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3)
운빨로 탑스타-3화(3/200)
제3화
연기에 열중하기를 한참.
“푸하.”
생수병을 들이키자, 피로가 씻겨나가듯 상쾌해졌다.
모처럼 땀을 흘리니까 기분이 좋다.
아니, 좋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하다 못해 고양감이 느껴질 정도.
민기는 바닥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집중해 본 게 얼마 만이지.’
그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기껏 해 봤자 연습실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연기한 것밖에 안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빠져들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온몸이 그의 지시를 올바르게 따르는 느낌.
‘발도 안 헛디디고, 쥐가 나는 일도 없고, 사레가 들리는 일도 없고, 햇빛에 눈이 부시는 일도 없고. 재채기가 일어나지도 않고.’
모든 게 너무나도 무난했다.
혼자서 히죽 웃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것도 운 때문은 아니겠지?’
남들은 다 이렇게 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라도 미끄러져서 발목 나갈까 신경 쓰느라 집중력이 분산됐던 거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건 너무하다.
한낱 연기에조차 운이 적용된다니. 똑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물이 다르다니.
차마 믿고 싶지 않아 부르르 떠는 찰나였다.
“아침부터 열심히 하네요.”
“……!”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누구지.’
민기가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니, 그곳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학생이에요? 이름은?”
“이민기입니다. 오디션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저기 언제부터…….”
“아까부터 계속이요.”
“아.”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졌다.
사람도 없겠다, 신나서 별 괴상한 연기도 다 했는데 그걸 전부 봤다는 거 아닌가.
자못 연기자라면 이런 일은 익숙해져야겠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연기에 엄청 집중하셨나 봐요.”
남자는 낄낄 웃더니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연기력이 좋은 학생도 많이 못 봤는데.”
그 말에 민기가 깜짝 놀라서는 말했다.
“연기력이 좋다고요?”
“네, 훌륭하던데요?”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말에 오히려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발성 톤도 잘 잡혀 있고, 딕션도 깔끔하고. 표정도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워요. 안 좋은 쪼(버릇)가 없이 깔끔하네요. 많이 연습한 게 느껴집니다.”
“…….”
“무엇보다도 민기 씨 장점으로, 손짓에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그가 손끝을 가볍게 움직이며 말했다.
“보통 연기 실력은 손에서 드러나거든요. 미숙한 사람들은 손이 어색하죠. 하지만 민기 씨는 이게 좋았어요. 관찰력이 좋았던 거죠.”
칭찬이 쏟아졌다.
평소 좀처럼 들을 일이 없었던 후한 칭찬.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민기의 기분은 썩 어중간하기 짝이 없었다.
‘칭찬을 들은 게 기쁘기는 한데, 이걸 기뻐해야 하는 게 맞나 모르겠네.’
실상 무명이었다지만, 그래도 몇 년씩 프로 활동을 했던 그다.
연기 학원에서 학생 기준으로 칭찬을 받는 게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수학과 대학생이 2차 방정식을 잘한다고 칭찬받는 그런 느낌.
무엇보다도.
‘이 사람 누구지?’
이 남자,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학원에 꽤 오래 다녔는데, 이런 얼굴은 본 기억조차도 없다.
다짜고짜 와서는 연기를 평가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사람 같기는 한데.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혹시 학원 분이신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순간이었다.
“참, 제가 너무 들떠서 제 할 말만 했네요. 잠시만요.”
그가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그 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그런데 그곳에 적힌 이름이 가관이었다.
[JC E&M] [연기 총괄 전속 트레이너] [김아성]트레이너.
그것도 거대 기획사의 전속 트레이너였다.
“…….”
명함을 쥔 민기의 정신이 아득하게 흐려졌다.
‘프로였잖아.’
뭔가 업계인일 것 같은 냄새가 풍기기는 했다.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그런 아우라가 풍기니까.
툭 튀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현업 프로가 아닐까 짐작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설마.
‘JC 소속이라니.’
JC, 한국 연예계에서 넉넉히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획사다.
