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41)
운빨로 탑스타-41화(41/200)
제41화
골목 뒤로 보인 사람의 수상한 동태에 이민기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뭐 하는 사람이지?’
말 그대로 수상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양손에 카메라 한 대를 조심스레 든 채 ‘나 수상한 사람이에요~’라고 온몸으로 홍보하듯 시선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구리다.
구린 냄새가 풍겼다.
이민기의 두뇌가 순간적으로 평소의 1.4배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 적 없는 사람 같은데.’
이민기가 스튜디오에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한 게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자기 촬영 일정이 있을 때만 온 게 아니라, 남의 촬영일에도 현장에 남아 모든 장면을 기록했다.
배우들부터 시작해 감독들이나 그 밑에 가려져 존재감이 옅은 스태프들까지, 한 명 한 명이 살아 움직이는 교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렇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수상하네.’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잠깐 봐야겠다.’
이민기는 바로 당사자에게 걸어가 따지는 대신, 핸드폰 카메라를 동영상 촬영 모드로 돌리고는 한 바퀴 멀리 돌아갔다.
저 낯선 사람이 무엇을 찍으려 하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거의 20m의 거리를 두고 카메라의 뒤에 선 순간이었다.
이민기는 괴한의 어깨너머로 저 멀리서 어느 장면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저건.’
골목 저편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것도.
‘하나 배우님이잖아.’
그와 함께 출연한 신인 배우, 주하나와 또 다른 배우 한 명이었다.
제리.
얼굴부터 잘생긴 남자 배우였다.
[언제까지고 푸르른]에서는 잠깐 나오고 마는 단역이라 큰 비중이 없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여간한 작품에서 주연 자리도 너끈히 차지할 만한 사람.‘저 두 사람을 왜 찍고 있지?’
서른 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솔직히, 그림이 좋았다.
먼저 주하나는 원래부터 마스크가 좋은 편인데, 제리의 표정에서는 연신 상쾌한 웃음이 돌았다.
어디 하나 빼놓을 데 없는 선남선녀들.
여기에 더불어 멀리 떨어진 괴한이 카메라를 찰칵거린다는 광경을 본 순간이었다.
‘아.’
이민기의 번개 속으로 번개같이 스쳐 지나가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바로.
‘저거 스캔들 장면이잖아.’
주하나의 어장관리 스캔들 파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역사적인 그 한 장이었다.
제리와 함께 사진이 찍혀 있었지.
주하나라는 한 배우를 대표하는 사진이었다 보니, 이민기의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진짜로 스캔들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이 그리는 분위기가 연인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다름 아닌, 이민기 그이기에 잘 알았다.
‘저 두 사람은 평소에 말도 안 섞었던 것 같은데.’
둘이 별로 안 친하다는 것.
그렇다면 뭔가 사정이 있는 건가.
잠시 고민에 잠긴 찰나였다.
“……헉!”
연신 카메라 셔터를 찰칵이던 괴한이 단말마를 뱉으며 철퍼덕 넘어졌다.
뒤에서 이민기를 발견해 제 발이 저린 것.
‘아, 조금만 더 고민하면 뭔가 보일 것 같았는데. 씁.’
이민기는 아쉬움을 삼키면서도 괴한의 코앞까지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물었다.
“저기요. 그 카메라 뭡니까?”
“저 여기 직원인데요.”
“그래요?”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한가지 추측이 스쳐 지나갔다.
만에 하나 눈앞의 사람이 정말로 여기 직원일 수도 있겠다 하는 그거.
외부 인력일 가능성도 얼마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ID카드 좀 보여주실래요? 촬영 시작한 첫날에 감독님이 직접 나눠주셨던 거.”
“아, 저 그거 집에 두고 왔는데.”
“다행이네요. 저희 그런 거 받은 적 없는데.”
“…….”
태연하게 튀어나온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괴한이 눈가를 씰룩거렸다.
또한, 그를 간단하게 속인 이민기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냥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 봤을 뿐이다.
이민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카메라 좀 보여주시죠.”
“네?”
“뭐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좀 보자고요.”
그 말에 괴한이 움찔하더니 카메라를 품에 소중히 안은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제가 왜요?”
“수상하잖아요. 남의 사진 함부로 찍는 거 불법인 거 몰라요?”
“증거 있어요?”
“네.”
이민기는 주저 없이 핸드폰을 꺼내서는 액정을 두들기기를 잠시.
“자요.”
보란 듯이 들이밀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영상, 그 안에는 몇십 초에 걸쳐 도촬에 집중하는 괴한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윽.’
괴한이 찔끔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이민기가 더 따질 필요도 없다는 듯 카메라를 집어 들려는 순간이었다.
“……이익!”
그는 뒤를 돌아보더니, 맹렬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니, 도주하지도 못했다.
철퍼덕!
괴한은 불과 세 걸음도 못 달리고 제 다리에 걸리더니 성대하게 자빠졌다.
‘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연속 동작에 이민기가 속으로 감탄했다.
