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35)
운빨로 탑스타-35화(35/200)
제35화
어느 직업이든 그런 게 있다.
공생 관계.
한 쪽이 잘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한 쪽이 잘나가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 올리며, 서로가 서로의 먹이가 되어 준다.
악어와 악어새.
스마트폰 제조 업체와 그 안에 들어가는 칩을 만드는 업체.
칩 제조 업체와 그 AP를 제조하는 파운드리 업체 등.
어떻게든 서로 엮이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공생 관계가 유독 끈끈한 업계가 있었다.
그게 바로 연예계.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예인과 연예부 기자의 관계였다.
[좋은 연예인한테는 좋은 언론이 늘 따라다닙니다.] [특종은 입 벌리고 기다린다고 그냥 떨어지지 않아요. 빠르게 단독 보도를 따내려면 신인 때부터 해당 연예인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죠.]연예인은 화제성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
연예부 기자는 연예인의 화제성이 있어야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이 둘은 어쩌면 한 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예인 업계 구조는 피라미드를 넘어 압정 구조라도 봐도 좋다.
어정쩡한 연예인은 바닷가의 생선처럼 널린 한편, 잘 나가는 연예인은 극소수.
모든 연예인에게 좋은 기자가 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자연히 유명 연예인에게는 연륜이 쌓인 거물 기자가, 신인 연예인에게는 신인 기자가 붙는 게 관례였다.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그러다가 담당 연예인이 뜨잖아? 그럼 담당 기자도 뜨는 거야.] [어떤 사람이 언제 뜰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무명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처음부터 관계를 잘 갈고닦아 둬.]오늘 첫 담당 연예인이 붙은 기자, 홍유주 기자도 그런 사람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잡일도 이제 끝. 본격적인 연예부 기자 인생 시작이다.’
연예인이 좋아서 연예부 기자가 되었다.
그런 그녀의 꿈을 배신하듯, 막상 주어진 일이라고는 선배 기자들을 따라다니며 잡일을 처리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이제 홍유주 기자에게도 담당 연예인이 주어졌다.
물론, 선배 기자 한 명과 VJ(영상 기자)가 현장에 동행하기는 했지만 그럼 뭐 어떤가.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단독으로 인터뷰를 할 일도 잦아질 텐데.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하나요. 사이즈는 벤티로 주세요.”
“머그컵이랑 일회용 컵 중 어느 거로 드릴까요?”
“머그컵이요.”
홍유주 기자는 신참답게 현장에 남들보다 한걸음 일찍 도착해 오늘의 인터뷰를 미리 준비하기 바빴다.
현장에 미리 가서 대기하는 건 기본이다.
선배님이 올 때까지 여기에 죽을 치고 분위기를 익힐 예정.
‘후후, 이민기라고 했지. 되게 잘생겼어. 신인치고는 커리어 흐름도 좋아 보이고.’
핸드폰으로 사진만 봐도 느껴졌다.
포텐셜이 보인다.
그녀와 함께 상부상조하면서 점점 커 가는 거다.
회사에서 입지가 쌓이면 더 좋은 현장에도 많이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기자니까 무작정 좋게만 보도할 수는 없어. 객관과 주관을 적절히 버무려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기사를 써야지!’
그렇게 꿈에만 찬 와중이었다.
“21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나왔습니다.”
“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고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
갑작스럽게 의자에 앉은 사람이 일어났고, 홍유주 기자의 몸이 거기에 부딪쳤다.
“아!”
동시에 그녀의 몸이 넘어지듯 휘청했다.
그 순간 의식이 쏠리며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이 앞으로 날아갔고.
촤악!
외딴 사람의 머리에 날벼락을 끼얹었다.
‘……내가 미쳤지.’
바닥에 넘어진 채로 현실을 파악한 순간 홍유주 기자의 얼굴이 하얗게 바랬다.
여긴 JC 사옥이다.
대낮부터 이 건물 1층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을 사람이라면 업계 종사자일 확률이 크다.
즉, 그녀의 희망찬 첫 걸음은 제대로 조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콘크리트 천장 아래에서 아메리카노를 뒤집어쓴 사람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하하.”
홍유주 기자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 제대로 망했네.’
아메리카노를 뒤집어 쓴 피해자.
그의 얼굴은, 그녀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민기.
그녀가 바래 마지않았던 담당 연예인이자 오늘의 인터뷰 대상이었다.
‘신인 기자가 첫 담당 연예인 만나는 날에 당사자한테 커피를 끼얹어? 이건 시말서는 물론이고 당분간 현장 출입 금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네.’
