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81)
운빨로 탑스타-81화(81/200)
제81화
[60초 연기]말 그대로 60초 동안 즉석에서 연기를 시행하는 컨텐츠.
상황과 캐릭터가 주어질 뿐, 구체적인 연기 지시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여기에서 이민기가 받은 상황과 캐릭터는 이러했다.
[자취방/자취생]실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설정.
제작진 측에서는 미튜브 예능 방송의 주 시청자인 20대를 노렸으리라.
큰 기대는 없었을 테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박을 터뜨렸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연기력에 자신 있는 배우라고 하면, 홍보 겸 연기력 검증 겸해서 [60초 연기]에 출연하는 게 관례로 자리를 잡았을 지경.
참여한 배우들은 또 어찌나 많았는지 올라온 영상만 200개가 가뿐히 넘었다.
이민기, 그는 이 방송을 모두 챙겨본 매니아였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출연하고 싶어도 출연하지 못하는 배우가 이런 방송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라면 이런 거 해봐야지.’
시뮬레이션이었다.
이민기의 경우에는, 저 상황에 내가 나갔다면 어떤 연기를 했을지를 생각했다.
혼자 거울 보면서 애처롭게 연습하다가 남한테 들키기도 했고.
기회가 안 닿아 그렇게 갈고닦은 솜씨를 활용할 일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전부 써먹을 수 있다. 아낌없이!’
이번 연기 또한 그러하다.
이민기가 준비한 필살기는 바로 이것.
“누, 누구야!”
혼자 사는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망상이었다.
“거기 숨어있는 거 다 알고 있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나와!”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고 상상하는 것.
이민기가 발 뒷꿈치를 살짝 든 채로 방안을 살금살금 걸었다.
눈빛이 보이지 않는 것을 노려보는가 하면 빈 허공에 손을 젓기도 하였다.
나 PD가 그걸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옷장을 뒤지는 건가?’
그렇다.
펜토마임이었다.
즉석 연기라고 하면 흔히 대본 독백을 말할 때가 많지만, [60초 연기]에서는 펜토마임의 역할이 중요했다.
짧은 시간 동안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각인시켜야만 하기 때문.
“꼼짝 마. 대충 감 잡았어. 혼자 산다고 내가 우습지? 나 태권도 9단에 합기도 9단이야. 만발로 포상 휴가도 받아 봤어. 넌 뒤졌다.”
그렇게 이민기는 혼자 빈 허공을 살금살금 돌아다니기를 잠시.
빈 옷장 하나를 더 열더니.
“……!”
마치 귀신이라도 봤다는 듯 경악하더니 그대로 철퍽 넘어졌다.
“……!! …!”
말없이 입만 뻐끔거리며 팔로 바닥을 기어 도망친다.
나 PD가 거듭 놀란 입을 크게 벌렸다.
‘진짜로 집안에 도둑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
자취방에 진짜로 도둑이 들었다.
흔히 망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
즉흥 연기에 스토리가 생긴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누, 누나, 누나가 왜 여기에 있어요.”
도둑이 지인이었다.
집안에 정말로 도둑이 든 것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심지어 그 도둑이 지인.
‘미친, 졸라 리얼해.’
나 PD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컨텐츠, 반쯤 도박으로 지른 거였는데 어쩌면 대박을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른아른했다.
‘이민기가 연기력이 좋다더니, 진짜 좋았구나.’
놀랍기 짝이 없다.
그녀 또한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배우를 접했다.
그리고 실력파라고 불리는 사람의 대다수가 연출의 힘을 빌린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신인일수록 그러했다.
단기간에 뜬 배우일수록 그러했다.
이민기는 둘 다 해당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목격하고 있는 광경은 어떠한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이렇게까지 극을 끌고 간다고? 이민기 당신, 진짜로 천재야?’
하얀 백지 위에 선명한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지 않나.
“네, 네? 제가 바람을 피워요? 네? 누나를 두고요?”
미치겠다.
