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60)
운빨로 탑스타-60화(60/200)
제60화
“카페 델 디아! 제작발표회 특별 이벤트 1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각 바리스타는 2라운드를 준비하길 바랍니다!”
진행자의 호쾌한 외침이 허공에 터지며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선 이민기는 흐린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참으로 복잡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제작발표회라는 게 보통 이런 분위기였던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어질어질하네.
앞을 보자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관객들이 눈에 보였다.
다음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자 김지환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똥 씹은 표정이었다.
‘문제는 이쪽이 아니라…….’
그의 왼쪽이었다.
바리스타 두 명.
두 남녀가 이민기와 같은 무대 위에 일렬로 서 있었다.
그 뒤로는 커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드립 포트와 그라인더를 비롯해 장비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한층 황당해진 기분에 이민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제작발표회라기보다는 무슨 대회 분위기인데.’
아니, 실제로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
이번 [카페 델 디아] 제작발표회는 철저하게 바리스타 대회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게 맞으니.
[승리의 영광은 과연 네 명의 바리스타 중 누가 차지할 것인가!]진행자부터 그러했다.
두 전문 바리스타와 함께 두 주연, 이민기와 김지환이 커피를 내린다.
그걸 앞에 있는 심사위원 셋에게 차례차례 제공하는 것.
그렇게 따낸 점수를 종합해 승부를 겨루는 것이었다.
‘종목도 둘이었지.’
드립 커피와 라떼 아트.
그렇다.
라떼 아트(커피 위에 우유 거품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가 이번 2라운드 심사 내용에 포함되었다.
[커피라는 게 특성상 사진으로는 맛을 어필하기 어렵잖아요? 비주얼로 승부수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얼핏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홍보라는 게 시각 정보에서 먹고 들어가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와인 전문가들도 어떻게든 시각적으로 묘사하려고 기를 쓰는 거고.
애초에 드라마 속에서도 라떼 아트가 등장한다.
이번 이벤트의 목적이 홍보라는 걸 감안하거든,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민기 본인이 라떼 아트에 딱히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 라떼 아트는 좀 자신 없는데.’
이민기가 빈 허공을 보고 끄응 신음을 흘렸다.
‘하필 라떼 아트.’
솔직히 위험 요소는 피하고 싶다.
하지만 제작진이 꼭 필요하다며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으니, 소속 배우로서 어쩔 도리가 있겠나.
[민기 씨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이런 거에 민감하거든요. 혹시 모르죠. 민기 씨가 멋진 라떼 아트를 보여주면, 훗날 전국 카페에서 그걸 민기 라떼라는 이름으로 팔지도.]제작진의 희망찬 말이 야속했다.
‘말은 쉽지.’
라떼 아트라는 것이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지극히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했다.
뜨개질과도 같다.
초보자라면 가장 간단한 패턴 하나조차도 성공해내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릴 지경.
‘연습 시간이 1달, 아니, 1주만 더 있었어도.’
그나마 작중에서 라떼 아트가 등장하기 때문일까.
겸사겸사 노력한 덕인지 이민기의 실력은 초보자치고는 나쁘지 않다.
문외한 사이에서라면 전문가 흉내를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가 나타났다.
그래.
바로 지금,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문외한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홍보용이라지만, 이건 선을 좀 심하게 넘었잖아.’
곁눈질로나마 흘끗 바라본 두 바리스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쳤다.
그야말로 진짜배기 전문가들이었다.
옆자리 김지환은 늘 그렇듯 세상에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고.
‘어차피 제작진이 주최한 대회니까 점수는 후하게 주겠지만, 그래도 겉보기에만이라도 그럴듯해야 하는데…….’
에라이, 모르겠다.
고민해서 뭐 하겠냐.
갑자기 배탈 났다며 관두고 도망칠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왔으면, 남은 건 하는가 안 하는가뿐이지.’
이민기가 흔들리는 의지를 가다듬는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진행자가 한껏 흥이 올라 피가 끓어오를 만큼 힘찬 고함을 쏟아냈다.
“1라운드에서 드립 커피로 치열한 승부를 펼친 네 명의 바리스타! 과연 최종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목도 안 아픈가 싶을 정도로 외쳤다.
이쪽은 고막이 아플 정도인데.
이민기가 얼얼한 귀를 손바닥으로 덮고 싶은 충동을 참는 사이 진행자가 거듭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2라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레디―― 고!! ”
그 순간이었다.
세 명의 경쟁자들이 수천 번은 해봤다는 듯 익숙한 몸놀림으로 커피 머신을 향해 달려갔다.
이민기도 한발 뒤늦게 눈을 비비며 몸을 움직였다.
‘우선은 커피부터.’
위이잉-
커피 머신이 이제 익숙해진 굉음을 흘리며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이민기는 그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스팀 밀크를 준비했다.
