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56)
운빨로 탑스타-56화(56/200)
제56화
[카페 델 디아].그 주역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쪽지였다.
일주일이나 기다려서야 결과를 받아든 이민기의 머릿속에 열이 후끈 올라왔다.
‘진짜로? 진짜 내가 붙었다고?’
차마 믿기지 않는 광경 속에서 멍하니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기는 했지. 가진 걸 여실 없이 쏟아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떨어질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너무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자유 연기에서 김지환을 이겨 보겠다고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리 노렸다지만 너무 도박 아니었나.
제작사 측의 답장이 하루하루 연기될수록 더더욱 그러했는데, 끝내 결과가 합격으로 돌아오다니.
이게 증명하는 바는 하나였다.
‘내가 옳았다.’
그의 무리수가 유효타였다는 것.
첫 공중파 주연 발탁이다.
이민기는 차마 참을 수 없는 기쁨 속에서 히죽거리며 핸드폰 속 메시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기 바빴다.
그런 그의 모습이 의문스러웠던 걸까.
“왜 그러시죠?”
“아.”
김태양의 물음에 이민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 이번에 오디션 지원했다던 노호연 감독님 신작 드라마 있잖아요.”
“예, 아까 말씀하셨죠.”
“거기 붙었다고 하는데요.”
“……!”
그 말에 김태양의 눈마저 크게 뜨였다.
하지만 점차 진정되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요?”
김태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의자를 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륵.
하물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서 냉장고를 뒤적이기까지.
그런 김태양의 행동이 이민기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추었는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안 드시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해산물이 아니라.”
김태양은 냉장고를 도로 닫더니, 그 안에서 꺼낸 고기 한 덩어리를 덜렁덜렁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소고기가 올바릅니다.”
* * *
시험에서 다른 한 명이 붙었다는 건, 보통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한 명이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오디션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둘이다.
두 사람이 함께 붙는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바로, 다온 엔터의 김지환이었다.
“어쨌든 붙긴 붙었네. 그런 된 거지.”
황인구 대표가 이번 결과를 두고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낄낄 웃었다.
하지만 김지환은 그 웃음에 차마 동참할 수 없었다.
왜냐.
“서브로 밀려났잖아요.”
붙긴 붙었는데, 서브 남자 주인공으로 한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으드득.
굴욕감을 견디다 못한 김지환이 이를 갈았다.
‘떨어뜨릴 거면 차라리 아예 떨어뜨리지, 다른 역할을 역제안해?’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보자면 심사위원들은 그를 좋게 본 것이었다.
왜 김지환을 떨어뜨리지 않고 서브 남자 주인공 역할로 발탁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조바심과 절박함, 열등감을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아주 조금만 잘 활용하면 연기에서도 살릴 수 있으리라는 직감도 있었고.
물론, 김지환의 기본적인 연기력이 좋았던 것도 있었다.
당사자에게는 와닿지 않은 모양이지만.
‘날 우습게 보는 건가?’
저쪽에서도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가 있겠지. 정말로 아니다 싶었으면 떨어뜨렸을 테니까.
알고 있다.
알면서도 속에서 분통이 끓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역할을 두고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김지환은 이번 작품을 두고 다른 참가자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준비해 왔다.
바로, 다온 엔터에서 비밀리에 정보를 물어온 덕분이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부글부글 끓는 김지환이 한심하게 보였던 걸까.
황인구 대표는 읽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환이, 뭘 오해하고 있나 본데, 너 아직 신인 배우야.”
“…….”
“우리 회사가 편의는 봐줄 만큼 봐줬잖아, 그랬는데도 안 됐으면 인정하고 물러설 줄도 알아야지.”
“하지만요.”
김지환이 뭐라 항의하려는 찰나였다.
“아니면 혹시 아저씨 말이 틀렸을까?”
황인구 대표가 뱀처럼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저쪽에서도 널 좋게 봐줘서 제안한 거다. 호의야, 호의. 떨어질 사람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주연 자리 하나 마련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윽.”
“배역에 불만이 좀 있나 본데,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도망치는 건 또 다른 이야기고. 이민기가 무서워?”
김지환을 허수아비처럼 세워 둔 채 황인구 대표의 일방적인 압박이 이어졌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회사 일은 생각할 게 많거든. 요새 가뜩이나 거슬리는 일이 많아서 피곤한데, 지환이 너까지 날 거슬리게 하지는 마라.”
“…….”
“나 지금 혼잣말하니?”
“……알겠습니다.”
김지환이 입술을 꾹 물었다.