스토리가 또 한 걸음 나아갔다.
도둑이 생판 남인 줄 알았더니 지인이었고, 그 지인이 애인이었다.
심지어 연기자가 연기한 캐릭터 본인 잘못이었다고 한다.
‘그래, 애인이 바람 피워서 그거 증거 목격하러 왔던 거구나.’
우스꽝스럽다.
현실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60초짜리 연기이니만큼 세세한 디테일보다는 순간의 자극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이민기의 연기는, 그야말로 이번 컨텐츠에 특화된 연기라고 볼 수 있었다.
‘준비성이 철저하다더니, 이건 철저하다는 말로 설명이 될 수준이 아니잖아. 아예 각본 쪽으로 나서도 되겠는데.’
나 PD는 이제 웃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감탄만 연발할 뿐이었다.
한편.
눈앞으로 펼쳐지는 광경에 피가 바짝 말라버린 사람 또한 있었다.
‘이런 시X…….’
바로 김도하였다.
‘이민기, 설마 이런 걸 준비해 왔다고?’
그야말로 이민기의 연기를 코앞에서 목격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건 연기력이 좋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기획 자체가 다르다.
JC에서 머리를 맞대서 짚어준 건가.
고작 인터뷰 하나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서?
아니다.
김도하는 회사라는 게 그렇게까지 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정도는 잘 알았다.
하물며 지금 이민기가 보여주는 연기력도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게끔 만들었다.
그의 머릿속 추측이 축구공에 맞은 학교 교실 유리창처럼 완벽하게 박살 났으니까.
‘메소드 연기는 즉석에는 못 써먹는다는 게 정론인데.’
그렇다.
김도하가 생각한 이민기의 약점이 메소드 연기라면, 메소드 연기의 약점은 즉석 연기였다.
캐릭터를 나 자신과 하나가 되도록 받아들일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게 메소드의 크나큰 약점이니까.
오죽하면 메소드 연기를 장기 삼는 배우들은 고전 연기파 배우들과 비교해서 평생 촬영하는 작품 수가 절반도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메소드는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닌데.’
메소드 연기란 말 습관부터 발걸음, 눈을 깜빡거리는 호흡까지 모조리 맞추는 것이다.
단기간에 소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 탓에 메소드 연기를 장기 삼는 배우들이 드라마판에 적은 것도 있었고, 같은 이유로 무시당하는 것도 있었다.
반대로 김도하의 ‘고전 연기’는 달랐다.
배역을 철저히 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렇기에 적절한 상황만 주어진다면, 대체로 평균 이상의 고른 연기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해서, 오늘 같은 상황에 격차를 보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거늘.
‘대체 저건 뭐지?’
진실은 이러했다.
이민기의 연기는.
‘좋아, 반응이 있다. 여기에서는 허리를 조금만 더 틀어 볼까.’
처음부터 메소드 연기가 아니었다.
메소드 연기라는 걸 소화하려면, 배우 본인이 자기 배역과 연기에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터뜨려도 남들이 받아주리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확신이 없는 메소드 연기는 곧 흔들림과도 같다.
공중다리처럼 불안하게 휘청거리는 연기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었다.
자만심에 가까운 확신.
그건 일개 파리목숨 단역 따위가 갖추려고 해야 갖출 수 없는 것이었다.
‘60초도 슬슬 다 끝나가는데, 이다음에 마무리를 뭘로 할까. 프로포즈? 아니면 창문을 깨고 도주?’
이민기는 그래서 연기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의 수를 계산하고, 그 안에 자기 자신을 바둑알처럼 적절하게 끼워 맞추는 연기를 갈고닦았다.
즉, 이민기는 본래 뼛속부터 ‘고전파 연기배우’에 속했다.
[카페 델 디아]에서는 메소드 특유의 감성이 필요해서 그런 감성을 계산하고 연기했을 뿐.“……어, 누나, 치킨 왔는데……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렇게 이민기의 연기가 끝났다.