그렇게 사과할 정신도 없이 망연자실한 기분에 취한 순간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너무나도 걱정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홍유주 기자를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안 다치셨어요?”
그 순간 홍유주 기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러했다.
‘실물 미쳤네.’
귓가에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카페에 봄바람과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상황은 정반대지만.
* * *
첫 인터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기왕 망한 김에 분장실에서 스타일리스트의 손질을 다시 받고 있는데.
“크흐흐, 크하하하학, 크하하하하하하학, 윽! 학, 학, 학! 으하하학!”
지나가다가 난데없이 들린 김아성 트레이너가 웃었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하하학! 으학, 으하학!”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푸짐하게 웃는다.
어지간히 웃는다.
그가 웃을 때마다 스타일리스트가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민기 씨, 아성 씨는 원래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
그러기를 한참.
김아성은 마침내 반쯤 숨을 돌렸다는 듯 복식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와, 어떻게 민기 씨는 뭘 해도 웃기지?”
“왜요.”
“어떻게 첫 인터뷰 날에 커피를 뒤집어쓸 수가 있지? 혹시 그건가? 인생이 예능? 이거 진짜 몰래카메라 아니야? 우핫, 으하하학!”
웃음을 가라앉힌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폭소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흡사 개그 방송 시청자를 연상시키는 행동에, 어느새 새 옷으로 갈아입은 이민기가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말했다.
“……그러게요. 제 인생은 예능이 맞나 봐요.”
운이 나빴다.
운이 나빴다고밖에 말을 못 하겠다.
완벽하게 꾸미고 인터뷰를 받으러 나왔더니, 인터뷰를 약속한 기자 본인에게 물벼락을 맞다니.
이게 현실적으로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확률은 얼마나 되지.
아니, 세상에 이런 사람이 그 빼고 또 있기나 할까.
“흐우으우우우우……우우우…….”
다행히도 여벌 옷이 있어서 어떻게 새로 코디를 하기는 했다.
‘스타일리스트 누나 덕분에 살았네.’
누가 JC에서 일하는 일류 아니랄까 봐, 그녀는 불과 10분 만에 이민기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가다듬은 모습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흠, 자연 건조랑은 느낌이 좀 다른데, 살짝 물기가 있어서 촉촉한 것도 나쁘지 않네. 민기 씨, 이 정도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은데?”
스타일리스트는 그렇다고 하지만,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크, 민기 씨, 그래도 너무 좌절하지는 마.”
김아성 트레이너가 그런 이민기를 향해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언론사 쪽에서 너한테 실수한 거잖아.”
“그렇죠.”
“그럼 기사라도 좋게 써 줄지 혹시 알아? 가뜩이나 서로 눈치 보는 입장일 텐데. 뭐라도 해 주겠지.”
“과연 그럴까요?”
“나는 모르지. 이런 일은 여태껏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어서. 으하하학!”
얼마나 참았다고 김아성 트레이너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아니, 겁나게 유능하지만 이런 상황에는 개미 융털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다.
스타일리스트가 데굴데굴 구르기 바쁜 그를 찌릿 째려보며 말했다.
“아성 씨, 방해할 거면 나가세요.”
“아이고, 죄송.”
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정신만 더 없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고민해서 더 나아질 일이 없다면, 고민하지 않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아니겠나.
‘고민하지 않는다.’
이민기는 예로부터 오랜 불운 끝에 습득한 정신승리법을 실천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것.
이불킥을 아무리 해 봤자 나만 땀 나지, 누가 타임스톤 들고 과거로 가서 역사를 바꿔 주기나 할까.
‘뭐가 어떻게 되든 옛날보다는 낫겠지.’
이민기는 그런 생각으로 기지개를 한번 켜고 일어나며 말했다.
“선생님, 그럼 저 인터뷰 다녀올게요.”
“응, 올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옷에 묻혀서 가져오지는 말고.”
“…….”
답이 없는 사람이다.
이민기는 김아성 트레이너에 대한 호감도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걸 느끼며 분장실을 빠져나와 사내 휴게실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
그에게 허리까지 숙여 가며 다짜고짜 사과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둘이었다.
* * *
미팅실.
그곳에서 이민기와 박한모 매니저 건너편에 두 명의 사람이 앉았다.
그중 홍유주 기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물에 젖은 생쥐처럼 고개만 반쯤 숙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조금 더 있어 보이는 다른 기자 한 명은 보모라도 된 것처럼 사과를 하기 바빴다.
“홍 기자가 신입이라 너무 열정만 앞서다 보니까 그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백 번 사과의 말씀을 드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
김 기자라고 했나.
