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78)
운빨로 탑스타-78화(78/200)
제78화
[예, 그럼 일정을 조율해 놓겠습니다.]김도하와의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그것도 썩 빠르게.
원래 이런 기획은 양쪽과 동시에 스케쥴을 조율해야 해서 중간에 어긋나면 기획 자체가 증발할 때가 많다는데, 중간에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김도하가 배우님의 팬이라고 합니다.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재촉했다네요.]저쪽에서 이민기와의 인터뷰를 두고 열의를 불태웠다나.
‘운이라면 운인데, 영 달갑지는 않은 운이네.’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김도하가 자기를 좋아한다니까 영 기분이 어색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면 이런 호의라도 너무 기뻐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겠지.
하지만 이제 안다.
김도하라는 사람의 추악한 본질을 아는 만큼, 마냥 기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뭐, 됐다.’
이런 골치 아픈 일보다는 우선, 더 좋은 일에 시선을 두기로 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내가 여기에 내 발로 오는 날이 올 줄이야.”
집이었다.
이민기는 잠깐의 여유를 십분 활용해, 오랜 시간 만나지 않았던 가족들을 만나기로 한 것.
굳이 정정하자면 이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함이 정확했다.
‘그동안 바쁘다고 미루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
너무 미뤘다.
생각해보면 이민서를 만났던 게 벌써 두 작품이나 전이었나.
[캠퍼스 스토리]를 찍은 직후였으니까 벌써 시간이 반년도 넘게 지났지.이쯤 되자 슬슬 가족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게 가슴 한켠에 찜찜해졌다.
‘동창회까지 나갔는데, 가족들 얼굴이라고 안 볼 이유가 있겠나.’
멀리서 보이는 빨간 벽돌집에 부스러진 벽돌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의 흔적만큼 닳은 게 그에게도 아픈 구석이기도 했다.
정말 오랫동안 피해왔으니까.
물론, 피했던 데는 그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지만.
[아들, 우리 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응원하고 싶은데, 배우는 조금 아닌 것 같아.]부모님이 그의 연기 활동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탓이었다.
[집안 환경 좋고 예쁘고 잘생긴 애들도 대부분 무명 배우라잖니.] [이번에는 네 엄마 말이 맞다.]그가 배우로서 성공할 가능성을 1%도 점치지 않는 듯했다.
“……으음.”
추억 한 귀퉁이에서 잔소리를 떠올린 이민기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옛날에는 저런 말을 들을 때 부모님이 자길 무시하는구나 하는 억하심정이 있었다.
실패하리라고 확신하나보다 했지.
하지만 실제로도 그게 맞았으니 할 말이 없다.
‘10년은 족히 고생만 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죽었으니, 참, 괜히 어른들이 어른이 아니야.’
어찌 됐든, 이제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의 그는 달라졌다.
신인 배우로서 명백히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니까.
단역부터 시작해 영화 조연, 이어서 공중파 드라마 주연까지 맡았다.
보충제 광고에 커피 광고까지 연달아 성공시켰으니 이제 명백히 성공한 신인 배우의 반열에 든 셈.
‘누가 봐도 성공한 모습이겠지.’
이게 중요했다.
객관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오르는 것.
원 히트 원더가 아닌, 지속 가능한 성공을 얻었을 때 가족들을 당당히 마주하고 싶었다.
나도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그거야말로 지난 생, 이민기라는 사람이 오랜 기간 꿈꿔왔던 꿈이었으니까.
‘……좋아, 이제 한 걸음이다.’
수백 걸음을 슬슬 피해서 돌아왔지만, 이제 몇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저기 집 안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열고.
부모님을 당당하게 마주하면 된다.
실패한 자식 이민기가 아닌, 자랑스러운 아들 이민기로서.
“…….”
그래도 누나 없이 셋이서 만나는 거라 좀 그렇네.
하지만 가족이 셋이서 보는 게 뭐가 이상하겠나.
어색하게 생각하는 게 어색하다.
“후우, 훕!”
다시 용기를 내 보려는 찰나였다.
“사장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쪽 구석에서.
골목 변두리 어딘가에서 우연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꽤 험악한 목소리가.
“우리라고 없는 돈을 땅 퍼서 빌려준 게 아니잖아. 그렇게 나오면 사람이 힘들어져. 알아?”
“저기, 조금만 더 시간을.”
“딱 구체적으로 말해 봐. 얼마나 기다려 주면 갚을 수 있는데?”
“다음 달이면 들어오는 돈이…….”
“그 말을 지금 내가 한 다섯 번 정도 들은 것 같네. 한 번만 더 들으면 달달 외우겠어.”
자세히 듣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하나 더.
‘아버지?’
익숙한 목소리이기도 하였다.
그 목소리에 홀린 듯 발뒷꿈치를 들고 걸어가자,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아버지였다.
그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인 채로 다른 중년 남자의 앞에서 연신 머리를 낮추고 있었다.
“자식도 있잖아. 정 돈이 없으면 자녀분한테 돈 좀 꿔달라고 해 보시던가.”
“그건 어렵습니다.”
“왜, 서로 남남이야? 설마 사장님, 연락도 안 하고 살아?”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일이 있어서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곧바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숨통이 조여오는 것만 같은 말들.
그걸 불편한 사람처럼 골목에 몸을 숨긴 채 한쪽 귀로 훔쳐 듣기를 잠시.
‘…….’
이민기가 발을 옮겼다.
정면으로.
기왕 돌고 돌아서 온 길, 앞으로 몇 걸음만 더 돌아서 가 볼까 고민도 해 봤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빚, 제가 갚을게요.”
정면으로 걷고 싶어졌다.
“저건 또 누군데?”
