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66)
운빨로 탑스타-66화(66/200)
제66화
카페 델 디아.
성황리에 2화까지 상영을 마친 수목 드라마.
이 드라마의 구성을 따지자면, 크게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1부가 바로 한국편.
카페 델 디아 1호점에 부임한 [성진우]가 성공적으로 가게를 이끄는 게 그 내용이었다.
이어서, 지금부터 촬영하는 게 2부.
해외편이었다.
2년이 지나, 세 사람이 카페 홍보를 위해 월드 커피 챔피언쉽(WCC)에 참가해 수상을 노린다는 내용.
오늘 촬영할 분량은 그중에서도 극 초반부에 속하는 부분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손에 종이 뭉치를 든 노호연 감독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커피밭 한복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한 남자가 쭈구리고 앉아 커피를 봉투에 쓸어 담고 있었다.
사라락.
사락.
홀로 커피밭에 앉아 커피 열매를 쓸어 담고 또 쓸어 담는다.
초록 밭 사이에 흰 옷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하지만 딱히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고단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든든하네.’
헐렁하게 옷을 입혔건만, 원래 넓었던 등판 탓에 화보를 보는 듯했다.
‘음, 자기주장이 강한 어깨네.’
놀라울 따름이다.
얼굴 없이 어깨뼈만 가지고도 자기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라니.
저 등짝이 서서히 이민기라는 배우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되어가는 와중이었다.
저벅.
그 사이 커피밭 저 멀리서 두 사람이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이민기만큼 상체가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그 대신 길쭉길쭉한 다리와 쿨시크한 얼굴을 가진 남자.
그리고 길거리에서 사이비가 길 알려달라며 붙잡아도 차마 거절하지 못할 것만 같이 순한 얼굴을 가진 여성이었다.
[차영환] 역의 김지환과 [오유나] 역의 설하였다.‘아, 제발.’
노호연 감독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그래도 감독이라고 완전히는 못 감고 살짝 떴다.
‘잘하겠지?’
기껏 해 봐야 커피밭에서 열매 수확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다른 두 주연이 접근해 말을 거는 상황이다.
특별할 건 하나도 없는 장면.
어지간한 배우들은 다 쉽사리 소화하는 연기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장면이라고 이렇게 심장이 떨릴까.
‘대본 리딩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잖아. 제발 이상하게만 찍히지 마라. 무난한 정도라도 좋으니까 제발.’
0.5초.
발소리를 눈치챈 이민기가 일어나 뒤를 돌아봤고.
그 시선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민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고.
다음 순간.
모두의 심장이 조마조마한 그 순간.
“진우 씨.”
김지환도 마주하듯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거기 돈이라도 떨어져 있습니까?”
그 짧은 한마디.
아무렇지도 않은 한 마디에 노호연 감독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이상하다.
고작 인사하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노호연 감독은 가히 죽은 락스타가 부활해 샤우팅을 내지르는 광경이라도 목격했다는 듯 동공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그다음 장면은 더했다.
“영환 씨.”
그에 질세라 이민기의 입에서도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났다는 듯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은 좀 어땠어요?”
“한국?”
김지환이 입꼬리를 살짝 당기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쪽이 커피콩 찾겠다며 가게 비우고 떠난 덕분에 죽는 줄 알았죠. 그래서 뭐, 고맙단 말은 안 할 겁니까?”
“나라고 여기 놀러 왔나. 이게 다 일하러 온 건데 고맙기는 무슨.”
지극히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직장 동료 둘이 가볍게 주고받는 그런 대화가.
“공기 좋고 산 좋고 물 좋고.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내가 온다고 할 걸 그랬네요.”
그 사이로 설하도 끼어들었다.
“이 정도면 휴양지 온 거 아니에요?”
“설하 씨, 여기 인터넷 느려요.”
“어쩐지 진우 씨, 연락 잘 안 받으시더라. 그 포대, 저도 줘요.”
설하도 이어서 열매를 줍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밀려서 김지환도.
세 사람이 도란도란 열매를 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별거 아닌 장면이다.
그냥 대화 씬이다.
하지만.
‘자연스럽다.’
노호연 감독은 벌써 일곱 번째로 감격에 사로잡혔다.
자연스러웠다.
그냥 연기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세 사람의 캐릭터가 모두 무너지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그거, 썩은 열매, 아직도 구분 못 해요?”
[성진우]는 여전히 까칠했으며.“바리스타라고 이것까지 알아야 합니까?”
[차영환]은 불만이 가득했다.“또 싸워요?”
[오유나]는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끼었고.이 캐릭터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 친밀한 수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건 기적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러움이 생명이니까.
배우들이 서로를 조금이라도 어색하게 느끼는 순간, 시청자들마저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버리니까.
