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75)
운빨로 탑스타-75화(75/200)
제75화
콩닥콩닥.
이민기의 가슴이 잠시도 쉴 줄 모르고 거세게 뛰었다.
요즘 들어 간이 썩 두둑해진 그이거늘, 왜 지금은 진정이 안 되는가.
그 이유를 말하자면, 업계의 전설을 마주할 순간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구인모 대표를 내가 정말 만나는구나.’
구인모 대표.
JC라는 엔터 기업의 수장이자, 서정우 이사와 함께 JC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를 대표하는 별명이 있었다.
[수성의 구인모]공성의 서정우가 연예인을 데려오는 데 집중한다면, 수성의 구인모는 그 반대.
이미 데려온 연예인이 나가지 않게끔 막는 데서 크게 유명세를 떨쳤다.
‘JC에 불만이 가득하던 사람조차도 우선 구인모 대표를 만나면 JC 찬양론자로 변모한다는데, 그게 거의 마법이라던가.’
연예인이 한번 회사에 불신이 박히면 그걸 회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데, 어떻게 했기에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걸까.
이민기 또한 무명 배우 시절 그의 명성을 달팽이관이 마모될 만큼 익히 들었다.
수성의 구인모.
한번 듣자마자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한테 별명이 붙는 게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잘나가기도 한다는 거니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인간으로서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기에 그게 가능할까.
‘팔다리가 한 6개쯤 달렸나? 눈코입도 2개씩이고? 아니지, 눈은 원래 2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언론에 노출이 없었지.
사진 한 장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 멋지게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겠지? 목소리는 중저음이라서 듣기만 해도 팍 신뢰가 가고.’
회의실에 앉아 갖은 상상에 빠져있으려니 서정우 이사가 입을 열었다.
“배우님이 대표님을 뵙는 건 처음이죠?”
“아, 네.”
“대표님께서 바쁠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 출근하실 때가 잘 없지요.”
서정우 이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 밖에 계실 때가 기본입니다. 자못 대표라면 회사 밖에 있어야 제대로 일하는 거라는 게 대표님의 신조라서.”
그런가.
이민기가 작게 감탄했다.
‘자기 신념이 있는 사람은 다르구나.’
사실, 굳이 태클을 걸자면 걸 수는 있는 말이었다.
대표가 회사 밖에서 나돌다가 내부에 싹튼 불만을 놓쳐 망친 회사가 한둘인가.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회사를 키웠으니, 결과주의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별문제가 없는 게 사실.
“아마 이번에 만나 뵙거든,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럴까요?”
“예,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독특한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대표님은 재밌는 분입니다.”
서정우 이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웃음에는 악동의 그것마저 섞여 있었는데, 이민기는 그 이유를 불과 몇 분 뒤 알 수 있었다.
“아이씨.”
회의실로 들어온 사람.
그러니까 선글라스를 끼고 검게 탄 피부에 팔뚝에는 문신이 그득한 사람이 들어오며 말했다.
“왜 바쁜 사람을 회사로 오라 마라 난리야. 회사가 와야지.”
“…….”
이민기의 뇌가 순간적으로 마비되었다.
‘이 사람 누구지.’
말투가 좀 걸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봐도 완전 네이티브다.
껄렁거리는 자세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네.
백번 좋게 말해도 회사생활과는 안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인데.
어디 마카오 뒷골목 투기장에서 사람 팬다면 모를까.
‘들고 온 검정 봉다리는 뭐지? 밀수품? 잠깐, 이사님은 왜 가만히 계시지?’
여전히 사고가 현실을 못 따라가는 찰나, 서정우 이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배우님, 대표님이십니다.”
“예?”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이민기의 대뇌에 마비가 찾아온 참인데, 서정우 이사가 이번에는 건달 같은 남자를 향해서 말했다.
“대표님, 이민기 배우님입니다.”
“알아.”
아, 저쪽이 대표님이 맞나.
맞는 거 맞나.
정말 맞나.
이민기의 의구심이 한층 지독해진 사이, 서정우 이사가 한층 깊게 웃었다.
‘역시.’
JC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이 반응 보는 게 하나의 소소한 낙이었다.
* * *
완벽한 방음 솔루션을 거쳐 안팎으로 들어오는 소음도, 새어나가는 소음도 없는 회의실.
그 적막하기만 한 실내에서.
“잘생겼네.”
구인모 대표가 입을 열었다.
“작품 몇 개 봤는데, 실물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예, 민기 배우님이 비주얼이 좋습니다.”
“정우가 사람 보는 눈은 참 쓸만해. 조만간 화보 하나 찍자. 정우야, 뭐가 좋을까.”
“가구는 어떨까 싶습니다.”
“가구? 그래, 가구 괜찮네. 침대나 실내조명 같은 거. 프리미엄급 배우를 만들려면 프리미엄급 광고를 찍어야지.”
