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93)
운빨로 탑스타-93화(93/200)
제93화
화목하기 짝이 없었던 몇 초 전과는 달리, 한겨울 한강처럼 얼어붙은 차내.
“해외 진출이요?”
이민기가 뜨문뜨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해외에 당장 진출할 수단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질어질하네.
물론, 해외에 진출이 조급하진 않다.
오히려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캠퍼스 스토리], [언제까지고 푸르른], [카페 델 디아]까지 모두 해외로 하나하나 수출되고 있으니 말이다.물론, 아직은 아시아 등지를 중심으로 소급 유통하는 정도이지만.
하지만 박한모 매니저의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해외로 몇 달 뒤면 바로 진출할 수 있을뿐더러, 어쩌면 수천만 명이 배우님의 모습을 보게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큰 듯했다.
그렇게 말하는 박한모 매니저의 목소리에서는 언뜻 즐거움마저 엿보였고.
“저 놀리시는 거죠?”
“그럴 리가요. 저 박한모,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진지합니다.”
평소에 안 쓰던 말투를 쓰시는 거 보니까 놀리는 거 맞는 것 같은데.
“물론, 회사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진행할 겁니다. 배우님만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끼익.
한참을 달리던 차가 길가에 멈춰섰다.
줄곧 운전대를 붙잡던 박한모 매니저가 고개를 슬쩍 돌려 뒷자리에 앉은 이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이야기라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 * *
“……매니저님한테 이런 인맥이 있으셨을 줄이야.”
“미국에서 공부했으니까요. 이런 거 하나라도 건져오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아닌 것 같은데.
이민기가 작게 말을 삼켰다.
‘설마 매니저님이 미국에서 영상을 공부한 사람일 거라고는.’
그렇다.
평소 과거에 대해 잘 언급하지 않았던 박한모 매니저의 정체는 바로.
‘매니저님이 그래프턴 아트스쿨(GIA) 출신이셨다니.’
미국에 위치한 세계 유수의 명문 예술학교, GIA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프로듀싱을 전공.
학생 중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에서 입상 이력까지 있다나.
“되게 의외네요. 매니저님이 해외에서 대학을 나오셨을 줄이야.”
“배움에는 장소도 중요하니까요. 그래도 한국에서 일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럼 왜 제작사로 안 가시고 기획사로.”
“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부족한 걸 배우려 하기 마련이니까요.”
“아, 예…….”
제작 쪽은 언제든 배울 수 있으니, 그보다는 기획 일을 배우려고 했단 말인가.
자부심이 넘치는 말에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이려니, 박한모 매니저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농담입니다. 그저 이쪽 일에서 큰 매력을 느껴서 왔을 뿐입니다. 프로듀싱의 범위는 넓지요. 애초에 자기 전공 맞춰서 취업하는 사람은 통계상 20% 미만입니다.”
그렇다고 하신다.
어찌 됐든, 박한모 매니저가 생각 이상으로 잘난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더욱이 이번 일도 그의 인맥이 물어다 준 일이라는 것도.
“(모,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북유럽의 여신을 연상시킬 만큼 덩치가 호리호리한 금발 여성 한 명이 대뜸 박한모 매니저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포옹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걸 박한모 매니저는.
“(가까이 오지 마. 냄새나.)”
매몰차게 쳐냈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왜 이렇게 매정해.)”
“(네가 너무 주의가 없는 거지. 한국에서는 그렇게 마구 만지려 들면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아.)”
“(나는 미국인인데?)”
“(대단한 거 알려줘서 고맙다. 그리고 너 호주 사람이야.)”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다.
그러고 보니까 매니저님 영어 잘하는구나.
이민기가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아니, 감탄을 터뜨리는 건 박한모 매니저의 영어 실력보다는 인맥 쪽이었다.
그것도 그럴게, 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범상치 않았으니까.
‘보아냐 올슨 아니야?’
보아냐 올슨.
미국에서 최근 빌보드 30위 안에 진입하며 한창 핫한 신예로 떠오른 싱어송라이터였다.
“제 대학 시절 친구입니다.”
그런 그녀를 박한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소개했고.
“대학생 때 종종 작품 이야기를 나눴죠.”
“(모,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지 보야나 올슨이 물었다.
“(너랑 가끔 작품 이야기 나눴다고.)”
“(겨우 그 정도가 아니지. 내 첫 싱글 뮤비는 네가 찍었잖아.)”
