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96)
운빨로 탑스타-96화(96/200)
제96화
‘감독님이 즐거워하고 계신다고?’
그 황의성 감독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무표정을 스티커처럼 붙이고 있어, 촬영장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로 카리스마가 되는 황의성 감독.
제아무리 일류 배우라고 한들, 눈빛 하나로 침묵시킨다는 황의성 감독.
그 황의성 감독이 지금.
이민기의 영상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똘똘하군.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시선을 끌어모으기 위한 행동을 취했다.’
경복궁이라는 장소가 그렇다.
한복이라는 복장이 그렇다.
키가 훤칠한 백인 여자와 매니저를 끌고 왔다는 이색 조합이 그러하다.
셔플댄스라는 이색적인 춤이 그러하다.
바이럴은 기본.
단순 유행을 넘어 챌린지까지 번지는 데는 아마 소속사 측에서 개입했겠지.
‘디테일이 좋군.’
화제의 중심이 되어 인지도를 울리는 건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광고와 예능에 무작정 출연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지.’
저렴해진다.
오히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신비주의라도 생기니 낫다.
그렇기에 배우는 대중 앞에서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드러내면 좋을지, 일거수일투족을 현명하게 골라야만 한다.
하지만 이민기의 선택은 달랐다.
“이미지 소모라고는 전혀 없이, 주목만을 챙겼다는 건가.”
똑똑하다.
멀리 갈 것 없이 빌보드에 오른 여성 가수와의 조합에서도 상상이 피어난다.
‘노래 피쳐링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니면 한국 진출인가?’
한복에서 상상이 피어난다.
‘사극을 염두에 둔 건가.’
이민기라는 배우의 다음 행보가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것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궁금하게끔 유도했다.
온갖 계산이 정밀 공정처럼 복잡하게 맞물려 화학 반응을 폭발시켰다.
물론, 본인은 이런 것 따위 전혀 계산하지 않았다.
보야나 올슨의 뮤비에 나온다니까 그냥 어그로 끌기 좋은 소재를 골랐을 뿐.
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남이 보기에 그게 끝장나게 좋았다면 좋은 거지.
정리하자면.
이민기에게는 분명 스타의 자질이 존재했다.
‘재밌군.’
황의성 감독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십년지기 친구가 아니라면, 분간하기도 어려울 만큼 옅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분명 웃음이었다.
이민기라는 배우에게서 기대 이상의 것을 보았기에 그러했다.
‘이 배우, 지켜볼 재미가 있겠군.’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다.
단지 스킬이 뛰어난 배우라면 발에 챌 만큼 굴러다닌다.
하지만 별이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압도적인 광량.
이민기라는 배우는 과연 자국을 넘어, 과연 타국 땅까지 닿을 광량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였다.
“김 감독.”
“아, 네!”
가만히 서 있던 김 연출 감독이 황의성 감독의 말에 움찔 떨었다.
황의성 감독은 여전히 모니터 화면이 뚫어지듯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앞으로 이민기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하고, 뭐가 됐든 기억해 둘 만한 소식이 있으면 정리해서 전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 * *
그것 아는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문화 산업 육성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게임이나 만화 관련으로는 발목만 잡기도 한다.
하지만 의외로 영상 계통으로는 썩 금전 감각이 후한 측이었다.
[문체부 연간 예산 7조 원 편성]일단 액수가 크다.
그 거대한 몸집을 활용해 영화업계 종사자에게 직접 지원금을 뿌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영화 인프라 쪽으로 후원할 때가 잦았다.
[인천 시네마 타운 계획 발동] [대전 대덕 cg 특구 설립 발의] [부산 영화특별시 5년 발전안 제시]그중에서 가장 근래 성과를 보인 곳이 있었으니.
대전광역시 유성구 엑스포 과학공원 인근에 자리 잡은 영화촬영 특화 지구, [스튜디오 큐브]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와, 내가 여기에 다 와보네.’
이민기가 감탄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거, 사진에서 본 거다.’
체육관을 연상시키는 실내 위로 천장에 무수한 조명이 휘황찬란하게 레이어 구조로 쌓여 있었다.
그 아래로는 온통 그린 스크린이 깔려 있는가 하면, 갖은 초고가, 초대형 촬영 장비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초대형 영상 제작 스튜디오의 풍경 그 자체.
‘끝내준다. 여기에 실내 축구장을 만들어도 되겠어.’
감동을 못 이긴 이민기가 눈을 감고 부르르 떨었다.
‘내가 살다 살다 스튜디오 큐브에 올 일이 다 생기는구나.’