그곳의 전속 트레이너가 연기 학원에 방문해서는, 아침부터 그의 연기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던 것.
이런 학원에 있을 급의 사람이 아니었다.
전생의 단역이나 전전하던 그였다면, 감히 말조차 붙이기 어려울 수준의 인재.
‘이런 사람이 왜 여기에.’
호기심이 고개를 들이민 순간 김아성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여기 원장님한테 특강 좀 봐달라고 부탁을 받아서요. 그런데 오늘은 좀 시간이 비어서 일찍 왔는데, 마침 민기 씨 연습을 훔쳐보게 돼서. 미안해서 어쩌죠?”
그가 낄낄 웃었다.
조금 전이라면 방정맞은 웃음으로 보였겠지만, 지금은 그 표정 변화 하나조차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실 바뀐 건 없지만 이민기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저기요, 민기 씨.”
김아성 트레이너가 툭 던지듯 말했다.
“혹시 붙는다면 가고 싶은 기획사 있어요?”
“다온이요.”
“아, 다온 나쁘지 않죠. 잘나가는 사람도 많고.”
김아성 트레이너는 이민기의 의견에 얼핏 동의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야시꾸리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 거기에요? 저는 거기 비추하는데.”
“왜요?”
“그건 비밀.”
그가 말을 돌리더니 말했다.
“그래서, 왜 거기에요?”
“좋아하는 배우가 거기에 있어서요.”
“아하, 그런 이유. 알았어요. 그런 이유면 충분하지.”
좀 사족 같은데.
저걸 왜 굳이 물어본 건가 싶은 찰나였다.
“그럼 제가 당분간 여기 종종 올 것 같은데 말입니다.”
김아성 트레이너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민기 씨, 매일 이 시간에 30분씩만 일찍 올 수 있어요?”
“네?”
“괜찮으시면 잠깐씩이라도 좀 봐 드릴게요. 명함은 받아 두시고.”
정신이 한층 더 어지러워졌는데, 그는 연습실을 나가면서 말했다.
“참, 연기할 때 다 좋은데 움직임이 살짝 뻣뻣하네요. 발목에 너무 신경이 갔어요. 그것만 풀어 보세요. 꼼꼼하고 디테일한 건 좋은데, 뭐든 과하면 독이거든요.”
* * *
그날 하루.
민기는 차마 연기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레슨 선생이 지각하느라 은근히 수업이 늦어진 것도 있지만, 오전에 있었던 일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JC 사람한테 명함을 받았다.’
심지어 그가 직접 연기를 봐주겠다고까지 했다.
JC 전속 트레이너가.
운이 좋았던 걸까.
원래는 아무리 노력해도 주목 한번을 못 받았던 그다.
그랬던 그가 단박에 업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전부 그냥 운이 좋아서였나.’
민기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운이 이렇게까지 큰가.’
진심으로 혼란하다.
인터넷 썰에서나 듣던 그런 기연이, 자기한테도 찾아오다니.
하지만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운도 운이지만, 이 모든 건 결국 그가 쌓아둔 게 있기에 빛을 본 것이라는 사실을.
아침에 일찍 나와서 연습했던 건 그 자신이다.
집중해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것도 그 자신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민기 그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혼란하다. 혼란해.’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멍하니 강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찰나였다.
“오, 민기 씨,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옆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고급 브랜드 캐쥬얼 웨어로 온몸을 감싼 남자.
김탁.
그와 함께 연기 학원 오디션반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이었다.
민기는 본능적으로 그와 2mm 정도 거리를 벌렸다.
‘이 사람, 좀 껄끄러운데.’
같은 수업을 듣는 처지이니 아예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왜냐.
김탁은 관심이 고픈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엄청나게 무시했었지.’
연기자 중에는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중에는 꼭 다른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아 튀려는 사람이 있었다.
김탁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 오디션 시기라서 분위기가 좀 싱숭생숭하죠? 순식간에 데뷔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으면 오랫동안 남는 사람도 있고. 참, 민기 씨한테 하는 말은 아니고요. 하하.”
