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53)
운빨로 탑스타-53화(53/200)
제53화
이민기의 여기가 끝났다.
일반적인 배역 오디션이라기에는 과하게 독특하지만, 확실한 여운을 남기면서.
‘이민기라고 했지?’
‘일단 이름은 기억해 둬야겠다.’
‘연기는 잘 모르겠지만, 저 디테일을 우리 작품에서도 살려 준다면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세상일을 두고 보거든 때로는 잘하고 못하고를 넘어, 다르게 한다는 게 무기가 되는 법.
이민기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조차도 내심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품을 정도로.
한편, 이 상황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 존재했다.
‘이민기, 이민기. 이렇게 나오신다는 거지?’
김지환이었다.
그에게 이민기의 독특함이란 긴장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면모가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한참이나 남모르게 이를 갈던 김지환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확실히 잘해.’
‘다온이 신인 배우 육성 하나는 걸출하다니까.’
‘지난 작품도 좋았지?’
심사위원들에게 이구동성으로 고평가를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제3의 물결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본토 커피 시장은 이미 가성비를 넘어 프리미엄 시장으로 무르익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민기와 정반대의 결과물을 추구했다.
무난하게 좋은 연기.
캐릭터에 충실한 연기.
배역 오디션의 정석에 가까운 연기.
김지환이 준비해 온 [성진우] 연기란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난히 좋았으며, 또 한편 무난히 아쉬웠다.
‘어딘가 심심하네.’
‘이민기에 비하면 조금.’
‘흠, 차라리 다른 역을 맡았더라면 나았을 것도 같은데.’
심사위원들은 갈증을 느꼈다.
앞서 다른 모습을 보았기에, 그 다른 모습이 결핍된 연기에서 2%가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던 것.
심사위원들이 느끼는 감상이 굳어지며, 연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풀 꺾였다.
그것을 아는가.
오디션에 참여해 본 사람에게 심사위원들의 시선 변화라는 게 얼마나 와닿는지를 말이다.
‘내 연기를 조금 더 확실하게 보란 말이다.’
김지환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이민기의 연기를 볼 때만 해도 기대감에 찼던 시선들 아닌가.
그것이 왜 그를 향하니, 아쉬움으로 변하냔 말이다.
연기의 수준이 모자랐나.
그럴 리가.
객관적으로 부족할 게 없는 연기였다.
이민기를 이번 [카페 델 디아] 오디션에서 꺾겠다는 생각에 이를 갈며 연습했고, 그가 아니었다면 평생 기울였을 일이 없었을 노력을 다 쏟아부었다.
실제로.
‘엄청나게 잘하네.’
대사 속 박력에 이민기 본인마저도 움찔움찔 떨 정도로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김지환보다 훨씬 잘해. 현장이라서 그런가?’
그의 기억 속 김지환과는 확고히 달랐다.
가히 한 수, 아니, 두 수는 발전했다고 봐도 좋을 연기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결점이 느껴졌다.
‘여유가 없어.’
조바심이었다.
“그런 생각이나 하니까,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에서 발전이 없는 겁니다.”
김지환의 연기에서는 [성진우]답지 않게 어떤 종류의 조바심이 묻어 있었다.
사소한 뉘앙스의 차이.
이민기의 연기를 의식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것이 김지환의 연기 속 자부심을 조바심으로 바꾸어냈다.
그래, 이 장소의 심사위원들이 보고 있는 김지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2인자네.’
‘2인자다.’
‘콩이네.’
‘콩이네.’
이민기의 뒷자리라는 것.
자유 연기에 들어선 뒤에도 이 평가는 뒤집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고 봐야 했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나는 모두의 남자고, 다르게 말하자면 곧 너만의 남자는 아니라는 거야.”
평소 김지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표정에서부터 손끝까지 한가득 풍기는 여유였다.
타고난 마스크와 천성을 한껏 활용한 연기.
그것이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으니 어쩔 도리가 있나.
“…….”
“…….”
충분히 잘했다.
하지만 더 좋은 연기를 본 이상 극찬하기에는 아쉬웠다.
“잘 봤습니다. 그럼 추후 개별 통지를 보내겠습니다.”
노호연 감독의 짧은 인사와 함께 오디션이 끝을 맞이했다.
그뿐이었다.
둘 다 같은 배역을 연기했지만, 오디션장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의 소리는 달랐다.
