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54)
운빨로 탑스타-54화(54/200)
제54화
‘당황스럽네.’
말 그대로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김태양이 누구인가.
세련된 외모와 더불어 압도적인 연기력을 자랑하는 신인.
그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신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말해도 좋을 괴물이었다.
‘옛날에는 감히 옆에 서지도 못 했는데.’
김태양이 잘나가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서 속이 탔던 기억이 아직도 훤했다.
잼 액팅스쿨 시절에 오디션으로 마주쳤을 때도 그래서 충격이었고.
그랬던 그가.
세상 편안한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두 분은 서로 만난 적 있죠?”
그런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박한모 매니저는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늘어놓기 바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신인이니 서로 사이좋게 지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연기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 연예인은 비슷한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든요.”
그래, 친하게 지내는 거 좋지.
잘나가는 신인과 엮여서 나중에 인터뷰라도 같이하면 퍽 좋겠다.
썰도 풀고.
하지만 김태양이 이민기를 바라보는 눈빛은 뭐라고 해야 할까.
태평하다 못해 무신경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마치 게임 속 병풍 NPC를 보는 듯하다고나 할까.
‘전에 봤을 때는 먼저 인사도 걸고 그랬던 것 같은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그렇게 이민기와 김태양 두 사람 사이에 건조한 기류가 흐르는 와중이었다.
“어이쿠.”
박한모 매니저는 지극히 어색한 몸짓으로 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더니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그럼 두 분 오늘 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 사람, 도망쳤다.
아무리 봐도 어색해서 도망간 눈치였다.
급한 일은 무슨.
연기에는 소질이 없으시네.
* * *
[카페 델 디아] 오디션 결과 통지를 기다리는 사이 어느덧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슬슬 연락 줄 때 아닌가.’
제작진 측에서는 따로 사정이 있는지 답장이 계속해서 늦어졌다.
생각보다 심사 판단이 늦어지는 듯했다.
내부적으로 고민할 게 많은가.
그러는 사이 이민기는 재발견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김태양이라는 거물 신인을 재발견하는 시간 말이다.
위이이이잉-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진공청소기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온 집구석에서 울려 퍼졌다.
징― 징― 징―
물청소기 소리도.
이 청소기들의 하모니를 만드는 주범이 바로.
‘엄청나게 깔끔 떠네.’
김태양이었다.
그는 심심하면 청소기를 돌리는데, 다소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성격이었다.
쓱쓱-
싹싹-
차각, 차각-
집에 있으려면 잊어버릴 때쯤 청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바닥은 물론 선반에서조차 먼지 한 톨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벽증 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깨끗하니까 좋긴 한데, 분명 좋기는 한데, 저쪽이 일방적으로 깨끗해 버리니까 은근 눈치가 보이네.’
동거라는 게 원래 그렇다.
청결함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라, 한 명이 과하게 깨끗하면 평범한 사람이 지저분한 편이 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청소뿐만이 아니다.
치이이이익-
드르르르륵!
보글보글-
김태양은 요리에 관해서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 사흘간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전부 요리로 때웠는데, 평소 귀찮아서라도 헬스 식단을 고집하는 이민기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보통 자취하면 다 귀찮아서 라면에 냉동식품만 먹지 않나? 아니면 배달시키거나.’
하물며 솜씨마저 훌륭하다.
한식부터 양식, 일식, 중식까지 만들어 먹는데, 만들어 놓은 요리들의 때깔이 딱 봐도 남달랐다.
‘집에서 소스로 플레이팅까지 하는 사람은 살다 살다 처음 보네.’
어디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뭐라고 해야 할까.
김태양은 마치 이렇게 주장하는 듯했다.
눈치가 보일 만큼 생활이 바르다.
물론, 바른 생활을 유지하는 게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이민기 그 또한, 여기까지라면 그냥저냥 괜찮은 이웃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
“…….”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대화가 없었다.
“점심밥 드세요?”
“네.”
“맛있어 보이네요.”
“네, 닭가슴살?”
“운동 때문에.”
기껏 대화의 물꼬를 틀려고 한들 단답형으로 끊기는 게 전부.
물론, 대화만 없을 뿐 교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민기는 집에서 맨몸운동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땀이나 먼지를 흘리거나 기구를 늘어놓을 때가 잦았다.
그렇게 몇십 분 정도 방치해 놓으면.
위이잉-
그 위를 김태양이 말끔히 정리해 놓는 것이었다.
쓱싹쓱싹 깔끔하게.
땀 한 방울 흘리는 것조차 눈치 보일 정도로.