부우우우우웅-
스팀 피처 속 우유가 달아오르며 거품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이 거품이 바로 라떼 아트에 사용되는 밀크 폼(우유 거품)이라는 것이었다.
65도까지 다다라 촉감이 뜨거워졌을 무렵, 이민기는 정확히 가열을 멈췄다.
‘좋아,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완벽한 벨벳 밀크(비단처럼 부드러운 밀크 텍스쳐)에 안도한 이민기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백 번도 더 연습한 덕에, 여기까지는 눈을 감고도 성공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진짜 난관은 지금부터다.
본격적으로 커피 위에 그림을 그리는 단계.
여기에서 얼마나 많이 실패했던가.
시작하기에 앞서 막간의 시간을 활용해 주위를 둘러보자, 그의 경쟁자 셋은 이미 아트를 시작한 단계였다.
‘조급해할 거 없다. 선생님한테 배웠잖아. 차분하게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김경희가 그를 위해서 특별히 고안한 문양이 있었다.
그대로만 하면 되리라.
이민기는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최대한 다스리며, 미리 추출해 둔 에스프레소 위로 스팀 피처를 기울였다.
스르륵-
스팀 밀크가 차분히 흘러내리며 검은빛 에스프레소가 점차 부드러운 브라운 톤으로 변해갔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시작이다.’
거품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단계.
이 단계에서는 거품을 붓는 시간 0.1초 만으로도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중요한 건 눈이 아니에요. 손끝의 감각이죠. 직감을 믿으세요. 라떼 아트는 수 없는 반복 훈련과 작은 운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란 걸 명심하세요.]이민기는 김희경 바리스타의 조언을 떠올리며 손가락 끝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어?’
기적이 일어났다.
* * *
자기 손끝에서 일어난 결과물을 믿지 못한 이민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완벽, 거의 완벽에 가까운 블로섬이 커피 위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블로섬.
김경희가 그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아트였다.
흡사 꽃이 피어나는 듯한 무늬.
하지만 아름다운 만큼 어렵다. 그래서 대회를 앞두고 홀로 연습에 매진했을 때조차 어설픈 기색이 남았던 게 이것이었다.
‘그게 여기에서 이렇게 된다고?’
눈가가 아찔해졌다.
“오! 멋진 문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치 꽃이 사방으로 피어나는 것 같네요. 어떤 걸 만들려는 걸까요?”
진행자가 이민기의 커피잔을 가리키자 이민기의 등골에서도 한결 더 소름이 돋았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여기에서 끝마무리만 잘하면 문제가 될 건 없다.
어차피 프로 라떼 아티스트 수준으로 완벽한 디자인에 다다르기는 힘들다.
대신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보이면 장땡인 셈.
눈앞에서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블로섬은 적어도 그의 시선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라떼 아트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자, 마지막이다.’
이민기보다 한발 앞서 시작한 세 사람은 이미 끝나 차례대로 결과물을 제출했다.
남은 건 그뿐.
하지만 이제 블로섬의 마지막, 거품 꼬리만 부드럽게 빼면 끝나는 상황이다.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 듯이 달리며 찰나의 시간이 몇 배로 길게 느껴졌다.
‘10%, 아니, 5% 남았다.’
이민기의 신경이 그 마무리 작업에 완벽하게 곤두선 순간이었다.
“이민기 파이팅――!!!”
제작발표회 전면 기자석에서 큼지막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 팬의 응원 소리였다.
이민기에 대한 호감을 감출 수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
다만, 선한 의지가 언제나 당사자에게 좋게 작용하는 건 아니었다.
“……!”
공기를 가르고 천둥 번개와도 같이 귓속에 날아 꽂힌 목소리가 한순간, 이민기의 머릿속을 하얗게 태워버렸다.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고작 응원이었다.
하지만 고조된 긴장 속에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돌발사태다.
수능 날 대로변에 우연히 지나가는 차의 경적과도 같다. 리듬 게임을 하는 중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동전과도 같다.
픽――.
감각의 한계에 접근해가던 사람의 집중을 깨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불과 0.5초에 불과한 시간.
한없이 선명하다고는 하나 고작해야 눈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는 정도의 시간일까.
하지만.
라떼 아트라는 것은 본디 0.1초로도 땅까지 추락하기도 하는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0.1초는 하늘까지 오르기에도 충분했다.
0.1초.
이민기의 손이 흔들렸다.
0.2초.
떨어진 우유 거품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섬세한 궤적을 그렸다.
0.3초.
비로소 갈색빛 바다에 빠진 거품이 씨앗을 품었다.
0.4초.
씨앗이 발아하며 한 마리의 새가 날개를 펼쳤다.
0.5초.
새의 꼬리가 블로섬의 꽃들 사이를 뚫고 나가 잔의 모서리를 적셨다.
“…….”
“…….”
이민기의 입이 멈췄다.