* * *
[카페 델 디아] 오디션이 끝을 맞이했다.‘너무 튀는 연기를 한 게 걸리네.’
이민기가 짤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왜냐면, 튀는 연기라서 그렇다.
그의 무난하지 못했던 연기가 누군가에게 좋게 보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최악의 연기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현장에서 봤던 김지환의 실력이 예상을 한참 넘어섰던 것도 있고.
‘다온에 들어간 뒤로 발전한 건가?’
간혹 필드에 뛰기 시작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타입이 있다고 한다.
그게 김지환인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내다본 거라면 다온 황인구 대표의 선구안은 대단하다고 봐야겠다.
‘역시, 오디션 심사위원들은 보는 눈이 남다르다니까.’
됐다.
그보다 이민기는 오늘 다른 일로 정신이 없었다.
“으음, 생각보다 맘에 드는 매물이 없네요.”
바로.
“위치를 챙기면 너무 비싸고, 위치를 포기한다고 건물이 좋은 것도 아니라.”
이사 준비가 그러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있으려니, 주하나가 한 손으로 커피 빨대를 구기며 말했다.
“천천히 구해 보세요. 집은 급하게 구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이민기는 그런 그녀의 말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요.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라.”
“상황이요?”
“전에 말씀드렸던 거요. 주소 노출된 것 같다고.”
“아.”
그렇다.
이민기는 원래 골목 원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위치가 어딘가에 새어나갔는지 이상한 시선을 느낄 때가 생겼다.
‘예전에는 기자가 사진도 찍었지.’
집 앞 편의점에 들리러 편한 옷차림으로 나왔는데, 그걸 찍어다가 대뜸 올린 것.
다행히도 반응은 좋았다.
[편한 옷차림인데도 화보처럼 나오네] [진짜 사진 깡패] [실물도 깡패임 ㅋㅋ] [이민기는 어떻게 찍혀도 실패하는 구도가 없다]이런 상황에도 운이 좋았던 그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집 근처에서 사진이 찍혔다는 것 자체로 부담이 됐다.
간혹 집 주소를 추측하려 드는 사람들까지 나왔고.
“집에 가서도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죠.”
저 일이 있고 나자 모든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다.
창문을 못 여니 환기를 못 한다.
복도에 누가 뚜벅뚜벅 걷는 소리가 들려오면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된다.
동네 마트를 가는 길조차도 부담스러워, 온라인 택배를 쓰는 일이 늘었다.
“제 과민반응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거 때문에 피곤해서요.”
“음.”
그 말에 제리가 깊게 공감한다는 듯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지. 바로 나 같은 미남 배우라면 더더욱.”
“……미남인지는 둘째치고, 아직 안 유명한데도 그렇네요.”
제리의 말에 이민기가 한숨을 푹 내쉰 순간이었다.
“그럼 원룸에 안 살면 그만 아닌가? 어째서 원룸에 살지? 돈이 없나? 주위에 돈 빌려줄 사람도 없나?”
그가 핵심을 푹 찌르고 들어왔다.
“……분하지만 사실이네요.”
“민기 씨 드라마랑 영화도 한 작품씩 찍었고, 전에는 보충제 광고도 반응 좋았잖아. 페이 안 받았어?”
“저 신인이잖아요. 다 합쳐 봐야 원룸 보증금도 아슬아슬해요.”
“참, 민기 씨 신인이지.”
제리는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민기는 돈이 없었다.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작품당 받는 페이가 너무나도 적었던 것.
드라마 때는 사실상 용병 취급이었으니까 할 말이 없고, [언제까지고 푸르른] 출연료도 신인 기준으로 산정돼 생활비를 간신히 때우는 수준이었다.
광고는 그나마 목돈을 받았지만, 생활비니 적금이니 여윳돈을 남기면 보증금으로 쓰기에 아슬아슬한 건 마찬가지.
‘그나마 이제 인지도가 좀 올라서 다음 작품부터는 페이를 올려서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이 문제네.’
솔직히 아무 곳이나 상관없으니 원룸 하나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사 가는 이유가 이유이니만큼, 어느 정도 사생활이 보호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해야 할까.
“어디 보증금은 안 받으면서 월세는 저렴하고 집은 크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위치까지 좋은 곳 없을까요.”
