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5)
운빨로 탑스타-5화(5/200)
제5화
“그 학생이라면 여기에서 제일 뒤떨어지는 편입니다만……?”
원장의 입에서 어리둥절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민기의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말.
그것도 그냥 뒤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 학원에서 제일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조합에 김아성 트레이너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 학생이 뒤떨어지는 정도라면, 그만큼 잼 액팅스쿨의 수준이 굉장하다는 거겠네요.”
실수가 있는 게 아닌가 정정을 요청한 순간이었다.
“그, 제가 저희 수강생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게 조심스럽습니다만, 말 그대로 뒤떨어지는 편입니다.”
원장이 걷어찼다.
시원스럽게.
‘흠.’
그 말을 들은 김아성 트레이너는 마침내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 눈깔을 장신구로 끼고 다니나?’
그가 본 이민기는 절대 뒤떨어지는 실력이 아니다 못해, 어지간한 학원의 평균을 한참 윗 돌고 있었다.
아니, 당장 프로 무대에 세우더라도 욕까지는 안 먹을 것도 같다.
그런 그가 뒤떨어진다면, 이 학원 수준이 그렇게 높다는 건가.
‘그럴 리가.’
오전에 들러서 이 학원의 전체적인 상황을 둘러보았다.
결과는 이러했다.
별로였다.
대체 어떤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조악하기 짝이 없는 수준.
선생들은 의욕이 없는 듯했고, 학생들은 반쯤 놀러 오는 사람이 다수로 보였다.
심지어 그가 당분간 맡기로 한 특강 수업의 수강생들조차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이쪽에서 나를 초빙한 건 보나마나 JC 쪽 연줄에 한발 걸쳐 보려는 속셈이겠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김아성 트레이너는 잼 액팅스쿨 외에도 이런 제안을 많이 받아 보았다.
그럴 때마다 부수입 겸 미래의 새싹 발굴을 겸해서 종종 들렀지만, 대부분은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원장의 말이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원장의 연기 보는 눈이 이따위라서 학원 학생들 실력도 이런 건가? 이 업계도 갈수록 썩어 빠져가는군.’
하지만 굳이 지적할 이유는 없다.
김아성 트레이너는 속내를 숨기며 웃는 얼굴로 답했다.
“에이, 설마요. 그 학생 오전에 잠깐 봤는데, 꽤 잘하던데요? 저희 JC에서 슬쩍 납치하고 싶을 정도로.”
“이민기 학생이 말입니까?”
“그럼요. 하하, 침 발라둘까 했습니다. 기본기가 워낙 탄탄해서. 어차피 곧 어딘가에서 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다온에 가고 싶다고 하던데, 다온도 좋겠네요.”
그 말을 들은 원장의 생각은 이러했다.
‘이 사람, 제정신인가?’
그가 생각하는 이민기라는 학생은 특출난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평균에도 한참 못 미쳤다.
어릴 때부터 일찍이 연기를 접한 학생들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늦깎이 중에서도 재능이 뒤처지는 편.
분명 괜찮게 하는 것 같다가도, 태생이 덤벙거리는 성격인지 실수가 잦았다.
‘오디션도 11번 연속으로 낙방했고.’
그런 주제에 꿈은 높아서 다온에 또 넣었다고 했지.
요컨대, 그가 이민기를 저평가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존재했다.
그런 이민기를 고평가하다니.
‘그 천하의 JC조차도 한물이 간 건가. 이렇게 안목 없는 사람을 전담 트레이너로 앉히다니.’
이런 결론밖에 안 나왔다.
그라고 해서 김아성 트레이너를 특별히 고평가해서 이곳에 데려다 둔 게 아니다.
단지 그가 JC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두고 있기에, 연줄을 데 두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지경이라니.
‘내가 돈 낭비를 하는 건가?’
김아성 트레이너와 원장, 서로를 나름대로 인정하던 둘이 한순간에 서로를 재평가했다.
‘안목 없는 장사꾼.’
‘회사에 망조를 들게 할 사람.’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기를 잠시.