카메라맨도 눈을 크게 뜬 채 이민기의 잔 속 세상을 비추었다.
1초 뒤.
조용해진 분위기에 놀라, 뒤늦게 다가온 진행자가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이민기의 라떼 아트가 카메라를 타고 행사장 모니터에 비쳤다.
만개한 꽃들 사이를 뚫고 까치 한 마리가 유유히 비상하는 광경.
흡사, 한 폭의 수묵화와도 같은 그것이 이민기의 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와…….”
한 관객이 감탄을 흘렸다.
“예쁘다.”
또 한 관객이 중얼거렸다.
찰나의 우연, 0.5초의 우연 속에서 태어난 손끝의 흔들림이 아트를 만들어냈다.
운.
그야말로 운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민기 본인밖에 모를 운이었다.
* * *
“지금부터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제작발표회 특별 이벤트가 성황리에 완료되었다.
남은 건 심사인데, 심사위원 셋이 각각 5점씩 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는 기술 점수, 맛 점수, 예술 점수의 세 가지 종목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1번. 김진만 5/4/3 = 12점] [2번. 성하은 4/5/2 = 11점] [3번. 김지환 3/3/2/ = 8점]근소한 차이는 있으나, 전문 바리스타인 김진만과 성하은이 1, 2위를 가져갔다.
김지환은 유의미한 격차로 뒷전에 밀렸다.
그리고.
[4번. 이민기 4/2/5]이민기가 11점으로 성하은 바리스타와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심사위원의 코멘트가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라떼 아트를 봤지만, 이번에 본 이민기 배우의 라떼 아트는 그중에서도 각별했습니다. 하여 5점을 드리겠습니다.”
4명의 참가자 중 예술 점수에서 유일하게 5점을 따낸 것이었다.
“…….”
결과를 확인한 이민기가 여전히 요란하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냈다.’
설마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게 됐다.
오늘 행사 중에서 가장 어려울 줄 알았던 이벤트가 지금 막 해결됐다.
‘내가 바리스타인지 배우인지.’
앞으로는 이런 거 다시는 안 한다.
행사장 뒤편 휴식 공간으로 빠진 이민기가 헛웃음을 짓고 있는 와중이었다.
“민기 씨, 축하드려요.”
“선생님.”
어느새 다가온 김경희 바리스타가 자랑스럽다는 듯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말했다.
“막판에 그런 기지를 발휘할 줄은 몰랐네요. 그동안 많이 실수했었는데, 뒤에서 엄청 연습했나 봐요?”
“음, 네, 그렇죠. 운이 좋았어요”
이민기가 헛기침을 뱉었다.
노력하기는 했지만, 마지막의 새 무늬는 운의 작용이 컸다.
“그렇죠, 운일 수도 있죠.”
김경희 바리스타는 그런 이민기의 말에 반박하듯 말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라잖아요?”
운도 실력이라.
전문가마저 그렇다고 하지 않나.
이민기는 그녀의 호의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정하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제가 운이 좋네요.”
“그렇…….”
“특히 경희 쌤 같은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점에서요.”
이민기의 입에서 옅은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가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
김경희 바리스타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거 알아요? 민기 씨는 말을 너무 예쁘게 하시는 거.”
“네?”
“그렇게 아세요. 전 저쪽에도 축하 인사하고 올게요. 소고기랑 초밥 중에 뭐 먹을지 고민하고 계세요.”
“네?”
이민기가 빈 허공에 대고 뭐라고 대답하든, 김경희 바리스타는 그대로 한쪽 구석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끝에는 한 남자가 몹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김지환이었다.
이번 심사에서 꼴찌를 차지한 그의 얼굴이 영 찌뿌둥했다.
아무리 이벤트라지만, 어지간히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
‘그래도 뒤에서 연습 어지간히 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손에 화상 자국까지 달려 있었다.
겉으로는 티를 안 했지만, 아마 커피를 연습하다가 입은 상처이리라.
이민기는 그 상처의 역사를 알기에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은근 노력파란 말이지.’
최근 촬영을 진행하며 느꼈다.
김지환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보다는 노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촬영을 진행할 때 노호연 감독에게 자그마한 단점이라도 지적받거든, 다음 촬영까지는 기를 쓰고 고쳐오곤 했다.
‘단기간에 실력이 바짝 늘어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지.’
김지환은 경쟁자다.
하지만 눈에 담아 둘 만한 경쟁자였다.
한번 제쳤다고 안심해서는 안 될 그런 경쟁자.
어찌 됐든, 남은 단계에서는 문제가 될 게 없겠다.
가장 큰 고비는 이미 넘어섰으니.
“이제 Q&A만 남았네.”
Q&A 정도라면 어려울 게 없지 않나.
작품 이야기 좀 하고, 커피에 관한 보편적인 상식선에서만 이야기를 나누면 되리라.
“영차.”
이민기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몰랐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복병이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