뭐만 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김태양이 멀찍이서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을 때가 잦았다.
눈을 좁게 뜨고 말이다.
‘눈치 주는 거다. 저건 나한테 눈치를 주는 게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 청소라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이민기의 생활은 20대 한국인의 넉넉히 평균치를 웃돌고 있었다.
단지, 김태양이라는 사람이 인류 전체에서도 넉넉히 상위 0.1%의 생활 패턴을 자랑한다는 게 문제였을 뿐.
‘아, 어색하다. 더럽게 어색하다.’
그렇게 이민기는 어느덧 일주일째 집에서도 좀처럼 편안함을 못 느끼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외부인의 간섭이 불편해서 이사를 온 건데, 막상 이사를 오고 나니 내부인이 불편해지다니.
계속해서 바라본다.
잠깐 멍하니 좀 있으려면 그가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침묵 속 궁지에 몰린 이민기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바로.
“푸하하하하! 그러니까 남이랑 함부로 동거하면 욕본다니까!”
남에게 상담하는 것이었다.
JC 사내 휴게실.
김아성 트레이너가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아니, 왜 굳이 불행을 자초하지? 혼자 사는 게 행복하다는 걸 모르는 건가? 민기 씨 혹시 그거야?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타입?”
“……설마 몰랐죠. 태양 씨랑 같이 살게 될 줄은. 그보다 이렇게 대화가 안 될 줄 알았나요.”
안타까운 일이다.
이민기에게는 주위에 상담이라는 걸 부탁할 연장자가 김아성 트레이너 정도밖에 없었다.
한때 서른을 넘겼던 과거 탓이었다.
‘회사 사람들한테 상담하자니 회사 차원에서 문제가 될 것 같고.’
김아성 트레이너도 물론 JC 소속이지만, JC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던 사이이니 경우가 좀 달랐다.
제리는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유규언 대표는 친하다고는 하나 거래처 사장님 아니겠나.
최유창은 너무 윗사람이라 부담스러울뿐더러, 기껏 자리를 만든들 술이나 빨자고 할 게 뻔했다.
권준용 관장?
이쪽은 더 뻔하다.
[회원님, 수컷 놈들끼리 기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정답은 간단해. 바로 힘이 모자라서 그런 거야. 충분한 피지컬을 만들면 다 알아서 깨갱 긴다니까? 나는 학창 시절부터 시비를 걸려 본 적이 없었어요. 알았지? 오늘은 데드리프트 2세트 추가하자고.]그는 세상의 모든 고민이 근육으로 연결되는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래 버리니 결국, 남는 건 김아성 트레이너뿐.
“푸하하하학!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학!”
그라고 해서 특별히 마음의 위안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오히려 팝콘까지 씹어가며 즐거워한다면 모를까.
“민기 씨,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아니, 상식적으로 이사를 지난주에 왔는데 어떻게 벌써 떠나요. 회사에서 미친놈 취급받을 텐데.”
“그래? 그럼 불편한 사람이 먼저 뭐라도 하자고 해야지.”
“으으,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원래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어. 대신 소나기가 내린 뒤 떠오르는 무지개를 바라보면 감동이 있지.”
뭘 말하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한테 말을 하니까 조금 낫기는 하네.’
정 안 되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동거인이라고 해서 꼭 친하게 지내야 하나.
남남처럼 잘 지내면 그만이지.
저쪽에서 딱히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 따지고 보면 저쪽도 나 때문에 불편할 수 있는 노릇이고. 나 오기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잘살고 있었을 거 아닌가.’
자포자기한 이민기가 털어놓기라도 했다는 걸 위안으로 삼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김아성 트레이너가 히죽 웃더니 말했다.
“저쪽에서는 민기 씨를 딱히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닐걸?”
“네?”
영문 모를 말이 나온 다음 순간, 김아성 트레이너의 입에서 한층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다.
“오히려 너무 신경 쓰느라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
“…….”
그게 신경을 쓴 거라니.
암만 봐도 소 보듯 닭 보듯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나름대로 배려해서 나온 행동이란 말인가.
좀처럼 말뜻이 이해가 안 되는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그 뭐지? 예전에 JC 오디션 때 말이야. 그때 민기 씨만 들어왔지?”
“음, 그랬죠?”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러 명에게 연락을 돌렸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에 자연히 그렇게 됐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 태양 씨도 붙었어.”
“네?”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이민기의 눈이 커졌는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쪽에서도 일단 붙긴 붙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던 거지.”
“잠시만요. 붙었는데 거절했다고요?”
