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99)
운빨로 탑스타-99화(99/200)
제99화
“네? 패션쇼요?”
정가연 이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민기가 껑충 뛰었다.
“네, 서울 패션 위크.”
“거기에 제가요?”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킨다.
그 짧은 반응에서 정가연 이사의 눈이 보름달이 됐다.
‘역시, 이쪽에 관심 좀 있는 사람 맞네.’
배우들이 그렇다.
아니, 오히려 배우치고 안 그런 사람이 드물지.
대중에게 멋지게 보여야 하는 직업이니, 세상의 온갖 멋이 총집결하는 장소에 관심이 없을 수가.
“네, 물론이죠. 배우님도 참가하실 수 있답니다.”
“전 아예 모델 전문은 아닌데. 쇼핑몰 모델이라고는 해도 피팅 모델 정도구요.”
“후후, 그게 저희가 많이 사는 오해이기도 한데요.”
정가연 이사가 살포시 웃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서울 패션 위크는 전문 모델들만 참가하는 게 아니거든요. 더 대중적인 축제를 지향해요. 배우님 같은 스페셜 게스트도 자주 모시죠.”
“하지만 전 따로 훈련받거나 그런 게 없는걸요. 체중 관리도 덜 했고.”
우물쭈물하는 이민기의 말에 정가연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관리를 덜 한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서 장점이 될 수도 있겠죠.”
서울 패션 위크의 특징이었다.
해외 컬렉션이라면 엄격하게 하이패션 모델과 커머셜 모델을 분리하고 전문 모델만 기용할 때가 잦으나, 국내는 좀 다르다.
상황에 따라 양쪽 경계를 얼마든지 얼버무릴 수 있었다.
‘배우님은 당장 패션모델 일도 하고 있잖아? 커리어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겠다, 자리 하나 못 만들 거 없지.’
위원회에서 말이 나올 수는 있겠지.
타 업체에서 낙하산을 꽂았다며 불만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민기인데 뭐 어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민기다.
이민기를 패션 위크에 꽂아 넣겠다는데 그 누가 반대하겠는가.
홍보 효과 생각하면 역으로 이민기를 잘도 데려왔냐고 감탄하겠지.
“그리고 또.”
정가연 이사가 시선을 돌려 유규언 대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이번 패션 위크부터는 유규언 디자이너님의 테르미누스 컬렉션도 참가할 예정이고요.”
“테르미누스요?”
그게 뭐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에 이민기가 중얼거리려니, 유규언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테르미누스는 이번에 런칭하는 제 브랜드 이름입니다. 서울 패션 위크에서 공식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테르미누스.
그가 쇼핑몰과는 별개로 아예 새롭게 창설한 브랜드였다.
쇼핑몰이 아예 대중적인 스타일을 지향한다면, 테르미누스는 좀 더 예술주의적인 관점을 첨가했다고나 할까.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예술.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게 테르미누스의 철학이었다.
“유규언 디자이너님의 옷이니까 안 봐도 아주 아름답겠죠?”
정가연 이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사실, 제가 오늘 이 사무실에 방문한 것도 컬렉션 관련해서 논의가 있어서 온 거였고요. 배우님 자리 하나 못 만들어 주실 거 없잖아요? 모델 출신 배우들은 컬렉션에도 자주 오르는데.”
정가연 이사의 연이어진 말에 유규언 대표가 이민기를 바라보았다.
다소 미안한 눈빛이 엿보였다.
배우 일만 해도 바쁠 텐데 번거로운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눈치.
하지만 저 말이 이민기에게는 조금 다르게 와닿기도 했다.
‘서울 패션 위크에 선다고? 내가?’
심장에 미친 듯이 뛰었다.
한평생 못 오를 나무라고 생각했던 무대였다.
키가 작았고, 인지도가 모자랐으며, 배경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운이 없었다.
레드오션에서 운이 없다는 건 곧,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았다.
본인이 패션모델로서의 진로에 관심을 가졌음에도, 그에게 서울 패션 위크는 저 구름 위에 존재하는 별세계였다.
하지만.
지금 그곳으로 나아갈 기회가 생겼다.
“배우님,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유규언 대표가 걱정이 묻은 얼굴로 말했다.
아마 체중 관리나 배우로서의 이미지 관리 등을 고려해서 한 말이리라.
패션계와 너무 가까워지는 걸 꺼리는 배우들도 존재하니.
특히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라면 말이다.
아무래도 친분을 이용한다는 느낌을 주기 싫은 것도 있었고.
하지만.
“정말로 제가 런웨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이민기는 달랐다.
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다.
