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88)
운빨로 탑스타-88화(88/200)
제88화
“아, 오셨군요.”
마포구의 가까운 산책길.
인적이 없다 못해 아예 사람의 발자취조차 보이지 않는 길 한곳에서, 멀리 서 있는 한 남자가 반갑다는 듯 팔을 크게 흔들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맸지만, 전체적인 몸의 비율과 얼굴 윤곽, 눈매만 보더라도 이 사람의 외모가 범상치 않으리라는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민기 씨, 이게 얼마 만이죠?”
더군다나 선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김도하.’
김도하였다.
그가 나 연예인이요- 라고 홍보하는 듯한 복장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리 즐거운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게 아니다.
그보다는.
“대충 용건은 이해하셨죠?”
훨씬 어두운, 질척질척한 이야기를 하러 나왔다.
김도하의 세상 선량한 목소리에 이민기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제가 핸드폰을 파기하고 데이터까지 완전히 삭제하면, 그 대가로 그쪽이 가진 사진을 세상에서 없애 주겠다. 맞죠?”
그렇다.
조금 전, 걸려온 전화에서 김도하가 제시한 조건이 그러했다.
클럽에서 여자와 비비적거리는 모습을 찍었으며, 이걸 지우는 조건이 있다고.
“그런데 어째, 좀 지저분하지 않습니까?”
“하하, 목소리에 날이 시퍼렇게 스셨네.”
“웃음이 나오시나 보네요.”
“무서운 말씀 하지 마십시다. 저도 좋아서 하는 일 아니니까.”
김도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제가 개인적으로 그 여성분을 아는데, 민기 씨를 성추행으로 신고할 용의도 있으시다고…… 아시죠? 보니까 서로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후우, 확실히 짚어 두는 건데, 전 그런 쪽에 얽힌 적 없습니다.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들이댄 거지.”
“민기 씨, 아직 눈치가 느리시네. 그런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김도하가 빙그레 웃었다.
“이제 또 신인 배우이시고, 또 잘나가시는 분이시잖아요. 아예 자리 잡으셔야죠. 지금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민기 씨의 10년 뒤 1년을 가를 텐데요. 성범죄자 타이틀은 치명적이죠.”
“대중이 믿을 것 같습니까? 그런 증거도 없는데.”
“뭐, 증거야 만들기 마련이지만.”
그가 거듭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증거 같은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니겠습니까.”
“…….”
“민기 씨도 그동안 스캔들 기사 한두 번 본 거 아니시잖아요?”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신고해 주겠다.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그거 아닌가.
자기한테 고개 안 숙이면, 성추행범 딱지 달아주겠다는 그거.
‘애초에 데이터를 지우니 마니 하는 것도 말장난이겠지.’
그깟 데이터 따위 키보드만 조금 두드려도 복사할 수 있다는 것 정도야, 요즘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다 안다.
애초에 의미가 없는 행동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김도하가 노리는 건 완전히 다른 것이겠지.
‘내가 고개를 숙이길 바라는 거다.’
목줄을 쥐고 있다는 걸 공고히 하려는 것이리라.
손가락만 까딱하면 당장이라도 배우 인생을 접게 해줄 수 있다고 협박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이민기 또한 저쪽의 목줄을 잡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가진 판돈이라면 이쪽이 훨씬 더 크다.
“자료를 보니까 좀 말이 많던데요. 마약 이야기도 있고, 성매매 이야기도 있고, 납치 이야기도 있고. 참, 그 뒤에 다온에 황인구 대표님이 자꾸 뭘 시키셨더라고요.”
“하하,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앞뒤 자르고 이야기하지 맙시다. 시키기는 뭘 시켜요.”
김도하가 거듭 웃으며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민기 씨가 하고 있을 생각은 이런 거겠지요. 나만 약점을 가진 게 아니다. 저쪽도 약점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꿀릴 거 없다.”
“…….”
이민기가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을 이었다.
정확하긴 하다.
김도하는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었는지, 자그맣게 웃고는 말했다.
“전 민기 씨를 협박하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 서로 좋게좋게 나가자는 거지요.”
“서로서로 좋게?”
“예, 까놓고 솔직히 말해봅시다. 피해자가 있든 말든, 민기 씨에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김도하의 눈빛에 작은 냉기가 흘렀다.
