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37)
운빨로 탑스타-37화(37/200)
제37화
[언제까지고 푸르른] 23번 씬.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구학진 형사는 열정에 불타오르는 사람입니다. 진짜 범죄자를 잡고 싶어 경찰이 됐지만,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경찰서 정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지요.열심히 일해요.
그걸 선배 형사 [오만식]이 계속 가로막으면서 입단속을 시키죠.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게 구학진 형사 기준으로 볼 때는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가슴이 못 받아들입니다.
그걸 친구에게 통화로 쏟아내는 겁니다.
어디까지 파고들었는데, 어디서 막혔고. 내가 왜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이게 우연히 범인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구학진 형사가 본격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떡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통화야말로, 형사 겸 살인마 김종학이 그를 경계하게 되는 계기니까.
이 완급조절이 중요했다.
들리게끔 정보를 흘리면서도, 일부러 흘린다는 티는 나지 않아야 한다.
뉘앙스의 완급조절.
23번은 그게 극히 중요한 씬이었다.
더욱이 신인이면서도 현장에서 쏟아지는 압박감을 견뎌야 한다는 부담까지도.
그리고 이민기는.
“나만 만만하지. 아주 나만 만만해. 이럴 거면 나를 왜 뽑았어? 청소부가 필요하면 청소부를 뽑지, 형사를 왜 뽑아? 내가 이러려고 노량진에서 대가리 깨지도록 책상에 코 박고 공부했냐? 범인이 누군지 감이 잡혀서 조사하겠다는데도 저쪽에서 못 건드리게 막잖아! 하, 나, 진짜 콱 때려치워?”
아주 훌륭하게 [구학진 형사]를 연기했다.
상상했던 것과 반대되는 경찰 생활,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담담함에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을 털어냈다.
“나도 알거든? 공무원이 쥐새끼처럼 불난 집 헤집고 다녀서 좋은 거 없겠지. 그런데 난 경찰이잖아! X발 그게 내 일인데 왜 못 하게 막냐고!”
지금의 이민기는 평소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다혈질이다.
혈기를 주체하지 못 하는 청춘이다.
혁명가가 되어 이 세상을 확 뒤집어 버리고 싶지만, 정작 그럴 권한이 없어 속이 끓는 말단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민기가 주차장 모서리를 따라 잰걸음으로 콱콱 밟으며 스무 마디가 넘어가는 대본을 계속해서 읊었다.
실수는 없었다.
아니, 있었다.
“아니, 그, 하, 내가 말하는 게 뭔지 너도 알잖아.”
중간에 자잘한 말을 더듬는 정도는 순간의 애드리브로 넘어갔다.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인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유연성 또한 아니었다.
자못 신인이란 대본을 충실히 따라가는 데 집착한 나머지, 대사를 놓친 순간 전지가 닳은 로봇처럼 멍하니 멈춰서 버릴 때가 잦으니까.
물론 애드리브가 애드리브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결과물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염 감독이 그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건, 곧 이대로 계속하라는 지시와도 같았다.
‘잘하네.’
그가 속으로 웃었다.
‘그래, 어차피 정 아닌 부분은 잘라내면 그만이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드러내라.’
카메라가 끊기는 것보다는 낫다.
어설픈 애드리브라면 바로 고함을 지르겠지만, 저 수준이라면 용인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스러웠다.
‘현장이 익숙해. 타고난 카메라 체질인가? 주눅 드는 게 전혀 없는데.’
이민기의 몸짓이 지나치게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진실은 이러하다.
이민기에게는 경험치와 계기가 있었다.
단역과 낮은 등급의 조연이라고 한들, 현장을 다년간 겪으며 현장 그 자체에 적응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저 주연들 사이에 끼고야 말겠다는 꿈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인풋에도 불구하고, 본 실력을 발휘하는 데 장애물이 있었다.
위축된 것이다.
단역으로서 본 실력을 드러내지 못하게끔 심리적인 제약이 걸렸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꽁꽁 묶여 있었던 이민기의 정신이 김아성 트레이너의 지속적인 꼬장……은 아니고, 케어로 다소 느슨해졌다.
야구장 일이 그 계기였고.
“니기미 삼겹살에 양상추나 까잡수시라고 해라. 시바라마.”
이번 역할 또한 그의 본성과 잘 맞닿아 있었다.
하겠다는 의지가 있음에도 도저히 성취하지 못했던 것.
염 감독 본인도 몰랐겠지만, [구학진 형사]라는 캐릭터는 곧 이민기의 한 면이었다.
쌓아둔 댐을 터뜨리면 범람하듯.
지금의 이민기는 신인치고는 과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컷!”
그 순간 염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테이크 하나가 끝났다.
동시에 현장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몰입에서 깨어나며 움찔 떨었다.
“후우우우…….”
한참이나 독백 연기를 펼치던 이민기가 비로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 좀 오버했나?’
시선에 주눅들 걸 생각해서 일부러 감정선을 조금 강하게 잡았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괜히 대사가 가슴에 사무치는 부분이 있었다.
