맡는 캐릭터라면 조금 더 자극적인 맛이 있어야 하거든요. 격렬하게!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짠맛!”
“흐음…….”
이민기가 마땅히 대답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내 캐릭터가 그런 맛이었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의 시선은 귀를 기울여 두어서 나쁠 게 없다.
이민기는 작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솔직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연기에 참고할게요.”
“하하, 그냥 흘려들으세요. 배우님 연기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배우님이 잘 아시죠.”
박한모 매니저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배우님 뵙고 느낀 건데, 배우님은 뭘 해도 될 것 같던데요? 팔색조! 만능형! 육각형 스테이터스! 천의 얼굴! 게다가 연습도 엄청나게 하신다면서요?”
“…….”
이 사람, 역시 말이 많다.
전부 대답하려면 오디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질 것 같아서 한 귀로 흘리려는 와중이었다.
“게다가 김아성 트레이너님도 회사에 매일 배우님 자랑을 하고 다니셨어요.”
“제 자랑을요?”
“조만간 우리 회사에 초특급 신인 하나 데리고 올 거라면서. 레드 카펫 깔아 두라고 얼마나 달달 볶으시던지요.”
아하.
김아성 트레이너도 말이 많았구나.
“자기 수제자라고 함부로 이상한 일 시키고 험하게 굴리고 그러면 자기 퇴사할 거니까 그렇게 알래요.”
“…….”
말이 정말 많으셨구나.
* * *
범죄 스릴러.
말 그대로 범죄를 소재로 한 스릴러 장르.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이 장르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연기 조금만 못 해도 나가리다]스토리 이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스릴러는 말이야. 플롯 자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보니까 연출이랑 연기가 중요해.] [아무리 대단한 감독도 연기 못 하는 배우 데리고는 명작 못 찍는다. 스릴러는 특히.]그 탓에 여기에서 연기력을 검증받는 신인이 많았는데, 예로부터 한국 영화계에서는 인생 연기를 이 장르에서 뽑아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 찍던 사람이 계속 찍는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랄까.
아무튼.
이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유독 장인정신을 보이는 감독이 있었다.
“크흠.”
“괜찮으십니까?”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입니다. 눈이 침침하네.”
“염 감독님께서는 퇴근하시고도 계속 일만 하시니까 그렇죠. 하하.”
염광호 감독이 그러했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내로라하는 워커홀릭.
그에게 같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미술감독이 물었다.
“염 감독님, 요즘 너무 과로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아, 어떻게 일을 덜 하겠습니까. 더 하고 싶은데 못할 수는 있어도.”
“몸 축납니다. 오래오래 찍으셔야죠.”
“명작 하나 찍을 때까지는 신경 안 쓸 겁니다.”
“에이, 이미 믿고 보는 염 감독님이시지. 당장 지난번 작품도 청불로 400만 관객이잖아요?”
“흥행도 좋지만 그런 거 말고, 한국에서도 [양들의 침묵] 같은 거 하나 깔쌈하게 뽑아 줘야 당장 내일 무덤에 묻히더라도 속이 후련하지 않겠습니까?”
염광호 감독.
그는 범죄 영화만 찍을 뿐만 아니라, 범죄 영화에 영혼을 건 사람이었다.
‘영화계에 길이 남을 족적 하나는 남기고 싶다.’
IMDb(세계 최대 영화 사이트) 랭킹 250위 안에 한 작품 올리는 게 그의 목표.
목표치가 높다.
그러니만큼 디테일에 집착이 심한데, 작품 안에서라면 아주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직접 만지려 드는 게 기본이었다.
가히 편집증적인 방식.
하지만 그 탓에 촬영 기간에는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될 때가 잦았다.
이 사실을 잘 알아서일까.
예술감독이 동업자로서 일말의 존경심을 가지면서도 물었다.
“하하, 그래도 감독님께서 이런 어중간한 조연 오디션을 직접 보러 오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번 배역 오디션 이야기였다.
그 말에 염광호 감독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배우는 감독이 뽑아야지요.”
“중요한 역할이라면 그렇죠. 하지만 이건 솔직히 좀 애매한 역할이지 않습니까.”
배역 오디션 공문을 뿌릴 때는 대본 전체를 보내지는 않는다.
작품의 전체적인 시놉시스와 그 배역의 역할 정도. 여기에 잘라낸 장면 대본 조금 정도일까.
‘남들은 모르겠지. 이 배역이 작품에서 5분도 얼굴을 안 비추는 자리라는 걸.’
내부자로서 그런 속사정을 잘 알기에 한 말인데, 염광호 감독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답했다.
“에이, 나는 적당히 보고 뽑으면 그만이지만, 이 사람들은 다 인생을 걸고 온 사람들일 텐데. 어떻게 사람이 그럽니까.”
“보통은 안 그래요.”
“보통 마음가짐으로 대하면 보통 영화밖에 못 만드는 겁니다.”
“후후, 우리 염 감독님 열정은 못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막간의 잡담을 떨던 와중이었다.
“쉿, 슬슬 시작입니다.”
어느새 오디션 시각이 되었다.
목소리를 줄이고 참가자가 오디션장으로 발을 들이기를 기다리기를 잠시.
예술감독은 혹시 하는 마음에 물었다.
“지난번에 그 배역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배역이라면?”
“염 감독님이 일부러 안 뽑고 남겨둔 그 배역 말입니다. 최대한 심사숙고하실 것 같으시던 그거.”
“아, 그 역할은 말입니다만.”
염광호 감독은 잠시 대답을 고르듯 고민하고는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아직도요?”
예술감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촬영이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쉿.”
더 따지려 드는 그를 저지하며 염광호 감독이 말했다.
“어쩌면 오늘 찾아낼지도 모르지요. 맞는 사람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