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31)
운빨로 탑스타-31화(31/200)
제31화
“……네?”
오디션장을 빠져나가려던 이민기의 다리가 우뚝 멈춰 섰다.
염광호 감독이 건넨 뜻밖의 말 때문이었다.
“이쪽 대본 읽어 보세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번 오디션, 떨어지더라도 그냥 감수할 생각이었다. 평소 안 하던 캐릭터 해석에 도전했기 때문.
원본 영화 속 소시민 캐릭터가 아닌, 조금 더 자극적인 캐릭터에 도전했다.
고민의 시간이 짧았으니 완성도는 낮으리라고 생각했다.
박한모 매니저의 말이 걸렸다고는 하나, 선택은 어디까지나 그의 몫이었다.
설령 그게 배역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얼마든지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무엇인가.
“어서요. 시간 없습니다.”
“아.”
이민기는 염광호 감독의 이어진 재촉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뚜벅뚜벅 걸어가 대본을 받아왔다.
심장이 정신없이 뛰었다.
오디션이라는 게 늘 그렇지만, 지금은 한술 더 떴다.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다.
어두운 실내와는 달리 머리 위로 쏟아지는 높은 루멘(Lumen)의 불빛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연기를 한다.’
감독이 건넨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것밖에 더 있겠는가.
“어디 보자.”
염광호 감독이 손목시계를 훑어보고는 말했다.
“시간을 조금 더 드릴 테니 차분히 읽어 보세요. 그다음에 시작하겠습니다. 내용 관련한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네.”
그의 말과 동시에 이민기는 숨을 고르고는 정신없이 대본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 머리가 아찔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깨달았다.
‘이거, 훨씬 비중이 높은 역할이잖아.’
조금 전까지 연기했던 캐릭터보다 훨씬 비중이 높은 역할이었다.
[구학진 형사]살인마 주인공을 쫓는 또 다른 주인공, 부패 형사의 사이드킥쯤 되는 캐릭터였다.
–
아니, 그 새끼가 맞다니깐요!
하, 진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다 똑같지.
누구나 다 똥은 싸요. 얼마나 싸는지가 중요한 거지.
그리고 몰래 싸는 놈들이 제일 나쁜 거야.
선배님, 이걸 왜 모르세요?
아! 진짜! 아오!
–
부패 형사 밑에서 시종일관 혈압이 올라 죽으려고 하는 캐릭터였다.
말이 조연이지 주연급.
물론,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을 전부 아는 건 그뿐이다.
공문에서 설명이 안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발췌한 대본상에서도 역할은 잘 안 드러나 있기 때문.
하지만 이민기는 안다.
극장에서 완성본을 봤기에 잘 알았다.
‘더 좋은 역할을 주려는 건가.’
고민하기를 잠시, 이민기는 입술을 아득 물며 잡념을 떨쳐냈다.
‘나만 특별한 기회를 받은 거라는 생각은 버리자. 다른 지원자들한테도 다 했던 말일 수 있잖아. 우선은 머릿속을 비우고, 연기에만 집중하자.’
이 대본을 보기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할 일은 명확하다.
연기다.
그렇게 이민기가 대본을 달달 외우기 시작한 한편, 이 광경을 보며 복잡한 광경에 빠진 인물이 있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염광호 감독이었다.
이민기의 연기를 보고 생각했다.
신인임에도 연기력 자체는 우수하다. 어떤 배역을 시키든 평균은 해 주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더욱이 순둥순둥한 얼굴이 소시민 연기에 잘 어울리기도 했고.
하지만 더 큰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저 역할을 줄까 고민이 들었다.
작품 전체에 양념을 칠 수 있는 역할, 이런 걸 해 줄 사람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캐릭터에는 타고난 색깔이라는 게 있어서, 그 색깔을 맞는 사람이어야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기 마련이다.
정말 압도적인 실력으로 캐릭터를 뛰어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다.
이민기의 타고난 피지컬은 [구학진 형사] 역에 안 맞았다.
그럼에도 연기의 색깔은 분명 저 캐릭터가 맞았다.