구학진 형사의 대사가 마치 그의 이야기를 적어 놓는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대본만 보고 연습할 때는 의식적으로 조절이 됐는데, 현장에 오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뜬 바람에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막 나왔다.
‘좀 과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본능적으로 쿠사리 먹을 것과 재촬영을 각오한 순간이었다.
“민기 씨.”
염 감독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주 좋았어.”
“네?”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깜빡인 순간 염 감독이 말을 이었다.
“확실히 감각이 있네. 대사에서 어딜 강조하고 어딜 눌러야 할지 알아. 이거 현장을 많이 경험해 봐야 아는 건데.”
염 감독은 이민기의 체형을 위아래로 살피며 샅샅이 평가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슬쩍 물었다.
“혹시 다른 예명으로 활동을 좀 해 봤나?”
“네? 아뇨, 이민기 본명 그대로인데.”
“그럼 아역?”
“아뇨.”
“연극을 해 봤나?”
“그건 동호회에 잠깐.”
“어쩐지, 경험이 좀 있었네.”
염 감독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몇 번만 더 찍자고. 지금도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추가로 건질 수 있을 것 같아.”
“……!”
조금만 흠집이 보여도 가차없이 물어뜯는 걸로 유명한 염 감독의 칭찬이었다.
이민기가 놀란 눈을 크게 뜨며 힘차게 외쳤다.
“네! 백 번이라도 좋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많이는 필요 없고.”
한편, 같은 시각.
최유찬 배우와 강도원 배우도 멀쩍이서 이민기의 연기에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저거 신인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도원 씨 신인 때 생각나네, 안 그래요?”
“제가 뭐 있었나?”
“시퍼런 신인이 선배들을 다 기죽인다고 현장에 출입 금지 먹었잖아. 나대는 게 건방지다고, 흐하하학!”
“…….”
그리 달콤하지만은 못 했던 추억에 강도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일부 공감하는 바였다.
‘실력 있는 신인의 등장을 고까워하는 사람도 충분히 많지.’
강도원 배우는 옛 생각에 잠기기를 잠시, 고개를 저어 떨쳐냈다.
됐다.
그런 악습은 되물림만 하지 않으면 된다.
강도원은 그런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더 열심히 해야겠네.”
“쟤요?”
“아니, 우리 둘 말하는 겁니다.”
* * *
그렇게 촬영을 시작하고 보름.
이민기에게 한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좋아, 좋아. 다음 장면 진행하자고. 민기 씨 준비해.”
“네!”
본격적으로 현장에 적응하며 녹아든 것이었다.
그간 입증할 기회가 없는 탓에 그렇지, 입증하고 나자 인정받는 건 순식간이었다.
현장의 동료들에게 말이다.
“민기 씨, 액션도 좀 할 줄 알려나? 나 후반부에 민기 씨랑 치고받아야 하는데. 나 같은 늙다리는 좀 봐주겠지?”
“하하…… 하하….”
최유창 배우가 특히 그러했다.
그는 이민기라는 신인을 두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붙이기 바빴다.
“그러고 보니까 체격이 좀 다부진 것 같은데, 헬스 좀 다니나? PT 받아?”
“집 근처 헬스장이라고 하는 곳에 다녀요.”
“그렇지, 헬스장은 원래 집에서 가까운 곳이 최고야. 멀면 여름에는 더워서 가기 싫고, 겨울에는 추워서 가기 싫더라고.”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낸다.
여기에서 최유창 배우라는 유명 배우의 특징이 드러났다.
투 머치 토커.
혹은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
그는 업계에서도 내로라하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배우를 안 했거든, 약장수 혹은 사이비 교주를 했으리라는 설이 지배적일 정도로.
[식당에서 봐서 사인 한 장 해달라고 했더니 인생 로드맵을 짜 주더라니까.]그런 그가 이민기 같은 신인을 모른 척할 리가.
현장에서 촬영하는 내내 옆구리에 끼다시피 싸고돌았다.
“유창 씨, 너무 친근하게 구는 거 아니야?”
그런 모습이 불편하다는 듯 강도원 배우가 말을 붙였다.
“민기 씨도 불편해하잖아. 너무 그러지 마.”
“아, 저는 괜찮은데.”
이민기가 뭐라고 항변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봐요. 도원 씨, 배우들끼리 친목 다지자는 게 뭐 어때서.”
최유창이 낄낄 웃으며 응수했다.
“대선배님께서 먼 후배 하나 기특해할 수도 있지.”
“아니, 신인들은 그러다가 감정 연기가 뒤틀릴 수도 있잖아. 둘이 나중에 쌈박질하고 그래야 할 텐데, 제대로 폼이 나오겠어?”
“그거는 어설픈 애들이 그러는 거고.”
나는 어설프지 않다는 건가.
이민기가 눈가를 씰룩거리는데, 최유창 배우는 아예 코웃음까지 치더니 말했다.
“아, 그거네, 자기는 남들이랑 말도 잘 못 붙이는데, 나는 젊은 애랑도 친하게 잘 논다고 부러워하는 거. 맞지?”
