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89)
운빨로 탑스타-89화(89/200)
제89화
‘이게 무슨 소리지?’
이민기가 눈을 깜빡였다.
누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는가 했더니, 나랑 사진에 같이 찍힌 당사자라고 한다.
‘뭐지?’
이럴 때 가늠할 수 있는 경우의 수라면 하나였다.
그거다.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거.
입을 닫아줄 테니, 돈을 얼마 내놓으라고 하는 거.
“…….”
[…….]서로 적막한 분위기에서 눈치를 살피기를 잠시.
이민기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바라는 게 뭡니까?”
[예?]“뭘 바라는지 말하세요. 돈? 아니면 다른 거?”
[저기.]“확실하게 말해 두겠는데, 무슨 조건을 걸든 전 받아들일 생각 없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이민기는 처음부터 상대측에서 그를 협박하려 드리라고 가정했다.
그렇다면 빌미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금 통화도 녹음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걸 편집해서 또 다른 약점으로 만들어다가 사용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짧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빌미를 내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정치인들과도 같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 해외 지원사업 교류를 통해 저희 정부는 천연자원 사업권을…….] [제목: 속보) 국고 유출] [미국에 무릎 꿇고 일본에 오열하며 중국에 사죄해]해외 순방을 돌아다니며 기껏 이권을 따왔더니, 퍼줬다면서 해외에 돈만 퍼줬다며 호도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여야 막론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민기는 이러한 함정카드를 처음부터 피해서 가기로 결심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끊겠습니다.”
대화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누니까 오인될 여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눈 말 자체가 없다면, 그걸 변조하니 뭐니 할 여지도 없다.
그렇게 이민기 측의 거부로 일방적으로 대화가 단절되나 싶은 찰나였다.
[저, 저기요!]한참 멍하니 있던 상대방 측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아니라,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네?”
[신고하신 거, 배우님 맞으시죠?]그러니까.
앞서 말했듯, 적의 적은 아군이다.
그 말인즉슨, 내 적이라도 그게 적의 적이라면 내 아군이 될 수 있다.
그런 말이었다.
* * *
이민기가 든 수화기의 건너편, 배다영이 침울한 표정과 함께 작게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정신이 나갔나.’
전화를 건 것까지는 좋았다.
어디까지나 감사 인사와 더불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바로, 그녀가 겪었던 일과 김도하 패거리의 내부 사정을 말이다.
[널 이용해서 이민기의 목에 방울을 채울 거다. 잘 생각하고 행동해. 데뷔하고 싶다면.]김도하 패거리.
그들의 본질은 다온 황인구 대표의 밑단이기 때문일까, 하는 행동 자체도 자연히 비슷해졌다.
상대방에게 약점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약점을 통해 통제하고, 장기적으로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것.
배다영 또한 본인조차 모르는 사이에 비슷한 길을 걸었다.
[데뷔를 시켜 준다고요?] [그래, 이쪽 이사님이랑 미팅 자리 만들었으니까, 한번 잘 보여 봐.]첫 시작은 미팅 자리였다.
장소가 술집이라는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데 술집이 딱히 문제가 될 건 없다.
연예인들은 이야기가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니 이런 장소를 선호한다고도 하고.
오판이었다.
[기억해 둬라. 넌 개미다. 네 숨통은 내 손아귀에 잡혀 있다는 말이야. 내가 변덕을 일으켜서 손 한번 까딱하면, 네 미래는 그대로 없어지는 거야.]그 자리에서 약점이 잡혔다.
이후로는 저들의 수족처럼 행동했다.
여성성(性)을 이용해서 타인의 약점을 붙잡거나, 사이를 진전시키거나 하는 용도로 철저하게 이용당했지.
부리는 대로 이용을 당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동 열심히 하나 봐? 몸이 탄탄하다.]그녀 또한 김도하 패거리와 별다를 게 없는 인간 군상으로 전락한 뒤였다.
아니, 정신적으로는 그보다 추하다고 봐도 좋았다.
상대를 타락시키고, 그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까지 추락하는 데 일말의 위로를 얻는 인간이 되었으니.
이민기와 같이 손쉽게 데뷔하고, 승승장구를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잘난 신인들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본판을 드러내고 똑같은 인간쓰레기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순간의 변덕이 일어났다.
‘이 사람, 이흘이 가진 핸드폰을 주워갔지.’
봤다.
룸에서 이민기가 이흘의 핸드폰을 주워서는 달아나는 걸, 그녀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봤음에도, 김도하 일당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말 그대로 변덕에 불과했으니까.
때마침 이민기가 반창고를 붙여 준 게 인상에 남기도 했고, 그가 저 핸드폰을 주워가서는 어떻게 써먹을지, 그게 살짝 궁금했을 뿐이었다.
