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64)
운빨로 탑스타-64화(64/200)
제64화
아파트의 조용한 복도.
위잉-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저벅저벅 걸어 나온 남자 한 명이 음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드디어 들어왔다.”
흡사 영화 속 비실비실한 악역을 연상시키는 남자.
잘생겼지만, 그보다는 머리에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인상이 앞서는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탁 씨, 촐싹거리지 좀 마세요.”
이민기의 학원 동기, 김탁이었다.
“지나가다가 남들 들으면 오해하겠네. 남의 집에서는 민폐 끼치면 안 되는 거 알죠?”
“아, 제가 무슨 애예요?”
“애가 차라리 낫죠.”
그런 그를 두고 애 챙기듯 잔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여성의 외모도 심상치는 않았다.
“진짜 선아 씨 너무하시네.”
유선아.
마찬가지로 이민기의 학원 동기였다.
그녀의 이어진 꾸중에 김탁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친구 집 놀러 가는데 좀 들뜨면 어때서요.”
“민기 씨 혼자 사는 집이 아니잖아요.”
막상 김탁에게 꾸중을 쏟아내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민기 씨 집에 오는 건 처음이네.’
오늘, 두 사람은 이민기가 출연하는 신작 드라마 [카페 델 디아]의 첫 방영을 함께 시청하기 위해 [이민기 하우스]로 향했다.
이민기 하우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민기 하우스 2호점이라고 봐야겠지.
1호점은 사생활 침해 가능성으로 처분하고 확장 이전한 게 지금 2호점이니까.
사실, 예전부터 한 번쯤 놀러오고 싶었다.
하지만 늘 가로막는 요인이 있었다.
[저도 같이 집들이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태양 씨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요.]이민기 하우스의 또 다른 세입자, 김태양이 그 주인공이었다.
[워낙 깔끔하게 사시는 분이라. 그래도 한번 설득은 해 볼게요. 이번에 드라마 방영회도 있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보면서 슬슬 친해지면 어떨까요? 같은 학원 동기이기도 하고.]얼굴은 안 마주쳤지만요.
이민기는 그 뒤에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찌 됐든, 그렇게 몇 달이나 공들여 간을 본 끝에 가까스로 발을 들인 남의 집이다.
김탁과 유선아가 들뜬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와인셀러 있겠죠? 다 털어야겠다.”
“저기, 탁 씨. 일반적인 가정에는 와인셀러 같은 거 없어요.”
“엑, 진짜요?”
“네, 그리고 남의 집 첫 집들이에서 술 마시는 것도 예의는 아니에요.”
“그건 몰랐네.”
사회성이 흡사 유인원에 가까운 김탁을 조련하며 이민기가 사는 방앞에 섰다.
띵동―
그리고 초인종을 누른 뒤 기다리기를 몇 초.
쿵탕퉁!
문 안쪽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드러난 얼굴은.
“오느라 고생 많았죠?”
이민기였다.
그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반겼다.
하지만 유선아의 시선은 그의 얼굴이 아닌, 그의 어깨 뒤쪽을 향했다.
왜냐.
“……다른 분들도 계셨네요?”
다른 사람들이 이민기의 어깨너머, 집 안쪽 거실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이민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웃고 있다.
분명 환하게 웃고는 있는데, 그 눈가에서는 숨길 수 없는 절박함이 흘렀다.
‘알았으면 저 좀 살려 주세요.’
* * *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민기 하우스.
그 안에서 다섯 명의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네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유인원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번 더 정정해서 말하자면, 유인원은 분위기를 살피지 않았다.
“우와, 셋이서 사는 거였어요?”
“…….”
“캬, 진짜 재밌겠다. 막 치킨도 두 마리씩 시키고, 피자도 두 판씩 시키고. 넷X릭스도 셋이서 정액제 끊고.”
강릉 앞바다마냥 시종일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김탁의 주둥이만이 물 만난 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쳤다.
“여행 갈 때도 렌트카 뿜빠이 하면…….”
“같이 사는 거 아니에요.”
참다못한 이민기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저랑 태양 씨는 맞는데, 이쪽 지환 배우님은 일이 있어서 들르신 겁니다.”
“오? 그래요? 지환 씨는 무슨 일로?”
“아, 그거는요. 사실…….”
이민기가 말하려는 찰나였다.
김지환이 굶주린 늑대마냥 눈을 부릅뜨고 이민기를 째려봤다.
저 눈빛은 김지환과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바로 해석할 수 있을 그것이었다.
‘까발리면 죽기 직전까지 가격한 뒤, 한 대 더 쳐서 아예 숨통을 끊어버리겠다.’
