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74)
운빨로 탑스타-74화(74/200)
제74화
‘이상한데.’
얼굴을 후드로 푹 가린 남자의 모습에 이민기가 움찔 떨었다.
후드 정도는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예 검정 선글라스에 이어 마스크까지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감췄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손이 이상했다.
‘저거, 흉기라도 든 건가?’
신문지를 들고 있다.
이상할 건 없지.
하지만 이민기는 저 신문지의 용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푸르른 찍다가 봤던 그거네.’
스릴러 영화에서 주로 나오는 그것이었다.
안에 흉기를 감춰 놓은 신문지.
주로 피해자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애용한다.
후드티를 입은 남자의 손에 들린 신문지 뭉치가 딱 그 모양이었다.
‘설마.’
스릴러에 나오는 괴한 같은 건 아니어야 할 텐데.
이민기가 초면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경계 태세를 세운 사이.
그 사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찾았다.’
이민기를 지난 몇 주 동안 열심히 찾아다녔던 그였다.
물론, 어디든 찾으려면 찾지.
스튜디오에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이민기를 개인적인 장소에서 일대일로 만나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왜냐.
‘팔 한 짝만 날리면 3천이다.’
그는 그런 일을 하는 청부업자니까.
주로 사고로 위장해 사람을 덮쳐 물리적인 상해를 끼치는 청부업이 그의 주 업무였다.
운동선수의 아킬레스건을 은근하게 박살 낸다거나 하는 것들.
‘대상이 대상이라 그런지, 일당이 좋아.’
처음 제시를 받았을 때만 해도 땡잡았다 싶었다.
상대가 일반인이든 유명인이든 똑같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니까.
전문가의 눈으로 보자면 그게 그것이었다.
당장 이 일을 맡긴 의뢰주 또한 깊게 따질 생각은 없는 듯했고.
[아예 묻는 것까지도 아니고 팔 한 짝이라니, 저쪽에 원한이라도 있나 보네요.] [일에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아니요.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영화 재밌게 봤거든요. 아, 말하기 불편하면 안 해도 괜찮고요.]의뢰주가 했던 말이 가관이었다.
참으로 적나라한 표현이었다.
그냥 거슬리니까 팔 하나 꺾어 두고 싶다는 것.
자세한 사정이 뭔가 있겠지 싶다만, 하청업자가 이런 걸 캐물을 이유는 없다.
파리채는 파리채답게 돈을 받은 만큼 일할 뿐.
‘신인 연예인이 벌써 원한을 사고 다니나.’
의뢰주가 이쪽 바닥에서는 좀 유명하다던데.
하필 찍혀도 거기에 찍히나.
뭐, 다 떠나서 적어도 보수는 더 할나위가 없을 정도로 두둑하다.
이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산뜻했던 첫 시작과는 달리 그는 최근 기분이 영 좋지 못했다.
바로, 일이 영 순탄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자꾸 노선이 안 겹쳐서 죽는 줄 알았네.’
이민기가 이상하리만치 그가 사전에 알아봐 둔 장소를 피해 다녔다.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옆 골목으로.
스튜디오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박한모 매니저가 바래다주러.
단골 밥집 앞에 있으면 다른 사람을 대동하고.
사전에 일 준비를 몇 번이고 하고 검토마저 했거늘, 이민기가 유독 귀신같이 요리조리 어긋났던 것.
‘운도 참 더럽게 좋은 놈이야.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후드를 쓴 괴한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민기의 옆길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는 몸놀림으로.
단순히 지나치는 행인이라는 것처럼.
하지만 이민기의 솜털은 최신형 안테나처럼 삐쭉 서 있었다.
워낙 불행에 익숙했던 탓일까.
이민기는 본능적으로 불행을 피할 줄 알았다.
저벅, 저벅.
살짝 옆으로 경로를 틀어 괴한이 걸어오는 궤도를 자연스럽게 피해간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 손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되, 눈동자를 굴려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하지만.
그런 동작이 오히려 괴한을 자극했다.
‘눈치챘군.’
괴한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이민기를 단번에 제압할 양으로 신속하게 덮치려 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
우연이었다.
괴한의 발을 내디딘 곳에 우연히 비닐봉지가 하나 엎질러져 있었던 것.
그리고.
그게 우연히도 괴한을 넘어뜨렸다.
파사삭.
“으앗?”
괴한의 몸이 애꿎은 하늘 위로 예술적인 회전 궤적을 그렸다.
