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68)
운빨로 탑스타-68화(68/200)
제68화
갑작스럽게 일정이 취소됐다.
상대측에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는데, 딱히 이민기의 탓이라기보다는.
커피오.
그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의 모회사 대표 탓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쪽 대표님께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셔서……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이 있는데, 꼭 그쪽으로 맡겨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요. 예, 예, 정말 죄송합니다.]난데없다.
원래 광고 모델이라는 게 선정 단계에서 경영진들 팬심이 작용할 때가 많기는 하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촬영 일정 이틀 전에 교체하려고 들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배우님께도 사과의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 많이 준비하고 계셨을 텐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저쪽에서는 미안해서 넙죽 엎드린 행색이었고.
“허.”
이민기가 작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쪽 회사가 돈이 좀 많나 보네요.”
보통 이런 계약은 해지 시 선입금한 계약금을 몇 배로 되물어줘야 하는 게 기본인데, 그 정도는 푼돈이라는 건가.
잘은 몰라도 이미 그걸로 천 단위는 될 텐데.
회사 대표 정도 되면 이쯤은 덕질로 녹여버릴 수 있다는 건가.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상황에 이민기가 눈을 깜빡거렸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이네요.”
“…….”
“…….”
물론,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허공에 붕 떠버렸다.
[하하! 아디다스다!]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끼길 잠시.
서정우 이사도 아무렴 곤란하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비교적 흔한 일이기는 합니다. 마케팅 한 번에 수십억 이상도 쉬이 움직이니, 변덕을 부리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지요.”
그래, 아예 없는 일까지는 아니구나.
당황스럽기는 하나, 이민기 본인도 전생에 심심하면 계약을 취소당했던 사람이다.
이런 캔슬이 익숙하면 익숙했지, 낯선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상황이었을 뿐.
‘기껏 결심을 내렸는데.’
범천에서 보낸 제안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흘러가다니.
‘진짜 차인 기분이네.’
물론,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남에게 고백해 본 적이 없으니 차여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오히려 다행입니다.”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포커페이스를 되찾은 박한모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서 먼저 해지하자고 말을 꺼냈더라면 이쪽 상황이 더 곤란해졌을 겁니다. 배우님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망치고, 어쩌면 계약금을 먼저 물어줘야 했을 수도 있었는데.”
“기다린 덕분에 살았군요.”
“예, 오히려 저희 사 측에서 저쪽에 빚을 하나 지웠다고 해야 할지.”
하긴, 광고 하나 붕 띄웠으니 미안하겠지.
나중에 비슷한 일감이 생기거든, JC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할 테고.
‘잘 됐네, 잘 됐어.’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범천에서 제의가 왔다면서 연락을 받은 게 몇 시간 전.
통화로는 모자라, 직접 회의를 해 보자며 회의를 시작한 게 몇십 분 전.
이야기 대강 마치고 잡담 좀 나누다가 회의실에서 여기 나올 때까지 한 10분 정도 걸렸나.
그걸 못 기다렸더라면 손해가 어지간했겠지.
“음, 그럼 이쪽 제안 거절했다고 하고 범천에 가서 추가금 달라고 하면 되나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스갯소리나마 중얼거리려니 서정우 이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언젠가 들킬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디 하나 배신하고 왔다는 이미지를 남기는 것도 배우님에게 좋지 않고.”
다소 진지한 목소리였다.
계약으로는 작은 농담이라도 삼가려는 것 같아,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대충 상황이 그렇게 정리되었다.
이민기에게는 범천의 계약과 커피오 측에서 받은 위약금이 주어졌다.
JC 엔터는 커피오에게 작은 빚 하나를 남겼다.
짧은 인내를 발휘한 결과, 가장 좋은 상황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었다.
‘신기한 상황이야.’
속으로 상황을 정리한 서정우 이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 일은 뭐라고 해야 할까.
기껏 해 봐야 몇십 분간 대화 나눈 게 전부였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우 이사의 머릿속에 인상이 썩 짙게 남았다.
‘의리를 택하자, 실리까지 굴러들어왔다.’
최종적으로 이득만 남은 것 아닌가.
최선의 결과를 쫓아 범천을 택했더라면, 잃는 게 많았을 것이다.