이흘에게 돌려줄지, 아니면 그저 나쁜 손버릇이 발동한 건지.
변덕이었다.
어차피 저것 좀 못 본 척한다고 그녀의 책임도 아니겠다, 이민기가 무슨 행동을 할지 궁금했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또 반창고.
반창고가 왜 이렇게 기억에 남았는지.
‘진짜 선수 아닌가?’
세상에 누가 반창고를 들고 다니나.
성인 다 된 사람이.
다시 생각해 봐도 웃길 따름이다.
낡아빠진 로맨스 영화에서도 이딴 오글거리는 플러팅은 안 나오겠다.
만약에 여자 꼬시려고 쓴 스킬이라면, 그런 거 다른 데 가서는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을 정도다.
‘얼굴이 따라주니까 그게 먹히지. 어중간한 사람이었으면 소름만 돋았겠지.’
아니다.
얼굴이 따라주니까 상관없나.
사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으레, 사소한 것으로 결정되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마침 이흘이라는 사람의 성격이 평소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컸고.
[이 X년이 어디다가 대들고 지랄이야. 잠깐 놀아줬다고 나를 자기랑 비슷한 체급으로 아나. 야, 배다영, 제발 분수 좀 알자. 너 그냥 X년이야.]그렇기에 생긴 일이었고.
아무튼, 핸드폰을 가져간 이민기가 무슨 일을 일으킬까 궁금하기를 한참.
그가 터뜨린 일이라는 건, 배다영의 상상에서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난 일이었다.
[김도하 스캔들] [엔터테인먼트, 경찰 고위인사와 손을 잡고 마약 유톡망을 형성. 카르텔 행위.]공론화였다.
익명으로 제보했다.
만에 하나 자기가 했다는 걸 알려지거든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기어코 신고하고야 말았다.
그 또한 변덕이었을까, 아니면 알량한 정의감이었을까.
긴가민가하던 찰나.
[그 개X끼. 세상에서 지만 착한 척 굴고 자빠졌지.]김도하의 회유를 거부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확실해졌다.
이민기라는 사람의 정체는.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내가 이렇게 된 건, 내가 이렇게 살기를 선택했기 때문이었죠.”
그녀가 되려고 했으나, 차마 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자기 고백에 가까운 말의 연속.
이민기는 여전히 티끌도 못 알아듣겠다는 듯 답했다.
[저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지금까지 저도 언제든 신고하고 벗어날 기회가 있었거든요.”
배다영이 자조하듯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못 그랬어요. 무서웠거든요. 저쪽에서 저한테 해코지할까 봐. 만에 하나 연예인으로 살아갈 길이 완전히 닫힐까 봐.”
물론, 연예인으로 벌어 먹고살기는 늦어도 이미 한참 늦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배다영이 각오와 더불어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김도하 그 사람들, 벌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배우님께서 보여 주셨어요.”
[저기,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셔도.]이민기는 여전히 확답을 주지 않고 말을 흐리는 모양새였다.
아마 그렇겠지.
여전히 자기를 신뢰하지 못하리라.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그렇겠지.
하지만 배다영은 애초에 이민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던 게 아니었다.
“알아요. 그쪽에서 저랑 찍힌 사진 때문에 고생하고 계시는 거.”
지금부터가 진짜 관건이다.
배다영은 이번 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이미 보잘것없는 공범으로 전락한 자신이 이민기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도.
아니, 되려 김도하의 공범으로 지내왔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수할게요.”
자수였다.
[……!]“김도하가 저한테 시켰던 거 전부 언론에 밝힐 생각이에요. 배우님 협박하라고 시켰던 것도 있고요. 아시잖아요. 제가 의도적으로 그랬던 거. 증거자료도 전부 있어요. 밝히기만 하면 돼요.”
[잠시만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듣는 거죠?]“이건 배우님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거고. 주위에서 말려도 할 거예요.”
이미 늦었다.
그녀가 지금 털어놓는 말들이 이민기와의 통화에서 흘러간 순간 미룰 수 없어졌다.
녹음해서 뿌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배다영은 이민기에게 이것만큼 떠넘길 생각은 없었다.
‘내가 지은 죄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그뿐이다.
오히려 가슴이 후련해졌다.
“그뿐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했습니다. 배우님.”
이내 배다영이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수화기의 건너편, 핸드폰을 손에 쥔 이민기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이 사람, 왜 이러지.’
배다영.
그녀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일부러 놓아 준 건데.’
이민기가 굳이 신고하지 않았던 잡범에 속했다.
이흘의 핸드폰 자료를 하나하나 검토하던 중에 알았다.