“그냥 서로 못 본 겁니다. 민기 씨는 장난감을 주웠다고 돌려주신 거고, 저도 뭐…… 무슨 일 있었나요? 기억이 안 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요. 앞으로도 탄탄대로를 걸어가시면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죄수의 딜레마 아시죠?”
이민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수의 딜레마.
잡힌 죄수 모두가 자백하지 않으면 풀려날 수 있음에도, 어느 한쪽에게 형량을 줄여 주겠노라 미끼를 걸면 꼭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는 것.
“거기에서 배신하는 사람을 멍청하다고 생각해 봤을 겁니다. 그렇죠?”
“…….”
“예, 같은 업계 파트너끼리 신의를 지키는 거, 이거야말로 서로 이길 방법이죠.”
김도하는 어느새 이민기를 자기와 같은 무리 안에 끼워 넣은 듯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공범이다.
함께 입을 지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
반대로 한쪽이 입을 열면 같이 파멸이다.
굳이 ‘배신’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민기 씨, 잠깐 배우 일하고 관두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엮으신 분들도 많은데. 그분들이랑도 앞으로 잘 지내셔야죠. 얼굴 마주치고 사셔야지. 안 그래요?”
배우로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순수히 논리 구조만 따지자면 합리적이기 짝이 없었다.
“특별히 뭔가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민기 씨는, 아무것도 안 하시면 됩니다. 그거 하나면 됩니다.”
김도하의 말대로다.
행동하기는 어려운 반면, 행동하지 않기는 너무나도 쉬우니까.
어쩐지 그 말이 솔깃하게 들려 자기도 모르게 이민기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말하는 것만 보면 아주 심리치료사가 따로 없네.’
괜히 MC가 아니라는 건가.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줄 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와닿는 말이라는 건 아니었다.
왜냐.
‘그래 봤자, 범죄자밖에 못 되는 새X가 누굴 공범 취급하고 있어.’
처음부터 사고관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민기가 품은 사고관은 김도하의 그것과 아예 다른 세상에 속했다.
입을 닫으면 모두가 다 편해?
범죄자의 딜레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범죄자의 논리였다.
이민기, 그는 처음부터 범죄자가 될 생각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지난 세월, 한없이 인생을 조지고 또 조지면서도 사람답게 사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던 그였다.
잠깐 붕 뜬 인생을 도로 조지는 정도야.
오히려 우스울 정도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한참이나 김도하의 궤변을 묵묵히 듣고 있던 이민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민기 씨와 대화를…….”
“또,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제가 거기에 혹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워낙 말빨이 좋으시니까.”
김도하는 연예계 방송에서도 굉장히 잘나가는 MC다.
일반적인 말재주와는 거리가 있으리라고 처음부터 짐작한 바였다.
그래서 이민기는 생각했다.
“저 자신도 못 믿겠더라고요. 도하 씨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될까 봐요. 왜, 워낙 말재주가 번지르르하시잖아요.”
자신을 믿지 말자고.
그 말인즉슨.
“이미 다 뿌렸습니다.”
먼저 행동했다는 것이었다.
* * *
마침내다.
그간 김도하의 변명을 들어주는데 신물이 나 있던 이민기가, 속이 시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전국의 언론, 해외 위키, 제보를 받아 활동하는 익명 사건 사고 미튜버들. 그 외에도 조금이라도 발언력이 있을 곳이라면 전부 뿌렸습니다.”
“……!”
“예약 걸어놨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다 퍼졌을 것 같네요. 기사도 하나둘씩 나왔을 것 같고…… 아, 막 올라왔네.”
김도하가 입을 호두까기 인형처럼 위아래로 여닫기를 반복하며 어물거렸다.
마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났다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목격할 일이 없을 광경이 벌어졌다는 것처럼 한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이야기 좀 솔깃했는데 미안하게 됐네요. 아, 생각해 보니까 별로 미안하지는 않네요.”
듣다 보니까 달콤하긴 했다
괜한 일을 하려고 사서 고생하나 싶기도 했다.
눈을 감고 지나가면 그만 아니겠나.
그 못 본 척 한번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다.
달콤하다고 막 주워 먹으면 그게 사람인가.
