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46)
운빨로 탑스타-46화(46/200)
제46화
그야말로 압도적인 첫인상이었다.
한 장의 화보.
술집 현관에서부터 눈에 박히는 멋, 이민기의 모습이 한 장의 화보가 되어 동창들의 눈에 비쳤다.
이것 또한 운이라면 운이었다.
“어, 어. 민기 왔구나. 잠깐만, 자리가 어디 좀 보자.”
동창회장의 그 짧은 말에 동창들이 일제히 삐쭉 섰다.
이민기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가.
그것 하나만으로도 긴장해 버린 것.
“그래, 저기 앉으면 되겠네.”
“고맙다.”
“……어.”
짧은 인사 한마디에 벽을 느껴버린 동창회장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멋진 사람과의 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체력을 소비하는 것.
긴장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반동이었다.
드륵.
하지만 이민기가 앉은 자리에서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오래간만이네. 이름이.”
“나 박진영.”
이민기의 말에 건너편에 앉은 남자 한 명이 이름을 댔다.
박진영이었다.
그 짧은 말에 이민기가 고맙다는 듯 봄바람처럼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진영이 오래간만이네. 학생 때 잘생겨서 인기 많았던 거 기억나는데, 지금도 잘생겼네.”
시작부터 칭찬이다.
그냥 격식으로 하는 말이라고 봐도 좋겠지만, 김진영의 얼굴에 핏기를 가시게 하는 데는 차고도 넘쳤다.
왜냐.
‘내가 돌았지.’
그야말로 조금 전까지 이민기를 열심히 헐뜯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민기 그 범생이가 배우를 하냐느니, 걔가 하면 내가 배우를 해도 되겠다는 둥.
불과 몇십 초 전까지만 해도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던 말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티끌만큼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안 봤다고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하지?’
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앉은 다른 동창들도 입으로 말만 안 할 뿐,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박.’
‘카메라빨이 아니라 실물이 달라졌네.’
‘꾸며서 그런가?’
‘어깨 좀 봐. 저기 주차해도 되겠다.’
어색한 공기만 감돌았다.
그들만이 아니라, 이민기 본인마저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왜 말이 없지?’
동창회에 모처럼 참석해서 들뜬 참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설마, 별로 안 친했던 건가.
동창회라는 게 워낙 낯설기는 하다만, 이렇게까지 어색한 자리였나.
왜 얼굴만 쳐다보지.
“물컵 없나?”
“아, 이거 써.”
“고맙다.”
그나마 인사말에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는 풀려났다.
같은 자리에 앉은 여성 동창 한 명이 간신히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민기가 배우 데뷔했다면서?”
“응, 얼마 전에.”
“언제까지고 푸르른이었나? 기사 보고 깜짝 놀랐잖아. 누군지 못 알아봤는데 이름이 너랑 똑같더라. 찾아보니까 너여서.”
우선은 칭찬으로 운을 띄웠다.
그 짧은 말에 옆자리 동창들이 벌떼같이 달라붙어서는 하나같이 다급하게 칭찬을 이어나갔다.
“맞아, 진짜 멋있더라.”
“나 민기 나온 드라마 봤어!”
“거의 주연급이었잖아. 그거 작가도 유명한 사람이던데?”
“그럼 민기가 제일 출세한 건가?”
“하하, 진짜 세상일 모르겠네.”
“부럽다.”
개중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은근한 험담을 흘리던 사람들도 한둘씩 섞여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앞에 서자, 도저히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워 머리가 마비된다면 모를까.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진 말에 이민기가 한 반응은 하나였다.
“이제 막 신인 조연인데 뭘, 개봉하고 성적 봐야 알지.”
“…….”
조금 전에 누군가가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의도는 명백히 달랐다.
그때 저 말이 이민기를 헐뜯으려고 한 말이었다면 이번에는.
‘겸손하네.’
이민기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진짜 사람이 됐구나.’
‘배우들 신인 때부터 엄청 기세등등하다던데, 얘는 다르네.’
물론, 본인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말이었지만 말이다.
“나도 이제 막 하나하나 배우는 참이라 말을 못 하겠네. 선배님들 볼 때마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게 산더미라서. 망하면 어쩌나 싶다.”
“그래도 현장 촬영하면 유명인들도 되게 많이 보겠다.”
“보기야 많이 보지.”
“그 배우 쪽 업계가 신인한테 텃새 되게 심하다면서.”
“그런가?”
맥락 자체만 보면 그리 부드럽지는 않았다.
이민기라는 사람이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일반인들과 대화를 안 나눴을뿐더러, 동창들도 남남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최유창 배우님이 진짜 대단해. 주위 사람들 다 챙겨 주신다니까. 완전 촬영장에서 아빠 같은 사람이더라.”