건너편의 험상궂은 남자가 인상을 찡그린 순간, 이민기가 모자를 벗었다.
“……!”
슬슬 얼굴이 신분증이 될 시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명함을 던져도 되고, 자기 이름을 말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민기는 다른 말을 했다.
“저희 아빠 아들이요.”
* * *
이민기의 가족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이러했다.
못 사는 집.
어느 명작 소설에서 그렇게 말했던가.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에는 각자 저마다의 불행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이들 가족이 그간 느껴왔던 불행의 원인은 지극히 평범했다.
돈.
그저 돈이 없었던 것.
이 하나가 그들 가정이 불행했던 원인의 하나이자 전부였다.
남편은 사내정치에서 밀려 일찍 실직했다.
받은 퇴직금으로 사업에 도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해서 날려 먹었다.
다행히 부부가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며 크게 먹고 살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만, 마지막으로 빚 없이 살았던 게 언제였나 기억조차 희미한 나날.
가히 현대인의 삶에서는 모범적인 불행이라고 봐도 좋았다.
너무 교과서적이라 진부할 정도로.
또한.
[민기한테 미안하네.]자식에게 느끼는 죄책감 또한 그러했다.
[왜요. 여보.] [알아서 잘하는 앤데, 우리가 앞길을 막은 거 아닐까?]두 사람에게는 언제나 아들이 걱정거리였다.
[민기가 참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어. 그렇지?] [맨날 영화만 보고 살았죠. 남들 연애한다, 여행 간다, 뭐 한다, 신나서 놀러 다닐 나이에도 영화만 보고.]대학도 포기하고 가족에게 이바지하겠다며 몇 년을 일만 하던 중, 연기에 도전하겠다며 대뜸 집에서 나갔다.
그 앞길을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막아섰다는 게 두고두고 마음에 생선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렇다.
이들 부부는 자식에게 죄책감마저 품고 있었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현실을 들이밀었던 이유로 말이다.
[어쩌면 배우가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너무 무시한 걸지도 몰라.] [그래도 안 말릴 수도 없잖아요.] [밥은 제대로 먹고 지낼지 몰라. 걱정돼서 잠이 안 오네.] [민서 보내 봐요.]하지만 그것도 잠시.
끝내 자기 힘으로 데뷔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스타가 되어버렸다.
TV만 틀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나.
장을 보러 가면 BFC 커피에 이민기의 얼굴이 박혀 있다.
이 사실이 기쁨과 동시에 이들 부부의 죄책감을 한층 더 크게 부추겼다.
[조금이라도 믿어주고, 밀어줬더라면 훨씬 잘 풀렸을지도 모르는데.]못 알아봐 줬다.
결과적으로 배우로서 한참 늦은 나이에 데뷔하게 만든 셈이 되어서 미안하다.
돈은 못 보태주더라도 말로나마 응원해줬더라면 모를까, 굳이 막아서기까지 했던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 민기 짐이라도 되지 맙시다.]형편이 버거울지언정,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그럴 염치는 없다.
이제 막 사회 초년생으로서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아들의 어깨에 짐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잘나가는 연예인들은 잘 번다지만, 원래 벌이가 늘면 씀씀이도 느는 법 아니겠나.
이들 부부는 TV에서 연예인 한 명에게 가족 전체가 달라붙어 빨대를 들이미는 광경을 몇 번이고 봤다.
그런 거머리 같은 가족은 없느니만 못하다며 혀를 차기도 했었다.
설령 어깨 위에 놓인 빚이 아무리 무겁다 한들, 사람의 도리를 저버릴 만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제 남은 빚도 얼마 안 되니까, 갚고 나중에나 말하자.’
착실하게 갚은 끝에 이제 내후년이면 대강 숨통이 트일 상황이다.
그때 당당해지면 된다.
그렇게 자식의 방문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띵동!
반가운 초인종 소리에 바깥으로 나가 봤더니, 타이밍도 안 좋게 빚쟁이였고.
[아, 사장님, 언제 오시나 했네.]즐거워야 할 날에 다시금 무거운 현실을 느끼던 중.
“저희 아빠 아들이요.”
아들이 등장했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 마주하기도 버거웠던 아들, 이민기가 말이다.
“……배우 이민기?”
“네.”
“사장님 아들이 이민기였어?”
빚을 독촉하러 온 남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민기와 그의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서 바라봤다.
‘햐, 이렇게 보니까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붕어빵이네.’
놀랍다.
하지만 놀란 건 이민기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짜 내 아들 맞아?’
20년이 넘게 봐왔던 아들임에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했으면서도 믿기 어려울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분명 익숙한 얼굴이다.
이목구비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목소리도 같다.
하지만 사람의 아우라 그 자체가 바뀌었다고나 해야 할까.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훤칠해졌지?’
체격이 당당해졌다.
전적으로 자세 덕이었다.
허리를 폈고, 척추를 따라 목과 어깨도 곧아졌다.
여기에 밝아진 얼굴에서는 자연히 배인 여유가 부드럽게 반짝였다.
하지만 그 시선은 걱정에 물들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주름이 느셨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가 이유였다.
얼굴에 나이테처럼 박힌 주름이 생각보다 눈에 띈다.
꽤 오랫동안 안 봤던 탓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매일같이 일하다가 박힌 주름이다. 저 굵은 주름들을 아예 생기기 전으로 되돌려놓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생길 주름은 줄어들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할 거니까.’
동창회에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주어진 삶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 정도쯤은 가능하다.
일도, 가족도.
이민기는 다시금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빚이 있다고 했죠?”
이 세상의 가족들이 행복한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면, 불행한 이유는 다양하다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저 유명한 말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대다수의 불행한 집안은 같은 이유로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거, 제가 갚을게요.”
자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