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91)
운빨로 탑스타-91화(91/200)
제91화
TV 스피커를 타고 아나운서답지 않게 열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Y의 공동 대표 중 한 명인 용도국은, 피해자들에게 데뷔를 시켜주겠다는 말로 속여 해외로 끌어들인 뒤, 사실상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그 말대로였다.
3Y는 김도하가 소속된 기획사로서, 여태껏 비슷한 범행 수단을 수 차례 저질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 열심히 없애더니마는, 결국 잡히기는 잡혔네.’
이민기가 작게 감탄했다.
여러 가지 증거를 마련해서 제보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자가 잡혔던 건 아니다.
누군가는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가 지지부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제보자가 등장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은 아마, 배다영과 같은 피해자였겠지.
“와, 저딴 것도 사람이라고 숨 쉬고 사냐. 우웩.”
김아성 트레이너가 감탄을 터뜨렸다.
“저런 쓰레기도 감방 들어가면 밥 잘 먹겠죠? 내 세금이 다 아깝네.”
아마도 아직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있을 김탁도 감탄을 터뜨렸다.
그 누구보다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지금이라도 잡혀서 다행이네요.”
이민기가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인과응보라고 하나. 이걸.’
악행으로 흉측하게 뒤덮인 사람이 몸을 가릴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악행이 사회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을 때뿐이다.
그들은 빛에 드러나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 위세를 부릴 수 없다.
몸을 뒤덮은 악행이 끔찍하게도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콩밥 맛있게 먹어라.’
이민기가 속으로 깨소금을 즐기는 찰나였다.
“흠, 그러고 보니까 민기 씨가 저 3Y 오디션 보러 가려는 거 말리지 않았어요?”
유선아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민기가 당황스러운 마음에 기침을 연발했다.
“쿨럭! 쿨럭! 아, 네, 쿨럭! 그랬죠. 선아 씨한테 조금 조언을 드렸죠?”
“그때 3Y에 구린 구석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터진 거 보면…… 사실 다 알면서 그러셨던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요. 그럴 리가.”
이민기가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안다.
3Y가 쓰레기 집단이라는 것도.
저들이 원래부터 범행을 저질러왔다는 것도.
그가 진실을 안다는 게 외부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 유선아 앞에서도 말을 최대한 삼갔다만.
이민기가 계속해서 말을 돌리려니, 유선아가 그게 우스꽝스러웠는지 말했다.
“민기 씨, 연기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네요.”
“……그것은 연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흐음.”
유선아가 보일 듯 말 듯 배시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 오디션 보러 갔으면 제가 저 꼴 났을 수도 있었겠네요? 뉴스 보니까 거의 중국에다가 지망생들 수출한 수준이던데.”
“음, 으음. 그렇죠?”
“그럼 민기 씨가 제 생명의 은인인가? 고마워요. 어떻게 보답해 드리면 될까요?”
유선아가 들떠서는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와중이었다.
김탁도 감탄 한번 터뜨리고는 동참했다.
“키야아, 역시 대박 배우는 듣는 것도 많네. 민기 씨! 진짜 맨날 정보란 정보는 혼자서만 다 독점하려고 하고.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희 그런 사이에요?”
그런 사이가 뭔데.
이 양반아.
이민기는 목울대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키며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서는 김아성 트레이너가 폭소를 터뜨리기 일보 직전인 양 웃음을 꺽꺽거리며 참고 있었다.
“맞네, 민기 씨가 잘못한 거 맞네. 선아 씨한테도 좀 구체적으로 말을 해 주지.”
저 양반마저도 동참했다.
사정을 알 만큼 아는 사람마저 저런다니.
내 편이 없다.
이민기가 쓸쓸한 기분에 취해 옆으로 기울어지려니, 어느새 웃음이 그친 유선아가 입을 열었다.
“농담이고요. 진짜 고마워요. 민기 씨 덕분에 살았어요. 앞으로 두고두고 갚을게요.”
“진짜요?”
“네, 배우 생활 접을 때까지 조금씩 계속 갚을게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호들갑스러운 말 속에는 천 마디의 감사 인사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순수한 진심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그걸 온전히 느낀 이민기가 봄바람처럼 따스한 미소를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밥값은 선아 씨가 내는 거로.”