마침내 입을 연 건 김아성 트레이너였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그가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원래 학생들로 이런 건 안 하는 편이지만, 내기를 한번 해 보는 게.”
“내기라면?”
“이민기 학생이 다온에 붙을지 안 붙을지로 말입니다.”
그 순간 김아성 트레이너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전 제 안목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 학생이 다온에 합격하거든, 이 학원의 장학금이라도 지원해 주는 게 어떨까요?”
“……흐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어지간한 규모 있는 연기 학원에는 장학금 제도가 있다.
특히, 잼 액팅스쿨에는 내부에서 선발된 우수 학생에게 수업료를 전액 돌려주는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내기라는 건 한쪽만 대가를 짊어지지 않는 법.
“그렇다면 혹여 그 학생이 떨어진다면?”
원장이 살짝 떠본 순간이었다.
“잼 액팅스쿨을 대상으로 JC가 비공식 오디션을 열도록 제가 한번 밀어 보겠습니다.”
대어가 물렸다.
원장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 * *
짧다면 짧을 강의가 끝날 무렵.
“민기 씨, 누구한테 개인레슨을 받고 계신 거 맞죠?”
김탁이 집요하게 이민기를 따라왔다.
평소 그를 무시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끈질기게.
“아니에요.”
“에이, 그렇게 갑자기 실력이 늘었는데, 어디 족집개 강사라도 찾아낸 거 아니에요? 아니면 현역 프로 배우가 일대일로 봐주고 있다거나.”
“그럴 돈 없어요. 지금도 조금만 쉬었다가 바로 알바 가야 되는데.”
“하하, 제가 그렇게 쉽게 속을 것 같나요.”
속인 적도 없는데 지 혼자 속고 자빠졌다.
“우리 사이잖아요. 한번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무시하고 무시당하던 사이?
그런 사이라면 차라리 소와 닭 사이가 나을 것도 같다.
이민기는 영 귀찮게 따라붙는 김탁을 떨쳐내듯 말했다.
“똑같은 말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런 거 안 받고 있다니까요. 진짜예요. 그냥 시키는 대로 연습 열심히 한 거지.”
어쩔 수 없이 이게 사실이었다.
이민기는 데뷔 시절부터 프로까지 늘상 헝그리 정신으로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학원 연습실이 안 여는 휴일에 남들처럼 연습실 대관하는 건 꿈도 못 꿨다. 그냥 강변이나 공터 가서 혼자 연습했지.
그러니만큼 호화로운 레슨 따위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사람, 왜 이래.’
그런데 연기 하나 했기로서니, 그마저도 말을 더듬을 정도로 실패한 연기였는데 들러붙다니.
대체 사람이 얼마나 비굴한 건가.
“하하, 사실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안 떨어질 겁니다.”
“…….”
이 사람, 끈질기다.
많이 끈질기다.
결국, 이민기는 도저히 답이 없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제가 원래 프로 배우였거든요.”
“역시.”
김탁의 눈빛이 번쩍였다.
이민기는 그걸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눈동자에 담으며 말했다.
“그렇게 몇 년 활동했는데 잘 안 풀렸어요. 그러다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죽었는데, 저세상에 간 거죠. 거기에서 환생시켜줬어요.”
“아, 그 프로 경험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오셨다?”
“이제 좀 말이 통하네요.”
“하하.”
김탁이 웃더니 말했다.
“지금 제가 바보로 보이십니까?”
“…….”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이민기가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억누르는 순간이었다.
“민기 씨는 원래 열심히 연습했어요.”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이 또 끼어들었다.
청아하면서도 귀에 한 번에 들어오는 목소리. 귀여운 외모.
데뷔 준비 과정의 아이돌.
유선아였다.
그녀가 이민기를 대변하듯 말했다.
“그게 드디어 빛을 본 거죠. 원래 연기 실력이라는 게 계단형이라고 하잖아요. 안 되다가도 한 번 늘 때 확 늘고 그런다는데, 민기 씨가 이번에 그랬던 거예요.”