“쿠악!”
그대로 화려하게 넘어지며 콘크리트 바닥에 등짝을 찧은 괴한이 작은 단말마와 함께 손에 쥔 신문지 뭉치를 놓쳤다.
정확하게 이민기의 방향으로.
‘이건.’
이민기가 발로 차 신문지를 걷어냈다.
이어서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물건은,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손전등?’
손전등이었다.
그것도 그냥 손전등이 아니라, 딱 봐도 호신용품으로 쓰기 좋을 것 같은 손전등.
내구성을 보강하듯 덕지덕지 붙은 강화 플라스틱 파츠들이 척 보기에도 위협적이다.
격한 동작에서도 손에서 놓치지 않게끔 질긴 손잡이도 덧대 두었다.
여기에 일반 손전등보다 그 길이가 한층 더 길기까지.
정확한 모델명은 [일지전산 HX-1]
이민기가 이걸 왜 아는가.
‘촬영 중에 봤던 거잖아.’
[언제까지고 푸르른]을 촬영할 당시, 현장에 갖춰 두었던 소품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최종적으로 긴박감이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도 정도는 숙지했다.
‘플래시로 사람 시선을 빼앗고 봉으로 두들겨 패는 용도라고 했던가.’
호신용품이다.
야구 방망이처럼 마구 휘둘러 사람 패기에 좋지. 생긴 건 저래도 적어도 사람 머리 하나 못 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물건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흉기로는 잡히지 않는다는 것.
‘어지간한 삼단봉보다 위협적인 주제에 법적으로는 안전해서, 범죄에 종종 이용된다고 했지.’
뭐였더라.
사람 두들겨 패놓고 잡혔을 때 둘러대기 좋다나.
감독의 말로는 이쪽 업계 전문가들이 종종 활용한다고 들었다.
만에 하나 적발되더라도 상호 폭행으로 둘러댈 수 있다고.
‘이게 왜 여기에?’
이민기가 움찔 놀라서는 그걸 집어 들고 살폈다.
의심이 이내 확신으로 변했다.
확실하다.
내가 아는 그거 맞네.
‘감독님이 농담하신 건 줄 알았는데.’
설마 그때 들었던 말들이 진짜였나.
황당한 기분에 취하면서도 앞을 바라보자, 그곳에서는 어느새 자세를 다잡은 괴한이 충혈된 눈으로 이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이민기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벅.
한 손에 손전등을 쥔 이민기가 은근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명백히 경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행동.
괴한은 이를 악물 뿐이었다.
‘젠장.’
내심 환장할 노릇이었다.
프로씩이나 되어서 업무용 도구를 표적에게 뺏기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지.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여태껏 이 일로 밥을 벌어먹으며 그간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누가 들으면 고개도 못 들고 살겠다.
‘그래도 일은 일이다.’
괴한이 이를 악물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물어야지.’
그깟 도구 하나 없다고 일을 거를 수는 없다.
맨몸으로 배우 하나 못 담글 일은 만에 하나 없다.
……라는 생각으로 달려들려는 찰나.
“아!”
“……!”
이민기가 큰 목소리로 외치며 괴한의 얼굴을 향해 손전등의 불을 켰다.
촥!
한순간에 거리 전체를 대낮으로 변했다.
딱 실명만 하지 않을 만큼의 강력한 광량이 괴한의 안면을 향해 쏟아졌다.
호신용 손전등 HX-1.
본디 강력한 빛으로 상대의 시야를 빼앗고, 그사이 후려치고 도망가라고 만든 물건이 지금 제 기능을 발휘했다.
“……큭!”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괴한이 몸을 크게 휘청였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한 것.
그가 허우적거리는 찰나의 순간 이민기가 한 생각은 둘이었다.
‘달아나? 아니면 제압해서 경찰에 넘겨?’
도망친다면 지금이다.
다만 상대방이 달아나거든 정체를 캘 수는 없겠지.
반대로 이 자리에서 제압을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추가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얼굴에 기스 하나라도 나면 상품 가치가 추락하는 배우로서는 영 좋지 못한 도박이겠지.
더욱이 아직 실질적으로 상해를 끼친 것도 없으니 시비를 가리기도 어려울 테고.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그냥 도망치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자.’
이민기가 전자로 생각을 굳힌 찰나였다.
“이 새X가!”
어느새 정신을 차린 괴한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안 도망가고 기다려 줘서 고맙다.