짐승도 그러지는 않겠다.
한낱 고양이들도 캔 사료 열심히 퍼먹다가도 사람이 화내면 관두는데.
‘선아 씨 같은 피해자를 더 만들 수는 없지.’
공범이 되지 않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야기를 대강 마쳤다 싶은 순간이었다.
“다, 당신, 미쳤습니까?”
김도하가 충격에 물든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여태껏 태연하기 짝이 없었던 태도와는 달리, 명백히 동요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띄는 모습.
균열이 일었다.
‘와, 오히려 이쪽이 솔직하니까 보기 좋네. 이래서 가식이 해롭다니까.’
이민기가 홀가분한 미소를 짓고 있으려니 김도하가 말을 이었다.
“농담이죠? 지금,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가 보려고 떠보는.”
“핸드폰만 켜 보셔도 바로 아실 텐데요.”
“…….”
그 말에 김도하가 벌벌 떠는 손으로 후다닥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는 어금니가 부러질 듯 이를 악물었다.
[속보) 김도하방 유출, 내용 참고.]말 그대로였다.
김도하가 톡방에서 한참 떠들었던 내용 중 한 장면이, 무려 [김도하방]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었다.
이민기가 저 표정만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좀 걸렸어요. 사진이랑 동영상이 많아서 그런가? 톡 용량만 30기가가 넘더라고요. 그거 하나하나 다 분류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이 썩는 줄 알았네.”
“……대체 어디까지.”
“가능한 한 최대한 널리. 이미 다 퍼질 만큼 퍼졌으니까, 이제 저한테 뭐라고 해 봤자 의미가 없거든요.”
그렇게 잠시.
김도하가 버퍼링이 걸린 영상 속 등장인물처럼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떨기 시작했다.
사시나무처럼 덜덜 떤다는 말이 저걸 두고 한 말이던가.
‘운동 되겠네.’
슬슬 자리 정리하고 도망칠 타이밍이 된 것 같다. 이민기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김도하가 입을 열었다.
“당신, 이런 짓을 저질러놓고 그쪽이 무사할 것 같아?”
“아니요.”
“……상상도 못 하겠지만, 이건 나 하나 어떻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이미 당신이랑 나랑 둘 다 X된 거야. 넌 앞으로 성추행 연예인이야.”
아니,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다.
오늘도 신나서 이야기한 거, 전부 녹음하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이미 신고하려고 결심하고 예약까지 다 걸어놓은 상황에, 바보도 아니고 뭐하러 대면 토론하겠다고 나왔겠나.
그냥 조롱하려고?
그것도 나름 괜찮겠다만, 이민기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기왕 일 저지른 거, 만나서 이야기하면 물어볼 만한 건수 하나 더 없을까 확인하러 나온 참이었다.
‘뭐, 저쪽에서 작정하고 묻으려 하면 묻히겠지.’
하지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는데,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일단 옳은 일은 했다.
나머지는 그다음에 생각할 일이었다.
뚜루루!
그 순간 김도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
눈이 왕방울만큼 커진 걸 보니 중요한 통화인가 보다.
이민기는 김도하가 통화 나누기 좋게끔, 배려심을 발휘해 자리를 살짝 비켜주기로 했다.
“너, 너, 가지 마. 어딜 가.”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야! 거기 멈춰!”
김도하가 뒤늦게 쫓아왔지만.
‘저 개X끼, 왜 저렇게 빨라?’
권준용 관장이 직접 벼려낸 이민기의 하체 근육은 일개 간꽁치 따위가 따라잡을 영역이 아니었다.
* * *
[김도하 스캔들]한때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다시 한번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났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다온 황인구 대표, 마약 유통 혐의로 검찰에 기소] [제약 기업 7개소 추가 조사 예정] [연관 연예인 명단 전원 확보, 전수조사 착수 예고]훨씬 더 큰 스케일로.
관계자 전원을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듯 터져나왔다.
한두 놈 자르고 될 일이 아니다.
언론에게 돈을 바른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온 사방에 구멍이 뻥뻥 뚫린 댐마냥 온 사방에서 실시간으로 누출이 터져 나오니, 틀어막기조차 버거울 지경.
‘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 퍼진 거지?’
