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9)
운빨로 탑스타-9화(9/200)
제9화
김아성 트레이너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 그럼 보여줘 봐.”
다소 도발적인 말.
보여보라는 말에 이민기가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보여보라고요?”
“뭐야, 자신 있어서 한 말 아니었어? 하고 싶다며. 건달 연기. 해 보겠다며, 그럼 해 봐야지.”
김아성 트레이너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줄 것처럼 말했던 것과는 달리, 일말의 조롱마저 느껴지는 태도로.
“민기 씨가 자발적으로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용기와 만용은 글자 하나 차이거든.”
그는 이민기를 직시하는 눈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오디션에 붙으려면 혹시가 아니라 역시가 필요하거든. 그러니까 굳이 모험을 해야겠다면, 근거가 있다는 걸 입증해 봐. 말이 아니라 연기로.”
그렇게 말하는 김아성의 눈빛이 다소 차가웠다.
이민기가 스스로 말한 바를 책임질 실력이 되는지 봐야 알겠다는 말이었다.
자신 없으면 포기하고 안정적인 역할에 집중하라는 말.
“왜, 막상 해 보려니까 자신 없어?”
이어진 도발에 김탁과 유선아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 쌤 졸라 빡세네.’
‘사실상 그냥 포기하라는 말 아냐?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얼핏 냉혹하게마저 들릴 수 있는 말투였다.
이민기가 합리적이지 못한 고집을 부리니, 그의 결정을 돌려 꺾기 위해 강수를 던졌다는 것.
실제로 그런 의도가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실내를 들여다본다면 그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어디, 진심으로 한 말인지 나한테 보여 봐라.’
김아성은 이민기에게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가 이민기라는 사람의 타고난 기질을 생각해 봤을 때, 건달 연기를 선택한 건 정답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까울 뿐이다.
과연 그게 진심으로 한 말일지, 아니면 되는대로 던진 말일지는 한 차례 더 검증이 필요했다.
왜, 틀린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하지 않나.
그렇기에 김아성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배짱으로 던져 본 말인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한 말인가.’
전자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후자였으면 한다.
‘지금 내 말이 압박으로 들렸다면, 차라리 여기에서 물러나는 게 낫겠지.’
이게 김아성이 품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민기는.
‘차라리 잘 됐다.’
김아성이 그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실력을 보기 좋게 증명할 기회를.
“알았어요. 보여드릴게요.”
“그래, 그럼 준비할 시간은 얼마나.”
“괜찮아요.”
이민기는 김아성의 배려를 사양하며 말했다.
“많이 연습해 뒀거든요. 평소에. 짬짬이.”
기습적으로 도발을 던졌으니, 이쪽도 그에 응수해야지.
* * *
“후우.”
자리에서 일어선 채 벽을 바라본 이민기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연습 시간은 차고 넘치게 쌓았다.
하지만 연기라는 건 아무리 반복해도 매번 새로운 도전이기 마련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자유 연기라. 데뷔한 뒤에는 좀처럼 할 일이 없었지.’
일단 데뷔를 하고 나면 지정 연기를 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유 연기는 그리우면서도 낯선 부분이 있었다.
자유 연기라면, 어떤 대본을 연기해도 그의 맘이었다.
어떤 영화에서 나온 명장면.
다 내려놓고 대사만 봐도 캐릭터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엿보이는 그런 장면들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정해진 대사를 최대한 소화하되, 거기에 먹히면 안 된다.’
대본에 먹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신인들이 흔히 보이는 딜레마가 있었다.
대본을 다소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그 대본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하지만 프로라면 그래서는 안 되지.’
같은 대본을 두고 연기를 선보이더라도, 엄연히 ‘자신’만의 연기를 보일 줄 알아야만 했다.
가수가 다른 이의 노래를 부를 때와도 같았다.
원곡을 완성도 있게 살리되, 모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곡을 부르든 자기 노래가 되어야 한다.
