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86)
운빨로 탑스타-86화(86/200)
제86화
유선아가 3Y 엔터에 지원한다는 걸 알았을 무렵, 이민기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내린 조언은 이러했다.
“가지 마세요.”
말리는 것이었다.
그에 따른 유선아의 반응은 실로 당연했다.
“네? 왜요?”
의문을 표하는 것이었다.
“3Y 좋은 곳 아니에요? 김도하도 들어가 있고. 아, 이번 해외 오디션도 제 돈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숙소랑 비행기 티켓까지 다 내주는데.”
얼핏 보기에는 맞는 말이었다.
3Y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잘 나가는 배우가 다수 소속되어 있을뿐더러, 근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김도하까지 있으니.
이민기 그 또한 과거를 몰랐더라면 3Y를 강하게 추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알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이민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3Y요. 저도 이런저런 소문을 들어서 그런데 좋은 곳 아니에요. 뒤에서 안 좋은 말이 좀 있어요.”
“어떤 거요?”
“그것…… 까지는 선아 씨께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당연했다.
당연히 자세히 말을 못 한다.
마땅히 들이밀 증거가 없기 때문.
아니, 굳이 말하자면 있기야 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하지만 이른 이 시점에 이민기가 그걸 타인과 공유할 생각은 없었다.
‘터뜨리기는 터뜨린다고 쳐도, 어떤 방식으로 터뜨릴지도 아직 결정 못 했고.’
우선 가능한 한 익명으로 제보할 수단을 강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언론이 최대한 투명하게 보도할 곳으로 말이다.
큰 근거라고는 없이 말리고 보는 이민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걸까, 유선아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흐음, 이번에는 저도 3Y에 꼭 가고 싶었는데요. 저쪽 공동대표가 제 프로필을 몹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고.”
“안 좋은 말이 있어요. 좀 내부에 스캔들이 난잡하다고도 하고.”
“제가 안 엮이면 그만 아니에요? 그리고 3Y라고 하면 이미지도 엄청 좋은 기획사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이크.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서 또 무슨 근거를 들이밀지.
적당한 거 없나.
‘없네.’
3Y 그놈들, 이미지 관리 하나는 아주 환상적으로 해 놓았구나.
누가 김도하가 소속된 기획사 아니랄까 봐, 아주 하는 짓이 김도하랑 똑같다.
‘아오, 자료 하나만 슬쩍 발췌해서 보여줄까.’
그렇게 만에 하나 모른다는 생각에 결심을 굳힌 찰나였다.
“알았어요.”
유선아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민기 씨 말을 믿을게요. 그렇게까지 말리는 걸 보면, 다 이유가 있겠죠.”
“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기 씨가 하는 말이잖아요. 업계에서 한창 일하는 현역 배우니까, 듣는 것도 많을 거예요. 그렇죠?”
“그야 선아 씨 말씀 대로이기는 한데요.”
“옛말에 어른 말 잘 들으면 사람이 자다가도 콩고물이 떨어진다고 했잖아요.”
유선아가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이민기는 그 말이 살짝 황당했다.
‘근거가 필요 없다는 건가.’
아니, 코앞까지 다가온 오디션을 찰 근거라고는, 그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는 이유 하나로 충분하다는 건가.
이 얼마나 사람을 믿고 있는 건가.
신뢰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사이비 종교 같은 데 조심하셔야 하는 거 아니야?’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음에도 이민기가 어안이 벙벙한 한편, 유선아에게는 그녀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민기 씨, 최근에 김도하랑 방송 나오셨지.’
봤기 때문이었다.
이민기가 방송에 나와서 잘 나가던 거.
그녀가 아무리 혼자 우울하다고 한들 눈치는 있기에 당사자에게 말하지는 않았다만, [60초 인터뷰]를 봐서 더더욱 현타를 진하게 느꼈던 것도 있었다.
왜, 그런 거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같이 고생하던 지망생이 훅 떠버린다.
하늘의 별 같은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나는 김도하가 소속된 기획사 말단으로도 들어갈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 동기는 그 김도하 당사자와 정면에서 승부를 겨루고 있지 않았나.
심지어 이겼다.
이게 그녀에게는 차마 견딜 수 없이 우울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기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왜 나는 이런 생각이나 하는 사람이지. 이것밖에 안 됐나.’
한때는 그녀보다 한참 뒤처졌던 게 이민기였기도 했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기에게 질투한다니.
이 얼마나 추한 감정인가.
내심 이민기를 깔보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이민기의 태도가 달랐다.
[사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복수심 같은 개똥 같은 마음이라도 필요하다면 보약이죠.]절벽 끝에 몰린 듯 절박했던 그녀에게 다른 사고관을 제시했다.
사람은 얼마든지 부정적이어도 된다고.
그게 사람다운 거라고.