반면, 선의를 선택하자 최선의 결과가 이민기의 앞에 떡하니 굴러들어왔다.
게임 속 숨겨진 선택지를 고른 것과도 같은 상황.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지.
‘운이라.’
어째서일까.
서정우 이사는 이번 해프닝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걸리는 점이 있었다.
‘민기 배우님은 이상하리만치 운이 좋단 말이지.’
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러했다.
하필 그의 친구이자 일류 패션 디자이너인 유규언 대표가 옆에 협력자로 붙어 있었다.
더불어 [캠퍼스 스토리]에 단역으로 투입했더니, 조연급으로 성장했지.
‘원래 단역 맡았어야 했던 사람도 급성 맹장염으로 자리를 비웠다고 했나.’
또 뭐였더라.
[언제까지고 푸르른]을 찍었을 때는 오디션장에서 즉석 특별 오디션을 제의받았다고 했었지. [카페 델 디아]는…… 이건 그나마 운이 덜했던 것 같다.제작발표회는 그냥 자기가 잘했던 거고.
‘정말 한결같이 운이 좋은 사람이야. 좋은 실력에 실력이 따라줘서 그런 건가?’
작은 위화감마저 느낀 서정우 대표가 곁눈질로 이민기를 바라봤다.
“태양 씨가 연어장을 진짜 잘 만들어요. 사실 연어장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요리 전반을 다 잘하시죠.”
“설마 배우님, 태양 배우님에게 집안일을 다 맡기고 계신 건 아니겠죠?”
“……그 정도는 아니고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재료비는 제가 내고 있어요. 후후, 윈윈 전략이죠.”
“너무 부려 먹지는 마십시오. 요즘 주부습진 생기셔서 놀랐습니다.”
그 성격 예민한 김태양과 친구가 다 된 것 같다.
김태양 쉽지 않은데.
잠깐, 그러고 보니 신인배우치고는 이상하리만치 인복이 따르는 것 같기도 하고.
‘천만 배우가 술 마시자고 꼬시는 사이라고 했나?’
데뷔하고 성공하니까 저렇게 된 건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돌이켜 보면 서정우 이사의 친구, 김아성 트레이너가 이민기에게 붙은 것부터가 하나의 운이었겠지.
‘뭐지?’
길을 걷던 서정우 이사가 우뚝 멈춰 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운이 엄청나게 좋은데.’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불운이라고 할 게 있었나.
있었다면 글쎄, 다온 오디션에 탈락한 정도일까.
‘하지만 다온은 또 다온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기획사니까 또 모르고.’
말 그대로다.
다온에는 문제가 있지.
바깥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만, 애초에 JC와 다온은 창업 시절부터 면밀하게 얽힌 곳이었다.
그렇기에 서정우 이사 또한 JC의 개국공신으로서 다온의 문제를 모를 수가 없었다.
김아성 트레이너가 다온을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그런 다온에서 떨어진 것도 그의 운이었다면 어떨까.
여기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이민기라는 사람이, 소소한 이윤을 따라 사람을 배신하지는 않을 성격이라는 것.
커피오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정우 이사가 여태껏 겪어왔던 누구들과는 달리, JC를 배신하지 않을 가능성도 좀 있지 않을까.
‘옆에 두고 지켜볼 만한 사람이다.’
또한, 이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성격이다.
재밌네.
이민기에 대한 평가를 다시 재정리한 서정우 이사가 자그맣게 웃었다.
운.
운이 좋은 사람이라.
그렇다면 운이 좋은 사람에게 꼭 맡겨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언젠가 그의 옆에 이런 사람이 생긴다면, 기필코 맡기려고 했던 그런 일이 말이다.
한참이나 제자리에서 고민하던 서정우 이사가 이민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사님?”
그런 그의 모습이 이상했던 걸까.
이민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부른 순간이었다.
“후우.”
서정우 이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민기 씨, 가는 길에 편의점 들러서 복권 하나 사 가죠.”
“네?”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이민기가 눈가를 꿈틀거리며 되물었다.
“복권이요?”
“예, 앞으로 제 복권은 민기 씨가 뽑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 당첨되면 당첨금은 반으로 나누도록 하지요. 그리고 다음부터 제 게임 속 뽑기도 대신 해 주십시오.”
