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51)
운빨로 탑스타-51화(51/200)
제51화
카페 델 디아.
카페를 배경으로 하는 청춘 드라마.
그 드라마의 공개 오디션에 참여하기로 결정되기를 며칠 뒤.
이민기는 본격적인 오디션 준비를 위해 어느 특별한 장소를 찾아갔다.
바로.
“김희경의 커피 창업 클래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커피 수업이었다.
‘우선은 공부다.’
이번 오디션의 심사 내용은 둘로 나뉘어 있다.
지정 연기와 자유 연기가 각각 하나.
전자는 제작진이 앞서 제공한 대본을 보고 소화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캐릭터에 맞춰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민기는 생각했다.
‘커피 드라마니까 커피를 공부해서 가자.’
기왕 하는 일, 본격적으로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지정 연기는 예선이야. 어차피 다 잘하겠지. 자유 연기에서 실력을 보여야 해.’
김지환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
비록 예전 다온 오디션에서 봤던 그의 연기는 특별한 게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달라졌다.
최근에 그가 출연한 작품을 봤는데, 이민기는 거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실력이 확 늘었지.’
본격적으로 유망주다운 연기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
아마 엄청난 재능을 갖추고 있거나, 뒤에서 뼈가 깎이는 노력을 하고 있으리라.
더욱이 그가 봤던 [카페 델 디아] 원작에서 김지환은 명백히 주연이었다.
주연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감독이 생각한 캐릭터와 김지환의 캐릭터가 겹쳤을 것.
열심히 준비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케미를 뚫고 들어가려면, 가장 열심히 준비한 사람보다도 두 걸음은 더 깊은 준비가 필요했다.
해서, 이민기가 준비한 게 이 수업이었다.
“먼저 모카 포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요. 유럽인들은 이 모카 포트라는 주전자를 이용해서 간편하게 커피를 추출해 낼 때가 많은데.”
커피 창업 클래스.
아예 커피 수업을 듣고, 그렇게 쌓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자유 연기를 준비해 가자는 것이었다.
[제작진이 번거롭게 굳이 자유 연기를 제시하는 이유는 하나야.]김아성 트레이너가 건넸던 조언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참가자가 작품 그리고 캐릭터를 얼마나 이해하고 왔는지 보자는 거지. 연기력? 그딴 건 지정 연기만 봐도 충분해. 자유 연기는 캐릭터가 전부라고. 명심해.]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
이민기가 지원한 역, 주인공 [성진우]의 캐릭터 설명은 이러했다.
커피에 집착할 수 있다면, 커피에 집착하는 연기도 할 수 있겠지.
이민기의 생각은 그러했다.
여기에 하나 더.
‘카페 델 디아 오디션, 분명 현장에 커피랑 관련된 도구를 쭉 깔아놨다고 했지. 자유 연기에 필요한 게 있으면 쓰라면서.’
미래를 경험했기에 전해 들은 정보의 힘도 있었고.
다른 참가자들은 모를 내용이다.
이민기가 정보력에서 월등히 앞선다고 해도 좋았다.
비겁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모른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건 미련한 판단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길게 보면 불성실한 행동이기도 하였다.
‘어차피 드라마 찍다 보면 커피 공부가 필요할 텐데, 미리 하는 셈 치지.’
지금부터는 공부다.
제대로 공부한다.
이민기는 그런 생각으로 쉬지 않고 종이 위에 펜을 놀렸다.
* * *
김희경.
2014년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당당히 은상을 차지하며 유명해진 바리스타.
매스컴에서도 바리스타라는 직군을 대표해서 불려갈 때가 잦은 그녀는, 또 다른 직함 하나로 유명했다.
‘한국 최고의 커피 교육 전문가.’
바로 커피 강사였다.
그녀는 단순히 열심히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커피를 가르친다는 데 일종의 사명감마저 품고 있었다.
[한국에 바리스타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전 국민이 매일 아침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카 포트로 커피를 한 잔 뽑아주는 거죠.]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에 바리스타 문화를 널리 육성하고 싶다.
그런 원대한 꿈을 가진 그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어머, 선생님 너무 잘 가르치신다.] [나 힘든데 여기까지만 하면 안 될까?] [오늘은 쉴게요.] [이거 돈 되나?]그렇다.
바리스타 수업이라는 것 자체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잦았다.
