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34)
운빨로 탑스타-34화(34/200)
제34화
케미가 맞는다.
케미스트리(Chemistry/화학 작용).
두 배우 사이에 잘 맞는 작용이 있어, 그것을 보기가 좋다는 말이었다.
작품 좀 본다는 사람들이라면 습관적으로 뱉는 말로서, 얼핏 듣기에는 그리 특별할 게 없는 감탄사였다.
하지만 이 단어가 염 감독의 입에서 나왔다면 달랐다.
‘염 감독이 칭찬을 다 했다고?’
리딩실의 배우와 스태프 일동이 충격에 빠졌다.
‘리딩을 잘하기는 했지만…….’
‘상대역이 강도원 배우인데?’
염 감독이 누구인가.
연기 보는 눈이 깐깐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찍는 작품만큼이나 성격이 호탕해, 현장에서 누군가가 조금만 어설프게 굴면 불같이 성질을 터뜨리는 사람.
그런 그가 이민기의 리딩을 보고 대번에 칭찬을 꺼낸 것이었다.
현장의 사람들에게 이게 예고하는 바는 하나였다.
‘작품에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다.’
비중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염 감독은 각본대로 촬영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에 따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각본과 연출을 바꿔가며 유동적으로 작품을 쌓아 올리는 인물.
그에게는 재미가 곧 성경이었다.
배우들의 솜털이 삐쭉 선 사이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민기 씨가 신인이라서 어떻게 될까 좀 긴가민가했는데, 잘 받아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거듭 호평이었다.
“요즘은 신인들이 되게 잘하네. 캠퍼스 스토리 때도 폼이 보였지?”
또다시 이어진 호평.
캠퍼스 스토리라는 단어에 배우들이 움찔 떨었다.
제대로 인식조차도 못 하고 있었던 제목이지만, 이민기가 거기에 나와서 활약했다는 힌트가 주어졌기 때문.
하지만 정작 이민기 본인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칭찬이 조금 과한데.’
딱히 훌륭한 연기를 했다는 자각이 없었다.
아니, 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대답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리딩실의 수많은 사람이 그만 바라보고 있지 않나.
쏟아지는 칭찬만큼 부담도 커졌다.
그렇게 우두커니 있는 참.
“잘하면 구학진 비중을 조금 높여야 할 수도 있겠는데?”
위험한 칭찬이 나왔다.
단순 칭찬을 넘어 배우들의 기강마저 흔들 수 있는 발언.
염 감독 본인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민기가 어떻게 대답하더라도 독이 될 상황이 주어졌다.
그런 상황에 입을 연 건.
“하하, 감독님도 너무 신인만 편애하신다.”
이민기가 아닌, 다른 배우였다.
‘이 사람은?’
이민기가 흠칫해서는 목소리가 나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전국민이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최유창.
이번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맡은 배우였다.
강도원 배우 못지않은 베테랑이자, 천만 관객 타이틀을 한 개 가진 초일류.
그가 난데없이 개입해서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저희한테도 사랑을 좀 주세요!”
“아니, 유창 씨, 나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
“신인 분량 챙겨준다고 제 분량 뺏어가면 저 삐질 겁니다. 예? 저 천만 배우 최유창입니다! 감독님!”
말이 저렇지 농담이다.
이민기에게 쏟아진 관심을 적절하게 흐뜨려놓는 농담.
그 몇 마디에 리딩실로 잔잔한 웃음이 번져 나가며 이민기의 호흡이 편안해졌다.
딱 대답하기 편할 정도로.
‘정신 차리자.’
이민기는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우, 인사성도 바르네.”
최유창의 적절한 리액션에 한결 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염 감독도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그럼 다시 진행해 볼까요?”
그렇게 첫 리딩은 평화롭게 진행됐다.
모두의 가슴 속에 이민기라는 대형 신인의 존재감을 단단히 박아 넣으면서.
그리고.
‘저 사람, 좀 대단한데?’
주하나에게도 은근한 호감을 사면서.
* * *
빈 옥상.
치익.
강도원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아까 리딩할 때 그 대사, 뭐였지?’
이민기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 리딩 중에 이민기에게 시범 삼아 던졌던 것.
[야, 구학진, 넌 내 말이 X으로 들리지?]그 대사의 대답이 좀 신선했다.
[……선배님도 아시잖습니까. 제가 그런 의도로 한 말 아니라는 거.]저 대사가 퍽 강렬해서 머리에서 좀체 꺼질 줄을 몰랐다.
은근하게 묻은 잔떨림은 이민기가 의도하고 디테일을 추가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의도했다면 신인이 아니다.’
이 바닥 배우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격언이 있었다.
[자기 연기만 잘하면 3류. 남의 연기를 잘 보면 2류. 둘을 섞으면 1류.]저 말에 대입해서 보자.