‘요즘은 내 앞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많네.’
이것도 운빨인가.
정말 세상에 운이라는 게 크구나.
사실, 이건 그런 거였다.
이민기 본인이 운이 나빠서 달리다가 자주 넘어졌다면, 역으로 다른 사람이라도 충분히 넘어질 수 있다.
그뿐이었다.
이민기의 운이 저 괴한의 운보다 컸을 뿐.
“땀 흘리지 말고 보여주시죠.”
이민기가 괴한의 어깨를 누른 찰나, 괴한이 뿌리치고 일어나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경악했다.
‘말라깽이 주제에 무슨 힘이 이렇게 세?’
이민기의 상체 전반에서 말도 안 되는 힘이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마른 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이란, 가히 유도 선수의 그것이었다.
정확했다.
왜 겉보기에는 말랐는데 힘이 강한가.
그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이민기가 평소 철저하게 저중량 고반복 운동을 실천해 왔기 때문이었다.
[민기 씨, 같은 운동이라도 고중량으로 적은 횟수를 반복하면 근육이 빠르게 커. 하지만 그 대신 데피(근 선명도)와 지속력에서 손해를 보지.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반대로 저중량으로 적은 횟수를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근육이 느리게 크는 대신, 데피가 좋고 지속력도 좋다?] [이그젝틀리!] [어차피 보여주기용이라면 상관없지 않아요?] [꼭 그렇진 않고, 배우들처럼 날렵한 몸매를 중시해야 한다면 무작정 부피를 키우는 게 능사는 아니지. 조각 같은 몸은 데피를 쌓아야 나오거든.]권준용 관장의 안배가 빛을 발했다.
지금의 이민기는 겉으로 보이는 근육량에 비해 내실이 상당히 튼실했다.
물론.
[근데 우리 회원님 이거 아시려나? 저중량 고반복보다도 더 몸에 좋은 게 있다는 거.] [그게 뭔데요?] [저중량 매우 고반복.] […….]그만큼 빡세게 구른 덕도 있고.
“놔! 놔!”
“싫은데요. 카메라만 얼른 보여줘요.”
“으아악!”
그렇게 난데없는 몸싸움을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소동이 이만큼 커졌는데,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있나.
금방 들통났다.
“……민기 씨?”
“와.”
주하나였다.
그녀가 제리와 함께 어느새 다가와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뭐 하세요?”
“파파라치요.”
“그 사람이요?”
“네, 나쁜 사진 찍는 파파라치.”
“…….”
* * *
결과가 나왔다.
괴한에게는 경찰 신고와 협조 중 선택하라고 강요했고,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와, 이거 아주 못된 사람이네.”
“…….”
“왜 이러고 살아요?”
“…….”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카메라를 순순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민기는 그가 찍어둔 사진 목록을 천천히 훑어보며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런 사람이 다 있네.’
그의 카메라 메모리에 담긴 사진들은, 태반이 주하나의 사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기 외적인 사진들.
‘하나같이 구도가 무슨 이따위야.’
주하나가 남자 배우들과 친근하게 담소를 나누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노린 듯한 구도로.
이번이 처음은 아닌지 비슷한 사진이 수십 장이나 더 있는데, 그중에서도 몇 장은 이민기에게도 익숙한 사진들이었다.
그러니까, 훗날 주하나의 어장관리 스캔들을 유발했던 그 사진들이었다.
‘어장관리 스캔들의 진실이 고작 이런 거였다니.’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찔해졌다.
촬영 초기부터 친절했던 주하나의 행동이 수상하게 느껴져서 슬슬 피했는데, 그게 전부 오해였나.
그것도 이런 악성 파파라치 하나 때문에 생긴 스캔들이라니.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정황이 이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 유출이 무섭구나.’
연기 배우들의 약점 같은 것이었다.
여타 연예인들이 스튜디오 내에서 활동하는 데 반해,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배우들은 야외에서 촬영할 때가 잦다.
그렇기에 파파라치들에게 노려지기도 쉬웠다.
‘야외에서는 신분 검사고 뭐고 할 것도 없으니까. 고성능 카메라 한 대면 사람 인생 조지기 충분하지.’
그래서 미국의 유명인들은 경호원도 아니고 경호 팀을 대동하고 다닌다고 했나.
착잡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훑고 있으려니 제리가 중얼거렸다.
“이거 또라이네.”
“…….”
“이거 한 장에 얼마 받아요?”
“…….”
“돈 안 받아? 돈 안 받으면서 이러면 더 미친 거지.”
상쾌한 얼굴과는 반대로 조곤조곤 독설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파파라치의 고개는 저 아래로 떨어졌고.
“이야, 사진들이 되게 엄해 보이네. 우리 그런 사이 아닌데도요. 그렇죠? 하나 씨. 사실 연기 어떻게 하는지 조언 좀 구하겠다고 여기저기……”
제리가 헛웃음을 터뜨리자, 주하나가 그를 째려봤다.
“크흠.”