설령 이용해 먹는다고 한들 뭐 어떤가.
이용당하고 싶은 와중에 이용해 준다면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현대 사회에서는 이걸 두고 이렇게 말한다.
[윈-윈] [호혜적 관계] [사장님 충성충성]서로의 바람이 일치했다.
이민기의 눈빛에 담긴 열망을 본능적으로 읽어낸 정가연 이사가 입을 열었다.
“배우님께서 도전하시는 게 아니에요.”
이민기의 눈빛에 작은 실망이 어린 찰나,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배우님을 모시는 거죠.”
“……!”
오를 수 있는 건가.
정말로 서울 패션 위크에 오를 수 있는 건가.
이민기가 희망에 찬 표정을 지은 찰나였다.
“잠시만.”
한 사람이 숨 가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시만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이민기도, 정가은도 아니었다.
바로.
여태껏 화제 속에서 계속해서 한 발 빼는 태도를 일관해 왔던 사람.
‘유규언 대표님?’
유규언 대표였다.
* * *
어느 조용한 사무실.
한 남자가 핸드폰을 쥐고는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 있었네.”
서정우 이사였다.
이민기가 서울 패션 위크에 스카우트를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는, 관련해서 상황을 살피는 와중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궁색한 변명이 이어졌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이야기 그런 방향으로.]유규언 대표였다.
의도치 않게 유명 모델을 자기 브랜드의 얼굴마냥 세울 기로에 오른 그가 차마 미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원래는 이민기 배우님 볼일을 보고 돌려보내려는 참이었는데.]“마침 그 타이밍에 관계자가 왔다?”
[그렇지. 믿기는 어렵겠지만, 그쪽에서 이민기 배우님을 워낙 좋게 보셔서.]“그건 아니지.”
[뭐가?]“배우님을 좋게 본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니지.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서정우 이사의 말에 유규언 대표의 말문이 막혔다.
그 또한 이민기 배우에게 좋은 인상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 신뢰감은 무엇인가.
마치 음식이 싱거울 때는 소금 한 소금을 넣으면 된다고 말하는 수준 아닌가.
“오히려 잘됐네.”
서정우 이사가 뭐가 그리 이상하냐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이었다.
“넌 그동안 네가 디자인한 옷을 입어줄 배우를 찾고 있었고, 마침 배우님께서도 네 옷을 좋아하시잖아. 뭐가 문제야?”
[배우라면 이미지라던가 스케줄이라던가 고민할 게 많잖아. 내가 친분에 너무 기대는 건 아닌가 싶어서.]역시 이쪽이 걱정이었나 보다.
자기가 인기 배우랑 친하다고 하여, 그의 유명새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
여태까지도 오른 몸값 대비 한없이 저렴한 가격에 [YU]의 피팅모델로 활동해 주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고민에 서정우 이사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네가 보는 배우님의 안목은 어떤데?”
[안목?]“모델이시잖아. 옷을 바라보실 때도 기준이 있으시지 않아?”
그 말에 유규언 대표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아니, 결론을 낼 것도 없었다.
[어지간한 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위지.]“그렇게나? 너무 띄워 드리는 거 아닌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뿐이다.]그렇다.
유규언 대표의 눈에 비친 이민기라는 모델은, 이미 옷을 바라보는 안목에서 여느 디자이너보다 앞서 있었다.
[처음 본 옷이라도 그 에티튜드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거나. 질감을 활용하는 거나. 옷을 단순히 두를 뿐만 아니라, 안에 담긴 철학까지 해석하고 계시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그가 이민기를 고평가하는 이유였다.
옷을 입을 때 철저히 트랜디하게 해석한다는 것.
비슷한 옷이라도 주름 하나마저 고려해서 포징을 잡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살짝 오해가 있었다.
이민기는 실제로 그 옷들이 널리 보급된 세상에 살아 봤고, 그 세상의 모델들이 어떤 포징을 취하는지를 알았으니까.
“그래, 네가 생각하는 배우님은 그렇단 말이지?”
서정우 이사가 커피캔을 기울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런 배우님이 네 옷을 입고 있는 거잖아.”
[…….]“배우님이 물가에 내놓은 애도 아니고,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이민기가 누구인가.
아무런 일이나 다 넙죽 받아들일 것 같은 사람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오히려 귀신같이 자기 커리어에 도움 될 일만 골라내는 제주가 있었다.
하여, 서정우 이사가 별 걱정이 없다는 듯 말했다.
“규언아, 나는 차라리 다른 쪽이 고민이다.”
[어떤?]“왜, 어차피 옷을 입고 홍보할 거라면, 차라리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면 좋겠다는 것 정도?”