이민기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요?”
“나는 모르지. 어쩌면 JC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고 싶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면 어쩌다가 지금은 JC에.”
“민기 씨가 캠퍼스 스토리 찍을 때쯤이었나? 그거 보면서 신경을 되게 많이 쓴 것도 같더라고. 요즘 매일같이 저기압이었어. 자기랑 비슷한 시기에 오디션 본 사람이 벌써 성과를 내 버린 셈이니까.”
“……아.”
조바심 같은 건가.
자기는 제자리에 느긋하게 서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사람이 너무 앞서가면 조급해지는 그런 거.
느낌은 알았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본디 이민기와 함께 있었던 동기들은 모두가 그를 앞서갔으니까.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니다 싶지만, 괜히 밉기도 했지.’
대충 사정을 알겠다 싶은 참인데, 김아성 트레이너가 확인 사살을 하듯 말했다.
“얼른 데뷔해서 민기 씨를 이겨 보겠다고 이를 갈더라고. 원래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녀석인데. 큭큭.”
“…….”
좀 되게 즐거워 보이시네.
김아성 트레이너가 의자에 몸을 편안히 기댄 채로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말했다.
“그래서 내가 JC에 와 보는 건 어떻겠냐고 내부 오디션에 추천했어.”
“다른 회사가 아니라 JC요?”
이민기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트러블 생기지 않나요?”
“아니지, 민기 씨, 그게 아니야.”
김아성 트레이너가 빈 허공에 손가락을 저었다.
“배우라는 것들은 말이야. 비슷한 조건으로 옆에 두고 관찰하면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것만큼 실력 늘리기에 좋은 건 없거든.”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문득, 김태양이라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려는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김아성 트레이너가 쐐기를 박았다.
“라이벌이잖아. 상대방이 뭘 하든 경계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렇다.
김태양 그 또한 말없이 이민기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만 의식했던 게 아니구나. 저쪽도 마찬가지였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연습하는지 의식하고 있었겠지.
서먹하게 느껴졌던 건 무의식중에 경쟁심을 불태웠던 탓일까.
불편한 게 이상한 게 아니다.
당연한 것이었다.
“뭐, 정 불편하면 같이 영화라도 보면서 대화 나눠보던지.”
한참이나 말을 늘어놓던 김아성 트레이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원래 이쪽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작품 이야기가 직빵이거든.”
그런가.
김아성의 말에서 비로소 속이 트이는 걸 느낀 이민기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괜히 선생님이 아니네요.”
“저기요. 학생님, 무슨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김아성 트레이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언제나 선생님이지. 물론,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이기도 하고.”
“…….”
“민기 씨가 부럽다. 나 같은 초일타 강사한테 배울 수 있어서.”
대책이 없네.
한 마디라도 띄워주면 안 되는 사람이다.
* * *
그날 저녁.
이민기는 저녁 늦게 운동을 마치고 숙소로 귀가했다.
‘이사를 오니까 다른 건 좋은데, 헬스장이 멀어진 게 아쉽네.’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도 오가는 길에 조깅을 하는 셈 치고 있으니 다행일 따름.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후우, 대화, 소통, 평화. 커뮤니케이션이 평화를 만든다.’
김태양과 뭐라도 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삐비빅, 삐빅.
이민기는 자기 집이라는 게 무색하게 긴장감을 머금은 채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현관부터 조금 이상했다.
[You know what? Old man said that there is angel with a shotgun.]거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고 많이 들어본 목소리지만, 이 집에서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가 말이다.
‘이건 설마.’
이민기는 혹시 하는 마음에 발걸음 소리를 줄이며 거실을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저 영화는.’
거실에서 김태양이 TV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화라는 것이 이민기에게 눈에 달라붙을 만큼 썩 익숙한 작품이었다.
[Painkiller]페인 킬러.
이민기가 여태껏 수십 번을 반복해서 본 영화이자, 동시에 주위에서 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마이너한 작품이었다.
한국에서 동원한 관객 수가 10만 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쫄딱 망한 작품.
어지간한 영화광이라도 이름만 아는 그 작품을, 김태양이 고개까지 내밀어가며 몰두해서 시청하고 있었다.
‘저걸 본다고?’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광경이었다.
“Old man said that there is angel with a shotgun.”
작중 명대사를 다른 누군가가 감명 깊게 들었다는 듯, 입으로 중얼거리는 광경은 더더욱 그러했다.
감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광경.
그럼에도 엄연히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충격에 빠진 이민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걸 저렇게 재밌어하면서 본다고? 제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