[60초 연기]라는 포맷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컨텐츠 구성과, 그에 걸맞은 연기력을 완벽하게 보여주면서.“대박.”
“와, 씨.”
“미쳤다, 미쳤어.”
곧 스튜디오에서 놀란 직원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아직 촬영 안 끝났어요.”
나 PD의 중재와 함께 다음, 김도하의 차례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엄마, 나 김치 다 떨어졌어.”
평범한 독백 연기였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교과서 같은 독백 연기.
[60초 연기]가 아닌, 오디션에 맞는 연기가 김도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잘하네.’
잘한다.
누가 이 시대에 젊은 남자 배우 중 몸값으로는 손꼽히는 사람 아니랄까 봐, 잘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학금? 알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나 엄마 아들이야.”
참신하지는 않을뿐더러.
“응, 내일 다시 연락할게.”
그 연기력 또한 이민기의 연기를 묻어버릴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뚝.
펜토마임이라기에는 초라할 만큼 작은 동작으로 핸드폰을 닫은 김도하가 한숨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았다.
참, 연기에서 자극적인 걸 싫어하는 만큼, 자극적이지도 못했고.
* * *
인터뷰와 연기를 모두 마쳤을 무렵.
“배우님, 오늘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민기가 김도하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역시 실물은 스크린이랑 차원이 다르시던데요.”
“……하, 하하,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김도하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불과 몇십 분 흐르지도 않았는데, 이민기라는 사람이 살짝 버거워졌다.
티가 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미증유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게 이민기의 입장에서는 또 작은 불안 요소가 되었고.
‘너무 나갔나?’
급이 적당히 비슷하면서도 살짝 아랫급으로 보여야 챙겨주기 좋은 후배로 비치는 법인데.
너무 열심히 해버렸나.
이기려고 한 게 맞기는 하다만, 설마 이길 줄은 몰랐는데.
상대가 그 김도하니까 죽을 듯 살 듯 최선을 다해야 비빌 수라도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한 건데.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잘해버렸나.’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싶다.
‘이러다가 불편하다고 거리 두면 어쩌지?’
오히려 좋아.
……는 개뿔이.
김도하랑 살짝 친해져서, 밥 먹자는 빌미로 증거자료라도 슬쩍 수집할 수 없을까 접근한 건데.
이러다가 친해지기는커녕, 서로 눈길도 마주하기 싫어지게 생겼다.
김도하 또한 기분은 비슷했다.
‘하, 망신살이 당하고 옆에 끼우고 다니기는 좀 그런데. 아니지, 김도하, 네가 이런 거 언제 따졌다고.’
이민기를 무리에 끼우려고 각을 세우고 온 참인데, 사람이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딱 보니까 알겠네. 이거 노는 거 싫어하는 인간상이다.’
이민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성실함이라는 단어를 사람의 형태로 빚어놓은 듯한 인간이었다.
살다 보면 가끔 한 명씩 만나는 인간상이 있다.
‘자기가 소년 만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아는 놈들.’
이상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이상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깨끗한 티를 못 내서 안달이다.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 주위 사람들을 천박하게 만들지.
김도하의 눈에 비친 이민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재수 없는 새끼. 딱 봐도 언덕길에서 리어카 끌고 가는 할머니 있으면 동정심을 못 이겨서 도와주겠지.’
아이러니한 점은, 대중의 눈에 비친 김도하가 마침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하나였다.
겉과 속이 같은가 다른가, 오직 그것 하나.
‘하, 꼬셔도 안 넘어올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꼬시면 바로 넘어간다.
오히려 당사자는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만, 정작 사람 잘 본다는 본인은 그걸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와중이었다.
또로롱.
“아.”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새끼가 이런 상황에.’
김도하가 궁시렁거리면서도 전화를 받아든 찰나였다.
[야! 너 이민기랑 뭐 찍으러 갔다며!]수화기 건너편의 상대는 다름 아닌.
이흘이었다.
[술 한잔하자고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