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39)
운빨로 탑스타-39화(39/200)
제39화
“……끄으으으응.”
시원하게 날아가 쓰레기더미 사이에 처박힌 김인권이 비틀비틀 일어나며 신음을 뱉었다.
그리고는 다시 풀썩 넘어졌다.
하지만 그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왜냐.
“…….”
염 감독의 카메라가 여전히 그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튜디오의 법칙.
필름이 멈추지 않는 이상, 화면 바깥세상이 개입해서는 안 되었다.
한편, 이민기도 감탄에 빠져 반응할 줄을 몰랐다.
‘이게 진정한 프로의 액션이구나.’
조금 전, 김인권이 그에게 달려올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리얼했다.
마치 정말로 그에게 부딪치려고 했다는 것처럼, 현실적이기 짝이 없었다.
불과 몇 센치.
아니, 몇 센치도 아니다. 몇 밀리미터만 더 들어왔더라면 이민기, 그 또한 저곳에 나뒹굴고 있었을 터.
김인권은 그 찰나의 간극을 조절하여 혼자 날아간 것이었다.
……라고 이민기는 판단했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난 한참 멀었다. 잠깐 몸이 말 좀 들었다고 그새 들떠서는. 자세부터 틀려먹었어. 요새 칭찬 좀 들었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이 정도는 해야지.’
현실 그대로의 액션을 본 이민기의 머릿속에 터질 듯 아드레날린이 끓어올랐다.
한편, 이 무렵 김인권이 바닥을 손으로 짚어가며 일어나는 데 성공했고, 이쯤 되었을 때 염광호 감독의 카메라도 멈췄다.
“컷.”
마침내 신호를 울린 염광호 감독이 직접 달려가 김인권의 손을 붙잡더니, 감동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훌륭했습니다.”
“네?”
“조금 전 그 액션, 정말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액션을 사랑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인권 씨에게 깜짝 놀랐습니다.”
“네, 네? 네?”
칭찬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인권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뭐 했나?’
그저, 현장 사고를 빙자해 이민기에게 쓴맛을 보여 주려다가 실패했을 뿐이었다.
간단하게 넘어뜨린 뒤, 함께 넘어지며 이민기가 합을 못 맞췄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민기의 몸에 닿기는커녕 그만 쓰레기더미에 박히지 않았나.
“애드리브가 조금 있었지만, 이런 애드리브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원래는 원테이크로 더 길게 뽑으려고 했는데, 이 정도가 된다면 편집으로 붙이는 게 낫겠네요. 인권 씨, 앞으로도 이런 액션 씬 기대해도 되겠죠?”
게다가 염광호 감독은 그를 칭찬하고 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 순간, 김인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민기 저 개새끼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 * *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촬영이 재개되었다.
“레디, 액션!”
김인권이 쓰레기더미에 처박혔던 장면에서 잘라내고는, 그다음 장면부터 다시.
이민기가 쓰러진 김인권을 붙잡으려고 한 순간, 김인권이 그를 뿌리치며 다시 달아났다.
이번에는 쫓아오는 이민기에게 달아나면서 쓰레기를 던지는 장면.
조금 전 액션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김인권은 생각했다.
‘아까는 제대로 당했지만, 이번에는 어림도 없다.’
재도전이었다.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두 번 실패할까. 김인권의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의지의 사나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였던가.
김인권은 그 말이 세상의 섭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거나 쳐먹어라.’
이민기에게서 달아나듯 앞만 보고 달리던 김인권이 우유팩을 꽉 쥐었다.
정석대로라면 우유팩을 이민기의 몸통으로 던져야 한다.
하지만 조금 높게 겨누어, 아예 머리를 맞추려 겨냥한 순간이었다.
푸슉――
“으악!”
손에 지나치게 힘을 준 탓일까.
우유팩이 그대로 터지며 그 안의 흰 액체가 김인권의 머리를 시원하게 적셨다.
찰팍!
“어푸! 어푸!”
그대로 낙수효과마냥 신선한 우유가 눈에 들어가 시야를 가렸다.