그래서 이민기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줄어들었나 하면.
그건 아니다.
‘민기 씨, 부럽네. 질투도 심하게 나. 나랑은 완전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인정했다.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연기자로서의 능력만 앞서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능력치도 앞선다고.
그러니까 얼른 따라잡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빠르게 털고 일어나서, 나중에 보란 듯이 말해줄 거다.
내가 따라잡았다고.
‘옛날에 그쪽에 질투 심하게 했다고 속마음도 다 털어놓아야지.’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기필코 그렇게 될 것이다.
돌아가서.
어찌 됐든, 그녀가 아는 이민기는 김도하와 합을 제대로 맞춰 본 사람이었다.
[민기 씨 김도하랑 어디 놀러 갔다던데?] [어디요?] [클럽.] [네?] [클럽.] [네?]아성 쌤에게 들은 말도 있고.
저쪽 간판 연예인이랑 같이 놀아본 사람이 애써 말린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거 하나면 충분했다.
“아, 선아 씨, 저 오늘 할 일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볼게요.”
생각에 빠진 참인데 이민기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빠졌다.
[김도하 스캔들]이 전생에 이어 다시 한번 이 세상에 밝혀지게끔, 고발하기로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으니 더는 주저할 수 없었다.당장 이 시간에조차도 피해자가 늘고 있을 테고
“선아 씨, 파이팅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연습실을 빠져나가려는 참이었다.
“잠시만요.”
유선아가 다시 한번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두고 보세요.”
“…….”
다소 도발이 섞인 말에 이민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각오의 방향이 살짝 이상해진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말이라는 게, 듣는 입장에서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좋아요. 두고 볼게요.”
그렇게 떠나려는 찰나.
유선아가 마지막으로 덧붙이듯 말했다.
“참, 그리고 신작도 응원할게요.”
“신작이라…….”
그러고 보니 까먹고 있었다.
신작 고민하려고 여기에 왔었지.
어쩌다 보니까 유선아를 위로하고 만류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지만, 처음 목적은 영화였다.
“으음.”
이민기가 난감하다는 듯 신음을 흘리려니 유선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아직 못 정하셨어요?”
“그게 말이죠.”
이민기가 작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그거 때문에 학원 온 거거든요. 뭐라도 하나 감 잡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요? 잠시만요. 요새 찍을 만한 작품이 있었나.”
그 순간 유선아가 뭔가 고민하는 듯 신음을 흘리기를 잠시.
“으, 저도 잘 모르겠네요. 시기가 좀 어중간해서 그런가.”
감이 도저히 안 온다는 듯 미간만 찌푸리기를 한참.
“아!”
이민기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탁! 치더니 말했다.
“민기 씨는 옷을 잘 입으시니까, 옷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작품을 찍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옷이요?”
“퓨전 사극이라던가!”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옷이라는 키워드가 나옴과 동시에.
“아.”
이민기가 눈을 크게 떴다.
감이 왔다.
신작 감이 왔다.
완전히 왔다.
이거다.
머릿속에 벼락처럼 꽂혔다.
* * *
다음날.
이민기가 마음을 굳혔을 시기.
가까스로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이 있었다.
‘찾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다온의 황인구 대표가 그답지 않게 식은땀을 닦아 내렸다.
“전등 밑이 제일 어둡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아.”
그 자료.
김도하 일당의 역린이라고 봐도 좋을, 그 자료들을 가져간 사람을 찾고야 말았다.
그의 말마따나, 이흘의 핸드폰을 훔쳐서 달아난 사람의 정체.
그건 바로.
“이민기, 이것도 네놈이었단 말이지?”
며칠 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클럽 룸 내부의 모든 각도에서 자료를 찾아보던 중 드러났다.
이민기였다.
그가 아니고서야, 그 시간대, 그 각도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지간히도 걸리적거리는군. 무슨 일을 하든 자꾸 네가 훼방을 놓아.’
핸드폰의 위치 데이터는 분 단위로 인터넷에 대략적으로나마 백업된다.
즉, 핸드폰이 도난당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클럽 룸 안에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부 구성원 중 한 명인데.
정확히 이민기가 화장실을 핑계로 방문을 나섰을 무렵에 와이파이가 해제된 것.
이민기의 운은 기이할 정도로 좋았다.
거의 모든 감시카메라에서 전부 오묘한 각도로 빗겨나가 있었지.
하지만 과학은 끝내 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조금 골치 아팠다만, 결국에는 증거를 다 찾았다. 순진한 줄 알았더니마는 아주 구렁이가 따로 없었군.’
황인구 대표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기를 잠시.
“도하야, 이런 건 미리미리 좀 말하자.”
“…….”
“내가 너 같은 찌끄레기 한 놈 하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서 쓰겠냐?”
“……죄송합니다.”
“쓸모없는 새끼.”