사태가 좀 꼬였지만, 아직 안 늦었다.
‘넌 죽었다.’
그가 호주머니 속으로 잡힌 너클을 손에 쥐고 이민기를 노려본 찰나였다.
“……!”
골목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의 모습에 괴한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젠장.
모습을 들키면 영 좋지 못할 인물이 저쪽 구석에 서 있었다.
기다란 팔다리에 세상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얼굴.
이번 의뢰주가 발각되지 않게끔 조심하라며 몇 번이고 강조한 인물이었다.
‘크윽.’
꼬였다.
너무 꼬였다.
이보다 더 꼬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꼬였다.
괴한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하기를 잠시.
“쳇!”
그대로 몸을 뒤로 돌리고는 바닥을 거세게 박차며 달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
뜬금없이 골목 한복판에 남은 이민기가 멍한 표정으로 괴한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뭐지?’
내가 도망치려고 했는데, 저쪽이 먼저 달아나버렸다.
뭐지.
저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거지.
나한테 뭘 하려던 거지.
감이 안 오네.
‘설마 연예인이라고 노리는 사람까지 생긴 건가.’
우선 납치해다가 협박해서 돈을 뺏으려고 한다거나.
옛날에 봤던 그 영화 뭐더라.
‘아, 인질극.’
인질극이라고. 그거 생각나네.
괴한들이 천만 배우를 납치해서는 인질극을 벌인다는 그런 내용.
비슷한 일을 당할 뻔했던 건가.
‘경찰에 신고를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JC에다가도 알려야겠고.’
썩 꼬이는 사고 속에서 이민기가 좀처럼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와중이었다.
“거기서 뭐 해요?”
한 남자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흠칫.
앞서 마주했던 괴한 탓에 이민기가 귀신이라도 목격했다는 듯 소스라치며 뒤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지환 씨?”
그렇다.
골목 반대편에 서 있는 건 김지환이었다.
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영화 찍어요? 스릴러?”
“그런 건 아닌데…… 비슷하게 될 뻔했죠.”
이민기는 이 상황이 농담을 던질 상황이 맞는지 아리송한 기분에 잡히면서도 마저 물었다.
“그건 그렇고, 지환 씨가 여기에 왜 있어요? 이 근처 사셨나?”
“아니, 나 역삼 살지.”
아 역삼.
좋은 곳 사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왔나.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아 이민기가 재차 인상을 찌푸린 찰나였다.
“진짜 기억 안 나요?”
김지환이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웃긴 사람이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영화 한 편씩 보면서 공부하자고 자기가 먼저 말해놓고는.”
“아.”
그거.
이민기가 순간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보통 그거 말했다고 약속도 안 잡고 바로 오나.’
밥 먹는 자리에서 슬쩍 이야기했다고, 자세한 연락도 없이 바로 찾아온다고.
영 사고관이 이상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김지환의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밤길에 사람 한 명 있으니까 마음이 좀 놓이네.’
이민기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말했다.
“우선 경찰에 신고 좀 하고요. 참, 그리고 저 헬스도 좀 다녀오고요.”
우선은 헬스다.
* * *
하지만.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에게는 마땅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마땅히 현장에 증거라고 할 게 남지 않았을뿐더러, CCTV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
‘귀신한테 홀린 것 같네.’
조사는 하겠다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나.
어쩌다 보니까 경찰한테 눈도장만 찍고 왔다.
조금 과분하게 친절하기도 했고.
‘한국 경찰은 불친절한 줄만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네.’
어찌 됐든 별 소득 없이 일단락이 나려나 싶은 찰나, 반응한 사람이 달리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JC 엔터.
이곳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서정우 이사였다.
별명으로는 공성의 서정우.
그가 이민기가 겪은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
“요즘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단순히 소속 배우가 사고를 당할 뻔해서 우려를 보인다기에는, 그는 어딘가 명확히 짚이는 바가 있는 눈치였다.
심지어는.
누가 범인인지까지도 말이다.
“혹시 이런 일이 잦았나요?”
이민기가 이 자리에서 업계 뒷사정을 듣는 게 아닌가 콩닥거리는 심장을 감추며 물은 순간이었다.
“잦았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서정우 이사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눠야겠습니다.”
“대표님이요?”
수성의 구인모?
여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의 이름에 이민기가 움찔한 찰나, 서정우 이사가 말을 이었다.
“이런 일은, 대표님이 전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