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80)
운빨로 탑스타-80화(80/200)
제80화
한참을 달리던 자동차가 멈춰섰다.
“배우님.”
그 무렵 박한모 매니저도 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
“배우님?”
“…….”
“배우님.”
“아.”
이민기는 몇 번을 불러진 뒤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죄송해요.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니, 바깥에 신경이 가질 않았다.
“괜찮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괴한 사건이 있었던 게 불과 얼마 전이라서 그럴까.
박한모 매니저도 평소 여유가 가득한 그 모습과는 달리 자못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다르다.
이민기가 상념에 취해 있던 건 완전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김도하랑 겨루는 날이니까요.”
말 그대로였다.
오늘은 김도하와의 더블 인터뷰가 있는 날.
그중에서도 더 정확하게 짚자면, 김도하와의 연기력 경쟁이 있는 날이었다.
철저하게 준비했다.
연기 연습을 하루이틀한 게 아니다만, 이번 만큼은 그중에서도 각별히 공을 들였다.
[민기 씨, 요즘 분위기가 좀 날카롭네.]그 김아성 트레이너가 놀라서 지적할 정도로 말이다.
[안 어울려.] […….]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해.]특별히 대수롭게 봐 줬던 건 아니다만.
오히려 그 덕에 김아성 트레이너와 있다 보면 평소와 똑같은 컨디션으로 연습에 집중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떠올린 이민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이기고 싶어서요.”
“이긴다라.”
예상과는 다른 말에 박한모 매니저의 눈빛에 작은 이채가 담겼다.
“배우님을 보면 생각합니다만, 작은 일에도 늘 열심히이신 것 같습니다.”
“네?”
“객관적으로 말해서 작은 인터뷰 하나이지 않습니까. 배우님처럼 진심을 다해서 준비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아.”
박한모 매니저와의 입장 차이를 읽은 이민기가 작게 탄성을 뱉었다.
‘그렇지, 이건 남들이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네.’
그렇다.
[60초 연기] 컨텐츠가 훗날 대박이 나리라는 걸 아는 이민기에게, 이번 연기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사소한 기획이라도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모습으로 비칠 뿐.
‘신인 배우답지 않게 실패 없이 연속으로 성공만 거뒀으니 슬슬 거만해질 만한 시기인데, 사람이 참 올곧아.’
박한모의 눈에 비친 이민기는 그러했다.
언제나 겸손하고, 언제나 성실하다.
일의 경중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도 아니라는 듯, 그 어떤 사소한 일도 절실하기까지 한 태도로 달려든다.
그게 매니저의 시선에서는 남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갓 흥행작을 터뜨린 신인 배우임에도 작은 인터뷰에조차 이런 태도라면,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 잘 될 수밖에 없겠군.’
상념으로 빠지려는 순간, 박한모 매니저는 눈을 깜빡이며 생각을 지웠다.
“다녀오십시오. 가서 몸도 푸시고.”
“네,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감사 인사를 한다는 것도 매니저로서는 웃음만 나오는 부분이었다.
매니저로서는 짙은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사소한 행동들.
하지만 이 정도는 꽤 많은 연예인들이 보여주곤 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이민기는 한 단계를 더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식사하시기로 하신 거요. 기억하고 계시죠?”
“예, 그게 왜.”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는 박한모 매니저에게 이민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한우 오마카세집 예약해 놨거든요. 기대하세요.”
“…….”
“매니저님, 그럼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이민기는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고는 힘찬 발걸음과 함께 저 멀리 스튜디오 입구로 사라졌다.
잠시 뒤.
적막한 차 안에 홀로 남은 박한모 매니저가 핸들을 쥔 채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성공하면 한우 사주기로 했던 거, 그거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나.’
참 사소한 약속 하나도 안 잊는 사람이다.
* * *
같은 시각.
‘흠, 이 정도란 말이지?’
한 남자가 방송국 대기실 의자에 앉아 킥킥 웃었다.
그의 손에 잡힌 핸드폰에서는 연신 한 남자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근 들어 주가가 급상승한 배우, 이민기의 영상이었다.