꿈을 하나 이뤘다.
스튜디오 큐브가 어떤 곳이던가.
한국에서 영상 제작 스튜디오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국가 차원에서 대전을 영상 산업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인프라로서, 이보다 더 큰 스튜디오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려 1,500평 규모의 단일 스튜디오가 존재하기까지.
할리우드에서도 희귀한 촬영 장비를 다수 확보해, 입주한 업체라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설의 퀄리티 그 자체가 아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영상 산업이 세상을 집어삼켰구나.’
역사.
앞으로 스튜디오 큐브가 쌓아나갈 역사였다.
세계 1위.
스튜디오 큐브에서만 세계적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1위를 달성한 작품이 연달아 3연속으로 튀어나왔다.
한국이 세계 1위라니.
그것도 연달아서 1위라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말한다 한들, 믿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가 그러했다.
이후 스튜디오 큐브는 한국 영상 산업의 메카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지.
‘단역이라도 좋으니 스튜디오 큐브에서 촬영해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리만치 기회가 안 났다.
마치 스튜디오 큐브라는 장소가 배리어를 치고 그의 입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해냈다.
해내 버렸다.
그것도 무려 주연으로 말이다.
‘아자!!’
황의성 감독이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 이야기라도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민기가 기대감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와중이었다.
“누구죠?”
흠칫.
뒤에서 가히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묵직한 목소리.
하지만 동시에 익숙하기도 한 목소리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이민기가 뒤를 돌아본 찰나였다.
“……!”
역시나 그 사람이 맞았다.
황의성 감독이었다.
* * *
태연하다 못해 무뚝뚝하게마저 느껴지는 그 얼굴을 마주하기를 잠시.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정신을 차린 이민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외쳤다.
“배우 이민기입니다! 이번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굳이 길게 인사할 필요 없습니다.”
“…….”
칼같다.
황의성 감독이 별다른 감흥도 없다는 듯 이민기의 말을 끊었다.
얼핏 보면 냉정하다 못해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말투.
‘성격이 좀 까다롭다더니, 그건 사실인가 보네.’
하지만 그 까다로움을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느낌이 좀 다르다.
‘진짜 실물 황의성 감독이 맞다.’
이민기가 그 존재감을 실감하는 와중이었다.
황의성 감독이 입을 열었다.
“좀 일찍 왔군요.”
“아, 네! 둘러보고 싶어서요.”
이민기가 시선을 주위로 돌리며 말했다.
“스튜디오 큐브라는 이름을 기사에서 정말 많이 봤거든요. 마침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다고 하고.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흠.”
황의성 감독이 눈을 좁게 떴다.
단순히 스튜디오 시설에 관심이 있었다는 건가.
하지만 이민기의 행동 속에서는 다소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그도 그럴게.
‘아직 촬영 시작 시간까지 4시간이나 남았는데, 현장을 둘러보고 싶다는 이유로 일찍 왔다는 건가?’
이민기가 좀 과하게 일찍 도착한 탓이었다.
물론, 시간 여유를 두려고 일찍 도착하는 사람들 많지.
분장이니 컨디션 조절이니 뭐니 하다 보면 시간이 뭉텅뭉텅 짤려나가니 말이다.
하지만 4시간이라.
‘두고 볼 일이지.’
적어도 성실하기는 하군.
황의성 감독이 여전히 무감정한 표정으로 이민기를 바라봤다.
사실, 이는 이민기에게 있어서도 운이 좋은 상황이기는 했다.
황의성 감독은 워커홀릭이다.
감독이 워커홀릭이라는 말인즉슨, 곧 독대할 시간이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관리직이라는 직업 특성상, 감독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 사이에 꽁꽁 둘러싸여 있는 직업이니까.
마침 그는 이민기에게 궁금한 것도 있었다.
“하나 묻죠.”
황의성 감독이 입을 열었다.
“배우님은, 목표가 뭡니까?”
“예?”
다소 깜빡이 없이 들어온 질문에 이민기가 되물었다.
“목표라면 어떤 말씀이실까요?”
“배우라면 목표가 있을 것 아닙니까. 천만 배우가 되고 싶다든지, 많은 돈을 벌고 싶다든지. 누구와 함께 연기해 보고 싶다든지. 어느 감독 밑에서 작품을 찍고 싶다던가.”
“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민기의 질문에 황의성 감독이 정정했다.
“목표입니다.”
말 그대로 배우의 목표였다.
목표라는 건 꿈과는 다르다.
단순히 바라는 게 아닌, 달성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어야 비로소 목표니까.