“……유창 씨, 술 드셨나?”
“오오, 메시지에 반박하지 못하면 메신저를 공격한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원. 민기 씨도 이 사람 조심해.”
“아, 감사합니다.”
대선배의 충고에 이민기가 넙죽 고개를 숙인 순간이었다.
“아니, 민기 씨, 내가 그렇게 챙겨 줬는데 나를 조심해? 우리 그런 사이였어?”
최유창이 서운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우리가 어떤 사이기는.
TV로는 그나마 알고 지냈지만, 같이 현장에서 일한 지는 일주일도 안 된 사이지.
‘되게 깬다.’
이민기가 생각하는 최유창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중견 배우의 상징과도 같았다.
묵직하고, 강렬했다.
스크린에서는 주로 딱딱한 캐릭터를 자주 연기해서 더 그랬지.
위로는 능력을 인정받고, 아래로는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머나먼 선배.
그랬던 그가 설마 현실에서는 휴일에 사각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삼촌 같은 성격이었다니.
‘내 환상 돌려줘.’
아니, 애초에 왜 이렇게 달라붙는가.
주위에 다른 신인들이나 괜찮은 배우들 많은데, 왜 유독 내게만 이러나.
부조리한 애정에 이민기의 의구심만 깊어져갔다.
사실, 이것도 다 그의 실력이 받쳐 주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 이상하게 놀리는 맛이 있네.’
최유창이 속으로 큭큭 웃었다.
그의 눈에 비친 이민기는 실력에 비해서도 잘난 척하지 않고 겸손했다.
자기 차례가 아니더라도, 뭐든 다 배우려는 태도로 관찰하고 기록했다.
윗 선배라고 굳이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 게, 여러모로 모처럼 호감이 가는 후배였다.
그를 좋게 평가하는 건 최유창 뿐만이 아니었다.
한 명 더.
“역시 배우님은 남다르네요.”
이민기를 쫄쫄 따라다니다시피 하는 주하나까지 있었다.
“민기 씨 연기하는 걸 보면 뭐라고 해야 하지? 실제 상황을 보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식겁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는 이민기에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이쪽은 좀 부담스러운데.’
주하나라고 하면 스캔들로 유명해졌던 사람 아닌가.
어장관리로 유명했던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제가 이 앞에서 뭐 사왔게요? 바로 민기 씨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히려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옛말 중에 가지밭에서 신발 끈 고쳐매지 말라는 격언이 있지 않나.
너무 가까이 지냈다가, 뒤늦게 혹시 모를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거리를 두고 싶은 게 현실.
“혹시 운동 어디서 하시는지 저도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집 근처 헬스장이요.”
“알려 주기 싫으시다는 거죠?”
“그게 아니라, 진짜 집 근처 헬스장인데.”
어찌 됐든 이 시기 주하나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었다.
매사에 열심히 하는 싹싹한 성격의 여배우.
그렇게 이민기가 본의 아니게 현장의 주목을 독차지하게 된 상황은, 얼핏 보기에는 최고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고등학교 교실에 30명 있으면 이유 없이 사이 나쁜 사람이 1명쯤은 있는 법이다.
따라서, 현장의 모든 사람이 그를 좋게만 보는 건 아니었다.
‘아부 한번 징글징글하게 떠네.’
선배들과 유독 잘 지내는 그에게 악감정을 품는 사람들 또한 존재했다.
“신인이면 신인답게 조심조심 행동할 것이지, 왜 나대?”
“나이도 20대 중반이던데, 저 나이 먹고 막내처럼 행동하면 좋나?”
주로 어중간한 신인 배우들이 그러했다.
완전한 신인 티는 벗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제대로 된 주목은 못 받고 현장의 부품처럼 낀 사람들.
그들 눈에는 이민기의 행동이 고깝게 비쳤다.
“최유창 배우님이 성격이 좋으셔서 저러는 거 다 받아 주는 거지.”
“겉으로만 아닌 척하지 속으로는 다 알아.”
위로는 아부를 떨고, 아래로는 착한 척하며 다니다니. 저런 행태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좋게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위로는 싹싹하고, 아래로는 겸손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안 좋은 방향으로 돋보기를 들이민 사람들에게 그런 사소한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저런 녀석들 많이 봤지. 위에다가 비비면 자기가 그 급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놈들.’
정확히는 최유창이 이민기에게 일방적으로 달라붙는 모양새에 가깝다만.
그런 게 보일 리가.
여기에 사소한 악감정이 더 붙었다.
‘첫 촬영부터 여자를 끼고돌아? 정신머리부터가 틀려먹었네.’
‘신인이 여자를?’
‘저거 분명 선수다.’
멋지다기보다는 곱다고 봐도 좋을 얼굴과 비율 좋은 몸이 조화된 외모 덕분이었다.
총체적으로 난국.
그렇게 뒤틀린 시선으로 이민기를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
“X도 없는 물로켓 새끼가 나대기는.”
스턴트 배우 출신, 김인권.
그가 한참 멀찍이서 팔짱을 낀 채 이민기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진짜 실력을 까발려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