“……저 아무리 그래도 아직 지망생인데 한우를 사긴 조금.”
* * *
며칠 뒤.
안산시에 위치한 어느 대형 스튜디오.
흰색 복도를 따라 수십 명의 남자들이 저마다 줄줄이 늘어섰다.
긴장이 줄줄 흐르는 공간.
그곳에서 한 남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32번 참가자 들어오세요.”
오디션 스태프가 참가자를 호출하는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일어선 사람이 있었다.
“네!”
바로, 최근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남자.
‘저거, 이민기 아니야?’
이민기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습을 드러내자, 거의 동시에 사방으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미친.”
“이민기가 여기에 왜 있어?”
“아까부터 있었는데.”
“우리 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원이 기성 배우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민기의 인지도는 각별히 뛰어났다.
신인 배우 중에서는 흔치 않게 연달아서 흥행을 터뜨린 것도 있지만.
최근 들어, 이민기의 이미지가 한층 더 좋아진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도하 스캔들, 이민기는 오히려 피해자를 감쌌다.]피해자에게 선의를 베풀었다나.
사실, 그런 것까지는 아니다.
그냥 반창고 하나 붙여준 게 전부지.
하지만 대중에게 그런 디테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내가 이민기를 오해했구나] [뼛속까지 착하다] [찐 착함] [세상에 반창고 들고 클럽 가는 연예인이 세상에 어딨냐고 ㅋㅋㅋㅋㅋㅋ] [‘여기.’]나쁜 소문이 구체적인 디테일 없이도 빠르게 퍼진다면, 그 반대 또한 같았다.
좋은 소문이다.
어차피 좋은 소문은 조금 곡해되어 봤자 좋은 소문이다.
이민기의 심심한 선행은 한층 더 거대하게 부풀어, 어느새 피해자를 감싼 몇 안 되는 연예인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반에 한 명씩 남 못 도와서 안달 난 사람 있잖아. 그게 이민기 같음.] [만화에서 튀어나온 성격] [사진 퍼졌을 때도 혹시 몰라서, 상황 파악되기 전까지 함부로 고소 안 했다며?] [JC 일 안 하냐] [배우 측 요청이었다는데]착한 게 뭐 그리 특별한 덕목이겠냐만, 요즘처럼 이기적인 시대에는 개성이 된다.
김도하 스캔들같이 어두운 사건이 터졌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검은 도화지처럼 펼쳐진 밤하늘에서 흰색으로 반짝이는 별 하나는 한없이 크게 보이는 법.
이민기 또한 그러했다.
아무튼, 그런 이민기는 오늘 새 작품 오디션에 참가하러 왔다.
그 작품의 이름은 바로.
[패션 앤 패션].황의성 감독이 새로 찍으려는 작품이었다.
‘김도하 스캔들을 마무리 짓거든, 꼭 찍고야 말겠다고 점찍어뒀었지.’
이를 아득바득 갈며 결심했다.
하지만 JC의 영업에도 불구하고 그리 참여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보통 이민기 정도 몸값 되는 신인이라면, 오디션 정도는 면제하고 바로 촬영을 시켜줄 만도 하다만.
황의성 감독 측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오디션을 받으라고 예외는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상처를 받은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아.’
그 황의성답지 않나.
연기력으로만 뽑겠다는 거 아닌가.
그를 이름값으로 안 뽑았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배우라고 한들 이름값으로는 안 뽑았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 증거로 오디션장에서 연기파 배우들이 몇몇 눈에 띄기도 했고.
“32번 참가자.”
“네!”
이민기가 크게 외치고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과 5초 뒤.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간 이민기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석.
그 중앙에 가장 먼저 황의성 감독이 자리한 채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유규언 대표님?’
유규언.
평소 그와 패션 관련해서 협업을 자주 진행했던 쇼핑몰의 대표가 앉아 있었다.
배우 지망생 시절부터 잘 대우해 줘서 여태껏 협업을 진행하는 유규언 말이다.
“…….”
저 양반이 여기에 왜 있나.
이민기가 멍하니 눈을 꿈틀거리려니, 그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찰나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나는 이번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 * *
[패션 앤 패션] 오디션장.심사위원석 황의석 감독 옆자리에 앉은 유규언 대표가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속으로만.