‘과연.’
결과물은 어떨까.
당장이라도 뚜껑을 열고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지금은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이민기가 저 대본을 읽고, 분석하고, 마침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
지금, 이 순간.
이민기는 분침을 초침처럼 느꼈다.
염광호 감독은 초침을 분침처럼 느꼈다.
서로 같은 결과물을 두고 다른 시간을 느끼기를 잠시 뒤.
“시작하세요.”
참지 못한 염광호 감독이 먼저 입을 열고, 연기가 시작되고 몇 초.
불과 몇 초 뒤,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찾았다.’
* * *
“…….”
오디션장을 빠져나오는 길.
이민기는 멍하니 하늘만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설마 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이야.’
잠깐 나오는 조연 오디션을 보러 온 길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건 하늘로 날아가고.
‘내가 구학진 형사 역에 캐스팅이 될 줄이야.’
다른 역에 찰싹 붙어 버렸다.
결과는 나중에 알려 주겠거니 싶었는데, 현장에서 합격을 외쳤다.
아직까지도 염광호 감독의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더 볼 것도 없겠네.]떨어졌나 싶었는데 합격이라고 한다.
이민기, 그만 놀란 게 아니다. 염광호 감독의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감독은 아예 턱이 떨어질 것처럼 놀랐다.
“후후, 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누가 지나가다가 보면 추하다고 놀릴 것도 같은데, 이 순간만큼은 안 웃고서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발바닥에서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소름이 짜르르 올라왔다.
‘이게 운이라는 건가.’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엄밀히 말해서 그가 좋은 배역까지 닿은 건 운이 맞다.
하지만 누구나 선택을 한다.
이민기는 교과서적인 연기와 그가 할 수 있는 연기 중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그 연기를 본 염광호 감독은 이민기를 선택했다.
운은 이민기에게 기회를 줬을지언정, 그 기회를 잡은 건 그의 실력이었다.
‘나중에 매니저님 뵈면 밥이라도 사 드려야겠네.’
안타깝게도 매니저는 그를 데려다만 주었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려가 주진 않았다.
아무리 대형 기획사라고 해도 신인 배우에게까지 전담 매니저를 붙이는 건 인력 낭비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마침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며 걷고 싶은 참이기도 하였으니.
‘좋아, 오늘은 헬스장까지 러닝으로 가볼까. 워밍업은 유산소가 갑이고 날씨도 선선하겠다. 딱 적당하네.’
참, 출발하기 전에 할 일이 있지.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이다.
일단 박한모 매니저와 김아성 트레이너부터 시작해, 유선아와 김탁을 비롯해 잼 액팅스쿨의 동기들한테도 돌려야지.
‘그냥 자랑만 하면 별로 안 좋으니까, 모처럼 밥도 사야겠다.’
옛말에 경사가 있어 남에게 자랑하고 싶거든, 반드시 밥을 같이 사라고 했다.
그래야 후환이 사라진다고.
이민기는 이 설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오디션 합격이면, 음, 그래, 아무래도 소고기가 좋겠지? 등심이랑 갈비살은 지방이 너무 많아서 좀 부담스러운데, 그래, 육사시미를 돌려야겠다. 아니면 조금 더 써서 안심으로……!’
부담스럽지만 쓸 때는 써야 하지 않겠나.
회사에서 받은 계약금도 한참 남았고, 요즘 학원비 페이백 받아서 목돈도 있다.
‘나도 이제 주 1회 소고기 먹을 수 있어!’
발전했다.
이만한 밥값을 쓸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에게 감동해 부르르 떨기를 잠시.
주위에 가볍게 축하 연락을 돌리고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부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그런데 그곳에 온 연락이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민서: 야] [민서: 뭐함?]가족의 연락이었다.
* * *
이민기의 가족은 뭐라고 해야 할까.
평범했다.
그냥 평범한 게 아니라, 정말 교과서적으로 평범한 서민 가정이었다.
위에 부모님이 계시고, 옆으로는 누나가 한 명 있다. 그나마 누나 ‘이민서’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
하지만 이민기는 달랐다.
