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1)
1회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천장에 팝콘처럼 페인트가 우둘투둘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무의식중에 외쳤다. 전혀 기억이 없는 장소에서 깨어났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다.
매일 잠들던 방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너무 이질적이었다.
몸 위에 덮고 있던 이불을 제치고 앉아서 방안을 살펴보았다. 여관이나 모텔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일반 가정집이었다. 그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여관에는 없는 장롱과 의자, 책장, 책상과 같은 가구들이 있었다.
‘남의 집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책장을 살폈다. 책을 보면 그 방의 주인에 관해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책상과 책장에는 책이 빼곡히 있었다. 영어로 된 양장본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상록수」, 「백치 아다다」와 같은 한글로 된 소설도 있었다.
‘잠깐, 백치 아다다는 뭐야? 언제 책이야?’
자세히 방안을 살펴보니 집안의 가구들이 아주 예스러웠다. 장롱이 자개 무늬였다. 책상에 삿갓을 씌운 등이 하나 있었다.
‘전기가 부족한가?’
인테리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 박물관이나 시대극 속 세트장 같았다.
‘황당한 곳에서 깨어났군.’
책장에 「조선말 큰 사전」이라는 책이 보였다. 다른 책으로는 한자와 영어, 한글이 뒤죽박죽으로 쓰인 경제학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책은 오랜만에 보네. 무슨 책이 순 한자투성이야.’
방에서 급하게 나가려는데 몸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아…… 미치겠네. 속옷은 왜 이 모양이야.’
촌스러운 속옷을 입고 있었다. 장롱을 열어 입을 옷을 찾았다. 옷 중에 ‘학도호국단’이라고 적힌 교복이 보였다.
‘뭐야, 이런 촌스러운 옷들은…….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군. 아무거나 챙겨서 입자.’
옷장의 옷 중 가장 무난한 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조심스럽게 거실을 내다보았다.
문틈으로 빼꼼히 쳐다보다가 어느 아주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크!’
“죄송합니다.”
쾅―
급하게 문을 닫았다.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는 갑자기 뭐가 죄송해. 아버지가 나오시기 전에 씻고 함께 밥 먹어야지.”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 아주머니가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인데…….’
“잠깐만요, 혹시 저를 아세요?”
“애가 무슨 소리야, 엄마도 몰라보고. 너 어디 아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어머니라는데 왜 기억이 없어?’
“아주머니가 어머니시라고요?”
“너 오늘 정말 이상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소란에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야?”
“여보, 강철이가 이상해요.”
“녀석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 남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쯤 되니 나는 알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이 집 사람들의 자식이라고 여겨지는 상태고, 이곳은 마치 수십 년 전의 세상 같다는 것이다.
일단 나는 닥친 위기를 해결하고 지금 내 상황을 파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철아, 무슨 일이냐?”
“아, 아니에요, 아버지. 그냥 어머니께 농담 한번 해 봤는데, 별로 재미없는 농담이었는가 봐요.”
“원 참, 싱겁기는. 시끄럽게 굴지 말고 나와서 씻고 밥 먹고 학교나 가거라.”
“네, 아버지. 죄송합니다, 어머니.”
다행히 위기를 넘긴 나는,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일단 거울을 보고 얼굴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 어……. 이건 아닌데…….’
예감대로 전혀 다른 얼굴이 보였다. 앳된 남자의 모습이었다.
“아! X팔, 망할.”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나갈 준비를 하던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아버지에게 욕한 것이냐?”
바로 손이 올라갔다.
“아닙니다, 아버지. 잘못 들으신 것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남의 몸에 끌려온 것도 억울한데, 남의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을 수는 없었다.
아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아버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 과거로 빙의된 거야. 이건 소설도 아니고…… 미치겠네.’
“아버지, 실은 제가 지금 기억이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말이냐?”
“제 이름이 이강철이고,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제 부모님이라는 것 빼고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소설처럼 정말 빙의라면 이때 제대로 행동해야 했다. 잘못하면 미친 것이 되어, 정신병원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적당한 변명이 떠올랐다.
“제가 듣기로는 이런 것을 일시적인 기억 상실이라고 한답니다.”
“일시적인 기억 상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라? 안 통하네.’
일시적인 기억 상실이 안 먹혔다.
‘이 병이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나오지, 잘 알려진 병이 아니야. 모를 수도 있어.’
병명을 상세히 설명했다.