이렇게 작중에서 에피소드가 바뀔 때 캐릭터가 무너졌다며 하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기존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관계만 살짝 바꾼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오히려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면 모를까.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왜 극 중에서도, 극 밖에서도 서로 으르릉거리던 이민기와 김지환이 서로 자연스럽게 합을 맞출 수 있게 된 걸까.
그건 바로.
‘지환 씨, 느는 건 진짜 빨리 늘어.’
‘나를 띄우는 게 아니라, 상대를 관찰한 다음 그 안에 나를 끼워 맞춘다고 했지.’
두 사람이 지난 며칠간 적극적으로 소통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첫 방영일.
우연한 계기로 식사에 이어 드라마 시청까지 함께한 다섯 사람은, 어쩌다 보니 밤새 작품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기적이 일어났다.
‘지환 씨도 그렇게 막 까칠하지만은 않네.’
‘이 사람, 똑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시야가 넓네. 깊기도 하고.’
서로가 불편하기만 했던 관계에 조금이나마 균열이 일어난 것.
연기는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하던가.
지난 며칠, 김지환은 마음속 쌓여 있던 허물을 벗겨내고 그 너머로 나아갔다.
‘경쟁은 경쟁이지만, 배울 건 배운다.’
현실 속 배우들의 관계 개선이 작품 속에서도 반영된 셈.
하지만 놀란 건 이민기도 마찬가지였다.
‘최유창 선배님 말대로네.’
문득 이민기는 머릿속으로 [언제까지고 푸르른]을 촬영했던 시절, 천만 배우 최유창에게 들었던 가르침을 떠올렸다.
‘다른 역이라면 몰라도 주연을 맡은 배우라면 가능한 한 촬영장의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좋다고 하셨나.’
관계의 개선이 곧 연기의 개선으로 드러난다고 하였다.
마음의 벽이 있으면, 그게 작중에도 반영되고.
지금까지는 두 사람의 경쟁심이 스토리 속 [성진우]와 [차영환]의 관계와도 맞물려 떨어진 덕에 잘 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챕터에서는 한 발자국 나아갈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다다른 게 바로 지금이었다.
“진우 씨, 피부가 너무 탄 거 아닙니까?”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커피 원두도 볶으면 타는데, 겉이 타는 게 차라리 속이 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하하, 제가 속이 타서 찾아왔다는 겁니까?”
“조금 찔리셨나 봅니다?”
물론, 농담 속에서는 얼핏 앙금이 남은 듯하면서도 분명 친근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친구는 아니고, 악우 정도일까.
딱 그 정도의 변화다.
하지만 아주 분명한 변화였다.
바닷물과 강물의 변화만큼이나 확실한 변화.
“기왕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영환 씨, 이제 로부스타와 아라비카 정도는 구분하실 수 있겠죠?”
“하하, 아무렴 커피 한 잔에 5천 원 밑으로는 차마 못 팔겠다는 사람보다는 잘 알죠.”
“잠깐! 두 사람 다 기 싸움 그만하고요.”
“기 싸움이 아니라 영환 씨가.”
“좀!”
어느새 도로 싸우려 드는 두 사람을 보다 못한 오유나가 끼어들며 말했다.
“진우 씨, 멀리서 온 손님한테 커피 한잔도 안 줄 거예요?”
“……설하 씨가 옆에 있어서 다행인 줄 아세요. 따라오세요.”
가까스로 씬 하나가 끝났다.
재회 씬.
한국에서 있었던 소동 뒤, 2년 만에 재회한 그들의 만남이 빠르게 지나갈 무렵.
정신적으로 폭삭 늙은 노호연 감독이 쓰러지듯 몸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컷.”
* * *
[카페 델 디아]가 성공적인 방영을 이어나갔다.이튿날에는 시청률이 10%.
이미 평균보다 조금 넘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사실 드라마계에서는 첫 시청률보다는 그다음 주가 더 중요했다.
‘시청자들은 시청률이 상승하는 드라마만 기억하지만, 사실은 하락하는 드라마가 사실 더 많지.’
하락을 피해야 하기 때문.
첫 주에는 마케팅의 힘으로 본다고 해도, 다음 주부터는 그 드라마의 진짜 성적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업계인들은 셋째 주에서 판가름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카페 델 디아는 걱정이 기우라는 듯, 푸른 하늘을 뚫고 날아오르는 항공기처럼 시원하게 치고 나갔다.
[3화: 11.7%] [4화: 12.1%] [5화: 12.2%] [6화: 12.4%]하락도 유지도 아닌, 안정적인 상승세를 기록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카페 델 디아]의 성적이 정리되었다.
웰메이드 드라마.
엄청난 흥행작까지는 아니지만, 그 분기의 승리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준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것.
