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42)
운빨로 탑스타-42화(42/200)
제42화
“벗기자는 말씀은?”
미술 감독의 반문에 염 감독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왜, 고문하는 장면이잖아. 굳이 상의를 입혀놓을 필요가 있겠나.”
그러니까.
이민기의 연한 비주얼이 고문 씬에 어울리지 않으니, 아예 윗옷을 좀 더 벗겨서 처절하게 만들자는 말이었다.
물론, 당사자의 의향과는 크게 상관없이.
‘노출 씬이라고?’
이민기가 움찔했다.
노출 씬 나쁠 거 없지.
남자 배우라면 남성미를 뽐낼 씬이 한 번쯤은 필요하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민기는 이 노출 씬이라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딱히 부끄러워서는 아니고.
‘아직은 아니야! 안 돼!’
시기가 덜 무르익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벌크도 덜 올랐는데, 이 상태로 노 출씬을 찍는다고? 그럴 수는 없어.’
이제 운동을 시작하고 반년이 조금 안 된 참이다.
각은 잡혔다.
선수급 운동 스케쥴에 철저한 식단 관리가 합쳐지자, 슬슬 본격적인 헬스한 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부피가 덜 커졌다는 것.
저중량 고반복의 문제점이었다.
본격적으로 근육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들인 품에 비해 티가 안 난다는 것.
노출 씬을 찍는다면 언젠가 바다 프로필과 함께 공개한다.
이민기는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어설프게 입힐 바에는 벗기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군요.”
미술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염 감독님, 그런데 벗긴다 치면 어느 정도로?”
“싹. 젊은이라는 영화 보면 나오잖아. 윗옷 벗고 머리를 밀어버리는 장면. 그런 느낌으로 안 되나?”
“그렇게 보면 느낌이 올 것도 같은데.”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그 느낌이 아니야.
이민기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늘어놓는 와중이었다.
“별로일 것 같습니다.”
미술 감독이 수를 놓았다.
“왜?”
“민기 씨 피부톤이 너무 하얍니다.”
피부가 문제란 말인가.
예상 밖의 말에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오른 순간, 미술 감독이 말을 이었다.
“이미 소품부터 우중충하게 맞춰 놨습니다. 만약에 벗긴다면 피부색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톤을 아예 새로 맞춰야 할 텐데, 그럼 장면에 몰입이 안 될 것 같네요.”
“흐음.”
언뜻 타당한 반론에 염 감독이 인상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도 노출이 있어서 나쁠 건 없을 듯싶은데.”
지금이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이민기는 필사의 심정을 담아, 날아가는 총알의 궤도를 칼날 하나로 틀어놓는 심정으로 말했다.
“저기.”
“예, 민기 씨.”
“그, 아예 노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앞섶이라도 풀어 놓으면…… 어떨까요?”
반만 노출하자.
나름의 의견을 쥐어 짜낸 순간이었다.
이민기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걸까, 미술 감독이 괜찮은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느낌이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런가?”
“예, 딱 중간 지점이 될 것 같습니다.”
“씁,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좋아, 그렇게 가자고. 민기 씨, 그럼 부탁할게.”
두 사람이 합의했다.
노출은 노출하되, 그 정도를 무르는 선에서.
‘그래, 그 정도라면 나쁘지 않아.’
이민기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벌크가 약한 건 주로 팔뚝과 광배 중심이니까.
대흉근과 복근 정도라면 괜찮다.
대흉근은 원래 대근육(큰 근육)이라 빠르게 자라고, 복근은 부피보다는 체지방을 걷어낼 때 드러나는 곳이니까.
‘좋아, 해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점점 헬스인의 마인드가 탑재되어가는 이민기였다.
* * *
긴급 분장 변경이 진행되었다.
이민기의 흰 피부를 덮을 만큼 누런 화장이 덮었으며, 먼지와 붉은 핏기가 구석구석 자리 잡았다.
영화를 촬영하기에 앞서, 전체적인 톤을 잡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이게 아니다.
이민기의 상의였다.
흰 와이셔츠를 너덜너덜하게 구기고 물에 적신 뒤, 이민기에게 입혔다.
앞서 동의를 구했듯 앞섶을 풀어 놓은 채로.
그런데 그것이.
“흠, 확실히 탄탄하네.”
썩 볼만했다.
“은근히 몸 좋은 것 같기는 했지만, 저 정도였나?”
“옷 입으면 티가 안 나는 타입이었네.”
“느낌 있는데?”
“저 정도 몸 만들려면 한 3개월 바짝 운동하면 되나.”
“어림도 없지. 네가 무슨 권상우도 아니고, 쇠 좀 들어본 내가 장담하는 건데, 저건 최소 2년은 운동한 몸이다.”
현장에서 이민기의 몸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특이한 일이었다.
이 업계에 널린 게 몸 좋은 사람들이지 않나.