“일시적인 기억 상실이란, 말 그대로 일시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잠시 쉬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안 되겠다. 의원에 가자.”
‘이게 안 통하네. 역시 현실은 소설이나 드라마와 달라…….’
“의원에 가도 비슷한 병명이 나올 것입니다. 괜히 헛걸음하게 될 것입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의원으로 가자.”
추측으로 먼저 선수를 쳤다.
“아버지, 제가 평상시에 어땠습니까?”
“한국대를 갈 정도로 똑똑한 녀석이었지.”
‘한국대는 또 무슨 대학이야.’
“어쨌든 똑똑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랬지. 지금은 이상하지만…….”
“제 말을 믿어 보십시오. 일시적인 기억 상실은 옆에서 도와주면 서서히 치료됩니다.”
“……음. 그럼 뭐를 도와주면 되느냐?”
‘잘되고 있어. 이대로 가자.’
“아버지의 성함부터 하시는 일까지……. 생각나시는 대로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너는 네 아비의 이름조차 모르냐!”
손이 올라오는 것을 피하고 말했다.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일시적인 기억 상실입니다. 도와주시면 기억이 돌아올 것입니다.”
“후…… 알겠다. 잘 들어라.”
아버지의 성함은 이만복이었다. 서울에서 쌀집과 정미소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미소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것 같았다. 일하는 사람만 수십 명이라고 했다.
‘나름대로 잘 사는 집 같군. 뭐, 젊어진 데다가 잘사는 집이면 나쁘지는 않네.’
잘사는 집에 빙의해서 다행이었다. 먹고 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야 했다.
“오늘이 몇 년 며칠입니까?”
“단기 4283년 6월 2일이다.”
“단기 4283년이 서기로 몇 년입니까?”
“서기? 그것은 또 무엇이냐?”
“서양 달력 연도를 말합니다.”
“지금은 모두 단기를 사용하는데.”
‘지금이 어느 시대야?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서기를 안 쓰고 단기를 쓰던 시대가 있었나?’
“아버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단기를 서기로 바꾸어 줘야 했다. 그래야 지금이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조선 시대처럼 연호를 안 쓰는 게 어디야. 광무(光武)니, 건양이니 이러면 골치가 아파.’
머릿속에서 단기를 서기로 바꿀 방법이 떠올랐다.
‘유레카!’
이 몸의 주인이 있는 방에 답이 있었다. 그곳에는 서양의 원서도 있었다.
서양은 서기를 사용했다. 원서들을 보려면 서기와 단기를 계산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어딘가에 단기를 서기로 표시한 것이 있을 거야.’
책 속에 서기 옆에 단기가 작게 표기되어 있었다. 단기 4283년을 서기로 바꾸어 계산했다.
‘아, 시X. X 됐네.’
단기 4283년이 서기로 1950년이었다.
‘망할, 하필 1950년이라니…….’
한국 사람이라면 잊기 힘든 연도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해이기 때문이다.
‘방, 방금 6월이라고 했지.’
한국전쟁이 코앞이었다.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빨리 피난을 가야 합니다.”
“갑자기 정신이 나간 거냐?”
“곧 전쟁이 납니다. 당장 남쪽으로 피난 가야 해요. ”
“갑자기 무슨 전쟁이 난다고 그래?”
“북한이 쳐들어 내려옵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아버지의 표정이 변했다. 완전히 정신 나간 놈으로 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의원에 가야겠다.”
“의원이고 뭐고,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나는 X 됐음을 느꼈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나 혼자서라도 도망쳐야 했다.
날 병원에 끌고 가려는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그날 밤 방에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챙겨 부산으로 도망쳤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작은 셋방을 빌려 가끔 식량을 구할 때를 제외하면 그곳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챙겨 온 물건을 판 돈도 떨어지자 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일거리를 찾아 나선 나는, 신체 건강하면서도 아무런 연줄이 없었기에 강제로 군에 끌려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빨리 도망쳐야 해.’
기회를 보다가 전투 중에 도망을 쳤다. 하필이면 그곳으로 미군의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했다.
콰앙―
강렬한 통증과 함께 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아, 시X.’
‘GAME OVER’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다시 팝콘처럼 페인트가 우둘투둘한 천장이 눈앞에 보였다.
“살았다!”
‘빙의가 아니었어.’
살았다는 안도감이 사라지자…….
“에이, 망할.”
‘시X, 게임이라고? 그 짓을 또 해야 하잖아!’
그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