그것만으로도 남의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대화 스킬이 모자라더라도 비주얼이 그것을 메꾸고도 남음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태도가 갖춰졌다.
‘학생 때랑 왜 이렇게 다르지.’
‘꾸며서 그런가?’
‘옛날에는 별로 멋있는 느낌도 안 들었는데.’
학생 때와는 달라졌다.
자존감이 올라가며 등이 곧게 펴졌고, 시선도 정면을 당당하게 응시했다.
편안한 자세는 곧 대화의 흡입력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변했다.
그만큼 동창들의 얼굴만 홍시처럼 달아오를 뿐이었다.
‘아까 했던 말들 들었으면 어쩌지?’
‘이놈의 입방정. 아까 왜 그랬대. 나는 그런 말 할 생각 없었는데.’
과하게 멋진 사람이 된 이민기가 역으로 그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 정신을 덜 차린 사람도 있었고.
‘왜 다 이 새끼 눈치만 봐?’
구석에 앉아서 이 상황을 좌시하고만 있는 인물, 고재범이었다.
고재범.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 때만 해도, 아니, 당장 오늘도 대화의 중심은 그 아니었나.
내심 깔보고 있었던 이민기가 모든 화제를 이끌어 갔다는 게 그의 시선에는 거슬리게 비추었다.
‘내 따까리였던 놈이 좀 꾸미고 나왔다고 잘난 체는.’
악감정을 가질 이유라고는 없다.
하지만 원래 사람이라는 게 이유가 있어야 악감정을 가지던가.
내심 얕봤던 사람이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괜한 적개심이 들기에는 충분했다.
고재범, 그가 요즘 마땅히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알바만 전전하는 것도 괜한 억하심정에 힘을 실어주었고.
‘그래, 옛날이야기나 해볼까.’
지금은 좀 개구리 됐나 보지만, 그렇다고 올챙이 시절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그쪽이 진짜다.
지금, 이건 가면에 불과하겠지.
속으로 판단을 마친 고재범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어서, 그의 입이 열렸다.
“야, 이민기. 그러고 보니까 너 고딩 때는 맨날 쭈구리였잖아. 뒷자리에서 책만 읽고.”
추억, 그중에서도 옛 나쁜 추억을 들춰 이민기에게 흠집을 내 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지.”
“매…….”
“아니, 근데 책이 재밌는데 어떡하냐.”
이민기라는 사람은 이미 그런 수작이 먹힐 멘탈이 아니었다.
물러서기보다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요즘은 바빠서 책도 못 읽고 사는데, 그때는 책 읽는 게 그렇게 재밌더라. 매일 일만 하니까 짬이 안 나. 참, 노는 것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많이 놀아둘걸. 맨날 후회한다.”
“…….”
“나는 가끔 재범이 네가 부럽더라. 열심히 놀면서 대학도 잘 갔잖아. 애들 사이에서 막 엄친아? 그런 거였지.”
태연하다.
아니, 태연한 선을 넘어 흠집을 내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못 읽은 듯 산뜻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과연 이 정도로 충분할까.
‘이 새끼가……!’
충분했다.
“요즘은 뭐 하고 살아?”
고재범의 멘탈을 박살 내다 못해 아예 가루로 빻아버리기에는 말이다.
그가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이것저것 하지? 회사 일도 하고, 부모님 일도 도와드리고 가끔 쉬기도 하고.”
“졸업하고도 엄청 성실하게 살았네.”
“…….”
“그럼 오늘도 퇴근하고 왔겠다.”
“어, 어, 뭐, 그렇지…….”
고재범이 입술을 악물었다.
악의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공격이 사무친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악의가 없다는 게 너무 빤히 읽히니까.
상대방은 저렇게 밝고 친절한데 거기에 굳이 공격적으로 더 헐뜯어 봐야, 누가 더 추해질지는 안 봐도 뻔하다.
‘시X.’
그뿐이었다.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꽉 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더 있겠나.
그가 어찌하려고 하든, 이야기의 주도권은 이미 온연히 이민기에게 건너갔다.
“크크, 고재범 민기한테 시비 털려다가 본전도 못 찾았네.”
굳이 앞장서서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고재범이 발끈해서는 외쳤다.
“야! 내가 무슨 시비야.”
“아이고, 뻔히 다 보이거든요. 민기가 착하니까 봐준 거지.”
“내가 뭘?”
“야, 봐라, 얘 아무것도 모른다. 진짜 학생 때부터 순둥이였다니까.”
순진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척을 하는 건지.
분에 찬 고재범의 얼굴이 바늘로 찌르면 툭 터질 것만큼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나 화장실.”
방해꾼이 뒤로 빠졌다.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쇼핑몰에서 모델 일도 했다면서?”
“원래 할 짬이 아니었는데, 사장님이 좋게 봐주셔서 간신히 했지.”