자료를 받은 주요 언론만 12곳이 넘는다.
받은 사건 사고 제보 미튜버만 10명이 넘는다.
해외 위키에도 정리된 자료가 일부 업로드되어 있다.
국가 기밀 폭로조차도 못 가리는데, 일개 연예계 고발을 가릴 수 있을 리가.
두 손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듯, 차마 덮을 수 없는 규모가 이번 고발에 존재했다.
[ㅋㅋㅋㅋㅋ] [와 더러운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더러웠다고] [건전성이니 뭐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다 했구먼] [이게 카르텔이니 뭐니 하는 거냐?] [한국이 마약청정국이라고 누가 그랬음]네티즌들에게조차도 한없이 공개되어 있다.
한두 곳을 틀어막아서 틀어막을 수 있다면 비밀이겠다만, 열, 스물, 서른 곳을 틀어막아야 한다면.
[기사 또 지워졌네] [해외 웹에 자료 통으로 올라옴] [오 나 젤다 좀]그건 이미 접근성이 낮은 정보에 불과했다.
[김도하 진짜 착하게 생겨서는] [ㄹㅇ 딴 사람도 아니고 김도하가 주범이라고?] [이흘 이 싯발라마!!! 맨날 두부 좋아한다고 자랑하던 게 복선이었냐!!!]난리가 아니다.
이번 사건에 얽힌 배우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팬들의 비명이 연신 이어졌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신인 배우 중에서도 엮인 사람이 있었다.
신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단 한 명.
[이민기도 엮였냐…….]이민기였다.
그가 룸에서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했다.
데뷔한 뒤 건실한 이미지로 워낙 유명했던 탓일까.
대중이 그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민기가 저럴 줄은 몰랐는데] [근데 범죄는 아니지 않음?] [그건? 그렇?지?] [신인이 여자 끼고 다닌다는 거 자체가 좀 별로임. 게다가 신인 배우인데] [ㅋㅋㅋㅋㅋ 뭔 연예인이랑 연애하세요?] [아니 난잡하게 노는 건 상관없는데, 적어도 좀 안 보이는 곳에서 놀라고 ㅋㅋ] [김도하랑 같이 다녔다더라]시끌벅적한 와중.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다만.’
이민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까발리겠다고 했으니까, 까발리겠지.
물귀신 작전 오지네.
죽으려면 혼자 죽지.
그래도 이럴 상황을 준비는 해 둬서 다행이다 싶다.
[이제 또 신인 배우이시고, 또 잘나가시는 분이시잖아요. 아예 자리 잡으셔야죠.]김도하의 녹음 자료가 있었다.
그에게 머리를 숙이거든, 이번 일을 무마해 주겠다며 회유했던 대화내역.
그게 생생하게 녹음되어 있었다.
[지금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민기 씨의 10년 뒤 1년을 가를 텐데요. 성범죄자 타이틀은 치명적이죠.]다 좋다.
하지만 이걸 깐다면.
‘……내가 이번 사건의 제보자라는 게 표면에 드러날 수밖에 없겠지.’
켕기는 건 없다.
저 하늘에 우러러,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불편한 건 있었다.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논란에 엮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당장 JC 측에서도 사전에 대응하겠다며 그에게 동의를 구해오지 않았던가.
이민기는 우선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고.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나.
성범죄자 타이틀을 옆구리에 끼고 가느니, 해명은 해 봐야지.
“에휴, 인생 기구하다. 내 편이 없네.”
나쁜 놈이라도 좋으니까, 당장 내 편 들어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좀 편하겠는데.
그렇게 이민기가 한숨을 혀를 한번 찬 순간이었다.
“어?”
전화였다.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전화에 이민기가 눈가를 작게 꿈틀거렸다.
‘요새는 전화 걸려오면 불안한데.’
별 이상한 협박이나 회유 아닐까 싶어서 경계부터 하게 된다.
이런 걸 두고 파블로프의 개라고 했나.
그래도 일단 걸려온 전화니까, 안 받을 수는 없어서 받아든 찰나였다.
“네, 여보세요.”
이민기는 이 순간 세상의 진리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늘 그렇듯,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사실이었다.
[저요. 사진에 같이 찍힌 그 사람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