[노호연 감독이 한 건 했네] [이민기랑 김지환, 설하까지 셋이 케미가 장난 아님] [작품이 전체적으로 너무 풋풋함 ㅋㅋㅋ] [보고 있으면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지더라] [진짜 화나는 게 뭔지 알아? 이게 저녁 10시에 방영한다는 거.] [자야 되는데 커피 땅기게 하잖아 ㅋㅋ] [밤에 카페인 미쳐 ㅠㅠ]한국 국민의 불면증에 일조하는 건 덤이었고.
그렇게 성공적인 흥행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카페 델 디아의 성적에 주목하는 건 시청자들과 방송국뿐만이 아니었다.
마포구의 어느 번듯한 빌딩의 꼭대기 층.
대표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기 바쁜 남자가 있었다.
“대표님, 어제 말씀하신 자료 방금 막 정리해서 보냈답니다.”
“아, 고맙네.”
송진배 대표였다.
범천 푸드 컴퍼니(BFC)의 경영자로서, 전국민이 1일 1커피를 하게 만들겠다는 야욕을 품은 남자.
그가 커피를 가볍게 마시며 미리 지시해 뒀던 보고 자료를 드르륵 긁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군.”
[카페 델 디아]의 흥행 성적과 마케팅 추이였다.이 작품을 이용해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면 어느 정도 매출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것들.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그에게 비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설마 대표님께서 직접 확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홍보 자체는 하려면 무조건 하는 거지만, 기왕 할 거라면 똑똑하게 해야지.”
“섭외할 모델은 이미 정해 두셨나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송진배 대표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민기, 그 외에는 고려할 가치도 없어.”
이민기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카페 델 디아의 얼굴마담이라면 이민기 외에 다른 사람은 없으니.
그런 송진배 대표의 말에 비서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발표회 때 일이 많이 인상 깊으셨나 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진짜와 가짜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결국, 이 세상에서 끝에 통하는 건 진짜니까 말이야.”
“이민기 배우님이 바로 그 진짜라는 말씀이군요.”
“흔치 않은 진짜지.”
일개 배우를 향해 호평이 쏟아졌다.
그런 송진배 대표의 모습이 비서의 시선에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대표님이 연예인을 고평가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고작 드문 정도일까.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아무리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을 데려온들, 고작해야 일회용품 취급할 때가 대부분.
그러니 이민기는 예외 중에서도 예외라고 할 만했다.
‘그렇게까지 그 배우가 대단한가?’
잠시 머릿속으로 그의 연기를 떠올려 보았다.
흰 와이셔츠와 앞치마를 입은 채 커피를 끓이는 장면이 그럴듯하기는 했지.
곱상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어깨가 참 넓었던 게 기억 속에 콕 박혔다.
잘 어울렸지.
‘확실히 비주얼이 좋긴 해.’
불과 몇 주 사이에 인터넷에서 커피 끓이는 남자가 하나의 로망으로 떠올랐을 지경이다.
여기서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비서는 이민기에게는 별 관심 없었다.
오히려 설하가 더 좋았다.
‘세상 사람들이 와이셔츠 입은 여자는 멋있다는 걸 더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하얀 피부에 뒤로 질끈 묶은 생머리.
환하게 웃는 얼굴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번 드라마에서 설하가 두 주연에게 밀려 덜 주목받는 게 아쉬워 화가 날 정도.
‘쩝.’
이 세상에 커피 유행 제발.
제발.
와이셔츠 유행도 제발.
비서는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고는 송진배 대표에게 물었다.
“그럼 아예 오늘 중으로 소속사에 연락해 둘까요?”
“미팅 잡을 수 있으면 미팅으로.”
“예, 바로 컨택하겠습니다.”
용건을 마친 그가 대표실을 나가려는 찰나였다.
“하나만 더.”
송진배 대표는 그를 문 앞에서 불러세우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른 회사에서 먼저 컨택했겠지?”
“네, 아마도.”
비서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 드라마를 찍은 사람이 곧 관련 식품 광고를 찍는다는 건 하나의 정해진 전통과도 같았다.
이민기 정도쯤 되면 비주얼도 되겠다, 제안이 안 들어갔을 리가 없지.
어쩌면 이미 촬영을 마쳤을 수도 있고.
‘이럴 때는 나중에 위약금을 물더라도 선점하고 보는 게 나은데.’
송진배 대표가 지나치게 신중했으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속내를 다 말할 수는 없다.
비서는 나긋나긋 웃는 얼굴로 돌려 말했다.
“이민기 배우는 신인이라 조심하겠지만, 드라마의 추이가 워낙 좋으니 이미 협상 중일 가능성도 클 것 같습니다.”
“그렇군.”
송진배 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미 계약한 곳이 있으면, 해지 위약금도 같이 주겠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