“(그건 그냥 비공식으로 찍은 거지. 편하게.)”
“(겸손하기는. 나는 그 영상이 뜬 덕분에 지금 기획사랑 계약한 건데?)”
어마어마하다.
박한모 매니저가 학생 시절에 보야나 올슨과 협업을 진행했단 말인가.
이쯤 되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
“(그런데 이쪽 배우님도 내가 말하는 거 다 알아들으시는 것 같은데? 맞죠?)”
갑작스럽게 보야나 올슨이 이민기에게 과녁을 돌렸다.
이민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요. 할 줄 아는 만큼만 해요.)”
“(대충?)”
보야나 올슨이 작게 웃더니 말했다.
“(발음이 완벽한데?)”
그렇다.
실제로 이민기는 영어를 할 줄 아는 편이었다.
그것도 리스닝을 상당히 잘하는 축.
이건 특별히 이민기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취미적인 요인이 컸다.
‘영미권에서 나오는 작품이란 작품은 안 가리고 모조리 다 챙겨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자막 없이 볼 수 있게 됐지.’
순전히 들인 시간의 문제였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작품과 영미권에서 생산되는 작품 중 어느 게 더 많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이민기는 영미권 작품의 태반을 전부 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살면서 영어를 한국어보다 더 많이 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런 바탕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학원에 몇 달을 다녔고, 빠르게 느는 게 재밌다 보니 더 열심히 했다.
대사를 따라 하다가 흥이 오르거든 아예 영어로 연기를 연습하기도 했고.
“흠흠.”
물론, 그런 본인도 영어로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는 게 많지 않았기에 입이 어색한 구석은 있었지만.
“(매니저님한테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신곡 뮤직비디오에 까메오가 필요하시다면서요?)”
“(그렇죠.)”
보야나 올슨이 이민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번 뮤직비디오의 테마는 세계 여행이거든요. 전국을 여행하면서 각지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출연을 부탁하는 거죠.)”
“(엄청나게 큰 기획이네요.)”
“(시간이 꽤 걸리기는 걸렸어요. 하지만 이제 반 정도는 채웠으니까, 나머지 반만 채우면 끝이죠.)”
“(벌써 반이나.)”
이민기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말하면서도, 보야나 올슨의 이번 곡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빌보드 10위 안에 처음으로 진입했지.’
덜렁 굴러들어온 것치고는 대단한 일감이리라고는 짐작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보야나 올슨.
그녀의 신곡 뮤직비디오는 그저 흔한 뮤직비디오가 아니었다.
되짚어본 이민기가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운이 좋군.’
* * *
제목까지도 알고 있다.
[treatment]보야나 올슨의 첫 히트곡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 뮤직비디오도 정성을 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상당히 화제가 됐었고.
세계 각지마다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하나씩 영상을 찍었는데, 거기에서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나왔더라.
‘국밥 먹었었나?’
부산 중앙동 노포에 가서 돼지국밥 먹었지.
워낙에 화제가 됐던 바람에 성지순례라고 거기 찾아간 사람도 많았고.
그게 이번에는 이민기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이었다.
“(뭐가 됐든 좋아요. 민의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만 있으면.)”
“(민?)”
민이 누구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데, 보야나 올슨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민기를 줄여서 민.)”
“배우님, 이 사람은 원래 저러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박한모 매니저가 끼어들었다.
“깊게 생각해 봐야 배우님 머리만 아프십니다.”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배우님,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모는 내가 부끄러워?)”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아까부터 계속 모라고 불렸지.
‘됐다.’
그보다는 어서 뭐라도 촬영하고 싶어졌다.
몸이 근질거린다.
박한모 매니저는 반쯤 농담조로 해외 진출을 거론했던 거지만, 이민기 그는 알고 있지 않나.
이게 정말로 해외 각지까지도 두루두루 알려질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이민기의 내면에 깃든 배우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패션 앤 패션 찍기 전에 뭐 하나라도 몸풀기로 찍고 싶었는데, 이게 딱이네.’
재밌겠다.
뮤직비디오도 좋지.
보야나 올슨의 유명세도 유명세다만, 그보다는 내가 이 역사적인 이벤트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게 좋다.
두근두근.
이민기가 터질 듯 뛰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어디서 찍죠? 지금 바로라도 시작하고 싶은데요.)”
“(그럼 내가 먼저 묻고 싶은데.)”