“대박, 나는 그런 일은 세상에 누가 하나 했는데 내 주변 사람이 하고 있었네.”
주위 모든 동창의 시선이 그에게 넘어갔다.
어떻게든 말 한마디라도 붙여보려 경쟁전이 펼쳐지기를 한참.
‘아.’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려는데, 이민기는 핸드폰을 꺼내서는 확인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급한 일이 떠올랐다는 듯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가게? 이따가 2차 있는데.”
아쉽다는 듯 붙잡는 목소리에 이민기가 말했다.
“조금 있다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일정이 있다고 하신다.
그 짧은 단서에 동창들의 머릿속으로 또다른 환상이 호박넝쿨마냥 줄기줄기 피어났다.
‘연예인들끼리 모여서 놀러 가나?’
‘화보 촬영?’
‘어쩌면 인터뷰일 수도 있어.’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입에 안 댄 거 보면 촬영이 맞는 것 같은데.’
전부 틀렸다.
오늘은 [집 근처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을 하는 날.
이민기가 일어난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일개 운동 때문에 동창회를 거른다니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촬영을 진행하며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이유로 하체 운동을 자주 걸렀는데, 그 탓에 권준용 관장이 잔뜩 엄포를 놓았다.
[민기 씨, 하체가 우스워?]촬영을 마친 뒤 운동량이 대폭 늘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아주 뼈를 분쇄해 버리겠다는 기세라서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또.
‘동창회가 그렇게 즐겁지는 않네.’
이민기가 알게 모르게 거리감을 느껴버린 것도 컸고.
동창회에 오면 뭔가 얻어갈 수 있는 게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추억이 되었든, 즐거움이 되었든.
하지만 막상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남남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눌 추억은 별로 없다.
그의 눈치만 어색하게 살피는 동창들로 가득하지 않나.
괜히 경계하거나, 괜히 아부를 떨거나.
‘역시, 내가 학창 시절을 잘못 보낸 게 맞았구나.’
씁쓸하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설마 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졌던 게 동창들을 직접 마주하자 직감해버렸다.
어떤 벽이 있다는 사실을.
그 벽을 인지하자, 다음부터 즐거움이라고는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뭐든 다 챙길 수는 없는 법이지.’
오히려 후련해졌다.
이민기는 이쯤에서 과거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어? 어. 그래, 잘 가라.”
그걸로 끝이었다.
이민기는 동창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는, 아쉬움이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은 발걸음으로 술집을 빠져나왔다.
한결 시원해진 밤공기를 느끼며.
그가 떠난 뒤.
이민기의 퇴장에 외려 아쉬움이 남은 건 동창들이었다.
‘아, 번호라도 물어볼걸.’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헬스장 내일부터 다닐까?’
* * *
며칠 뒤.
정식으로 [언제까지고 푸르른]이 개봉을 마쳤다.
그날.
이민기는 함께 촬영을 진행했던 동료들과 약속을 하나 잡았다.
[조조로 같이 영화 보러 갈래?]바로, 관중들과 같은 시점에서 영화를 즐겨 보자는 것이었다.
주하나와 제리 등의 안면이 있는 배우들과 함께 말이다.
이른 아침에 조조로 영화를 본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와서는 카페라도 간 다음, 시청자들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함께 확인하는 것.
제작진에 참여했기에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재미였다.
‘조조라서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언제 또 이런 재미를 누릴까.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
마치 일상 속 작은 일탈을 즐기는 듯한 기분에 이민기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 성공했으면 좋겠다.’
기왕 개봉했으니 성공했으면 좋겠다.
영화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더 성공하고 싶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
기왕이면 아주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까지 정복하고 싶다.
‘그래, 그 작품들처럼.’
불과 몇 년 뒤, 한국은 세계 영상 산업 속 폭풍의 핵이 될 예정.
지금 이런 말을 하면 미친 소리를 듣겠지만.
그때까지 잔뜩 떠서, 한자리 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민기가 영화관 안으로 발을 들이민 순간이었다.
“민기 씨 왔다.”
기다리던 동료들이 그를 반겨 주었다.
“제가 좀 늦었나요?”
“아니요. 저희가 빨리 왔죠.”
주하나가 싱글벙글 웃으려니 제리가 성큼 걸어와서는 이민기를 위에서 아래로 스캔을 뜨듯 살폈다.
그러더니 말했다.
“오우오우, 민기 씨 요즘 갈수록 옷을 잘 입으시네.”
“그래요?”
“지난번 시사회 때 느낀 건데, 민기 씨가 옷을 진짜 잘 입는 것 같아. 옷 어디서 사요? 나도 같이 좀 입자.”
“비밀.”
그날 오후.
본격적으로 관중들의 평가가 영화 사이트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 [asdjak: 평론가들의 마음을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