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65)
운빨로 탑스타-65화(65/200)
제65화
‘말도 안 돼.’
TV 스크린에 박힌 유선아의 동공이 점차 확대되었다.
‘민기 씨가 원래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하셨던가?’
그렇다.
불과 몇 달 사이.
이민기의 연기는 단순히 발전하는 수준을 넘어, [언제까지고 푸르른] 시절과도 전혀 다른 차원에 다다라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발전.
그게 이민기의 연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와, 이 형씨 좀 봐, 남은 걸어가는데 자기 혼자 람보르기니 타고 시속 380km로 달리시네?’
김탁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이민기의 연기력이 이렇게까지 발전했으리라고는 몰랐다.
살짝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놀랍네.’
김탓이 쓴웃음을 지었다.
삶을 최대한 즐기자는 모토로 살아왔는데, 이민기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자꾸 옆구리가 따끔따끔했다.
예전에는 그를 조금 우습게 보기도 했지.
반은 장난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도 알았다.
‘이 형씨는 진짜네.’
이민기는 큰 그릇이었다.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진다고, 그저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질투가 났다.
이민기의 성장에 김탁 또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성장이라.’
어째서일까.
왜 지난 몇 달 사이, 이민기는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이유라면 크게 둘이 꼽혔다.
그중 첫 번째는.
[차영환 바리스타님께서는 아직도 그라인더가 어려우신가?] [성진우 바리스타님, 남의 일에 신경 끄고 자기 일에나 집중하시죠?]바로 라이벌의 존재였다.
흔히 현장 사람들은 이민기의 연기가 김지환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 또한 성립했다.
한없이 빠르게 성장하며 이민기의 턱 끝까지 쫓아오는 존재.
따돌렸나 싶으면 다음 날에는 다시 격차가 좁아져 있다. 숨 좀 돌리려면 김지환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마주쳐야만 했다.
이런 일이 몇 달 동안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분명 몇 걸음은 앞서 있음에도 사냥감이 되어 쫓기는 사람의 심정을 말이다.
더욱이 그런 사람의 발전은 어떻겠는가.
아마 본인도 모르겠지만, 김지환은 이민기에게 무한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또한.
이민기 본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제가 생각하는 민기 씨는 리더 타입이라기보다는요.]노호연 감독이 한 말이 있었다.
[각성제 타입이죠.] [각성제 타입?]뜻밖의 말에 호기심을 보인 장태욱 PD에게 노호연 감독은 담담히 설명했다.
[보고 있으면 향상심을 가지게 돼요.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멈출 수가 없어요.] [아하.] [당장 저부터 감독으로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지니까요. 하루하루 루즈할 수가 없다고 할까요?]주위 사람을 자극한다.
멈춰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한 발걸음을 더 내디디게 만든다.
이미 스스로 걷는 사람이라면, 달리게 만든다.
달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날게 한다.
관찰의 힘이었다.
관찰은 자기 자신만이 아닌, 상대마저 더 나아진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민기와 김지환은 [카페 델 디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게 이민기의 발전을 일구어낸 첫 번째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후후, 물론 아무리 좋은 원석이라고 한들 저처럼 실력 있는 요리사가 함께해야 진짜 실력이 드러나겠지만요.]노호연 감독이라는 궁합 좋은 감독의 보조가 있었다.
이 둘이 합쳐져, 지금 [카페 델 디아]의 이민기는 명실상부하게 극을 리드하는 주연으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커피는 우리에게 많은 걸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묻겠습니다. 그런 커피에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TV 속 이민기가 강렬한 표정으로 대사를 연발했다.
“2호점? 3호점? 우스운 말입니다. 뿌리가 썩었는데 더 늘려 뭐합니까?”
카페 델 디아.
작중에 등장하는 카페 이야기였다.
[성진우]는 기존 카페의 체질을 개선하고 프랜차이즈화시키기 위해 섭외한 외인 용병인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연기가 나왔다.“커피를 합시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차영환 바리스타님이 이 가게에 묻은 먼지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때로는 냉정하게.
“오유나 사장님은 사람이 참 재밌네요.”
때로는 단내나게.
이 모든 감정을 일사불란하게 소화하는 게 이민기라는 배우였다.
드라마의 평가는 더 봐야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민기라는 배우의 연기에 한해서 말하자면, 크게 흠집이라는 걸 찾기가 어려웠다.
‘……인정하기 싫지만, 잘하기는 한다. 나보다 더.’