복권에 뽑기라니.
영 기묘한 용건에 이민기가 서정우 이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사님, 생긴 건 엄청 실리주의적으로 생기셨는데, 의외로 이런 거 좋아하셨구나.’
* * *
광고라는 건 흔히 어떻게 진행되는가.
이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외주와 외주 그리고 또 외주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빛나는 게 광고대행사.
광고주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에 적합한 광고를 만드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단계 넘어가 광고대행사로부터 외주를 받는 존재들이 있었다.
영상 제작 스튜디오.
말 그대로 광고 영상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였다.
광고대행사 외부에 독립적으로 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부에 자체적으로 존재할 때도 있다.
스튜디오 반바지, 이곳 또한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축일까.
광고대행사의 업무는 크게 인바운드(외부에서 작업을 요청하는 것)와 아웃바운드(직접 뛰어 외부에서 받아오는 것)로 갈라지는데, 인바운드가 많을수록 유능한 광고대행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중 스튜디오 반바지는 전체 업무의 대다수가 인바운드인 회사.
즉, 먼저 찾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니 유능한 회사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런데 오늘 일이 문제였다.
‘범천이라.’
범천에서 광고 의뢰가 날아왔다.
범천.
범천이 무슨 기업인가.
긴 수식어가 필요 없지.
한국에서 커피 관련해서는 가히 대부라고 불러도 좋을 기업이다.
그런데 이 범천이라는 게, 광고주로서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진짜 사사건건 다 딴지를 잡던데.’
커피라는 게 현대 기업 마케팅의 상징 같은 것이라서 그런 걸까.
다른 기업이라면 적당히 컨펌하고 넘어갈 만한 일이라도, 범천은 끝까지 깐깐하게 따질 때가 잦은 탓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광고에는 특별히 더 열심히 만들어달라며 요구를 덧붙였다.
대체 뭘 얼마나 잘 만들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으음.”
반바지 스튜디오 소속 CF 감독.
권예린 감독이 한참이나 신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신인이네요.”
“네!”
그 말에 사무실 한쪽에서 펜을 놀리던 콘티 작가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이민기 배우, 요즘 엄청 핫하죠.”
최근 몇 달 사이 부쩍 인지도가 늘어난 이민기였다.
[카페 델 디아]의 효과였다. [언제까지고 푸르른]에서는 기억해 둘 만한 조연 정도였다면, [카페 델 디아]가 그를 명실상부하게 유명 신인의 자리에 올렸다고나 할까.아니, 남이 올리고 말고 할 것 없이 스스로 올랐다.
‘이대로 흐름을 이어나간다면 몇 년 안에 중견 배우로 자리를 잡겠지.’
권예린 감독이 드문드문 기억을 떠올리는 중인데, 콘티 작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민기 장난 아니에요. 제가 눈팅하는 커뮤니티에서는 다 난리에요. 요즘 신인 중에서는 최소 다섯 손가락에 든다고 말 나온다니까요?”
이쪽도 좀 관심 있나 보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마스크이기는 하지.
“마냥 조각처럼 잘생겼다기보다는, 앳된 소년 느낌이 공존해요.”
“……그 정도야?”
“막 우유 같은 느낌? 엄청 순수해요. 그런데 또 어깨는 장난이 아니라서. 후, 광고계에 뛰어들길 잘했다아…….”
그냥 관심 있는 정도가 아니었군.
아무래도 이민기를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극도의 팬인가 보다.
‘한창이네.’
한껏 애정이 드러나는 말들에 권예린 감독이 피식 웃었다.
그녀는 팬이 좋아서 신앙 고백하는 걸 그만하라고 막아 세울 만큼 박정하지는 않았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이 일의 활력소라는 걸 부정하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다음 말 만큼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문도 좋아요. 되게 겸손하고, 어딜 가나 나긋나긋 웃는다고.”
성격이 좋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권예린 감독의 이마가 꿈틀했다. 이어서 슬쩍 반박하듯 물었다.
“그건 그냥 소문 아닐까요? 갑자기 뜬 신인들은 대개 성격 나쁘잖아요.”
“아니에요. 이민기는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콘티 작가가 화들짝 놀라 손을 젓더니 말했다.
