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47)
운빨로 탑스타-47화(47/200)
제47화
국내 스릴러 영화의 대가, 염광호 감독의 신작 [언제까지고 푸르른]이 개봉했다.
“나라에서 안 죽여서, 내가 죽였습니다.”
경찰 황인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제 손으로 범죄자들을 처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법의 저울은 공평한 법.
이 세상에 사적 제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대한민국 전대미문의 범죄자 대상 연쇄 살인 사건, 그 실마리가 밝혀지기 시작하는데.
과연 살인마 황인범은 마지막까지 경찰로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흔치 않게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피카레스크 영화.
평론가들의 평을 보자면 무난한 염광호 표 무난한 웰메이드 스릴러라는 게 주류였다.
[염광호는 무난하다] [상업 영화의 탈을 쓰고 예술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 [무난하다. 하지만 그 무난함이 장점으로 작용할 것.]시사회에 참석했던 언론의 평은 이러했다.
원래 시사회에서는 어지간하면 좋은 말을 발라 주는 게 예의이니, 극찬이 아니고서야 큰 홍보 효과는 없었다.
그나마 고려할 점이라면 명품 배우 [강도원]과 [최유창]이 2인 주인공 체재로 등장했다는 점 정도일까.
그리고.
[이민기인가 걔가 잘생겼다더라] [티저 보는데 좀 비주얼이 튀기는 했음]신인 배우의 비주얼이 심상치 않다는 정도였다.
그뿐이었다.
흥행에 있어서도 크게 성공하리라고 점치는 사람도 드물었다.
마침 같은 시기에 블록버스터 영화와 개봉 시기가 겹쳤을뿐더러, 기본적으로 청불 영화는 관객 수에서 리스크를 짊어진다.
여기에 피카레스크라는 장르 특성상 잘해야 손익분기점을 적당히 넘기는 정도를 예상했다.
[언제까지고 푸르른 제작비 약 ‘60억’ 손익분기점 130만 관객 예상]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35억인데, 두 배우의 몸값 문제로 총제작비까지 대폭 뛰었다.
추후 2차 시장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100만 관객을 넘겨줘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재밌는데?]그 평가가 뒤집히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좀 재밌다] [무난하다길래 큰 기대 안 하고 보러 갔는데, 이런 무난함이면 좋지] [식상한 클리셰로 점철된 스릴러물. 하지만 클리셰가 클리셰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잘 팔리니까.]작품의 평가 자체가 좋았다.
평론가들의 평은 특별할 게 없었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정답은 다음과 같다.
평론가들이란 자들은 원래 무난한 영화에는 평을 짜게 뿌리는 팔도 제일의 소금쟁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염광호 영화는 믿고 봐도 된다고 ㅋㅋㅋㅋㅋ] [어설프게 신파 팔이 안 하고 끝까지 일직선으로 달리는 게 좋았음]작품 자체의 평이 좋다.
피카레스크라는 장르 특성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기에 관객들의 호불호가 적었다.
여기에 두 명품 배우의 연기력은 따로 말할 것도 없었고.
이 세 가지 평가 뒤에 한 걸음 떨어져서 차분히 따라오는 평이 있었다.
[이민기였나? 구학진 형사 역 맡은 배우 연기 잘하더라]이민기 이야기였다.
[ㄹㅇ] [비주얼만 보고 얼굴로 꽂아 넣었나 했는데 의외로 연기파였음] [분량 좀 많더라. 주연인 줄.] [대사도 대산데 액션 씬이 되게 리얼함.] [맞음. 몸놀림이 의외로 좋더라]연기 자체의 완성도가 높았다.
신인이라는 점과 비주얼이 튄다는 점 때문에 연기력에는 큰 기대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반전 효과가 드러났다.
[잘 크면 나중에 큰 배우로 성장할 듯] [ㄹㅇ 나오는 장면마다 신스틸러.]더욱이 그의 주가가 한층 더 크게 널뛰는 장면이 있었다.
[중간에 고문 씬 봤냐?]후반부, 구학진 형사가 황인범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끝내 살해당하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흔적을 남겨 황인범이 체포당하는 계기를 만듦과 동시에, 그 또한 결국 일개 살인마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드러내는 하이라이트.
이 장면이 연기력은 둘째치고.
[몸 되게 좋더라] [진짜 복근 좀 조각 같았음]몸매가 좋았다.
그간 배우답지 않게 연기만큼이나 운동에 시간을 할애해 왔던 보람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민기의 몸은 아직 진짜배기 헬스인이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데피(근선명도)는 좋지만 볼륨(골격근량)이 한참 모자란다는 것.