그렇다면 이민기는 그의 연기를 보고, 거기에 끼워 맞췄으니 훗날 일류 배우가 될 포텐셜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
강도원은 담배 연기가 나풀나풀 허공에 흩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기를 잠시.
치익――
담배를 재떨이에 찍어누르며 생각했다.
‘어차피 본 촬영 시작하면 알게 되겠지.’
요즘 들어 지루하던 촬영.
신인의 등장에 모처럼 즐거워졌다.
* * *
리딩을 마친 뒤, 현장을 간단하게 둘러보며 첫날 스케쥴이 끝났다.
첫날 리딩은 OT 같은 느낌으로 진행됐다.
본격적인 현장 촬영은 하루 건너뛰고 모래부터 재개한다나.
[민기 씨, 이것도 인연인데 전우애 함 다져야지?]술자리에 오라는 박유창 배우의 제안을 거절하고, 현장에서 빠져나온 이민기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꽃밭이었다.
‘관심을 받으니까 좋긴 한데, 좋긴 한데, 부담스럽네. 아니, 솔직히 좋다.’
좋았다.
옛날에도 저런 거물 배우들과 한두 마디 나누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단역으로서였지.
특별히 같은 작품에 참여한 구성원이라는 느낌은 적었다.
그러다가 이제 당사자들의 입으로 칭찬까지 받았으니, 그야말로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분.
게다가 리딩도 처음이 어려웠지, 이후로는 꽤 할 만했다.
한번 몸이 긴장에 적응한 덕이었다.
이후로는 순조롭게 평소 연습했던 그대로의 연기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잘했다.’
그렇게 이민기가 달리는 자동차 창문 바깥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참이었다.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
운전대를 잡은 박한모 매니저가 흘긋 뒤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겉으로 너무 티가 났다 보다.
이민기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그게, 네.”
“어땠어요? 좀 말해 줘 봐요. 제가 다 궁금하네요.”
그러고 보면 이번 작품에 이 배역으로 붙을 수 있었던 것도 박한모 매니저의 어드바이스 덕분이었다.
앞으로 같이 가야 할 사람이기도 하겠다, 이민기는 내친김에 솔직히 대답하기로 했다.
“사실 리딩을 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를 한참.
박한모 매니저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야, 정말요? 강도원 배우님 어디 가서 남 칭찬 안 하는 거로 되게 유명한데. 최유창 배우님도요.”
“정말요?”
의외의 말에 이민기가 놀라서는 답했다.
“에이, 설마요. 오늘 하루종일 계속 좋은 말만 해 주시던데요.”
“다 배우님이 정말로 잘하셔서 그러는 거예요. 강도원 배우님 별명이 뭔데요. 리딩 살인마라고 들어 보셨어요?”
“리딩…… 무슨 마요?”
“리딩 살인마요. 리딩하는 상대방을 압박해서 아주 콱 죽인다고 해서 리딩 살인마예요.”
강도원 배우가 그런 사람이었나.
처음 들어본 말인데 더불어, 오늘 봤던 강도원 배우의 이미지는 썩 젠틀했기에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매니저가 없는 말을 할 리는 없지.
‘내가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고, 매니저님은 아는 게 많구나.’
옛날 배우 생활은 그야말로 겉핥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라는 직함을 달고 있고, 계약서를 썼지만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배우.
영어마을 여권을 가지고 공항에 간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내가 알바로 연명하는 신세면서 배우가 맞기는 한가 의심하기도 했는데.’
반면, 지금은 다르다.
‘이제 확실히 배우가 맞다.’
확실히 배우 일을 하고 있다는 체감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마음만 같아서는 콧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박한모 매니저가 슬쩍 떠보듯 말했다.
“그래도 너무 얼굴에 티 나게 기뻐하시면 안 돼요. 이따 표정 관리 잘하셔야 하는 거 알죠?”
“아.”
이민기는 그 말에 정신줄을 다잡고는 말했다.
“네, 최대한 신경 써야죠.”
사실, 오늘은 다른 일정이 하나 더 남았다.
왜 선배 배우들이 붙잡는데 그 술자리를 구태여 거절하고 나왔겠는가.
이게 다 일이 있어서 그러했다.
그것도 꼭 빠질 수 없는, 가야만 하는 그런 일이 말이다.
박한모 매니저가 또박또박 말했다.
“첫 인터뷰가 제일 중요해요.”
그렇다.
인터뷰였다.
첫 작품에서 준 조연급으로 출연하며 그럭저럭 주목을 받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언론에 얼굴을 비칠 순간이 왔다.
그 첫 교두보가 바로 언론의 인터뷰.
“신인 배우들이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을 때가 데뷔작 내고 첫 인터뷰를 할 때인데요. 이게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많이 봐요. 보도 자료로도 은근히 뿌리고. 또 업계인들이 알음알음 참고하는 데다가, 이런 데서 알게 모르게 배우 마인드 같은 게 보이거든요.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빠르게 돌아요.”