일종의 문화 체험으로 여긴다고나 할까.
까놓고 말해 불성실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연예인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대충 동작만 가르쳐 줘요.] [방송에 뭐라고 하면 전문가로 보일까요?]겉핥기로 접근하는 사람이 태반.
싸구려 자격증을 따고 이력서에 한 줄 적듯, 그녀에게 바리스타 수업을 받았다는 타이틀을 얻어가 방송 중 이야기 한 줌으로 쓰려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이게 바로, 김희경이 이민기를 좋은 시선을 보지 못하는 이유였다.
‘오디션 준비용으로 왔다고 했나?’
뻔하지.
하는 척만 하겠지.
그러다가 좀 피곤해지면 바쁘다는 이유로 도망갈 게 뻔하다.
어디 가서 폼 잡을 정도로 배웠다는 데 만족하면서 말이다.
‘인터뷰 같은 데서 써먹겠네. 드라마 잘 찍으려고 커피 창업 수업까지 들었다면서.’
이 정도의 생각이었다.
여태껏 반복되어왔던 레퍼토리가 늘 그랬으니까.
그런데.
“민기 씨, 지난번 수업에서 말씀드렸던 내용을 저한테 설명해 보시겠어요? 우선 로부스타, 아라비카. 그리고 세계 3대 원두부터 차례대로 말씀해 보세요.”
이상했다.
“로부스타는 쓴맛이 강하지만, 반대로 어디서나 잘 자라서 널리 보급하기 좋아요. 아라비카는 기르기 어렵지만, 맛이 대체로 더 좋죠. 그렇다고 로부스타가 무조건 저급이라는 건 아니고요.”
이민기의 입에서 이전 수업에 가르쳤던 내용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것도 조금 과할 정도로 정확하게.
“3대 원두는 하와이안 코나, 게이샤, 블루마운틴이죠. 하지만 무조건 비싸다고 고급은 아니고, 독점한 업체의 마케팅이 강해요.”
“산지도 말해 보겠어요?
“생산량 순으로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온두라스, 에티오피아까지 3세계가 많아요.”
“……에티오피아 커피가 맛있는 이유는 뭘까요?”
“고산지대가 많아서요. 커피 생두의 밀도는 재배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도에 따라 일교차가 심해져서 그래요. 일교차가 심하면 생두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밀도가 높아지고, 고밀도일수록 추출했을 때 맛이 진해지죠. 그중에서도 해발 1400m 이상에서 기른 건 SHB라고 부르고요.”
“…….”
너무 정확하다.
흠집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성명.
마치 사전의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 넣은 듯한 설명이 이민기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길 한참.
김희경의 머리 한쪽이 점차 아찔해졌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첫 수업에서 원두 산지 이야기를 하면서 복습해 오라고 하긴 했지.
하지만 설마 저렇게까지 달달 외워오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 그마저도 공부해 올 거라고 기대한 적도 없었는데.
“다 외워오셨네요? 잘하셨어요. 공부 많이 하셨나 봐요.”
당황스럽기까지 한 기분에 김희경이 물으려니, 이민기는 칭찬이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공부하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재밌다고 그만큼 해 오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선생님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더 공부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이민기가 산뜻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김희경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봄비에 젖어 들었다.
‘진짜, 웃는 얼굴 대박이다.’
연예인들을 워낙 많이 겪으려니 슬슬 외모에 감흥이 없는데, 이민기에게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사르르 녹아내린다고 해야 할까.
슬쩍 납치해 가서 집에 기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정신 차려라. 한참 연하야.’
내가 수능 준비할 때 이 사람은 초등학생이었다고.
김희경은 가까스로 정신줄을 동여 잡으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잘하셨고요. 이론은 더 확인 안 해도 되겠네요. 오늘은 드립 커피부터 배워 보죠. 실전까지 다 마쳐야 수업도 끝날 거예요.”
“네!”
이민기의 힘찬 대답에 김희경은 웃고 싶은 얼굴을 죽도록 애써 가라앉혔다.
그렇게 잠시 뒤.
“시범은 보여 드렸으니, 이제 민기 씨가 직접 해 보세요. 겉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실수가 있을 수 있는데, 초보자는 다 그러니까 긴장하지 마시고, 팔에 힘 빼시고요.”