김지환은 입술을 까득 깨물며 또 다른 자극을 얻었으며.
‘얼른 따라잡아야겠네.’
김태양 또한 느긋하게 드라마를 즐기되, 작은 경각심을 얻었다.
[카페 델 디아] 1화가 방영 전후로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는 모르겠다.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 자리에서 이민기와 함께한 네 사람의 각오만큼은 확연히 달라졌다.
* * *
카페 델 디아.
그 화제의 드라마가 대중의 앞에 훌쩍 다가왔다.
[제목: 스포有) 카페 델 디아 첫방 봤어?] [이민기 진짜 연기 잘하는 거 있지?원래 저런 냉미남 캐릭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자꾸 막 바뀌더라 ㅋㅋㅋㅋ
막 열혈 연기도 하고 코미디 연기도 하고 자기 혼자 다 함
드라마 끝나고 나니까 머릿속에 이민기밖에 안 생각나더라
이 폼이 쭉 가면 내 인생 드라마 될 듯 ㅋㅋ]
해외에서 커피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엘리트 바리스타로 활동하던 주인공이, 한국에 돌아와 카페에 스카웃되었다.
그리고 망해가는 카페를 되살리고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해 노오력한다는 이야기.
식음료를 소재로 한 드라마 중에서는 다소 평이한 스토리였다.
저러다가 라이벌이랑 서로 요리 배틀 좀 펼치고.
그러다가 연애 좀 하다 가게 대 박나고 완결 나겠구나 싶은 그런 거.
하지만 뻔한 플롯이기에 잘 먹히며, 뻔하기에 연기가 한층 더 중요했다.
여기에서 이민기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성진우 캐릭터 진짜 독보적이다]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그러했다.
[댓글(18개)] [진짜 잘하기는 하더라] [ㄹㅇ 드라마 내내 이민기 목소리밖에 안 떠오름] [김지환도 잘하기는 하는데 이민기가 너무 잘해서 묻힘 ㅋㅋ 그렇다고 김지환이 못 하는 것도 아니구] [이민기가 다 썰었음] [여자 주인공이 누구였는지가 기억이 안 남] [이름이 윤아 맞나?] [유나래]나머지 캐릭터들을 전부 묻어버릴 수준의 강렬한 캐릭터.
이민기의 [성진우]는 그런 캐릭터로 완성됐다.
애초에 노호연 감독이 이런 상황을 의도하기도 했다지만, 결국 이민기 본인이 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방영 전까지의 화제성도 있었기 때문일까.
[카페 델 디아]의 첫 시청률은.전국 9.2%.
수목 저녁 드라마치고는 무난하게 괜찮은 시청률과 함께 스타트를 끊었다.
평가 자체가 좋으니 추후 더 높은 시청률을 보일 성장세까지 가지고 말이다.
“후우.”
그 덕에 인생의 터닝포인트마저 마련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노호연 감독이었다.
머그잔을 손에 쥐고 후들후들 떠는 그에게 장태욱 PD가 웃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스타트가 좋군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예, 잘 만든 작품이니까요.”
노호연 감독이 이번 시청률은 정해진 결과였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만에 하나 망하면 어쩌나 했는데, 살았다.’
안도하다 못해 안도감에 온몸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해냈다.’
카페 델 디아가 그냥 작품이던가.
아니다.
영화계에서 한창 활동하던 노호연 감독이 드라마계에 출사표를 내고 처음으로 촬영한 작품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
감독은 현장의 그 누구보다도 무게감을 가져야 하니까.
하지만 내심 이거 망하면 어쩌나 싶은 참이었다.
“후후.”
장태욱 PD가 연신 웃으며 말했다.
“강물은 결국 바다로 흐른다고 했던가요? 역시 노 감독님이십니다. 영화계에서의 실력이 드라마라고 어디 가지 않는군요.”
마치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드라마에 도전했다는 듯한 말이었다.
아니다.
이번 작품은 노호연 감독 본인으로서도 큰 승부수였다.
대중은 그의 이적을 두고 도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도박에 가까웠다.
OTT 시장이 커지고 있는 지금, 해외로 진출한다면 드라마가 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야말로 몇 년 뒤의 미래를 내다본 선택이었다.
‘라고 온 사방에 그렇게 떠벌려뒀지만.’
주위에는 당당한 척했다만, 안 해본 일이라 망하면 어쩌나 했다.
간신히 살았지.
여기에서 한 사람의 공이 컸다.
“전부 감독님 덕입니다.”