연기자 지망생의 꿈이 데뷔라면, 구체적인 목표는 어느 기획사에 들어가고 싶은가가 되겠다.
그렇다면 프로가 된 연기자의 목표는 무엇이 될 것인가.
하지만 황의성 감독은 여기에서 배우의 그릇을 잴 수 있다고 믿었다.
‘세 작품을 찍었으니 슬슬 큰 목표가 생길 시기겠지.’
어차피 여태껏 만나는 배우마다 인사말을 겸해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황의성 감독 특유의 화법이랄까.
‘500만 배우 정도를 목표로 할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청룡 영화상.’
이번에도 별다른 의의 없이 인사를 겸해서 호기심에 물은 찰나였다.
“아, 제 목표는요.”
이민기가 가볍게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및 출연한 작품이 세계 1위를 달성하는 겁니다.”
“…….”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목표가 동네 골목길에 꼬맹이 나타나듯 등장해버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예상외의 대답에 황의성 감독이 그답지 않게 눈을 깜빡거렸다.
청룡 영화상도 아니고, 한국 1위도 아니다.
아카데미에 세계 1위가 등장했다.
할리우드의 세계구급 스타조차도 입에 담기 어려워할 만한 목표가, 고작 세 작품을 촬영한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인 배우의 객기인가?’
황의성 감독이 이민기의 긴장한 표정을 눈동자에 담았다.
무작정 높게 부르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편인가.
그렇다면 이건 목표가 아니다.
황의성 감독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정정하듯 다시 물었다.
“꿈이 아니라 목표를 물었습니다.”
“아, 네. 목표요.”
그렇지.
목표다.
목표를 말해라.
황의성 감독이 다시 귀를 집중한 사이, 이민기가 다시금 포부를 외치듯 입을 열었다.
“제 목표는 정말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맞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요.”
진심인가.
이번만큼은 황의성 감독도 살짝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민기의 말 또한 사실이었다.
‘진짜로 세계 1위 한번 찍고 싶은데.’
보야나 올슨을 보고 느꼈다.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 1위를 목표로 달린 사람이다.
그녀와 나눴던 대화 속에서 느꼈다.
[나, 다음 앨범으로 빌보드 1위를 찍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신인 주제에 몹시 건방지게도 1위를 목표로 했기에 훗날 1위를 찍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는 보야나 올슨의 모습은 생각보다 건방지지 않았다.
오히려 뭐라고 해야 할까.
‘멋있었지. 당당하고.’
홀릴 뻔했다.
해서, 이민기도 생각했다.
나 또한 건방지더라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야겠다고.
좀 더 당당하게 포부를 말해 보자고.
“한국 영화의 작품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기회와 장소만 있다면 충분히 세계 무대, 아니, 할리우드의 명작 영화들과도 당당하게 겨룰 수 있을 만큼.”
“어떤 작품이 그렇습니까?”
“감독님 작품이요.”
“제 작품?”
“감독님 작품은 전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지만, 할리우드의 명작들 못지않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패션…….”
은 아니지.
하마터면 본심을 과하게 말할 뻔했다.
아직 제작 들어가지도 않은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받을 단초가 될 작품이라고 어찌 말하겠나.
이민기는 얼핏 자기 고백에 가까운 말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앤 패션은 시놉시스부터 너무 좋았습니다. 우선 이번 작품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는 게 지금의 제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원래는 세계화 사이에서 꼽사리 껴서 자리 하나 먹는 게 목표가 맞다.
하지만 기왕 노리는 거, 아예 세계 1위까지 노려볼 생각이다.
이민기의 누가 들으면 웃음을 터뜨려도 이상할 게 없을 말이 빈 허공으로 흩어지고 잠시 뒤.
“세계 1위 작품에 출연하는 게 목표라고 했지요?”
“네.”
“제 작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목표고.”
“아, 그것도 네.”
“그렇다면.”
다음 순간이었다.
황의성 감독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제 작품 출연을 곧 세계 1위 작품과 동등하게 여기겠다는 말이군요.”
“아.”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닌데.
어디에서 말이 꼬였다.
하지만 마땅히 반박하면 그림만 더 이상해질 것 같아서 우선 살피는 차례였다.
“알겠습니다.”
황의성 감독은 여전히 무감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촬영 시간이 되면 바로 리딩부터 진행할 예정이니, 가서 준비하세요.”
“……네!”
그렇게 이민기가 물러나려는 찰나였다.
“자세히 보겠습니다.”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 황의성 감독의 뒷모습에 이민기가 눈을 깜빡거렸다.
자세히 보신다고 하신다.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