그녀 또한 패거리에게 뼛속까지 이용당한 피해자에 속했다는 걸.
이상할 것도 없다.
김도하 패거리의 가장 기본적인 수법이 피해자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거니까.
처음에는 그래 봤자 똑같은 가해자 일당이니 어설픈 동정심을 발휘할 바에야 신고할 생각이었다만, 유선아가 겹쳐 보여서 한 수 물렀다.
어차피 이쪽에서 해명한들 진흙탕 싸움만 될 테고, 그 해명 과정에서 이민기가 제보자라는 사실이 바깥에 드러날 수도 있고.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느니 적당히 덮고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자수할게요.]자수라니.
이민기가 헛웃음을 흘렸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운이라면 운이다.
이민기의 이질적인 행동을 보고서도 못 본 척 놓아준 게 운이며.
명백한 적이었던 그녀가 막바지에 이민기의 편으로 전향한 것 또한 운이다.
하지만.
‘운 좋네.’
본인은 모를지언정, 스스로 만든 운이었다.
또한, 김도하 패거리가 스스로 쌓아 올린 불운이기도 하였다.
* * *
3점 뒤진 9회 말, 만루역전이 일어났다.
[이민기 스캔들 반전] [피해자 B씨, 김도하 일당의 지시로 행동했다고 밝혀] [동일한 수법으로 피해자 늘려] [고발자 속출, 탈출인가 내부고발인가]김도하 패거리의 앞에서 숨소리마저 죽였던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용당했는가.
어떻게 얽혀 들어갔는가.
누구를 속였는가.
어느 업체가 내부에 참여했는가.
자발적으로 그 모든 걸 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시작은 익명의 피해자 B였다.
[시작은 피해자였을지언정, 가해자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이 과정에서 단연 눈에 띄는 수혜자라면.
역시나 이민기였다.
[이민기, 역으로 김도하 패거리에게 이용당할 뻔했던 것으로 알려져.]비슷한 놈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피해자였다고 한다.
네티즌들의 여론 사이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 이민기가 진짜 착한 게 맞았네] [2. 방구석에서 빨래 돌리고 있던 이민기 1승 적립] [3. ㅋㅋㅋㅋ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4. 이민기면 술자리는 다 마다하고 헬스장 가는 거로 유명한데 무슨 룸에서 여자를 끼고 놀아 ㅋㅋㅋ] [5. 숲속 친구들 다 어디 갔나요?] [6. 솔직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고 봄] [7. 합리적인 건 느그 악플러 앞에 JC 명의로 갈 고소장이 합리적이구요 ㅋㅋㅋㅋㅋ]본디, 이런 사건의 경우 흙탕물이 조금만 튀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만.
이번에는 사정이 특수했다.
[가해자 B양, 심경 밝혀. 이민기 오히려 배려를 보여 줘 감사해.] [다친 자신에게 반창고를 붙여 준 것]가해자가 피해자를 변호하는 상황이 어디 흔하겠는가.
애초에 김도하 일당의 범행 수법 자체가 널렸는데, 거기에서 정확하게 빗겨나간 예시였다.
[이민기 저거 수상하다니까] [ㄴ 야붕아…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연예인 치고 깨끗한 사람 별로 없다. 이민기는 다를 것 같지? 다 밥그릇 싸움이다. 현실을 좀 봐라.] [ㄴ 야붕아.. 제발 현실을 좀 봐라… 부탁이다….] [ㄴ 현실을 못 보는 건 너였구연] [ㄴ 선생님, 혹시 이세계에 계십니까?] [ㄴ 다온 사무실에서 검거]사건이 발생하고 약 일주일이 경과했을 무렵, 마침내 소강되었다.
김도하 일당은 범행을 저질렀다.
가해자에는 마약 유통책인 다온이 크게 거들었다.
피해자는 많았다.
그중 이민기가 대표주자에 속했다.
마지막으로 최초 제보자는.
여전히 익명이었다.
* * *
아수라장을 연상시킬 만큼 온갖 사물이 나뒹구는 사무실.
다리가 꺾인 책상만 한 손에 못 셀 정도로 많은 그곳에서, 한 남자가 울부짖었다.
“으아악!”
콰앙!
동시에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아직 멀쩡했던 의자가 폭삭 주저앉았다.
평소 매사에 능글능글하기 짝이 없었던 사람이자, 한국 연예계에서 은밀하기로는 소문난 사람.
황인구 대표였다.
아직은 불구속 수사라지만, 조만간 잡혀들어갈 게 분명한 그가 충혈된 눈으로 번 허공을 응시하더니 외쳤다.
“이민기 이 개X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