“후후, 설마요. PD님과 민기 씨가 잘해 준 덕이죠.”
이민기였다.
작품 전반에서 이민기라는 걸출한 신인 배우의 덕이 컸다.
연기만 잘했으면 말을 안 하겠다.
[커피 드세요!]현장 분위기를 잡지를 않나.
[와! 커피남!]오디션 당시에만 해도 차마 기대조차 않았던 홍보까지 톡톡히 공을 세웠다.
기특하지 않을 수가 있나.
마음만 같아서는 볼에 뽀뽀라도…… 는 다 큰 남자라서 좀 징그럽고, 집이라도 한 채 사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럴 돈은 없으니 마음속으로만.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았다.
“PD님, 아직 7편이 남았습니다.”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16부작이니 완결까지 촬영할 분량이 7편이나 남았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를 것 같습니다.”
노호연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이 뜻밖이던 걸까.
아니면 겸손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장태욱 PD는 얼굴에서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해도 시청률은 떼놓은 당상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노호연 감독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이민기 배우님의 성진우라는 캐릭터 원툴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캐릭터의 힘으로 끌어가는 작품이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찍어 놓은 9화까지의 스토리가 그러했다.
여자 주인공이자 가게 사장인 오유나.
해외에서 영입해 온 엘리트 바리스타, 성진우.
원래 카페에 있었던 박힌 돌, 차영환.
이 셋의 티키타카가 작품 내용의 80%, 아니, 90%를 차지한다고 해도 좋을 상황.
“그게 걱정입니다.”
“특별히 문제 될 게 있을까요?”
장태욱 PD는 노호연 감독의 우려가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극에서 캐릭터가 중심에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작품은 이미 많지 않습니까. 플롯도 플롯이지만, 갈수록 캐릭터가 중요해지는 시대니까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만 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애초에 카페 델 디아가 특별히 엄청난 작품성을 의도한 예술 드라마도 아니고.
걱정은 기우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 말에 반박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노호연 감독은 재차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그 캐릭터성이 문제입니다.”
다음 순간, 노호연 감독이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캐릭터성이 흔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떤 말씀…….”
“PD님도 아시다시피, 아무리 잘 잡은 캐릭터라고 한들 카페 델 디아 10화부터는 연기의 색채를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
노호연 감독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갈등 아래 반목을 일삼았던 두 주연 바리스타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서로 미워하며 경쟁하는 연기로 잘 풀어왔지.
그 사이에서 여자 주인공이 갈팡질팡했고.
세 사람의 연기가 워낙 찰떡이었기에 승승장구했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그 둘은 서로를 인정했습니다.”
프랜차이즈 확장 일이 있고 작중에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년 사이 주인공들은 서로를 인정했다.
성진우는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사업을 어느 정도 인식했다.
차영환은 바리스타라는 직업의 사명감을 알았다.
서로가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상대를 잣대 삼아 성장한 것.
“이제 더 큰 경쟁자 앞에서 함께 손을 잡아야 하죠.”
그것이 바로.
[월드 커피 챔피언십]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게 꿈의 원두.
그 원두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협력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티격태격하는 연기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과연 두 배우가 이런 연기도 소화할 수 있을까요?”
노호연 감독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카페 델 디아]는 캐릭터성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작품이다.그만큼 캐릭터가 흔들린다면 작품의 매력이 바닥까지 추락하겠지.
그럼에도 연기의 변화가 필요했다.
처음부터 이럴 계획으로 만든 작품이었으니까.
9화까지의 키워드가 내부에서의 대립이라면, 10화부터는 협력을 통해 외부와 겨루는 것이었다.
대립은 잘해 주었다.
하지만 협력은 과연 어떨까.
‘중견 배우라면 이런 걱정은 안 하겠지만, 하필 두 사람은 신인이다.’
신인들은 연기의 스펙트럼이 좁을 때가 잦았다.
한 분야에서 탄산이 통통 튀는 것만 같이 생생하게 연기한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식은 전복죽처럼 밋밋할 때가 잦았지.
이게 신인 배우들의 숙제였다.
불편한 연기 스펙트럼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냐는 것.
‘여기에서 성장이 막혀서 평생 같은 캐릭터만 연기하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 뭐, 그런 경우도 한 방향을 극한으로 파고 나가면 다 수요가 생긴다만.’
어찌 됐든, 괜히 감독들이 신인 배우 기용에 인색한 게 아니었다.