왜, 어차피 패션 관련 영화를 찍지 않나.
그런데 이 영화 속 옷을 디자인하는 게 누구인가.
[나지.]“그래, 당신입니다. 유규언 디자이너님.”
여기에서 서정우 이사가 한 생각이 있었다.
“아예 작중에 등장하는 옷들을 공식 콜라보 상품으로 네 브랜드, 테르미누스에서 판매한다면?”
[…….]서정우 이사의 말에 유규언 대표의 말문이 잠시 멈췄다.
그럴듯했기 때문.
또한, 솔깃했기 때문이었다.
[잘 팔리겠지.]하지만 그와 동시에.
디자이너로서의 고집도 함께 남았다.
유규언 대표가 머릿속에 담긴 고민을 마침내 입밖으로 늘어놓았다.
[그런 방식으로는 내 옷이라서 팔리는 건지, 아니면 영화 속에 출연했기에 팔리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그렇다.
콜라보로 팔아 봐야 단순히 마케팅에 업어가는 게 아니냐는 것.
황의성이라는 거장과 이민기라는 명품 배우에게 과하게 신세를 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양심적인 말이다.
하지만.
‘역시, 이쪽이 본심이었구만.’
서정우 이사에게는 그저 코웃음이 나오는 말에 불과했다.
‘유규언, 내 그럴 줄 알았다.’
여태껏 입으로는 대중을 위한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말한 주제에, 여전히 어설픈 예술주의를 아직도 못 버린 건가.
배에 기름칠한 지 얼마나 됐다고 기울어버리다니.
그가 보기에, 유규언 대표의 이런 태도는 일종의 정신병이었다.
‘나 혼자 고고한 척해 봐야, 이래서야 현대 패션 산업의 근간을 완전히 부정하는 꼴 아닌가.’
마케팅이 왜 마케팅인가.
남들은 좋은 모델, 좋은 협찬, 좋은 광고를 하나라도 더 채워 넣지 못해서 안달인데, 왜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가.
[YU]라는 극 대중 지향적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저러는 건, 말 그대로 이율배반적인 태도 아니겠나.이민기 배우라는 걸출한 인지도의 배우가 없었다면 어떻게 했으려고.
‘사업 말아먹고 길거리에 나앉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잘 풀린다고 한들 입에 풀칠하는 선에서 그치거나.’
차마 당사자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 할 말이다.
하지만 정확히 사실이었다.
그는 실제로 이민기를 못 만났던 과거, 디자이너의 고집을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사업을 말아먹었다.
오직 실력만으로 인정받겠다는 자세는 가상하다.
하지만 어지간히 운이 좋은 게 아닌 이상 그건 무리다.
‘실천 가능성이 없는 이상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서정우 이사는 머릿속으로 한없이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것들을 도로 목구멍으로 삼켰다.
여태껏 이미 몇 차례고 반복했던 말들이니까.
유규언 대표는 남의 말로 바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겪고 느끼면서 바뀌어야 한다.
이민기와 협업하며 조금이나마 사람의 기조가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규언아, 내가 친구로서 한마디만 하자.”
다음 순간이었다.
서정우 이사가 숨을 가볍게 마쉬고는 말했다.
“네가 정말로 이민기 배우님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네 고집으로 남의 기회를 버리게 만드는 것도 이기적인 행동 아니냐?”
[……!]그 한마디에 유규언 대표의 가슴이 뜨끔 울리더니, 이내 호흡이 잠시 멈췄다.
사실, 본인도 내심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이민기가 패션 모델 쪽으로도 큰 향상심을 가지고 있고, 이번 패션 위크에 어마어마한 열망을 보인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서려 했던 것이다.
“내가 남한테 잔소리할 입장도 아닌데 괜한 말을 했네.”
잔소리는 한마디면 족하다.
더 꺼내 봐야 반감만 살 뿐.
서정우 이사가 실없이 웃더니 말했다.
“규언아,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고 믿는다. 이제 잘나가는 회사 사장님이잖아?”
[…….]“나중에 회사 한번 놀러 갈 테니까 그때 한번 보자.”
[그래, 알았다.]뚝.
그렇게 두 친구 사이의 대화가 끝이 났다.
서정우 이사가 손에 쥔 수화기 너머.
유규언 대표는 여전히 마땅한 대답거리를 찾지 못한 채 고민하기를 한참.
뚜벅뚜벅.
지하 주차장 모서리를 몇 바퀴고 서성이더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 서울 패션 위크, 내가 결정권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마침내 다음 질문에 다다랐다.
‘내게 참가할 기회를 준 건 누구지?’
대답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