이민기를 병풍처럼 세워 둔 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말하는 걸 보니까 대표가 맞나 보다.
맞네.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자면 여전히 믿기 어려울 따름이었다.
예를 들자면.
치익!
꿀꺽꿀꺽.
“크아!”
회의실에 맥주캔을 가져와서는 까고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뭐지?’
아까 검정 봉다리의 정체가 저거였구나.
어쩐지 올록볼록하더라니, 그 안에 맥주캔이 한가득 차 있었구나.
‘아, JC의 미래는 대체 어디로.’
대표씩이나 돼서 회사에서 맥주캔을 까고 있나. 아니지, 오히려 대표니까 저럴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초장부터 놀란 덕에, 앞으로는 이보다 놀랄 게 없겠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배우님도 드실래?”
구인모 대표는 그 놀람의 역치를 불과 말 한마디로 깨부수는 데 성공했다.
“……사양할게요.”
“다이어트 때문에 그러나?”
아니.
다이어트 때문이겠냐.
보통 이 경우에 다이어트를 떠올리나.
회의실에서 술을 깐다는 행동 자체도 떠올리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
이민기의 거절에 구인모 대표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더니 말했다.
“에이, 이런 진솔한 이야기는 술이 좀 들어가야 나오는데.”
그래, 이야기하려고 만났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싶은 찰나 구인모 대표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정우 이사한테 듣기로는 뭐, 집에 가다가 괴한한테 습격을 당했다고?”
“아, 그게, 네.”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행 도구는…… 손전등이었고?”
“네, 호신용으로 설계한 제품이었어요.”
“혹시 상대방 얼굴은 봤나?”
“아니요. 모자 쓰고 있었어요. 마스크도 썼고.”
“전문적인 놈이네.”
구인모 대표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추측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눈치.
턱을 짚던 한순간 날카롭게 눈빛을 번뜩이더니 서정우 이사를 향해 말했다.
“사실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왔는데, 정우 생각에는 어때? 그놈 같지?”
그 말에 서정우 이사는 눈을 깜빡이기를 잠시, 동의하듯 말했다.
“예, 제 생각에는요.”
“이런 짓을 할 놈이라면 뻔하지.”
“흔치 않기는 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결론에 다다른 듯했다.
공감대에서 벗어난 이민기, 그만 홀로 작게 의문을 띄운 찰나 구인모 대표가 입을 열었다.
“배우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우리만의 오프 더 레코드로 해야겠는데, 비밀 간수할 수 있지?”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에 이민기가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부터 그가 듣게 될 말은, 이 업계에서 머무른 지난 시간 귀에 담아왔던 그 어떤 말보다도 은밀한 것이리라는 사실을.
“그래, 말해 보자고.”
구인모 대표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범인은 아마 황인구다.”
“네?”
예상치 못한 이름에 이민기가 움찔했는데, 구인모 대표가 말을 이었다.
“다온의 황인구, 그놈이 아마 뒤에서 사주한 놈일 거다.”
다온 엔터.
불과 얼마 전까지 이민기가 꿈에서도 그려왔던 에이전시의 이름이었다.
몇 년이고 들어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던 그 이름, 다온 엔터가 구인모 대표의 입에서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이 바닥 최고의 개X끼지.”
아주 적나라하게.
* * *
“배우님, 원래 연예계 사업이 깡패들이랑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거 아나?”
구인모 대표의 입에서 원론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요즘은 덜하지만, 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깡패 자본이 상당히 섞여 있었지. 요즘은 좀 세련된 방향으로 흘러갔고. 주로 유흥 쪽으로. 한 번쯤은 들어봤지?”
“그건.”
이민기가 고민하기를 잠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느 정도요.”
그냥 들어만 본 정도일까.
한국 연예계가 발칵 뒤집히기까지 했었지.
‘거대 엔터와 관련된 연예인의 상당수가 어두운 돈으로 엮여 있었지.’
사채, 도박, 약, 나아가 성 산업까지 다채롭게 엮여서 아주 난장판이 났었다.
하루하루 기사에 대서특필되지 않은 날이 드물었을 정도로.
하지만 나라가 뒤집힐 만큼 시끌벅적했던 것치고는 그 결말이라는 게 다소 미적지근했었는데.
[용의자 Y,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몇몇 핵심 관계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풀려났다는 게 그러했다.
덕분에 검찰까지 연예계와 한통속이라고 말이 나왔던가.
‘법 위에 사는 천룡인이라고 말 많았는데.’
더러운 돈은 시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형태가 조금 바뀌었을 뿐.
아직은 터지지 않았지만, 터지기까지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다.
길어야 3년 정도일까.
‘너무 태평하게 지냈나.’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에 이민기가 새삼스러운 감정마저 느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범인은 누구였을까.