매몰찬 말에 김도하가 굴욕감에 찬 표정으로 입술을 악물었다.
은밀하게 숨겨서 진행하려 했더니마는.
이흘의 핸드폰이 바뀐 걸 본 황인구 대표가 당사자에게 습관적으로 유도신문을 시전해 버렸다.
[어쩐지 회사 자료가 외부에 유출되더라니, 너였냐?] [헉.] [헉?]이흘은 거기에 또 속아 넘어가서 멍청하게 털어놓았고.
‘되는 일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 꼬일 수 있지?’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다.
이민기.
그놈을 만나고 몇 주나 되었다고, 그가 여태껏 쌓아 올린 모든 게 물거품이 되게 생기지 않았나.
위아래로 쌓은 신뢰.
뒤로 쌓아놓은 커넥션.
앞으로 업계에서 걸어갈 탄탄대로까지 전부 말이다.
으득.
김도하가 분을 못 삭이고 덜덜 떠는 사이, 황인구 대표가 입을 열었다.
“네가 시작한 일이니까, 네가 책임을 져라.”
“네?”
“직접 가서 당사자랑 쇼부치고 오라고. 설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제가 직접…… 말이십니까?”
“도하야, 너 지금 나한테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시키니?”
본능적으로 움츠러든 김도하가 움찔 떨었다.
찰나의 사이 황인구 대표가 뱀처럼 눈빛을 번쩍이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촬영한 거 있지? 룸에서 여자 한 놈이랑 붙어먹은 거.”
“그거라면…… 예, 가지고 있습니다만.”
전부 실시간으로 촬영해 두었다.
이민기가 여자와 거의 붙어먹는 모습으로 말이다.
카메라의 각도 자체가 악의적인 와중에 갖은 편집으로 마사지해서 완성했다.
누가 봐도 이민기가 여자에게 치근덕거리는 모양새였지.
“그거는 왜…….”
김도하가 조심스럽게 물어본 찰나였다.
“그거, 언론에 뿌리겠다고 해.”
“……!”
김도하가 눈을 크게 뜬 순간 황인구 대표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계집애들한테 먹혀서 뜬 신인 배우한테 그런 사진 한 방이면 끝이지. 더 볼 것도 없어. 지금 뭘 준비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하차까지 감수해야 할 거다. 성추행 특화 신인 연예인, 어감 좋잖아?”
맞는 말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민기가 저쪽 여자에게 뭔가를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일단 논란이 터졌다 하면 해명이 필요 없다.
해명을 시작한 순간 진 것이다.
설령 법원에 가서 싸움을 시작한들 증명하는 데만 몇 년, 결백이 증명된다고 한들 의미는 없다.
“대중은 연예인을 보고 싶은 대로 보지. 한번 나쁘게 찍혔다면, 그간의 자기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라도 안티로 전락하기 마련이야.”
누가 저걸 모를까.
“이제 막 배우로 뜬 놈이니까 성공이 간절하겠지. 일단 단맛을 봤으니, 놓고 싶지 않을 거다.”
황인구 대표가 섬뜩하리만치 말을 이어나갔다.
“성추행 딱지 붙고 배우 인생 포기하고 싶지 않으면, 대처 잘하라고 해 둬.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
“정 포기 못 하겠다면 칼빵이라도 놓아 주겠다고 해라. 물론, 전부 네 독단적인 판단으로 해야겠지만.”
김도하가 잠시 말을 아꼈다.
상대가 이민기다.
그가 아무리 자기 앞길에 압정을 뿌렸다고는 하나, 배우가 배우에게 배우 인생을 두고 협박하라는 게 쉽지는 않았다.
왜냐.
그의 방식이 썩어 비틀어졌을지언정, 그 근본은 어디까지나 배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앞서 황인구 대표가 말했듯, 사람은 세상을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마련이었다.
“제 이름을 걸고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김도하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은 이미 피해자였다.
이민기는 가해자이고.
비겁한 가해자에게 비겁한 수단으로 제재를 가하겠다는데 문제가 될 리가.
“네 이름값 따위는 내 알 바 아니고.”
고개를 숙인 김도하에게 황인구 대표가 손을 휘휘 저었다.
“만약 실패하거든, 그때는 이민기의 배에 꽂힐 칼빵이 네 배때지로 갈 거다.”
* * *
JC 본사 사무실.
“신작 말씀이십니까?”
“네, 신작이요.”
서정우 이사의 말에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어요. 촬영하고 싶은 작품.”
“마음에 드신 작품이라도?”
이민기가 작게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이번에는요. 패션에 관한 작품을 찍어 보고 싶어요.”
“…… 패션?”
“네, 옷 입는 거요.”
서정우 이사가 좀처럼 감이 안 온다는 듯 이마를 들어 올린 찰나, 이민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거듭 말했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패션 영화를 찍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