저쪽 언론사, 그러니까 [스타매거진] 소속 기자 중에서도 상당한 입지를 가진 중견 기자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기자라고 하면 보통 고고하기 짝이 없다는데, 김 기자는 후배 기자의 실수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사과를 반복하기 바빴다.
그런 그와 싱글벙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었다.
“에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박한모 매니저였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니까 실수지요.”
“아닙니다. 돌아가거든 저희 측에서도 따로 호되게 징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기 씨에게도 별도의 사과를 다시…….”
“괜찮다고 해도요. 저도 입사 처음 했을 때는 이런저런 실수를 많이 했어서.”
물론, 그 실수가 거래처에 물을 끼얹는 실수는 아니었겠지만.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네.’
이민기의 눈에 비친 이 상황은 그러했다.
김 기자는 한없이 사과하고, 박한모 매니저는 그걸 사양한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민기 본인으로서는 깊이 따지고 들기에도 어중간한 게 사실이었다.
‘저쪽에서 고의로 한 것도 아닐 테고.’
신입 기자가 미쳤다고 담당 연예인한테 고의로 테러를 저지르겠는가.
당연히 실수였겠지.
스타일리스트한테 공들인 작품을 망쳤다며 꾸중을 듣긴 했지만, 딱 그 정도 일이다.
시간을 좀 버리기는 했지.
하지만 그뿐이다.
굳이 잘잘못을 가리면서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게 더 신경 쓰였다.
‘이러다가 인터뷰 망치면 그게 더 문젠데?’
인터뷰였다.
[언제까지고 푸르른] 회식 자리까지 마다하고 온 인터뷰다.부담스러운 사과만 꾸역꾸역 받다가 마칠 생각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뭘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게 사실.
‘이걸 어쩐다.’
어떻게든 인터뷰 쪽으로 이야기를 돌릴 수 없을까.
그 방법만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홍 기자, 다시 한번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저희 실수는 다음에 정식으로.”
“에이, 아닙니다. 저희 배우님은 마음이 넓으셔서 충분히 웃으며 넘어가실 겁니다. 배우님, 그렇죠?”
박한모 매니저가 그에게 바톤을 넘겼다.
그 찰나의 순간 이민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번에 하는 대답에 따라, 오늘 하루가 사과만 계속 받다가 끝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인터뷰까지 받고 윈윈하며 자리를 마칠 수 있을지 결정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찰나의 순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기를 잠시.
‘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계를 보고 흠칫 놀란 이민기가 마침내 꺼낸 대답은 이러했다.
“우선은 인터뷰 먼저 하는 거 어떨까요?”
“…….”
짧은 대답 한마디에 미팅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사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이민기에게 결정권이 넘어갔는데, 정작 당사자의 입에서는 이깟 사과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다는 말이 나온 셈이었다.
그 말에 유독 놀란 사람이 있었다.
‘인터뷰가 먼저라고?’
김 기자였다.
‘이 사람, 정상인인가?’
그가 생각하는 연예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점잖은 사람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특권의식에 물든 사람이었다.
신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신인이기에 더 그럴 때가 많았다.
자기 말의 파급력을 몰라서 자연스럽게 갑질을 하는 것.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요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사소한 문제 하나도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어 조심조심하는 것 아니었나.
……라는 게 정설인데.
“아, 그게 저 저녁 늦게 약속이 있어서요. 헬스장 가서 운동해야 해서. 시간 더 지체하면 관장님이 세트 추가하시거든요. 하하…… 바쁜 와중에 죄송하지만, 오늘은 인터뷰부터 먼저 안 될까요?”
이민기의 반응은 신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운동은 또 뭐야?’
헬스장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개연성 없이 나온 단어였다.
아니, 정말로 개연성이 없는 걸까.
‘아니지.’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저 배우가 세상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웃으면서 말하고 있다만, 배우가 괜히 배우겠나.
기저에는 다른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바로, 적당히 덮고 넘어가 주겠다는 말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아직, 아직은 모른다.’
그래도 아직이다.
김 기자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9회 말 역전홈런에 대비하는 수비수처럼 신중함을 기한 순간이었다.
“저 진짜 늦으면 큰일 나요. 관장님한테 죽어요. 저희 관장님 진짜 무서운 사람이에요. 네? 1분 늦을 때마다 1세트씩 늘어나요.”
이민기가 재촉하듯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박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인터뷰 먼저 시작해요. 사람 하나 살려주는 셈 치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아.’
김 기자의 맥이 풀렸다.
확실해졌다.
‘이걸 덮고 넘어가 줄 용의가 있다는 건가.’