[내 삶이 비극이라고 해서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네 삶이 망가진 건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망가뜨리는 건 자신의 책임이다. 알겠어요? 지금 설하 씨를 괴롭히는 건 설하 씨 본인입니다.] [카페 델 디아]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이었다.불우한 가정환경을 겪어온 여자 주인공에게 주인공 [성진우]가 영 눈치 없는 조언과 함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
[진우 씨는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해요?] [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남 눈치 안 보는 성격이라 편하겠네요.] [편합니다. 당연히. 아마 앞으로도 속 편히 만수무강하겠죠. 누구랑은 다르게.] […….] [고민을 왜 합니까? 고민해서 나아질 게 없는데 왜 고민을 하냐 이 말입니다. 내가 남한테 미안하면 그 사람이 텔레파시로 읽고 용서해 준답니까? 내가 화나면 세상이 같이 분노해 준답니까?]침묵이 이어지기를 잠시.
성진우가 입을 열었다.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루 30분만 운동해도 1년 뒤의 나는 많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그 정도로 쉽게 변하는데, 설하 씨는 1년 뒤에 어떤 사람이고 싶습니까?]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미래는 개척하기 나름이다.
그러니 흘러간 과거에 붙잡혀 자신을 괴롭히는 건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이다.
그런 말.
[돈 안 갚는 사람 있죠? 안 돌려주는 게 미워 죽겠죠? 미워하지 마세요.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그냥 고소 때리면 됩니다.]분명히 깊은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인데, 대사만 보면 뺨을 후리고 싶을 정도로 싸가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민기의 연기력으로 커버해서 캐릭터가 살았다.
시청자들이 선정한 명장면 탑5 중 3위를 기록한 그 장면을 감상하기를 잠시.
“풉.”
김도하가 작게 볼을 부풀렸다.
‘와, 촌스러워.’
연기가 촌스러웠다.
시청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적어도 그의 눈에 비친 이민기의 연기가 그러했다.
‘연기를 일본 드라마로 배웠나?’
감정 과잉이 느껴졌다.
물론, 감정을 폭발시켜야 할 타이밍에 적절하게 터뜨리는 게 특별히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심취했다고나 할까.
김도하가 생각하기에 이건 어설픈 메소드 연기에 속했다.
더불어 메소드 연기라는 건 이미 유행이 지난 지 한참이었다.
‘티가 나면 이미 거기서 끝이지.’
연기란 곧 자연스러움이 생명이다.
한때, 여기에서 메소드 연기의 고질적인 단점이 드러났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깨져버리는 것.
연기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과몰입되는 게 원인이라고나 할까.
어지간한 경지에 오른 게 아닌 이상, 연기하는 본인만 신나는 연기.
그게 김도하가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였다.
더불어 업계에서 흔히 하는 말이 그렇기도 하였고.
[메소드 연기라는 게 자기 잘난 맛으로 하는 거란 말이지.] [주위 사람들이 맞춰주느라 힘든 건 하나도 모르고요.] [맞아. 자기가 축구 잘한다고 착각하는 미드필더? 정글 잘 돈다고 생각하는 미드라이너? 그런 느낌.]소속사에서 밀어주는 신인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었다.
배경이 짱짱하니까 좋은 역할을 받고 주목받을 기회를 얻은 건데, 자기가 잘해서 그 자리에서 이 있는 줄 안달까.
김도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런 자칭 메소드 연기파가 득실득실하지.’
거장이 아니고서야 메소드는 허세다.
그의 눈에 비친 이민기의 연기는 그 가짜 메소드 연기에 속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 문제가 다분했다.
김도하는 메소드 연기의 반대라고 볼 수 있는 고전 연기에 집중하는 배우.
배역에 휘둘리지 않고, 배역을 해석하는 걸 장기로 여겼다.
하여, 상대가 메소드에 휘둘리는 걸 혐오하는 축에 가까웠으니.
‘오늘은 쉽겠네.’
김도하가 승리를 확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역시.”
대본을 다시 읽어 보려니 거듭 확신이 생겼다.
더군다나 그가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에는 크나큰 단점이 존재했다.
세상의 그 어느 메소드 연기의 천재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는 단점이.
설령 이민기가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거장.
아니지, 그 정도가 아니다.
만에 하나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새긴 천하의 대배우라고 한들 간과할 수 없는 단점이, 메소드 연기에는 있었다.
‘뻔해.’
이민기가 메소드 연기를 주력으로 하는 배우라면, 결코 그의 발뒷꿈치 언저리에조차 다다를 수 없다.
‘나중에 친해질 때 되면, 이건 지적하고 넘어가야겠군.’
기왕 무리로 받아들인다면, 조금이나마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낫다.