쉽게 말해, 쪽팔리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고한 자존심상 비슷한 세대 신인에게 연기로 조언을 구하려고 집 앞까지 찾아왔다는 걸 드러내기 싫은 것.
‘와, 눈빛 봐.’
그 눈빛을 파악한 이민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걸 연기에 썼으면 이미 아카데미 상을 타고도 남았겠네.’
오 린다.
암소 쏘리 린다.
이민기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중후한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이번 행사의 호스트로서 김지환에게 최소한의 배려심을 발휘하며 말했다.
“카페 델 디아 첫 방영이잖아요. 같이 보기로 했어요.”
“제가 언…….”
“그렇죠?”
김지환이 본능적으로 반박하려는데, 이번에는 이민기가 그를 째려보았다.
여기까지가 내 선의다, 협조 안 하면 모든 대화 내역을 끝까지 까발리겠다는 텔레파시를 담아서.
“……큭.”
김지환이 시선을 돌렸다.
눈가를 꿈틀거리면서도 말을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예, 민기 씨와는 같은 촬영장 동료니까요. 겸사겸사 같이 보러 왔습니다.”
“오호, 그럼 우리는 칭기~ 칭기네요~.”
“칭기?”
“민기 씨는 제 친구니까 친구의 친구도 제 친구죠.”
김탁의 발언에 굴욕감마저 느껴버린 김지환의 이마 핏줄이 굵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또한 최소한의 사회성이라는 걸 보유했기 때문일까.
한심하다는 듯한 이민기의 시선을 받아낸 끝에 가까스로 억누를 수 있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에.’
변덕으로 고민 상담 좀 받으러 왔다는 게, 일이 꼬이고 꼬여서 여기까지 와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태양 탓이었다.
[기왕 오셨으니 저녁도 드시고 가시죠. 마침 그저께 연어장 담궜는데.]이민기와 상담하던 중에 불쑥 쇼핑백을 들고 온 그가 식사를 제안했다.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민기가 부추겼다.
[와, 진짜요?]정말 길바닥에서 황금이라도 주운 사람처럼 기쁜 표정을 지으며 환호한 것이었다.
[태양 씨 연어장은 천하제일인데. 이게 얼마 만이죠?]그렇게 말하는 이민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기껏 연어장이다.
고작해야 연어장이다.
그게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길래 저러는 건지 호기심이 들었고.
여기에서 거절하지 못했던 게 김지환의 패착이었다.
김태양은 이 난장판에도 혼자 초연한 신선놀음이라도 하려는 건지 팔짱을 낀 채 고개만 끄덕였고.
‘내 연어장이 특별하기는 하지.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밖에.’
연기만큼이나 요리를 좋아하는 게 그다.
배우를 안 했더라면 요리사가 되어 미슐랭을 노렸을지도 몰랐을 정도로.
한편, 이 꼬인 상황에 유선아는 감탄하기 바빴다.
‘잘나가는 사람들끼리는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구나.’
분위기부터 다르다.
이민기와 김지환은 아예 요즘 신인 남자 배우 중 손에 꼽힐 만큼 잘나가는 둘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김태양은 최근 미니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해서 씬 스틸러로 화제가 됐다고 했나.
이쪽도 신인으로서의 포텐셜은 이민기에게 결코 밀리지 않을 터.
당장 이민기가 본인 입으로 그렇다고 했다.
[태양 씨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장도 잘 보시고 요리도 잘하시고 특히 연어장이 대박인데, 여기에 청소도 잘하시고 환기도 잘하시고 만능이죠. 집에 뭐 고장 나도 혼자서 뚝딱뚝딱 다 고치셔요. 인간 맥가이버라니까요. 아무튼 연어장이 진짜. 와.]연기보다는 가사 전반을 칭찬한 것 같지만, 흐릿한 기억 속에서 유선아는 듣고 싶은 말만을 취사선택했다.
[태양 씨는연 기도 잘하고 뚝딱뚝딱 인간 맥가이버.]
연기도 잘하고 뚝딱뚝딱 인간 맥가이버라고 했지.
대체 사람이 얼마나 유능하기에 인간 맥가이버라는 별명이 붙은 걸까.
근데 맥가이버는 원래 인간 맞지 않나.
아무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세 사람의 포스가 새삼 대단했다.
‘이게 잘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거구나.’
굳이 따지자면 서로 어색해서 말이 없으니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망생 신세인 유선아의 시선에 비친 프로 세 사람은 그러했다.
‘아니지, 나도 남 일 보듯 할 때가 아니야.’
언제부터 신인들에게 경외감을 느꼈던가.
유선아는 작게나마 자조했다.