엄밀히 말해, 이민기의 몸이 좋긴 하나 절대적인 근육량은 육체파 배우들에 비해 결코 앞서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육체에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골격(프레임).
타고난 비율과 근육의 형태가 이루어낸 멋이었다.
[회원님 같은 사람은 말이지. 운동을 3개월만 해도 남들 1년 한 만큼 티가 나오거든. 축복받은 줄 아세요.]몸도 사람의 얼굴과 같다.
대충 싸구려 로션만 발라줘도 잡티 하나 없이 반짝이는 피부가 있는가 하면, 매주 피부과를 들락날락해야 남들만큼이라도 하는 피부가 있다.
몸도 마찬가지다.
가슴 근육만 봐도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라나지 않나.
이런 의미에서 이민기의 몸은 축복받았다.
머리가 작고 어깨는 넓다.
상체가 짧은 주제에 팔과 다리는 길다.
즉, 근육을 조금만 붙여도 엄청나게 그럴듯해지는 몸.
흔히 말하는 예쁜 몸이었다.
여기에 분장팀의 손길이 닿자.
“와.”
“반짝반짝 빛나네.”
가히 르네상스의 거장이 한땀 한땀 손수 빚어낸 조각상에 못지않았다.
‘운동 진짜 열심히 하셨구나.’
주하나의 존경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나도 왕년에는 저만큼 했는데. 에잉.’
최유창이 혀를 찼다.
‘저 정도면 나랑 좋은 승부가 되겠는데?’
제리가 코웃음을 쳤다.
‘이 정도까지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흠, 차라리 조금 더 톤을 죽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분장팀은 고심에 빠졌다.
그렇게 온갖 시선을 뒤로하는 가운데, 이민기가 철제 의자에 앉았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목과 발목을 의자에 묶자, 이내 그럴듯한 고문 현장의 느낌이 풍겼다.
“좋네, 바로 시작합시다.”
염 감독이 박수를 치며 당장이라도 촬영을 시작하겠다는 듯 안달을 냈다.
“도원 씨, 준비하시고.”
잠시 뒤.
“레디, 액션.”
어느 주방.
강도원이 주전자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 이민기가 연기한 [구학진 형사]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이를 갈며 말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네가 무슨 배트맨이냐 이 새끼야? 박쥐같이 노는 게 배트맨 맞네.”
강도원이 연기한 살인마 형사 [황인범]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주전자에 물을 채울 뿐이었다.
드르르르륵.
말이 없는 그를 향해 [구학진 형사]가 계속해서 저주를 뱉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제 가족도 칼로 찔러 죽일 새끼. 똥이랑 된장도 못 가리는 새끼.”
그쯤 되었을 때 주전자에 채운 물이 꽉 차다 못해 줄줄 새어 나왔고.
“사람 하나 익사시키는데 그렇게 뭐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
[황인범]이 고개를 돌려 [구학진 형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이윽고, 그가 [구학진 형사]의 얼굴에 얇디얇은 천 한 장을 얹었다.
그리고.
쫄쫄쫄쫄――
물을 붓기 시작했다.
“우웁! 웁! ……웁! ……! …! ………!”
[구학진 형사]의 목소리가 점차 사라져갔다.대신 그 자리를 소리 없는 아우성이 메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호흡 부족으로 질식할 것 같은 사람이 발버둥을 치듯, 계속해서 온몸을 달싹거렸다.
쿵! 쿵! 쿵!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치며 의자째로 날뛰었지만, 그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천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몇 초.
쿵! 쿵! 쿵!
쿵! 쿵!
쿵!
……드드득.
점차 의자가 들썩이는 소리도 가라앉으며, 구학진 형사의 몸에서도 떨림이 잦아들었다.
그렇게 다시 몇 초.
“…….”
끝이었다.
[황인범]이 확인차 [구학진 형사]를 발로 차서 넘긴 순간.스태프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기 바빴다.
‘저거 진짜로 죽은 거 아니야?’
‘몸이 무슨 썩은 나무토막 같은데?’
‘숨 못 쉬나?’
이민기의 몸이 심장이라도 뛰긴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처연하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 한 구처럼.
[구학진]의 얼굴이 천에 덮인 채 가만히 클로즈업되는 찰나, [황인범]이 완전히 끝내겠다는 듯 골프채를 천천히 들어 올렸고.“컷!”
염광호 감독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그와 동시에, 심각한 긴장에 숨조차도 못 쉬었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야, 몇 번 다시 찍을 생각을 했는데, 이건 이대로 바로 가도 되겠는데? 참, 민기 씨 얼굴에 저거 얼른 떼 주고. 아니다. 내가 해야겠다.”
염 감독이 뒤늦게 달려가서는 이민기를 풀어주고는 안색을 살폈다.
“배우님, 괜찮아요?”