당시 그 거대했던 논란에서도 잔가지만 쳐냈지, 뿌리는 이름 한 글자도 안 밝혀졌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는데.
과연 얼마나 잘나가는 놈이었을까.
‘국회의원 정도 되려나? 검찰에서도 묻었다고 하니까.’
업계에서 계속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까.
작게 호기심을 곱씹고 있으려니, 구인모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 뒤에서 군림하는 게 황인구다.”
“쿨럭!”
이민기가 기침을 터뜨렸다.
“황인구 대표가요?”
“뒤에 안 엮인 놈이 없어. 황인구 대표랑만 트면 한국에서 진출 못 하는 사업 분야가 없는 걸로 유명하지. 정치 쪽으로도 발이 좀 닿아 있고.”
“혹시 검찰 쪽도요?”
“응? 어.”
아니, 이게 바로 나온다고?
이건 좀.
아무리 그래도 잠깐은 추리할 시간 정도 줘도 되잖아.
너무 불쑥 정답지를 던져버리나.
“그래, 민기 씨도 놀랐겠지. 설마 그 다온의 황인구 놈이 뒤에서 깡패놈들 돈줄 겸 포주 노릇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네, 실제로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로 생각 한번 못 했던 이름이라.
내가 얼마 전까지 꿈꿔왔던 회사 대표가 범인이었다니, 좀 놀랍네요.
“옛날부터 알았지. 음흉한 새끼. 배우가 커피 좀 타 달라 부탁하면 침 뱉고 담뱃재도 섞던 새끼. 지가 사고 내놓고 막내한테 짬 처리 치던 새끼.”
“……좀 디테일이 있는데 잘 아시는 사이인가 보네요.”
이민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려니 구인모 대표가 아련한 건지 찝찝한 건지 모를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나 그놈이나 옛날에는 비슷한 밑바닥부터 시작했거든. 그래서 좀 알지.”
“맞습니다.”
서정우 이사도 옆에서 곁들였다.
“배우님은 요즘 세대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과거 저희 대표님과 그쪽 대표 둘을 합쳐서 구인구라고 업계인들 사이에서 유명했습니다.”
“야이, 뭘 그런 말을 해.”
그런 별명도 있으시구나.
그러고 보니까 이름이 비슷하기도 하고.
“크흠, 그냥 떠드는 말이야. 떠드는 말.”
“감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미친개 황인구와 사냥개 구인모. 업계인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요.”
미친개? 사냥개?
저건 좀 황당한데.
‘이 바닥 사람들은 닉네임 하나씩 짓는 게 관례인가?’
무협지 별호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의 유치한 놀음에 이민기가 슬슬 회의감을 느끼려는 참인데 구인모 대표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아무튼, 이야기만 들어보면 그쪽에서 자주 쓰는 방식이야. 맘에 안 드는 사람이 눈에 밟히면, 적당히 고장 내서 업계에서 자발적으로 나가게 만드는 거.”
“황인구 대표의 짓이라는 건 확실한가요?”
“100%는 아니야. 애초에 물증이 없기도 하고.”
100%는 아니라는 건, 그에 근접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다음 순간.
구인모 대표가 맥주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깍지를 끼더니 말했다.
“배우님, 알겠어? 아마 앞으로도 피곤할 일이 생길 수 있어.”
“아마 그렇겠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이번에는 미수로 끝났지만, 또 누가 덮친다거나 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렇지.
한번 일어난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단순히 우연이 아니었다면, 언젠가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이민기는 구인모 대표의 시선에서 이상한 감정을 읽었다.
어쩌면 그가 업계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감정을.
떠나는 것.
그리고 위협이 무서워서 잠적하는 것.
‘과연 그게 답일까.’
이민기가 모처럼 상념에 잠겼다.
지금, 이 업계에는 거대한 악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또 그 악이 그에게도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그렇다고 해서, 떠나는 게 답일까.
‘떠나면 과연 날 안 건드릴까.’
불확실하다.
하지만 설령 누군가가 건드릴 것 같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는 게 맞을까.
가해자가 두려워 피해자가 떠나는 게 정말로 정답일까.
‘배우 일을 접는다고? 이제 드라마에서 첫 주연 맡으면서 업계에 자리를 잡을락 말락 하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
설령 목젖 앞까지 칼날이 들어오더라도 오더라도, 일단 끝을 보겠다고 결심한 이상 관두지는 않는다.
죽어도 한다.
아니, 실제로 죽었어도 돌아와서 한다는 게 배우 일이지 않나.
“끝까지 가고 싶어요.”
돌아서지 않겠다.
그런 다짐을 하며 구인모 대표의 눈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맞아,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또 예상외의 것이었다.
패배주의도 은퇴 권유도 아닌.
완전히 다른 말.
“자기들끼리 해 먹는 건 남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겠다만, 내 연예인을 건드려?”
구인모 대표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개X끼, 이번엔 선을 제대로 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