하나둘은 잘해도 셋을 못 해서 발 연기 느낌이 들어버리니까.
“흠.”
장태욱 PD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감독님, 그래도 이민기 배우는 하다 보면 곧 잘하지 않을까요?”
“예, 당연히 잘할 겁니다.”
즉답.
찰나의 고민조차 없이 답변이 나왔다.
거의 음식이 싱거우면 소금을 넣으면 된다고 말하는 수준의 확신.
‘이 양반,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닌가?’
무한한 신뢰에 장태욱 PD가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지경인데 노호연 감독이 태연히 말을 이었다.
“민기 씨는 연기만 보자면 이미 신인보다는 5년 이상 활동한 기성 배우 느낌이니까요. 아마 시행착오 몇 번 겪고는 빠르게 적응할 겁니다.”
“그렇다면.”
노호연 감독이 단언하듯 말하려니 장태욱 PD가 턱을 짚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문제는 김지환 배우겠군요.”
“예, 그쪽은 전형적인 신인이니까요.”
과연 김지환이 잘할 수 있을 것인가.
캐릭터의 흔들림이 아닌,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평소 촬영장에서 보였던 이민기와의 관계를 떠올려 봤다.
‘음, 어색하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나.
골치 아프다.
“여차하면 시청률 상승이 아닌 연착륙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호연 감독은 한마디를 남긴 채 불안감을 삭히려는 듯 머그컵을 입가에 기울였다.
호로록.
그 모습이 썩 맛깔나게 비쳤던 걸까, 장태욱 PD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감독님, 그 커피, 맛있습니까?”
“천하일미죠. 한 잔 타 드릴까요?”
“아, 좋습니다.”
노호연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머신 앞으로 가더니, 천장에서 원두 봉투를 꺼냈다.
그런데 그 봉투 디자인이 독특했다.
“감독님, 다람쥐가 그려져 있네요?”
“예, 귀엽지 않습니까?”
“귀엽기야 합니다만…… 원래 디자인이 그런가요?”
장태욱 PD의 짙은 의구심이 깃든 질문에 노호연 감독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예, 이건 다람쥐 똥 커피니까요.”
“…….”
다람쥐 똥?
장태욱 PD의 얼굴이 검게 물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노호연 감독이 한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독특하죠? 이게 콘삭 커피라고 베트남에서 파는 특산품인데, 민기 씨에게 선물로 받았습니다.”
“흠흠.”
장태욱 PD가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예? 이거 맛있는데.”
“제가 습관성 장염이 있어서.”
“PD님, 오늘 아침에 짬뽕 드시지 않았나요?”
“예, 그래서 재발했습니다.”
* * *
그리고 이튿날.
[카페 델 디아]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여태까지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었다.왜냐.
“후후, 시청률 10%를 돌파할 줄은 차마 몰랐네요.”
시청률 10%의 벽을 뚫었기 때문이었다.
“이야, 9%에서 설마 했는데 바로 다음 화에 10%를 뚫어버릴 줄이야.”
그 말대로였다.
시작이 좋았던 덕일까.
금세 입소문을 타고 2화에서 10%의 벽을 뚫어 10.4%로 마감했다.
지상파 수목 드라마로서는 명실상부한 성공의 계단을 밟고 있는 상황.
“잘하면 카페 델 디아가 이번 분기의 승리자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여자 주인공, 오유나 역을 맡은 설하 배우가 해맑게 웃었다.
눈 설(雪) 자가 들어가는 예명에 걸맞게 한없이 순한 마스크를 자랑하는 그녀가 웃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박하게 물들었다.
“전부 민기 씨 덕분이에요.”
“제가 뭘요. 설하 씨랑 지환 씨랑 노 감독님이랑 장 PD님이랑…….”
“이름을 다 외웠어요?”
하지만.
정작 긴장감에 잠을 못 이룬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오늘부터 시작이구나.’
노호연 감독이었다.
잠을 못 이루다 못해 만성 식욕 부진과 변비를 함께 겪고 있는 그가 빈 허공을 보며 메마른 눈을 깜빡였다.
온 사방으로 커피 농장의 푸르른 밭이 가득했다.
이번 촬영을 위해 방문한 로케지.
전남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커피 농장인데, 작중에서는 남미 커피 농장으로 등장할 공간이었다.
“…….”
한없이 펼쳐진 싱그러운 녹빛을 응시하고 있기를 잠시.
‘할 만큼 했다. 해보자.’
노호연 감독은 마침내 결심을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3분 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