“민기 씨, 너무 날로 먹으려는 거 아냐?”
“어떻게 아셨어요? 아, 인생 날로 먹고 싶다. 누가 한강 앞 아파트 하나 공짜로 꽂아 줬으면.”
“준다고 해 봤자 증여세 못 내잖아.”
“윽.”
한참이나 희망 사항을 늘어놓던 이민기가 기진맥진 책상 위에 늘어진 순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주하나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민기 씨네 소속사에는 숙소 지원 없대요?”
“숙소 지원이요?”
이민기가 예상밖에 있던 말에 고개를 돌리려니, 주하나가 움찔하며 말했다.
“가끔 있잖아요. 멀리서 사는 사람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한테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거.”
“아이돌 기획사라면 몰라도, 배우 기획사는 숙소 지원 잘 안 해주지 않나?”
제리의 반박에 주하나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그건 회사 바이 회사 같아요. 저희 소속사에는 숙소가 없어서 대표님 집에 들어가서 살았다는 사람까지 있거든요.”
“와, 멘탈이 대단하네.”
“지금도 살고 있대요.”
“와, 멘탈이 진짜 대단하네.”
일단 지원해 주는 곳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건가.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제리의 말마따나, 일반적인 배우 기획사라면 숙소 지원이 없는 게 상식이기 때문.
아이돌이야 회사에서 비율을 많이 떼가니까 이것저것 복지가 많은 거고, 배우 기획사는 근본이 각개 전투였다.
‘JC는 어쩔지 모르겠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돈 없다고 숙소 빌려달라 말하는 게 부끄러울 수는 있지만, 부끄럽다고 해서 질문을 못 하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 아니겠나.
“지금 바로 물어볼게요.”
이민기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박한모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뒤.
“깜짝이야!”
불과 30초가 안 지났을 때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그 내용은.
[숙소라면 당연히 있습니다.]청신호였다.
일단은.
* * *
어느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이민기의 앞으로 한발 앞장서 뚜벅뚜벅 걸으며 말했다.
“일반적인 기획사라면 숙소 지원은 없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JC는 일반적인 기획사가 아니니까요.”
“좋은 회사네요.”
“물론이죠. 신인 배우에게 잘해 주면 나중에 다 돈으로 돌아온다는 게 저희 대표님의 모토라서.”
“월세는 나중에 정산에서 차감하나요?”
“후후, 그럴 리가요. 몇십만 원 아끼려고 대출로 생색낸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시답니다.”
그렇구나.
이민기는 박한모 매니저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며 아파트를 둘러보기 바빴다.
‘확실히 좋네. 아니, 좀 과하게 좋네.’
말 그대로 좋은 곳이었다.
JC 본사가 위치한 마포구의 인근 대단지 아파트.
지은 지 5년이 안 됐는데, 굳이 실내까지 안 보더라도 단지 입구부터 첫인상이 좋았다.
적어도 골목길 5평짜리 원룸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나 혼자서 쓰는 건 아니라고 했지.’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회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신인 배우에게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다 내줄까.
여럿이서 공용으로 이용하는 숙소라고 했다.
“배우님 외에도 한 분이 이미 들어가서 살고 계십니다.”
“그래요? 그분은 어느 분이에요?”
“신인 배우분이신데, 아마 아실 겁니다. 배우님도 만나 보신 적이 있거든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후후.”
그냥 웃기만 하는 걸 보니 알려주기 싫은가 보다.
하긴, 어차피 몇 분만 지나면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
‘너무 이상한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민기는 기대감 반, 우려하는 마음 반을 머금은 채 박한모 매니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삑-삑삑-삑.
그리고 문이 열렸을 때.
이민기는 비로소 박한모 매니저가 그에게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
현관 너머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모습이 썩 익숙했다.
“……김태양?”
김태양.
지난번 JC 오디션에서 그와 함께 경쟁했던 사람이었다.
천재 신인 배우.
신인 중에서 김지환보다 윗급이면 윗급이지, 절대 그 밑은 아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떡하니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김태양의 모습을 눈에 담은 이민기는 좀처럼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왜냐.
‘김태양, 이 사람, 원래 한참 나중에 데뷔하는 거 아니었나?’
그의 머릿속 기억보다 계약 시기가 최소 2년은 일렀으니까.
심지어.
‘당신 JC 소속도 아니었잖아.’
회사도 달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