이 단계를 극복하는 게 프로 연기자로서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대본은 미리 준비해 두었다.
꽤 자신 있는 물건으로.
하지만 이민기는 연기를 곧바로 시작하지 않고, 시작하기에 앞서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30대의 그와는 모습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캐릭터도 변했다.
얇게 뻗은 머리카락은 조만간 미용실에 가서 잘라야 할 정도로 자랐다.
턱은 갸름하다.
콧대는 너무 낮지도, 그렇다고 높지도 않다. 그래도 모양에는 자신이 있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선이 얇았다.
‘일반적인 건달 연기로는 부족하다.’
마냥 불량하기만 한 캐릭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외모는 위압적인 인물상과는 거리가 지나치게 멀었다.
그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건들거리고 얄미운 캐릭터, 제비 같은 캐릭터가 되어야 했다.
이민기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민기의 모습이 아주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됐다.’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객관화가 끝났다.
이민기는 때가 왔다는 걸 떠올리며 외쳤다.
“아이고, 누님!”
건달, 그중에서도 제비였다.
이민기의 입꼬리가 귓가에라도 닿을 것처럼 주욱 올라갔다.
“또 오셨어요? 전번에 같이 온 그분은 어디 계시고. 아, 이놈의 입방정.”
당장이라도 여자 한 명 꼬셔 등쳐먹으려 하는 제비.
그게 이민기의 겉모습에 한 겹 씌워졌다.
“흐흐, 오늘은 제가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능숙하지 못하다.
동작의 어색함이 미묘하게 남았다.
건달 연기가 자극적인 연기인 만큼, 작게나마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차고 넘친다.
적어도 김탁과 유선아의 눈에는 그러했다.
‘이야, 범생인 줄 알았더니 이런 모습이 있었단 말이지?’
‘완전 김탁 씨 같아.’
하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김아성의 눈이라면 어떨까.
‘어딘가 아쉬운데.’
아쉬웠다.
물론, 이민기의 연기는 훌륭했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지적하기보다는 칭찬을 던지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는 이민기에게 어지간한 연기가 아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기대했다.
‘이게 전부인가? 아닐 텐데.’
그렇기에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
이민기의 다리가 휘청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이민기의 몸이 옆으로 풀썩 기울어졌다.
당황했다는 듯 벙찐 표정을 짓더니, 일어서려다가 참치가 펄떡이듯 도로 넘어졌다.
‘발을 헛디딘 건가?’
김아성의 눈빛이 꿈틀했다.
연기에서 실수하는 건 흔한 일이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기본이 좋다고 해도 흐름을 깬 이상 이건 불합격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스읍.”
이민기는 뺨을 훑더니, 냅다 외쳤다.
“아! 어떤 새끼야!”
* * *
순간적으로 김아성의 머리에 혼란이 돌았다.
다리를 헛디뎌 넘어졌나 싶었더니, 그대로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꽤 거센 욕을.
순간적으로 집중이 깨진 와중인데 이민기가 빈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거듭 외쳤다.
“야, 너 뭐야? 뭔데 사람을 쳐? 너 돈 많아? 야! 경찰 불러? 어? 부를까?”
그 목소리가 귀에 박힌 순간 김아성은 깨달았다.
‘이것도 연기였구나!’
너무나도 허물없이 넘어진 그 모습마저, 연기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고가 닿은 찰나 김아성의 머릿속 이민기의 건달 캐릭터가 완성되었다.
‘‘하, 이거 물건이네.’
2프로 모자랐던 연기에 퍼즐 조각이 끼워졌다. 생동감이 탄생했으며, 압도적인 몰입감이 뇌리를 지배했다.
계속해서 평가로 일관하던 김아성의 관점이 감상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아이 씨X, 쪽팔리게.”
이민기는 넘어진 곳이 참을 수 없이 시큰거리는 듯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일어서며 궁시렁거렸다.
그렇게 일어서는 순간마저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캬아, 디테일 오졌고.’