공부에 큰 재능이 없었을뿐더러, 근본적으로 운도 없었다.
사지선다 문제에서 찍기만 하면 모조리 다 빗나갔다.
대학에 하향 지원했더니 그해에만 경쟁률이 폭발했다. 그래도 간신히 예비 번호를 받았는가 했더니, 바로 코앞에서 순번이 끊겼다.
영락없이 입시가 망한 셈.
그렇다고 부모님이 재수를 도와줄 형편은 안 되었다.
하여, 이민기는 재수를 포기했다.
그 대신, 가족 뒷바라지라도 하겠다는 생각에 온갖 잡일을 다하며 20대 초반을 보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모님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맞으리라.
그 뒤에 이어진 선택 딱 하나만 없었다면 말이다.
[저, 배우 하려고요.]이민기는 배우로서는 한참 늦은 나이에 배우 공부를 시작하겠노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생각은 이러했다.
[운이라고는 아주 과자 뽀시래기만큼도 없는 애가 배우를?]식겁했다.
하지만 이민기의 의지는 강철과도 같았고, 기나긴 설득이 이어졌다.
그 결과는 이러했다.
[우리 아들……뭐든 좋으니 다른 거 하면 안 되겠니?]부모님은 물론.
그나마 믿었던 누나마저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야, 내가 평소에 말은 안 했지만, 너 가끔은 자랑스러워했거든? 주위에 우리 동생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고……근데 배우는 좀 아닌 것 같아. 차라리 입시를 다시 하자. 내가 휴학을 해서라도 도와줄게. 응? 공부도 가르쳐 줄 수 있어.]온 가족이 결사반대를 했다.
따지고 보면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배우를 하겠다고 해도 뜯어말릴 텐데, 20년이 넘게 옆에서 지켜본 이민기의 운이라는 게 여태껏 그랬으니.
이 지경이니 어쩔 수가 있나.
이민기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배우를 포기하던가.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아니면 가족을 포기하던가.
그 길로 모아둔 돈을 바리바리 싸 들고 출가(出家)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이민기가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연락을 나눈 게 이 시점에서 몇 달 전이다.
전생까지 포함하면 체감상으로는 무려 5년은 됐다.
20대 초중반부터 배우 지망생을 시작해, 30대가 넘도록 한없이 실패만 반복한 탓이었다.
가족들이 이민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가 가족을 마주하는 게 불편하다 보니 슬슬 피하다가 끝에는 아예 연락을 끊었다.
얼굴이 가물가물할 정도.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내세울 게 생기지 않았나.
적어도 옛날보다는 훨씬 낫다.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은의환향 정도는 되겠지.
‘가족들이랑 꼭 찰떡같이 붙어서 살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걱정 안 시키는 정도는 하는 게 도리지.’
오늘은 그의 누나 ‘이민서’가 방문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담근 김치를 전달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그건 표면상의 모습일 뿐, 진짜 임무는 따로 있으리라.
바로 이민기의 생활상을 염탐해 부모님께 보고하는 것.
‘인간관계 회복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리라.
하여, 이민기는 평소보다도 한층 더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카페에 왔다.
집이 좁으니, 카페에서 우선 만나자는 것이었다.
“후우.”
혼자 카페에 먼저 도착해 시켜놓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있으려니 어쩐지 주위 시선이 신경 쓰인다.
아무래도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겠지.
원래 베테랑이라도 전투를 앞두고는 긴장되는 법이니까.
……라고 이민기는 생각했지만, 실상은 이러했다.
“저 사람, 이민기 아니야?”
카페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최근 1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그럭저럭 인기를 끈 드라마 [캠퍼스 스토리]를 본 시청자였다.
그렇다.
이제 그 또한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둘 생길 시기였다.
“누군데?”
“여기, 여기 서브 남주……맞나? 아무튼, 좀 비중 있게 나온 사람 있어.”
“오, 잘생겼다. 근데 실물이 더 나은데?”
그렇게 두 사람이 떠들기를 잠시.
마침내 결심했다.
“사인해 달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