마음속에서 거센 수치심마저 느껴진다.
원래 기획사를 두고 보면 배우가 갑이고 기획사가 을이라는 게 상식.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것과도 또 달랐다.
오히려 삼촌과 조카 같은 관계라고 할까.
피는 안 이어졌지만, 관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피곤할 일이 많은 사이였다.
아버지와 한 다리 건너 사업으로 엮인 친구이니.
“그냥 해 본 말이야. 임마, 너 잘하고 있다.”
황인구 대표는 귀찮다는 듯 손바닥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들어가. 술 좀 줄이고. 배우라는 놈이 알콜 냄새 풍기는 거 좀 그렇다.”
그 말에 김지환은 저벅저벅 걸어서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방.
황인구 대표는 전자담배를 꺼내 한 모금 길게 빨고는, 연기를 훅 뱉으며 중얼거렸다.
“새끼, 슬슬 대가리가 굵어져서는.”
신인들이라는 게 다 그렇다.
처음에는 단역 자리만 꽂아줘도 감사하다가도, 나중에는 조연 자리가 당연해진다.
그러다가 보면 주연이라도 배역에 따라서는 거부하고.
흔히 말하는 콧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주 복에 겨운 거지.’
김지환은 이 루트를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걷는 듯했다.
뭐, 아무래도 좋다.
그쪽은 콧대가 좀 높아야 어울리는 캐릭터니까.
그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걸렸다.
“이민기…… 이민기…… 이민기라.”
이민기였다.
황인구 대표가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처음에는 그냥 연기 좀 잘하는 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매년 쏟아지는 신인.
그중에서도 머리 하나만큼 툭 튀어나왔다고는 하나, 신인 때 잘하는 사람은 원래 발에 채일 만큼 많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중 열에 아홉은 몰락하기 마련이었다.
멀리 가는 천재는 드물다.
반면, 빠르게 가는 천재는 흔한 법이었다.
그렇기에 황인구 대표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김지환을 키우자고.
이민기라는 그놈이 적잖이 잘났다고 한들, 장기적으로 보면 한계가 있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분명 기가 약한 놈이었지.’
스타가 될 상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의 그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직감이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자꾸 이민기라는 그놈이 얽히는 걸까.
‘내가 운이 나쁜가? 아니야, 그럴 리가.’
운이라면 늘 좋았다.
이 험난한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쉬운 일이 있었던가.
첫 시작부터 버러지 같은 똘마니들을 이끌고 온갖 경쟁자들을 제쳐 가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기업인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운이 나빴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내 운이 나쁘다는 가정은 만에 하나 있을 수가 없어.’
예외는 없다.
황인구 대표는 자기 자신의 운과 직감에 절대적인 확신마저 품고 있었다.
‘흠, 서로 안 겹치면 그만인데, 묘하게 서로 활동 영역이 겹친단 말이지. 그 보충제 광고도 그렇고 이번 드라마도 그렇고.’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좀 찝찝하다.
옷에 튄 간장 한 방울처럼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내가 과민반응 하는 건가?’
고민해도 의미 없는 일이었다.
저쪽이 못났다고 해서, 그의 연예인이 뜨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황인구 대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한번 아니라고 결정했으면 아닌 사람.
김지환의 억하심정이 애교로 보일 만큼, 황인구 대표는 속이 배배 꼬인 사람이었다.
“약유구불 불즉시심 심하원멱…….”
딸그락딸그락.
차분하게 염불을 외며 손목에 낀 염주 팔지를 손안에서 굴리기를 잠시.
황인구 대표가 눈을 번쩍 떴다.
‘아, 빡치네.’
화풀이.
화풀이가 필요하다.
큰 이유는 없다.
애초에 화풀이에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에게 잠깐이나마 거슬리게 만든 벌레에게 벌을 주고 싶어졌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못된 버릇이었다.
학교에서 맘에 안 드는 친구가 있으면 필통을 훔쳐다가 나무 위로 던져두는 사람, 그게 황인구였으니까.
‘좋아, 결정했다. 생각난 김에 기스나 하나 만들어 볼까?’
방법은 많다.
어느 걸 선택해야 적당할지 고민될 정도로.
* * *
카페 델 디아 첫 모임.
지난 [언제까지고 푸르른]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첫날 일정은 같았다.
[2시부터 대본 리딩을 진행할 예정이니 시간에 맞춰 회의실에 참석해 주길 바랍니다. 불참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대본 리딩이었다.
그것도 촬영지인 [카페 리오] 본점 건물에서.