봐라.
말을 붙이고 1분도 안 되어서 그를 깔보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쥐뿔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운이 나쁘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이 들러붙다니.
하지만 괜찮다.
옛날이라면 업계 분위기를 몰라서 이런 사람 비위도 맞춰 줬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김탁이라는 사람은 끝내 쓸려나갈 자갈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놀려고 연기 학원 다니는 사람 많지.’
연기 학원을 다닌다고 하여서 모두가 진지한 건 아니다.
태반은 배우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며,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아, 예, 뭐. 그렇죠.”
상대할 가치조차 못 느껴 대충 흘리려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민기 씨는 다온 엔터에 가고 싶다고 하셨죠?”
김탁은 개의치 않고 민감한 화제를 꺼냈다.
“다온 엔터 거기 오늘이 1차 발표일 아니었나? 저는 안 넣었지만. 민기 씨는 넣었죠? 지난번에 넣으셨던 거 떨어지셨던데, 이번에는 붙으셨나?”
홀로 깔깔거리는 찰나, 이민기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붙었어요. 1차.”
“……네?”
김탁의 말이 굳었다.
동시에 데뷔 준비반의 공기에도 작은 균열이 일었다.
“아침에 연락받았어요. 여기요.”
이민기는 내친김에 아예 핸드폰까지 꺼내서 합격 통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걸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김탁이 휘둥그레졌다.
“언빌리버블……진짜 붙으셨네?”
“서류는 형식상 보는 거니까요.”
“그, 그렇죠? 하하.”
김탁은 현실을 마주하고도 당황스러웠는지,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재확인한 끝에 말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세요! 1차는 원래 넣으면 다 붙는다잖아요. 진짜는 2차부터잖아요? 아, 민기 씨는 잘 준비해서 붙으시라는 말입니다.”
어느새 기세를 전환한 김탁이 질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 사람, 대단하다.
물러설 법도 한데,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나.
그래서 대놓고 면박을 주려는 찰나였다.
“다온 1차 붙으셨어요?”
한 사람이 대뜸 끼어들어서는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민기에게도 꽤 익숙한 사람이었다.
유선아.
이번 데뷔 준비 과정에서도 툭 튀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
민기의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외모부터 연기력까지 남달랐는데, 그만큼 빠르게 데뷔해서 금방 반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가 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와, 저도 거기 넣었는데. 반갑네요. 같은 오디션 동기네.”
“선아 씨도요?”
“제 이름 아시네요.”
“그냥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워낙 강사가 칭찬했으니까.
그녀는 뭐가 기쁜지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저도 오늘 아침에 연락받았잖아요. 다온 준비하는 사람은 여기 저밖에 없나 싶었는데, 동지가 있었네요.”
평소 말을 길게 섞어본 적도 거의 없는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다온은 1차도 꽤 깐깐하게 본다고 해요. 지원자 이름 적은 종이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그 앞에 선풍기 틀어서 제일 멀리 간 사람을 뽑는다고 하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농담이지만요.”
놀랍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금방 데뷔해서 떠난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다온을 준비했었구나.
“……그래도 2차는 붙어야 아는 거죠.”
그 사이 순식간에 뒷전으로 밀려난 김탁이 뻘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2차부터가 진짜죠. 안 그래요?”
“맞아요. 붙으면 같은 기획사에서 민기 씨랑 저랑 한솥밥 먹는 거네요.”
“…….”
이 사람, 강하다.
뭐든 부정적으로 보려는 사람이, 뭐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 앞에서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민기 씨는 혹시 어떤 연기 준비하셨어요?”
“다온에 좋아하는 배우 분이 있어서요. 그 분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고르고 있어요.”
“아, 계획이 있으셨구나.”
어느새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두 사람.
그렇게 잠시 뒤.
“수업 시작합니다.”
레슨 시간보다 7분 늦게 강사가 도착하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준비할 틈도 없이.
“지난 시간에 과제 냈던 거 기억하죠? 시간 없으니까 바로 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