사심을 겉으로 티 내면 안 되니까.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그의 눈앞으로 불과 15미터 앞, 한 미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머리는 작다.
외계인처럼 작은 건 아니고,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로만 작다.
하지만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닌 형태.
이민기의 두상은 어느 스타일로 가꾸어도 아름다운 매력적인 두상이었다.
여기에 평균을 한참 넘어서는 넓은 어깨와 역삼각형으로 들어간 허리와 기다란 팔다리.
또한, 올바른 자세.
그야말로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몸이라고 봐도 좋을 몸매였다.
그렇다.
‘언젠가 민기 씨가 이런 작품에 눈독을 들일 것 같기는 했지만.’
그가 자문 겸 미술 협력을 맡은 작품, [패션 앤 패션]에 이민기가 지원했다.
실로 우연이라 불러 마땅한 일이겠다만, 황의성 감독이 유규언 대표에게 자문을 맡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가장 트렌디한 옷을 취급한다고 들었습니다.]그의 옷을 보고 결정한 것.
때마침 유규언 대표의 쇼핑몰 [YU]는 이민기의 홍보와 더불어 폼이 절정에 올라 있었다.
근래 들어서는 투자, 콜라보 문의가 곳곳에서 끊이질 않을 정도로.
패션으로 영화를 제작하려는 스튜디오에서 협력 요청이 들어오는 것 정도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게 황의성 감독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그래도 대충할 수는 없다.’
유규언 대표가 눈을 부릅떴다.
이민기가 [패션 앤 패션]에 지원한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심을 반영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오디션에서 그의 역할은 하나다.
[대표님은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봐주시면 됩니다.]참가자가 옷을 얼마나 잘 입을지를 검토하는 것.
캐릭터와 연기력은 황의성 감독이 집중해서 관찰하기로 했다.
또 한 명은 전반적인 연기 퀄리티를 보기로 했지.
이렇게 세 사람.
세 사람의 평가에서 골고루 고득점을 얻어야 이민기가 [패션 앤 패션]에 주연으로 참여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민기 씨, 그동안 저희 쇼핑몰에 헌신해 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심사이니만큼 공정하게 보겠습니다.’
유규언 대표가 각오를 가다듬는 한편, 비슷하게 굳센 각오를 다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여기에서 유규언 대표님을 만난 건 반갑지만, 편파 심사는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이민기였다.
그는 어디까지나 황의성 감독에게 직접 평가를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온 바.
어중간한 사심이 심사에 반영된다면, 그 자체로 실망할 일이었다.
“연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자유 연기부터 보여주시지요.”
“네.”
“따로 신호를 드리지는 않으니, 준비되면 바로 시작하면 됩니다.”
제3의 심사위원의 말에 이민기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번 자유 연기.
대체 어떤 연기를 하면 [패션 앤 패션]이라는 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까 엄청나게 고민했다.
안정적인 연기일까.
황의성 감독은 시네마필로 유명하니, 그가 좋아한다고 선언했던 작품 중에서 하나 고르면 될까.
도발적인 연기일까.
예술 감독이니, 전위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라는 감독이 선호할 만한 캐릭터에 대해서도 한없이 분석했고.
‘황의성 감독은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지.’
예술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그는 완벽한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결함이 있어, 사회적으로 미움을 받을 만한 캐릭터를 더 선호했다.
사채업자.
자전거 도둑.
포주.
도박 중독자.
사회적으로 미움을 사는 캐릭터를 대뜸 던진 뒤, 끝내 러닝타임 안에 그 캐릭터에게 관중들을 몰입시키고야 마는 것.
이거야말로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의 특징이었지.
[내가 진상으로 보여요? 내 눈에는 고객님이 더 진상 같애. 물건 안 팔아주잖아. 왜 고객님은 자기만 아세요? 기분 더럽게.]그의 작품을 하나로 관통하는 대사였다.
애초에 세상을 조명하는 관점부터 일반 식상과는 다르게 가져간다는 것.
여기에서, 이민기가 구상해 낸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하나, 둘, 셋.’
감정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니, 마네킹이었다.
“……!”
이민기가 차례대로 포징을 바꾸기 시작했다.
몹시 빠른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