김희경의 지시에 따라 이민기가 드립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서 김희경은 오늘로 벌써 일곱 번째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왜 이렇게 잘하지?’
이민기의 드립 커피 만드는 실력이 기가 막혔다.
아니, 자세하게 동작만 보면 엉성하다.
하지만 결과물이 좋았다.
드르르륵.
그라인더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좋은 향이 풍겼으며.
쪼로로록.
여과지 위로 놓인 원두는 물에 닿자 이상할 정도로 균일하게 젖었다.
‘초보자들은 여기에서 잔 실수 되게 많이 하는데?’
저 물을 붓는 기술이 관건이었다.
절대 쉽지가 않다.
초보자의 태반은 손이 떨려서, 물을 내리는 각도를 틀려서 원두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민기의 드립 커피는.
‘완벽해.’
초보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답은 바로, 예습이었다.
‘역시 예습이 최고다.’
이민기의 사전에 현장학습이라는 건 없었다.
뭐든 혼자서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 보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에게 기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노력 뒤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옛날부터 몸에 박힌 습관이자 이민기라는 사람의 근본이었다.
그의 지난 삶에서 운이라는 건 너무나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여, 그는 노력의 가치를 신봉했다.
그의 삶에 운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만큼 노력으로 메꿀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번 드립 커피도 그렇다.
오늘, 수업을 듣기 전까지 수십, 수백 번을 미리 연습해 보았다.
어젯밤에도 팔이 떨려 이 이상 커피를 못 뽑게 될 때까지 연습했다.
그렇다면 왜 수업을 듣는가.
이것 또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실수한 부분을 선생님이 지적해 주시겠지.’
수업을 학습이 아닌 검증의 도구로 쓰는 것이었다.
물론, 재밌는 것도 있었고.
‘옛날에는 바리스타 수업 들으러 갈 때마다 화상 입어서 포기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튈 때가 많았다.
라떼 아트 같은 건 모양이 계속 일그러져서 실패했고.
분명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데, 자꾸 실패가 반복되니 타고난 손재주가 구린 건가 의심했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이런 것도 운이 필요한 건가.’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그럴 일이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후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즐겁다! 후후후후후후.’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못 하던 걸 할 줄 알게 된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었다.
실패만 반복했다가, 이제 성공의 즐거움을 깨달아 버렸다.
멈출 수가 있겠는가.
이민기의 진심은 곧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되게 잘하네.’
빠른 발전이었다.
여기서 뭘 더 가르치면 될까.
김희경은 이민기의 동작에 감탄하며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전체적으로 다 좋은데, 하나만 고쳤으면 좋겠네요. 자세요.”
“틀렸나요?”
“지금도 딱히 틀린 건 아닌데, 더 좋은 방법이 있거든요.”
학생이 알아서 다 해 왔으니 뭐라고 할 게 있나.
기본은 됐고, 그 이상을 가르쳐 줘야지.
김희경은 이민기의 옆에 놓인 주전자를 손에 쥐고 말했다.
“잘 보세요. 어깨에 힘 빼고, 엉덩이는 집어넣고, 고개는 살짝 기울이고.”
김희경이 손에 쥔 주전자에서 물이 그림 같은 궤적을 그리며 드리퍼로 떨어졌다.
쪼로록.
소리마저도 아름다운 동작을 선보인 김희경이 물었다.
“어때요, 훨씬 그럴듯하죠?”
“되게 멋있네요.”
이민기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자세를 이렇게 하면 커피 맛이 더 좋아지나요?”
“후훗, 에이, 그럴 리가요.”
김희경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맛이랑은 하나도 상관없어요.”
“네? 그럼 왜 이 자세로.”
의문과 존경이 한데 섞인 목소리에 김희경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멋있잖아요.”
“…….”
“방송 나가서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연습 많이 했죠. 요즘은 그런 시대잖아요? 쉐프들도 방송 나와서 소금 막 이렇게 뿌리고 그러는데, 바리스타도 필요하면 해야죠.”
정말로 멋있으려고 하는 동작이었구나.
황당해하는 이민기의 앞에서, 김희경이 말을 이었다.
“민기 씨가 드라마에 멋지게 등장하면, 바리스타 도전하려는 사람도 많이 늘겠죠? 그러니까 열심히 배우세요. 저도 덕 좀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