하지만 그 정도는 연출과 분장으로 충분히 케어하고도 남는 부분이었다.
[육체파 배우 ㅇㅈ이다] [원래 모델 일했다던데, 그러면서 몸 만들었다는 듯] [그러고 보니까 캠퍼스 스토리 때도 스웨터 입고 나온 씬이 어깨 깡패였음] [코트빨인 줄 알았는데 피지컬빨이었던 거임 ㅋㅋㅋㅋ]예나 지금이나 비주얼이 튀는 배우는 여자 관객들을 중심으로 열렬한 환호를 받기 마련.
이민기의 몸매는 어느새 한 번쯤 봐둬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 * *
영화 성적을 두고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흥행은 첫 일주일에 당락이 갈린다.]개봉 첫 일주일이 관건이라는 것.
오죽하면 그 기간 관객 수가 전체 관객 수의 50%를 웃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롱런하는 작품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공식은 상식이었다.
그런데.
[언제까지고 푸르른]은 드물게 후자였다.‘오래 버티네?’
롱런을 했다.
‘왜지?’
그는 원래 영화 성적을 정리하고 외워두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언제까지고 푸르른]의 성적도 윤곽이나마 암기하고 있었는데, 그 양상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흘러갔다.
[염광호 신작 ‘언제까지고 푸르른’ 첫 주 관객 수 80만 돌파]첫 주에는 이민기의 기억과 거의 동일하게 흘러갔다.
대충 90만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으니 대충 오차범위 이내인 셈.
여기에서 이민기는 이미 안심했다.
‘적어도 내가 출연해서 스코어가 떨어지지는 않았구나.’
내심 긴장하는 참이었다.
혹시라도 원본과는 달리, 그가 개입함으로써 성적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성적에 흔들리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될까.
내심 혹시나 하는 걱정이 남아 있었는데.
“살았다아아…….”
한숨과 함께 긴장을 털어낼 수 있었다.
첫 주 성적을 두고 김아성 트레이너가 즐겁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네.”
“그러게요.”
놀랍게도 김탁마저도 동의했다.
“엄청 대박작은 아니라도 흥행작 수준은 되니까. 흠, 신인 작품치고는 썩 나쁘지 않은데?”
“탁 씨, 아직 데뷔도 안 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재수 없어요.”
“에엑.”
“선아 씨가 맞는 말 했네.”
“쌤까지…….”
이내 쭈구리가 됐고.
이 시점에서 이민기는 이미 작품 성적에 여한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주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2회차 달리러 간다] [재밌다더라] [신인 배우가 연기 꽤 잘함]입소문의 힘을 탄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개봉관 수가 줄지 않았던 걸까.
[언제까지고 푸르른(#3)]개봉 후 첫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순위가 아예 추락하지는 않고 어느 위치에 박혀 버린 것.
롱런의 시작이었다.
‘원래 흥행 추이가 이랬었나?’
이민기의 머릿속이 영 어질어질했다.
성적을 대충 기억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억이니만큼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
하지만.
“민기 씨, 오늘도 순위가 안 떨어졌더라.”
계속.
“오, 어제랑 똑같다.”
계속.
[주하나 배우님: 배우님! 순위 보셨죠!]계속.
“우리 이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흠, 끗발이 좋군요. 이만하면 성공작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또 계속.
[박한모 매니저님: 제가 말했지요? 배우님한테는 이런 연기가 더 어울린다고.]계속해서 일정 순위에서 더는 떨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마치 해안선이 달의 인력에 따라 차고 빠져나가듯, 자기 자리를 공고히 굳혔다.
이쯤 되면 기억이고 자시고 더는 의심할 수가 없었다.
명실상부하게 롱런의 시작이었다.
‘뭐지?’
그렇게 성적의 95% 이상 당락이 정해진다는 개봉 3주 차가 되었을 때.
이민기는 눈앞의 현실에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출연이, 현상 유지에 지나지 않고 한층 더 나을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20만이나 더 붙었잖아.’
그가 기억하는 성적 180만.
정확히는 186만.
거기에서 유의미하게 늘어난 수치였다.
이민기가 맡은 [구학진 형사]의 비중이 30%가량 늘었고, 홍보에서도 한층 더 얼굴을 드러냈다.
그 변화가 더 좋은 성적으로 반영된 것이었다.
손익분기점의 2배 달성이라는 형태로.