김도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각본 속으로 눈을 돌렸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 위해서.
* * *
짙은 검은색 천막으로 사방을 가려 마치 검은색 박스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방.
그 안에서 카메라가 겨눈 가운데.
“안녕하세요. 이민기입니다.”
“김도하라고 합니다.”
마침내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 건너편, 시청자들에게는 안 보일 카메라 쪽에서는 인터뷰 지시 사항이 적힌 LED 모니터가 반짝였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이미 인사는 나눴다.
대기실에서 몇 분 동안 느긋하게 대화를 나눴지.
서로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할 무언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첫수를 뗀 건 김도하였다.
“배우님 카페 델 디아, 정말 재밌게 봤는데요. 성진우 역할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
선뜻 나온 칭찬에 이민기의 이마가 꿈틀했다.
“연기파 배우라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합니다. 배우는 원래 연기를 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파 야구 선수라는 말은 없잖아요?”
김도하가 면접에서 들려오면 당장 합격을 주고 싶어질 만큼 선량한 목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기파 배우라는 말이 생겨난 건, 그만큼 시청자들의 기대치에 부흥하지 못하는 신인 배우가 난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연기파 배우라는 말이 붙은 걸 부끄럽게 여기라고 도발이라도 하려는 건가.
이민기가 작게 긴장한 순간 김도하가 말을 이었다.
“이민기 배우님의 앞에는 연기파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
“이미 완성된 배우시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순수한 칭찬이었다.
누가 듣더라도 이 사람은 내게 호의가 가득하구나, 사람이 정말 좋구나 싶은 그런 칭찬.
요즘 한창 잘 나가는 MC답다.
세상의 그 누가 되었든 이 인터뷰를 듣는다면 김도하라는 인간에 대한 호평을 참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민기는 안다.
‘혓바닥이 번지르르하네.’
저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적나라하리만치 잘 알기 때문에, 김도하의 말이 단순 사탕발림 혹은 방송용 멘트라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괜찮다.
“감사합니다.”
무릇 큰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는 법이니.
“사실 저도 김도하 배우님의 연기를 보면서 많이 참고했습니다.”
“제 연기를?”
“네, 나랑 결혼할거야 말거야, 페넌트레이스, 케미, 내 눈에는 보여까지 배우님이 등장한 작품이라면 전부 최소 10번 이상 돌려본 것 같습니다.”
이민기의 말에 김도하의 시선에 작은 이채가 담겼다.
딱히 제재하지 않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을 더 이어나가 보라는 것.
그 신호를 제때 읽은 이민기가 말을 이어나갔다.
“제게 김도하 배우님은 교과서였습니다. 좋은 연기가 무엇인가 확실하게 제시해 주는 교과서. 이렇게 하면 된다며 방향을 알려주는 뱃사람들의 북두칠성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김도하의 연기에는 실제로 완벽주의적인 완성도가 있었다.
압도적인 장점은 몰라도, 적어도 오답은 없는 연기였지.
그게 이민기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물론, 그에게는 여태껏 연기를 참고한 배우가 김도하 외에도 백 명도 넘게 존재한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오늘도 한 수 배워가고 싶습니다.”
“……하하, 좋지요.”
김도하도 부드러운 웃음으로 응수했다.
“그런데 배우님이 저한테 배웠으면 밥 한 끼라도 사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작은 웃음이 스튜디오로 번져나갔다.
허례허식은 이 정도면 됐다.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저 건너편 카메라 쪽에서 이번 방송의 기획을 맡은 나 PD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저희 방송에서 시청자분들을 위해 팬서비스로 아주 특별한 컨텐츠를 준비했는데요.”
시작이다.
60초 연기.
오늘 방송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좋을 것이 시작될 타이밍이었다.
“아, 아.”
그 신호와 함께 이민기가 가볍게 목을 풀었다.
동시에 김도하의 입꼬리에도 작게 희열이 떠올랐다.
‘자, 보여 봐라.’
어설픈 메소드 연기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다오.
악감정은 없다만, 악취미는 있다.
그렇게 몇십 초 뒤.
“아, 아.”
본격적인 즉석 연기가 시작되었을 때.
“…….”
김도하가 멍하니 눈을 크게 떴다.
‘없다.’
이민기의 연기 속에는 메소드 연기의 고질병이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그저 깔끔한 연기.
갓 다린 와이셔츠처럼 한없이 깔끔한 정석 연기가 눈앞에서 반짝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