보아냐 올슨이 웃으며 말했다.
“(한국적인 느낌이 확 드는 장소라면 어디가 있을까요?)”
“(한국적인 거라.)”
역으로 들어온 질문에 턱을 괴며 고민하기를 잠시.
이민기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거라면 또 제가 전문가죠.)”
* * *
한국적인 관광 요소라.
세상에 한국적인 요소라고 하면 정말 한없이 많다.
이미 이 시대에도 많다.
명동.
전통시장.
한강 공원.
한옥 마을 등등.
하지만 그 안에서도, 유독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있었으니.
“(여기는 사람들이 다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네?)”
바로 경복궁이었다.
온 사방으로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셀카봉에 핸드폰을 끼우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도.
“(바로 이거지, 엄청 한국적이네?)”
보야나 올슨이 바라던 걸 찾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에서 바로 찍는 건가 봐요?)”
“(아니요. 그 전에 할 게 있죠.)”
“(흐흠?)”
“(이쪽이에요.)”
이민기가 이들을 한 업체로 끌고 갔다.
한복대여업체였다.
놀라는 보야나 올슨에게 이민기가 웃으며 말했다.
“(기왕 경복궁까지 왔으면, 한복 정도는 입어 줘야죠.)”
그렇다.
한국 하면 경복궁이고, 경복궁 하면 한복이다.
이 둘은 서로 버터와 간장, 토마토와 치즈, 라면과 김치와도 같아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보기도 좋고.’
어차피 해외로 퍼져나갈 영상 아닌가.
그렇다면 아주 찰나의 순간 등장하고 사라질지라도, 최대한 확실한 임팩트를 남기고 싶었다.
누가 보더라도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한 물건으로 말이다.
“(어이구, 아주 잘생기고 예쁘네.)”
사장님이 이민기와 나머지 둘을 보고서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막 놀라지는 않았다.
원래 연예인들도 고객으로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
상대가 유명인이라고 너무 과민반응하면 서로 불편하다는 걸 아는 셈이었다.
“(천천히 둘러보고 말해요.)”
가만.
그러고 보니까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네.
‘세상이 글로벌하구나.’
사람이 몰리는 가게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건가.
이민기가 작게 놀라면서도 가게 안을 둘러보는 와중, 그가 찾았다는 듯 성큼 집어 든 물건이 있었다.
“갓이군요?”
갓이었다.
박한모 매니저의 말에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갓이 한류열풍을 주도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거든요.)”
어디 가서 말한들 쥐뿔도 안 믿겠지만 객관적으로 사실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과 좀비와 갓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다고 언급하고 싶으나, 이렇게 말하니까 더 안 믿을 것 같아서 삼갔다.
“(갓, 어감도 멋있잖아요.)”
“(엄청나기는 하네, 갓.)”
보야나 올슨이 갓을 한 손에 든 채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모자 이름이 갓.
“(음, 배우님의 취향이니 존중하겠습니다. 전 이쪽이 더 좋군요.)”
박한모 매니저도 몹시 자연스럽게 두루마기를 들어 올렸다.
올 블랙 색채에 개량한복에 가깝게 디자인해, 딱 봐도 세련된 물건.
거의 코트 느낌이라고나 할까.
취향이 적잖이 독특하다 싶은데, 문득 그걸 대뜸 고르는 손길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매니저님은 왜?”
이민기는 그게 문득 의아해서 물어본 찰나, 박한모 매니저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 번쯤 입어보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워서 안 입었을 뿐,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볼 때마다 로망이었지요.”
“아.”
“경복궁에서 이 정도 입었다고 눈치 줄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인 도전과제셨군.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 스케줄 없으세요?”
“저 최근에는 거의 배우님 전담이라 괜찮습니다.”
아하.
그동안 좀 떴다고 대우해 준 모양이었다.
JC 내에서 나름대로 중요인물이 됐다는 게 확 와닿는다.
라고 이민기가 생각한 찰나였다.
“다온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사님 지시로 평소에는 아예 스케줄을 비웠습니다. 가급적 떨어지지 말라면서.”
아하.
그쪽 때문이었구나.
김칫국을 마신 기분이지만, 마신 티는 안 냈으니 아무래도 좋다.
“슬슬 가 볼까요.”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세 사람이 그대로 발걸음을 경복궁으로 향했다.
‘나도 한류 스타 한번 돼 보자.’
고급스러운 옷소매 속에 사심을 한가득 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