눈치 읽으라는 묵언의 눈빛에 제리가 찔끔하더니 말했다.
“아무튼, 민기 씨, 고마워요. 이런 사진 밖에 퍼지면 좀 위험할 뻔했는데 덕분에 살았네.”
“그냥 뻔히 보여서요.”
“하하, 이런 사진이 밖에 퍼지면 난리 나거든요. 그래도 나 같이 잘생긴 배우는 스캔들 몰고 다니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자 신인 배우들한테는 좀 치명적이야. 민기 씨도 이 바닥에 더 익숙해지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알다마다.
알고 자시고 이 사진들이 퍼져서 어떻게 되나 아예 결과까지 다 보고 왔는데 모를 수가 있겠나.
‘하지만 중요한 건 예방이다.’
중간에 잡았다고 해서 관둘 리가.
파파라치가 한 번 잡혔다고 관두면 파파라치가 아니다.
어떻게든 예방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이민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방면에서 나타났다.
“매니저님.”
“이야기 듣고 바로 왔습니다.”
주하나의 매니저가 찾아온 것이었다.
마치 산과도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인데, 턱에는 문신이 꿈틀거렸다.
매니저라는 단어보다는 조폭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만 같은 남자.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이민기 그 또한 몇 번 마주했던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주하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면, 그의 매니저가 멀리서 험악한 눈길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아악!”
그가 거중기 같은 팔로 파파라치의 팔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배우님들께서는 볼일 보세요.”
“매니저님, 저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회사에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니까요.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히익……!”
처리라는 단어에 이미 한계까지 움츠러든 줄 알았던 파파라치의 어깨가 한계 그 너머로 나아갔다.
하기야, 기획사 직원이라면 이런 똥파리들은 익숙하겠지.
‘이쪽이 전문가다.’
이쯤에서 이민기도 손을 뗄 마음을 먹었다.
나서서 현장에서 붙잡는 정도로도 할 도리는 다했다.
괜히 더 나섰다가, 악성 파파라치 한 명을 덤으로 붙일 생각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그가 할 일이 없기도 하고.
‘일을 키워 봤자 좋을 게 없겠지.’
말 그대로,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다.
배우의 일은 연기다.
배우 관리는 매니저가 한다.
“그럼 우리끼리는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할까요?”
그렇게 눈치를 살피던 제리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아, 민기 씨 거는 제가 살게요.”
주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하나 씨, 저는요?”
“3천 원 미만으로 고르세요.”
“에.”
피해자가 될 뻔했으니 혼란스러울 텐데, 분위기를 풀려고 애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배우님.”
주하나의 매니저가 이민기를 붙잡듯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는데, 배우님 덕분에 어떻게 잘 해결될 것 같습니다.”
“…….”
그가 큰바위얼굴 같은 머리를 꾸벅 숙였다.
한 손에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 파파라치의 팔을 꽉 잡은 채로.
이민기는 그 어색한 그림을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제가 뭘요.”
그냥 웃어넘기고는 나왔다.
* * *
작은 소동이 끝났다.
사소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배우 커리어 전체를 더럽힐 만큼 커다란 가능성을 내포했던 소동.
그런 일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현장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한 달 반이 더 지나 어느 저녁.
[언제까지고 푸르른]에서 [구학진 형사]의 하이라이트 씬이 코앞까지 다가왔다.‘아, 이거 쉽지 않다.’
[구학진 형사]가 고문당하다가 살해당하는 씬이었다.사실상의 퇴장 씬.
살인마 역을 맡은 강도원 배우의 거친 시선을 뒤통수가 따가우리만치 한껏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메소드 연기의 대가다.’
연기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살기가 느껴진다.
살기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줄은 몰랐는데, 강도원 배우가 뿜어내는 기세는 살기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될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이번 장면만 지나면 당분간 그의 촬영 분량은 끝이다.
느긋하게 떨어져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분장팀에게 몸을 맡긴 찰나였다.
“흐음, 이거 어떻게 해도 느낌이 안 사는데.”
그의 분장을 맡은 미술 감독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원래 와이셔츠 입히려고 했는데, 묘하게 느낌이 안 살아. 그 절박한 느낌이.”
고문을 받는 [구학진 형사] 역에 느낌이 영 안 온다는 말이었다.
이미 한참 전에 대본으로 정해진 사안인데도.
“염 감독님, 잠깐 말씀 좀 나눌까요?”
그렇게 이민기를 흔들의자처럼 앉혀 둔 채로 두 사람이 긴급회의를 진행하길 잠시.
“적당히 피 바르고 물 뿌리고 하면 되지 않나?”
“느낌이 영 아니라서. 민기 씨는 전체적으로 선이 연하잖아요. 이게 뭘 해도 좀 무고한 피해자 느낌만 들거든요.”
“연기로 어떻게 안 될까?”
“그건 일단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죠.”
결론이 한참이나 안 나오던 와중이었다.
적막히 흐르기를 10초.
염 감독이 툭 던지듯 말했다.
“아예 벗겨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