“그 지난번에 제작발표회 아시죠? 그것도 이민기가 현장 직원들한테 맨날 커피 만들어서 돌리다가 하자고 말 나온 거라던데요?”
“신인들은 원래 다 커피 돌리잖아요.”
“이민기는 달라요!”
“좀 커피를 고급 커피로 돌리나? 그 팬들이 조공으로 쓴다는 커피차 같은?”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요.”
다음 순간이었다.
콘티 작가의 입에서 좀처럼 믿기 어려운 말이 나왔다.
“걔는 자기 손으로 커피를 뽑아다가 돌린다니까요?”
“뽑아서?”
“네! 커피 머신으로 손수 뽑아서요.”
직접 뽑아서 돌린다고 한다.
거의 유니콘과 드래곤이 서울 하늘에서 명랑하게 뛰어놀았다는 것과 같은 수준의 말이다 싶은데, 콘티 작가가 거듭 말했다.
“저 카페 델 디아에 조명 일하는 친구 하나 있는데요. 이민기 배우님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대요.”
세세하다.
열띤 주장에 권예린 감독이 눈을 깜빡였다.
‘벌써 그렇게까지 미담이 돌아? 그냥 루머 아니야? 아니지, 마냥 루머라기에는 미묘하게 구체적인데.’
그럼에도 마냥 믿을 수는 없었다.
흔히, 업계인들 사이에서 도는 미담과 대중 사이에서 도는 미담은 다를 때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선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실제 현장에서는 천하의 XXX으로 찍혀 있을 때 또한 즐비한 수준.
‘애초에 같은 업계에서도 이야기가 다르지. 여기서는 XXX가 저기에서는 XXX일 수도 있고.’
그러하니 업계 경험이 쌓일수록 입소문이라는 건 마냥 신뢰하기 어려울 수밖에.
‘뭐, 사람 좋게 생기기는 했네.’
권예린 감독은 화면에 띄워 둔 이민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흠, 작가님은 이쪽 업계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죠?”
“올해로 6년 차?”
“그래요? 그럼 모를 수가 없지 않아요?”
물론, 광고대행사 사이에서 도는 소문도 다른 법이다.
“배우들 광고 좀 하찮게 보는 거.”
흔히 배우들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광고는 광고일 뿐, 작품으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것.
잠깐 얼굴이나 비추고 돈을 벌어가려고 한다면 모를까, 광고를 자기 커리어의 하나로서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음, 그런 분들도 계시기는 했지만요. 이민기 배우님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신인이시기도 하고.”
이 콘티 작가처럼 신인들은 그나마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지.’
절대 아니다.
오히려 CF를 찍을 만큼 단기간에 뜬 신인일수록 스타병에 걸려 있을 확률이 꽤 높았다.
[저 원래 이런 연기하는 사람 아닌데] [여기서는 그렇게 일해요?] [내일 아침에 촬영 있어서 그런데, 이쯤에서 끝내면 안 될까요?]전부 그녀가 직접 들어본 말들이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스타병을 나름 숨긴다는 신인들도 은연중에 귀찮은 티를 낼 때가 잦았고.
‘아예 무명 생활 오래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기는 한데, 이민기 배우는 빠르게 뜬 신인이라서 또 불안하네.’
참.
여기에 더불어 또 다른 미신도 있었다.
몸이 좋은 스타들의 경우, 대개 만나보면 인성이 안 좋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미신이다.
확신은 아니다.
하지만 관상학이 그러하듯, 경험주의에 입각한 판단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지만.’
권예린 감독은 속내를 숨기며 말했다.
“슬슬 아이디어 회의 시작할까요?”
“아…… 그게 조금만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카피라이터님 작업이 좀 느려져서요.”
“그럼 되도록 배우님 오시기 전에 최대한 체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집중해야 할 건 하나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
그것만이 프로의 일이다.
그렇게 긴장 반, 기대감 반으로 대기하기를 하루 하고도 반나절.
권예린 감독이 마주한 건 앞서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예의가 바르다거나 어떻다거나 하는 것과는 또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 말이다.
[죄송하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스튜디오에 견학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라고 배우님께서 여쭈셨습니다.]이민기의 예의라는 건 현장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