“…….”
어느 순간부터, 이민기는 가슴 속에서 어느 뜨거운 불길을 느꼈다.
마치 거센 함성과 함께 한껏 토해내고 싶은 불길을.
처음에는 이 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어색하게도 느껴졌다.
너무 오랫동안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민기는 마침내 성취감이라는 걸 또렷하게 느끼는 데 다다랐다.
“해냈다!”
좁은 원룸에서 홀로 외쳐보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쥐어 짜내듯,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거머쥐듯 한껏 외쳤다.
밤에 외치면 민폐니까 낮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이민기는 원룸에서 기지개를 켜며 달콤한 성공을 자유롭게 만끽했다.
몇 초고, 몇 분이고, 몇십 분이고 자유롭게.
‘기념으로 오늘은 하체 조져야겠다.’
……다소 왜곡된 방향으로.
* * *
인천의 어느 제약회사, 한경제약.
그곳의 경영진들은 최근 내놓은 어느 상품의 실적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유청 단백질의 분량을 더 높이는 게 어떨까요?”
“소비자들은 의외로 성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 디자인이나 상표를?”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바로.
“저희 보충제의 상품성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단백질 보충제였다.
한경제약은 최근 부쩍 성장하는 헬스업계에 손을 뻗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연구해 고품질 단백질 보충제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품질에는 자신 있었다.
‘다른 제약회사들은 물건 떼다가 이름만 가져다가 파는 거지만, 우리 한경제약은 직접 제조했는데.’
말 그대로 상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품질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
잘 만들면 소비자들이 알아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저히 먹히질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손을 본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성과가 안 나오다니.’
회사 차원에서도 굉장한 투자를 감수했는데 매출이 안 나오니 펄쩍 뛸 지경.
이유가 뭘까.
사실, 그 이유는 심히 간단했다.
‘설마, 마케팅 문제는 아니겠지?’
정확하다.
그 마케팅 문제가 맞았다.
상품성이 좋으면 잘 팔리리라는 건 제약회사의 착각에 가까웠다.
단백질 보충제라는 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상품성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한 상품.
괜히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조잡한 바이럴 마케팅까지 동원하며 구석구석까지 홍보를 뿌리는 게 아니었다.
[너네들 좋은 보충제 찾느라 고생이지?https://www….. <- 여기로 가면 진짜 잘 만든 보충제 있다. 미국 회사 벤토스제약에서 제조했고 에티오피아산 유청 단백질이라 성분도 믿을 만하다. 대신 그냥 사면 좀 비싼데 추천인 코드 입력하면 30% 싸게 살 수 있다. 내가 너희들한테만 특별히 뿌린다. 감사 인사는 할 필요 없고 정 고마우면 주변 사람들한테도 살짝 알려주라. 그럼 득근해라.]
그야말로 마케팅이 90%라고 봐도 좋다.
괜히 보디빌더들이 전광판마냥 보충제 홍보를 달고 있겠는가.
이런 마케팅 중심 생태계가 상품성을 중시한 한경제약에게는 낯설었던 것.
“광고를 늘려 볼까요?”
“안 그래도 지난 분기에 모델 하나 불러서 광고 하나 찍었는데.”
“걔 우리 제품 안 먹잖아요.”
“그럼 전번에 머슬 코리아 우승한 범기 선수라도…….”
“타사랑 3년간 독점 계약 맺었대요.”
“쉽지 않네요. 쉽지 않아요. 후발주자라서 그런가,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게 생산성 없는 회의가 이어지기를 한참이었다.
자칫하면 사업 철수로 방향이 굳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
“포기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한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 있다는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게 묘수가 하나 있습니다.”
한없이 당당한 목소리.
그 모습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소모전만 벌이던 이사들이 날카롭게 눈빛을 빛냈다.
꼴값 떤다.
어디 또 어떤 잘난 체를 하나 보자.
또 한 놈이 뻗대는군.
별거 없으면 죽는다 등등의 암묵적인 메시지가 담긴 눈빛.
“말해 봐.”
그 끝에 이사 한 명이 신호를 울렸다.
일어선 과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이미 물러서기는 이른 판이니 죽기 살기로 외쳤다.
“여쭙는 건데, 혹시 최근에 개봉한 영화 한 편 보셨습니까?”
“영화라면?”
사장이 단어 하나에 흥미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정말로 죽는다.
과장은 압박감에 폐가 조여오는 걸 느끼면서도, 억지로 맑고 자신 있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까지고 푸르른이라는 작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