콰당탕!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리까지 꼬여버린 김인권이 다시금 시원하게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에는 애드리브였다고 쳐도, 이번에 뒹군 건 누가 봐도 명실상부한 사고.
하지만.
‘오오, 오오오오.’
염광호 감독의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이것도 장면이 좋다.’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나.
범죄물에서 액션 씬의 생명은 자연스러움이다.
갓 잡은 생선처럼 팔팔하게 뛰는 액션.
지금, 김인권은 그야말로 염 감독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액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감탄하는 건 이민기도 마찬가지였다.
‘스턴트 배우 출신은 다르구나.’
그 어떤 돌발사태도 장면으로 녹여내다니.
애드리브를 넘어선 애드리브 아닌가.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이민기의 눈에 비친 김인권은 그러했다.
“컷! 숨만 돌리고 마저 진행합시다. 시퀸스만 손 보죠.”
염 감독 또한 이런 돌발사태를 엮어 큰 그림을 완성하기를 즐기는 사람.
버리지 않고 끝까지 활용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끝이 아니다.
“윽!”
“허억, 허억, 허억. 이 새끼, 운동, 허억, 좀, 했나 보네.”
한참이나 달아나던 범인이 막다른 길을 마주해 맨몸싸움을 작정하는 씬.
김인권은 이민기를 향해 다소 과하게 주먹을 날렸고.
턱.
정말 우연히 이민기의 발에 걸려 넘어져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오오!”
그리고 염 감독은 감탄하고.
‘또 왜?!’
김인권은 속이 타고.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팍!
“으악!”
철푸덕!
“컥!”
김인권은 번번이 이민기의 앞에서 액션을 실패했다.
아니, 장면은 성공했다.
그의 의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이 새끼, 전부 알고 노리는 건가?’
이쯤 되자 억울해지기까지 했다.
김인권, 그가 누구인가.
스턴트 배우 중에서도 일류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깟 쌈박질 동작 하나를 실수할 사람이 아니다.
간단한 사고를 유발해 신인 배우를 곤란하게 만드는 정도쯤이야, 식은 죽에 찬물을 말아 먹는 것보다도 쉬워야 정상이었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니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간단한 게 복잡하게 꼬인 신발 끈처럼 너무나도 안 풀렸다.
“아! X발!”
입에서 내뱉고 있는 대사 그대로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 새끼, 운이 좋나?’
김인권이 진실을 맞췄다.
순수하게 운의 차이였다.
사고라는 건 원래 악운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운이 개입하기 마련이고, 운이란 더 큰 운 앞에서 잡아먹히는 법이었다.
그래, 이민기의 운이었다.
그의 운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덮쳐오는 불행 따위는 튕겨내 버렸다.
튕겨내는 수준을 넘어 보복까지 하였다.
[캠퍼스 스토리]를 촬영하던 무렵, 대기실에서 있었던 촌극도 그러했다.절대적인 운의 차이.
이민기는 다양한 운을 가졌지만, 그중에서도 불행을 피하는 운에 관해서는 가히 절대적인 수준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이 사람, 아까부터 뭐 하자는 거지?’
그는 호구가 아니었다.
애드리브나 실수도 정도껏 해야지, 이렇게까지 반복된다면 그 밑에 깔린 악의를 못 읽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애드리브가 왜 애드리브인가.
말 그대로 돌발 상황이라서 애드리브라고 부르는 거 아니겠나.
부상당하기 쉬운 액션 씬에서 이렇게까지 애드리브를 연발한다는 건,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와도 같았다.
김인권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말이다.
‘내가 호구로 보이나?’
처음에는 설마 했다.
김인권이 의도로 저러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점차 그 확신이 또렷해지더니, 맨몸 싸움 액션까지 다다랐을 무렵에는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이건 고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에게 적대적인 애드리브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받아 줄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선에서는 흘려 봐야지.
그리고.
“으아악!”
김인권이 실수를 가장해 그의 뒤통수로 주먹을 날린 순간이었다.
“……!”
그 주먹이 이민기의 손에 꽉 잡혔다.
포수의 글러브에 잡힌 공처럼.
꾸드득.
빼내려 했지만 박힌 그대로였다.