그 말을 바라보는 이민기의 생각은 이러했다.
‘이 사람은 왜 자기가 더 뿌듯해하지.’
평소에 말 한번 제대로 안 섞어 봤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녀가 언제 친했냐는 듯, 옆으로 따라와서는 아는 척하고 있다.
주위에서 놀라움의 시선이 은근히 느껴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다. 우리 이제 막 말 튼 사이다.
‘제발 저리 좀 가 줬으면.’
이민기가 어떤 생각을 하든 유선아는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김택 씨는.”
“김택이 아니라 김탁이요.”
“네, 김탁 씨는 모르시죠? 민기 씨가 매일 아침마다 학원에 제일 빨리 오는 거. 다 연습하려고.”
“진짜요?”
김탁이 놀란 표정을 짓는데 유선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도 가끔 일찍 와서 연습할 때 보는데, 한 번도 민기 씨보다 먼저 와 봤던 적이 없어요.”
“오……그런 비밀이. 역시 연습을 많이 해야 느나 봐요?”
“당연하죠.”
어느덧 나를 놔두고 두 사람이 내 연기 방법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떠들기 시작했다.
정신 사납다.
이 학원에서는 늘 혼자 다녔는데, 갑자기 이 두 사람이 이런다.
‘운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하나도 모르겠네.’
김탁이 필요 이상으로 들러붙는다.
“민기 씨, 내일부터 아침에 같이 연습하죠. 같은 시간에 와서 연습하는 거 어때요?”
“맘대로 하세요.”
“좋습니다. 내일은 제가 더 빨리 올 겁니다. 기대하세요.”
유선아도 들러붙는다.
“시간 되면 저도 갈게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민기는 두 사람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주위로 보이는 학원 학생들의 시선을 정수리로 흘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알바 갈 시간이다.
“그럼 내일 봐요. 저 갑니다.”
“잠시만요. 그냥 가지 말고 같은 스터디하는 사람들끼리 식사라도 해요.”
“알바 급해서요.”
이민기는 달아나듯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조금 전에 뭐라고 했더라. 스 뭐시기라고 했던 것 같은데.
* * *
그날 저녁, 학원에 이어 아르바이트까지 마친 이민기는 온몸이 피로에 찌들어 눅진눅진했다.
침대 이불에 쑤욱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그 감각.
하지만 썩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오늘 하루, 충실했지.’
열심히 살았다.
그 이상으로, 보람찼다.
연기 학원에서는 한창 집중해서 연기했으며,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입발린 그런 칭찬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칭찬 말이다.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하물며 아르바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이상하게 진상이 안 왔어.’
그가 일하는 곳은 합정 인근의 편의점.
밤만 되면 진상들이 흘러넘쳐서 피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유독 뜸했다.
오히려 착한 손님들이 왔다.
‘담배 이름도 외워 오고, 자기 밥 먹은 자리 뒷정리도 잘하고.’
일도 잘됐다.
‘스티커가 한 번에 때졌지. 바코드도 한 번에 잘 긁혔고. 게다가 USB까지 한 번에 꽂혔어.’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음료수 한 병 더에 당첨됐다!’
음료수를 깠을 때 뚜껑에 [한 병 더!]가 적혀 있었다.
한 병을 샀는데 한 병이 더 따라온다니!
얼핏 소소할 수도 있지만, 이민기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는 한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거대한 사건이었다.
운이 좋다.
분명히 운이 좋아졌다.
금전운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에서는 운이 꽤 좋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운 좋게 옆집 사람이 밤에 청소기를 안 돌리는 것도 한몫했다.
‘행복하다.’
놀랍게도, 이민기는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물 마시다가 사레 안 들리면 행복한 남자.
그것이 이민기였다.
‘내일도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김탁이 들러붙는 것만 빼고.’
이민기는 그런 희망을 품으며 싱글벙글 웃기를 잠시.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학원에 도착했을 무렵.
“오, 민기 씨 오셨네.”
“오셨어요?”
“…….”
연습실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생각을 조금 정정해야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이 많네?”
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