“……죽을 뻔했어요.”
“하하, 한 번 더 찍을까요?”
“아뇨.”
그렇게 이민기의 촬영이 끝났다.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푸르른]의 촬영 일정은 남았지만, 이민기의 등장은 여기에서 끝.
남은 건 주인공의 선배 형사, [오만식]과 [황인범]의 결전뿐이었다.
“저, 잘 찍혔죠?”
“물론이죠.”
그 말에 이민기가 비로소 안도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죽는 줄 알았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아슬아슬했다.
5초만 더 있었으면 기절했겠네.
평소에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서 다행이다.
* * *
그렇게 약 2주의 시간이 추가로 흘렀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우, 다들 너무 고생 많았어.”
남은 촬영 분량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끝났다.
촬영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던 덕일까.
긴 촬영 기간에 한계까지 지칠 무렵임에도 배우들의 분위기는 화목하기 짝이 없었다.
“하하, 진짜 민기 씨 덕분에 매일 즐거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
“제가 뭘요. 다 선배님이 받아 주신 거지.”
“그러니까 죽는 줄 알았다고. 이 고얀 놈아.”
전적으로 이민기의 실력이 확실히 인정을 받은 덕분이었다.
기성 배우들부터 시작해 비슷한 급의 단역들까지 모두가 그를 중심으로 뭉쳤다.
“민기 씨가 잘하기는 해.”
“처음에는 몰랐는데, 가면 갈수록 진가가 드러나더라.”
그의 실력이 진짜임이 여러 장면에 걸쳐 증명됐다.
이 이상, 더 이빨을 세우며 으르렁거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게 남는 거지.
“민기 씨, 오늘도 운동 가게? 뒤풀이는 거르고?”
“아, 오늘은 치팅데이에요.”
“그러면 회식 가겠네?”
“당연히 가야죠.”
“하하, 좋다. 오늘은 내가 소맥 한 잔 끝장나게 말아줄게.”
“술은 안 되고요.”
“……민기 씨, 밀당 잘하네.”
크랭크업을 기념해 막간 행사도 끝났다.
하지만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스튜디오의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원래 영화라는 게 그랬다.
개봉을 12월에 한다면, 촬영 자체는 이미 반년 전에 마칠 때가 잦았다.
그렇다면 남는 기간에는 무엇을 하는가.
바로.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
본격적인 편집의 시작이었다.
요리로 치면 이렇다.
촬영이 재료 준비라면, 편집은 요리에 해당했다.
3개월간의 촬영을 통해 양질의 재료를 갖췄다면 그것을 버무려 최대한 좋은 완성품을 빚어내는 게 감독의 진짜 실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크랭크업(촬영 종료) 이후 약 2주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군.’
염광호 감독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인 최종 편집본을 만들기에 앞서, 중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안목 좋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염광호 감독은 배급사 사람에게 보여주기를 즐겼다.
배급사.
완성된 영화의 마케팅부터 시작해, 유통 전반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회사.
염 감독이 벌써 10년째 호흡을 함께해 온 회사인 ㈜아티카가 그런 곳이었다.
“어유, 우리 염 감독님 잘 계셨죠?”
아티카의 중견 직원, 배재서 과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건넨 말에 염 감독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별일 있겠어? 늘 똑같지. 자신 있으니까 흠집 잡을 거면 잡아 봐.”
배재서 과장의 식견은 믿을 만하다.
어지간한 평론가보다도 한 수, 아니, 두 수는 위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염 감독은 최종 작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배재서 과장의 의견을 한 번쯤 물을 생각이었다.
“좀 아니다 싶은 부분 있으면 가차 없이 말하고.”
“에이, 제가 감독님 작품에 어떻게 훈수를 두겠습니까. 오는 길 내내 어떤 찬사를 하면 적절할까만 고민하면서 왔는걸요?”
“이 친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배급사와 제작사는 공생 관계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인데, 이 둘만 보면 마치 친구를 보는 듯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였고.
‘그래도 편히 볼 수만은 없지.’
배재서 과장이 염 감독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잘 알고 있다.
이 사람에게 능력이 있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은근히 예술 욕심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위험한 기질이었다.
이 업계에서 예술 욕심이라는 건 흔히 상업성에 위배될 때가 잦았기 때문.
‘그래도 염 감독님이다. 어차피 지적할 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잘 살핀다.’
오늘은 최종 편집본의 코앞에 있는 물건을 관람하러 온 참이다.
“여기 편히 앉으시고. 보면서 기절할 수도 있을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
“감독님 작품은 볼 때마다 기저귀 차고 봅니다. 하하.”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의자에 앉아 편집본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를 한참.
긴장감 있게 굴러가는 영화 속.
배재서 과장의 눈에 유독 콕 박히듯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저 친구, 신인인가요?”
유독 비쥬얼이 튀는 남자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