박한모 매니저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이번에 배우님 인터뷰 진행하는 [스타매거진]은 무조건 말을 곱게 해 주는 곳도 아니거든요.”
잘 알고 있는 바다.
이민기도 스타 매거진의 명성과 악명에 대해서 익히 들어 보았다.
‘보통 연예계 잡지 하면 가십거리 찾아다가 황색 언론처럼 뿌리는 곳이 많은데, 스타 매거진은 꽤 객관적이었지.’
칭찬할 건 칭찬한다.
하지만 깔 때는 확실하게 까는 곳이기도 했다.
그 냉정함 덕분에 독자들 사이에서 가진 신뢰도가 상당했지.
스타 매거진 보도라면 사실 확인 상관없이 우선 믿어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으음.”
이민기가 앓는 소리를 흘렸다.
‘읽을 때는 좋았는데, 적힐 입장이 되니까 영 부담스럽네.’
다행히도 저쪽에서 사전에 정리한 질문지를 전해주었다.
지난 이틀, 이민기는 그 질문 내용과 대답할 내용까지 수십 수백 개의 레파토리를 구분해 모조리 머릿속에 집어넣어 두었다.
다소 과민반응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의 주체가 이민기라면 이건 결코 과민반응이 아니었다.
“말 한마디가 잘못 퍼지면 무섭죠.”
사소하게 꺼낸 말이 다 곡해되어서 퍼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친구한테 옷 칭찬했다가 수준 따진다고 말이 돌고, 길에서 친구 누나 봤다고 말했다가 스토커라고 말이 돌고.’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이 되듯, 이민기 또한 그런 일을 자주 겪었다.
그 어떠한 악의도 없이 했던 말조차도, 의도치 않게 역풍으로 돌아올 때가 한두 번이었나.
‘심지어 재수 학원 상담하러 갔다가 위층에 호빠가 있었다는 이유로 뒷담을 까인 적도 있었지.’
계속 말이 와전된다.
전적으로 운이 나쁜 탓이었다.
원래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가 중요한 법인데, 이민기의 말은 유독 악랄하기 짝이 없는 방향으로만 흘러갔으니.
또 주위에서 나쁜 사람들이 그를 유독 물어뜯었고.
시트에 몸을 맡긴 채로 안 좋은 추억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래도 전 배우님 믿어요.”
박한모 매니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이 업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본 건 아니지만, 발언으로 논란 일어난 연예인들은 대개 그 전부터 감이 오거든요. 특권 의식 같은 게 있다고 해야 하나. 사소한 말도 되게 세게 받아치고 그래요. SNS에서도 자제 못 하고.”
“제가 SNS 안 키우기는 하죠?”
“후후, 그런데 민기 씨는 말씀하시는 거 보면 사소한 말 한마디도 배려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인터뷰에서도 그게 묻어나리라고 믿어요.”
“……매니저님 말씀대로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이게 사람이랑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좋은 사람은 결국 다 좋게 풀리더라고요.”
말이 썩 따듯하긴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민기가 겪어온 과거와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인복이라는 건 그가 제일 자신 없는 분야였으니.
‘그래도 또 모르지.’
이민기는 좋은 방향으로 인터뷰가 흘러가길 바라며 말했다.
“이번 작품 성공하면 매니저님 비싼 고기 사 드릴게요.”
“하하, 기억해 두겠습니다. 참고로 저 고기는 한우 투쁠 아니면 안 먹습니다.”
“…….”
당당한 말에 이민기가 안면 근육을 씰룩거렸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한우 투쁠을 좋아하지.
* * *
JC는 큰 회사다.
배우 기획사라고 하면 보통 소수정예를 지향하다 보니 건물도 작을 때가 많은데, JC는 조금 예외였다.
음악에서 연기, 예능, 영상 제작까지 다방면을 건드리는 탓일까.
그 규모부터가 다른 배우 기획사를 압도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번에 이민기가 방문한 JC 사무실도 그러했다.
마포구의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사옥.
1층 입구에서부터 JC Entertainment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곳의 1층.
이민기는 벽면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다시금 점검했다.
‘피부 좋고, 옷도 괜찮아. 머리도 완벽하다.’
흰 스웨터에 검은 바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정하니 어딜 봐도 호감으로 보일 스타일이었다.
첫 인터뷰라고 해서 JC에서 신경 써 주었다.
JC의 사내 스타일리스트는 유능하다.
단순한 패션이지만, 옷의 보풀 하나까지 어딜 둘러봐도 흠집 잡힐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기자님은 조금 있다가 도착한다고 했나?’
인터뷰는 약 20분 뒤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민기는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1층 로비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 앉아 인터뷰 내용을 복습하기로 했다.
아니, 그러려는 순간이었다.
촤악!
때아닌 물벼락이 그를 덮쳤다.
아니.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흰 스웨터가 점차 갈색으로 물드는 걸 보니, 아메리카노 벼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