마치 프레스로 힘껏 누르는 것처럼, 이민기의 거센 손아귀가 김인권의 주먹을 억눌렀다.
김인권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악력이.’
악력.
평소 쌓아왔던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한 것이었다.
이민기가 집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불과 일주일밖에 안 지났을 무렵.
[관장님, 혹시 전완근(아래팔 근육)을 키울 방법 없을까요?]그가 권준용 관장에게 대뜸 물어봤던 게 있었다.
[전완근? 전완근은 왜.] [팔뚝 굵기가 남성미의 상징이라고 많이들 그러잖아요. 여기도 혹시 따로 키울 수 있나 궁금해서요.] [흠, 안 될 건 없는데. 전완근은 워낙에 작은 근육이라 재미가 없을 텐데? 키우기 힘들고 자라는 것도 느려서. 딱 티가 나게 기르려면 가슴이나 허벅지보다 3배 4배는 노력해도 모자랄걸?] [그래도요.] [호오.]권준용 관장이 불길한 웃음을 지으며,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찰나였다.
[우리 회원님께서 바란다면 해 드려야지. 자발적으로 하고 싶으시다는데. 응응, 교육 종사자로서 그 의지를 존중해야지.] [전 그냥 곁들이는 정도로만…….] [민기 씨, 그게 아니야, 뭐든 근육이라는 건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그게 근육이거든.]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훈련이 쉽지는 않았다.
[덤벨 리버스 컬부터 시작해서 파머 웍스로 손목을 풀고, 풀업 바 행으로 키우는 거야. 좀 편해졌다 싶으면 덤벨 리스트 익스텐션으로 전환하기를 반복.]남들 안 하는 온갖 전완근 훈련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전완근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티가 나진 않지만, 근육이라는 건 비주얼보다 기능에서 먼저 빛을 드러내기 마련.
55kg.
지금의 이민기가 달성한 악력이었다.
처음 시작했을 무렵보다 무려 40%가 증가한 수준.
일반인 이상, 운동선수 이하의 영역이었다.
“……!”
김인권이 한껏 주먹을 빼려고 시도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익!”
팔 힘만으로는 모자라, 온몸 반동을 이용한 뒤에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어, 어?”
뒤로 엉덩방아를 찧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아픈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김인권이 성난 목소리로 삿대질하며 외쳤다.
“민기 씨, 너무 나간 거 아니야?”
따지는 것이었다.
“네?”
무슨 말인가 이민기의 얼굴이 꿈틀하는데, 그 사이 김인권이 말을 이었다.
“애드리브 치는 건 좋은데, 서로 합의한 선에서 해야지. 안 그래?”
맞는 말이다.
애드리브란 어디까지나 상대 배우와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이 사람, 지금까지 나랑 합의 안 했잖아.’
본인도 그런 적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다.
이민기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만 할 따름.
자기가 하면 센스 있는 애드리브고, 남이 하면 실수인가.
“저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다 이런 게 분위기 보고 호흡 보면서 하는 건데, 그러다가 다치려면 어쩌려고. 응?”
“저도 다칠 뻔했는데요.”
“그래서 다쳤어?”
평소 다혈질 탓일까.
카메라조차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김인권의 비난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싼 수십 명의 사람, 그 모두가 마냥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인권 씨, 뭘 그렇게 화내고 그래.”
보다 못해 개입한 사람이 있었다.
최유창이었다.
그가 놀란 표정을 지은 김인권을 향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영화 촬영하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지금 이 친구가 저한테.”
“에헤이, 조금 너무했지. 근데 인권 씨가 선배잖아. 지금까지 애드리브를 인권 씨만 계속 쳤는데, 인권 씨가 너무 잘하니까 민기 씨도 그거 보고 한번 자기도 해 보고 싶었나 보지. 응?”
“그래도.”
“인권 씨.”
김인권이 뭐라 항변해 보려는 순간이었다.
순간 최유창의 눈꼬리가 한층 더 깊게 가라앉더니, 그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기에 사심이 너무 들어간 거 아니야?”
송곳처럼 날카로운 한마디.
그 말에 김인권의 폐부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