배우가 향상심을 가지는 데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마주하는 게 제일인 법일까.
최근 오디션에 2연속으로 탈락하며 슬슬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던 유선아의 가슴속에 열정의 불길이 되살아났다.
‘나도 얼른 데뷔해서 이 사이에 당당하게 끼어야겠다.’
유선아는 미래의 동업자로서 이들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아 두기로 했다.
“와, 이 연어장 졸라 맛있네?”
김탁은 연어를 한입에 담았고.
남 눈치 안 보고 차려진 음식을 입안에 쑤셔 넣던 그가 감탄을 연발했다.
“태양 씨, 진짜 천재세요? 어떻게 이런 연어장을 만들지? 혹시 그건가? 백종원?”
“훗.”
“캬, 아주 살결이 야들야들한 게 대박. 씹으면 씹을수록 육즙이 폭발하네.”
“콘부지메로 숙성했습니다.”
“오오, 콘부지메, 오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급진 단어네요.”
“많이 드십시오.”
“크으, 밥도둑. 침 넘어갑니다. 이런 건 있을 때 많이 먹어야죠.”
“갈 때 조금 싸드릴 테니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김태양은 평소 낯을 가리는 사람답지 않게 처음 만난 김탁의 리액션이 마음에 든 눈치였고.
개판이었다.
한 명은 눈치 살피고.
한 명은 혼자 화나 있고.
한 명은 불타오르고.
한 명은 식욕에 불타오르고.
한 명은 뿌듯해하고.
아무튼,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저…….”
기나긴 고민 끝에 굳은 각오를 다진 이민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곧 방영 시작할 시간인데.”
꿀꺽.
마른침을 삼킨 이민기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럼, 볼 준비할까요?”
“아, 좋죠.”
유선아가 손뼉을 쳤다.
“넵.”
그 순간 이민기는 빛의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거실로 달려가 TV를 켜고 자리를 셋팅했다.
몇 분 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그림과도 같은 연속 동작이었다.
‘어색해 죽는 줄 알았네.’
다 같이 모여서 뭐 본다는 생각 자체는 좋았지만, 어색한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이번에는 이미 불렀으니까 어쩔 수 없다 쳐도 또 모이는 건 생각해 봐야겠다.
* * *
카페 델 디아.
노호연 감독이라는 영화계의 네임드 감독이 드라마판으로 이적했다며 화제가 된 작품이지만.
최근에는 그보다는 이민기라는 배우의 등장으로 유명해진 작품이기도 했다.
[커피에 진심인 남자] [커잘알] [응원남에 이어 커피남]작품 자체는 소소했다.
평범한 음식 소재 로코라서 그럴까.
동시기에 방영하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들과 비교하자면 마케팅에 크게 돈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화제성은 밀리지 않았다.
마침 오늘이 그 첫 방영일.
그 첫 방영을 마주한 이민기의 감상은 이러했다.
‘역시, 때깔 죽인다.’
이미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영화감독 출신이라서 그런가? 화면 색감부터가 다르네’
이미 현장 특권으로 러프한 영상 정도는 봤지만, 최종 편집본은 아무래도 맛 자체가 달랐다.
‘노호연 감독이 메인에 장태욱 PD가 보조했지.’
장태욱 PD는 믿고 볼 만하다.
노호연 감독과 장태욱 PD.
이름만 적어 놓아도 완성도는 보장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메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시작이다.’
이민기, 그 자신이었다.
심장이 조마조마하게 뛰었다.
어떻게 나왔을까.
어떤 연기로 나왔을까.
화면 속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아무래도 시뮬레이션과 실전은 다소 다른 법.
마침내 시작된 그 결과물은.
“……음?”
생각보다 많이 차가웠다.
무표정한 얼굴에 싸늘한 경멸이 서려 잇다고나 할까.
‘내가 저렇게까지 연기를 했었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인데, 그 입에서 대사가 나오기 시작하자 한결 더 가관.
[기껏 해 봐야 동네에서 장사하는 바리스타, 기본교육 몇 시간 받았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는 스벅 알바생이랑 다를 게 있나?]싸가지까지 없다.
저 화면 속 [성진우]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지만, 생각 이상으로 인간미라고 할 게 안 느껴졌다.
화면 색감 자체를 차갑게 뺀 탓에 자신의 연기가 한층 더 얼음장 같았다.
‘와, 이게 일류 감독의 후편집.’
이민기가 몰아붙인다.
그 반대로 김지환은 시종일관 구석에 몰리기 바빴다.
은연중에 김지환에게 측은지심을 품고 있기를 잠시.
‘어?’
같은 시각, 유선아는 충격에 사로잡혀 휘둥그레진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느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