‘흐아, 긴장된다.’
이미 한차례 경험해 본 일이다.
하지만 이민기의 심장은 수능 시작 20분 전 고등학생의 그것처럼 미친 듯이 뛰는 게 좀처럼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때와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머, 배우님, 지난번 작품 너무 재밌게 봤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배우님을 너무 좋아해서 언제 꼭 한번 같이 촬영하면 좋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겨서 저 너무 좋은 거 있죠?”
얼마나 좋았으면 문장 하나에 좋다는 말을 세 번이나 연발할까.
실제로 주위에서 이민기를 대하는 시선부터가 달랐다.
그 당시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쌩 신인인데 운 좋게 염광호 감독에게 발탁 받은 뉴비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훨씬 호의적인 눈길이 가득했다.
‘차세대 스타의 재목이다.’
‘[캠퍼스 스토리]도 좋았고, [언제까지고 푸르른]에서도 좋았지. 그 보충제인가? 광고도 성적 좋았다고 했고.’
‘실물이 사진보다 더 낫네.’
‘성격도 좋아 보여.’
마치 파도처럼 쏟아지는 관심과 호의.
그것이 역으로 이민기를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었다.
‘차라리 나쁜 시선이라면 익숙한데, 다 너무 좋게 봐주시니까 익숙해지지가 않네.’
그런 눈길 사이로 익숙한 눈빛을 보내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와, 계속 쳐다보네. 눈도 안 아픈가.’
바로 김지환이었다.
그는 주위에서 이민기를 어떻게 대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째려보기 바빴다.
탈락한 줄 알았는데 용케도 이 자리에 앉아서 경쟁심을 불태우는 듯했다.
‘저쪽이 주인공의 라이벌 포지션이라고 했던가. 메소드 연기인가.’
그렇다.
이민기가 주인공 [성진우] 역할을 맡았다면, 김지환은 [성진우]의 라이벌인 [차영환]을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중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지금의 두 사람을 똑 빼닮았다.
[성진우]가 위에서 모셔온 엘리트 바리스타라면, [차영환]은 원래 박혀 있었던 적당한 바리스타.자기보다 더 잘난 [성진우]를 두고 열등감을 불태우는 캐릭터였다.
연애에 있어서도, 커피에 있어서도.
‘오히려 저 눈빛이 편하네.’
모두가 좋게만 대했으면 부담스러워서 속이 터졌을 텐데, 저쪽이 일방적으로 째려봐 주니까 오히려 편안하다.
영 뒤틀린 방향으로 사회성을 발휘하는 이민기였다.
그런 한편, 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응, 정확하게 내가 바랐던 그 구도네. 두 사람 다 잘해 주고 있어.’
노호연 감독이었다.
그가 연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이거 때문에 고민도 한참 했는데, 이제 슬슬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겠지?’
두 사람이야 어찌 됐든 결과물만 잘 나오면 장땡인 노호연 감독이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자, 그럼 지금부터 대본 리딩을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자리에 앉으세요.”
그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흩어져서 떠들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각자 자기 자리로 찾아갔다.
가장 중앙 자리에 노호연 감독이 진행자 역할로 앉았다.
그를 핵 삼아 배역의 중요성에 따라 거리순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컨대, 이민기의 바로 옆자리가 김지환이라는 것이었다.
“잘 부탁드릴게요.”
“……예.”
김지환은 차마 인사까지는 외면하지 못하겠는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리딩에서 밟아주마.’
오디션에서 느꼈던 굴욕을 설욕하기 위해, 정말 죽을 만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대사를 읊다가 목구멍이 부르터서 피딱지가 나올 정도로.
비록 배역이 바뀌었다고 하나, 김지환은 어떤 장면이 됐든 이민기를 능히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저런 유약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실실 웃는 녀석 따위, 우습지도 않다.
스튜디오 밖이었다면 그와 말 한마디도 못 섞었을 테니까.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개별 연기라면 모를까, 합을 맞추는 연기라면 발라버릴 수 있다.
적어도 김지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 가볍게 13번 장면부터 볼까요? 민기 씨, 지환 씨, 준비하세요.”
대본 리딩이 시작된 순간.
김지환은 그의 예상이 틀렸다는 걸 직감해야만 했다.
“세상 참 좋아졌어. 그렇지?”
이민기의 입에서 비릿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같은 놈도 커피 좀 볶는다고 바리스타 딱지를 달고.”
“…….”
“안 부끄러워?”
본능적으로 눈을 깔아야 할 것만 같은 목소리와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