김탁이 속으로 감탄을 터뜨리며 다음 연기를 기대한 순간이었다.
삐리릭! 뿌슝빠슝!
알람이 가열 차게 울기 시작했다.
이민기에게 주어진 1분 30초 시간제한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아.”
아쉬움을 남기며 짧은 자유 연기가 막을 올렸고, 그 순간 이민기가 속으로 한 생각은 이러했다.
‘X 됐다.’
충격이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왜 하필 그때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렇다.
이민기가 발을 헛디딘 건 딱히 연기도 뭣도 아니었다.
단지, 전날 하체 운동을 하고 왔기에 덜 가신 근육통이 도진 탓이었다.
그 뒤는 전적으로 애드립이었다.
다리에 가볍게 쥐가 난 탓에 일어서다가 재차 넘어졌고, 정말로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욕에 진심이 실렸던 것 또한 반쯤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이 멍청아! 시간 준다고 했는데 왜 바로 하겠다고 먼저 말을 꺼내고 그래!’
남한테 묻지 않아도 본인이 이유를 알았다. 그러면 멋있을 줄 알았으니까.
도발에 도발로 응수하는 것.
그게 멋이니까.
멋이랑 망신은 한 끗 차이지만.
‘으아악!’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게 부끄럽다 못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연기를 마쳤음에도 후련하기는커녕, 머릿속이 아쉬움으로 점철되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을 정도.
하지만 뒤늦게 남 탓을 해 봐야 의미는 없었다.
이미 늦어도 단단히 늦었다.
“…….”
“…….”
딱 봐도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지 않았나.
그를 바라보는 김탁과 유선아의 표정은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고 싶은데, 말을 참는 눈치.
그게 이민기의 눈에는 비웃음을 간신히 참는 것처럼 비췄다.
물론, 전적으로 그의 착각이었다.
‘지렸다. 나중에 몸 연기는 어떻게 했나 물어봐야지.’
김탁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요령을 물으려고 안달하고 있었으며.
‘워낙 마르셔서 액션은 약할 줄 알았는데, 역시 다 잘하시네. 오늘도 한 수 배웠다.’
유선아는 머릿속으로 이민기의 연기를 복기하고 있었다.
연기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세 사람 모두 한 마음으로 침묵을 지키며 김아성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찰나.
“민기 씨.”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질문이었다.
“지금 한 거, 어느 작품에 나오는 대본이지?”
“아, 그게.”
이민기는 곧바로 대답하려고 입을 열고는 그대로 말을 삼켰다.
당당하게 작품 이름을 말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아직 이 시대에 나온 작품이 아니다.
왜냐, 이건 그가 미래에 직접 참여해서 짠 대본이니까.
그렇기에 각별히 자신이 있었던 것이고.
조졌지만.
‘일단은 사실대로 말하자.’
이민기는 숨을 한 차례 들이킨 뒤 다시금 말했다.
“제가 창작한 거요.”
“창작? 그래?”
“네.”
“흐음.”
김아성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큭큭 웃기만 했다.
그러기를 잠시.
뭔가 생각이 들었는지 툭 던지듯 물었다.
“민기 씨, 혼자서 대본도 짜?”
“가끔씩요.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대본 일도 해 보고 싶어서. 로망이잖아요.”
“로망이라, 재밌네.”
그 순간이었다.
김아성 트레이너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세 사람을 뒤로한 채 연습실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민기 씨,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
한순간 이민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김아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창작도 좋은데, 오디션에서는 가능하면 좀 유명한 작품으로 하자. 심사위원들 창작 대본은 별로 안 좋아해.”
“……네, 네!”
“그리고 또.”
김아성은 이민기를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훑으며 물었다.
“다리를 왜 그렇게 후들거려?”
“긴장이 덜 풀려서요.”
“그래?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 앞으로는 더 빡세질 테니까.”
사실은 이러했다.
장딴지에 쥐가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