의문이 확신으로 변모했다.
이민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물론, 목소리에서조차 깊이 따지려는 의도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운동이 어쩌고 저쩌고.
관장님이 엄하고 어쩌고 저쩌고.
어지간히 둘러댈 만한 소스가 없었으면 저런 말을 꺼낼까.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이리라.
‘고단수다.’
한번 덮고 넘어가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쪽에 빚 하나 지운 셈 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눈앞에서 따지면 쉽겠지.
하지만 그건 이민기 본인에게도, 이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감수하고 넘어가 주겠다는 것이었다.
말은 쉽지만, 이 업계에서 저걸 실천하는 신인 배우란 네스호의 괴물만큼이나 드물기에 김 기자가 경악에 빠졌다.
‘이 사람 천사인가?’
놀란 건 홍유주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사과는 둘째치고, 인터뷰가 날아가면 그녀가 회사 내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득히 늘어난다.
언론사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삿거리는 챙기는 게 기본 중의 기본.
하루 공쳤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는데, 이민기가 그걸 안겨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되도 않는 변명으로 날 선 분위기를 흩뜨리면서 말이다.
‘천사다. 이민기 배우님은 천사야.’
정작.
‘아, 슬슬 진짜로 시간 없는데.’
본인은 정말로 헬스장에 갈 시간이 코앞이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충 9시에 도착한다 치면, 8시 반쯤에 커피 한잔하고, 10시까지 운동하고 단백질 쉐이크 마신 다음에 애프터번(무산소 운동 후 뒤따라오는 연소 효과) 효과 받으려면 11시쯤에는 취침하고, 아침에 7시에는 일어나야 하루 스케쥴이 맞는데.’
여기에 중요한 거 하나.
[집 근처 헬스장]의 철칙, 1분 늦을 때마다 1세트를 추가한다.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응? 벌써 가시게? 앞으로 4세트 남았는데?] [네?] [오늘 4분 늦었잖아.] [……그거 촬영 때문에.] [민기 씨, 그건 민기 씨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야. 자기 4분만 중요하고 남의 4분은 우스워?]회원님이라는 말이 민기 씨로 변했지.
그 섬뜩한 변화에 가슴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실제로 대흉근이 쪼그라들었다.
마침 그날은 가슴 운동하는 날이었으니까.
‘지옥이었어.’
이민기가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르 떨었다.
아침에 일어나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다고 불현듯 덮쳐온 격통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본 적이 있는가.
순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불운이 돌아온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거든 턱 빠질까 하품도 제대로 못 내쉬던 그 시절 말이다.
그렇게 이민기가 혹시 모를 지각을 각오하며 입술을 곱씹은 찰나였다.
“그렇다고 하시네요.”
박한모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배우님 말씀이 맞습니다. 배우로서 체형 관리는 중요하죠. 저희 배우님이 이렇게 성실하십니다. 배우의 귀감, 배우의 척도, 배우의 정석, 배우의 모범이시지요.”
“…….”
“자기관리를 삶의 교훈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계십니다. 배우님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 금이지요. 저 또한 때때로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야.
하지만 저질러 놓은 게 있어 농담으로라도 반박하지 못하는 김 기자였다.
그가 옴짝달싹도 못 하는 사이 박한모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일단 인터뷰 먼저 진행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는 거 어떻습니까?”
알 만큼 아는 프로들끼리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눈빛으로.
“마침 저도 조금 있다가 미팅이 있어서요.”
“아, 예, 좋습니다.”
김 기자도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님이 바쁘시다고 하니 우선은 인터뷰 먼저. 홍 기자, 카메라 준비해 왔지? 세팅하고.”
“앗, 네!”
일단 덮고 넘어가자.
그렇게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민기와 언론의 첫 미팅.
그건 본인을 제외한 세 사람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사이에서 끝을 맞이했다.
* * *
그리고 이튿날.
이민기는 본인도 모를 관용을 보여준 덕일까.
전혀 예상 못 한 보답을 받게 되었다.
[이민기: 차세대 라이징 스타의 등장]언론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 크게, 장기간 노출되는 별도 배너 기사였다.
[이민기: 차세대 라이징 스타의 등장] [JC에서 만난 신인 배우는 이러했다.] [이민기 “대중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 기자의 연예계 외전(外傳) ‘이민기’] [오늘의 스타 매거진] [대중이 신인에게 기대하는 것은?]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꿔가며.
하루종일.
[ㅋㅋ 포토 왜 이렇게 많음?] [기자님 오늘따라 사심 오지시네]유독 부록 사진이 많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