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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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군무관이 되어서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전쟁 통에도 쉬는 날이 있다는 점이었다.
전쟁은 휴일이 없이 치러지지만, 후방의 보급 부대인 군수 사령부의 연대는 주말을 쉬었다.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켰다.
‘역시 후방이 최고야. 여기에 있으면 전쟁을 하는지도 모르겠어.’
미군과 유엔군들과 함께 부산에 많은 교회와 성당, 그들과 연계된 의료 기관들이 들어왔다. 그런 종교 시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산에 병원들이 들어서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들면서 전염병과 질병의 위험이 커졌다. 피난민들은 위생 상태도 안 좋아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군과 그런 병원에서 가져온 의약품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그들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해.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지.’
미래 상사도 항생제와 해열제, 지사제와 같은 응급 의약품을 수입해 와서 팔고 있었다. 광복동에 미래 약방이라는 큰 약국도 운영했다. 미국제의 강력한 약들이 많아서 큰 인기였다.
“이 정도면 제약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아버지, 나쁘지 않은 생각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약업을 하기는 그렇습니다. 나중에 원료를 수입해서 재포장을 하는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약물을 직접 생산하기에는 시설이 없었다. 하지만 원료 물질을 수입해 와서 재포장을 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지금은 미제 약이 잘 팔렸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제 약이 공급이 적어지고 제약도 삼백(三白) 산업처럼 수입 대체로 바뀔 것이다. 그에 맞추어 많은 제약 회사가 생겨난다. 그때 고려하기로 했다.
‘제약은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적어서 경쟁이 크고 규모도 작아. 그건 상황을 보고 진행하자.’
단순히 원료 물질을 수입해 와서 재포장을 하는 제약은 경쟁이 치열해졌다. 지금만큼 재미 보기 힘들었다. 제약 산업의 진출은 뒤로 미루었다.
한국전쟁 후 국가에서 진흥하는 삼백 산업과 제약과 같은 수입 대체 산업으로의 진출도 나름대로 괜찮지만,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은 수출 산업이었다.
전쟁 후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달러와 물자가 필요했다.
‘원자재와 설비, 기술을 도입하는데 모두 달러가 필요하니, 역시 수출 산업으로 가야지.’
한국으로 달러와 물자가 들어오는 것은 세 가지 형태였다. 원조와 차관, 그리고 수출이었다. 원조와 차관은 이승만 정권에 밀착해야 했다. 권력과는 불가근불가원이 좋았다. 거기에 이승만 정권은 오래가지 않는다.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바뀔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 유착했던 기업은 된서리를 맞는다. 부정 축재자로 몰려 막대한 벌금을 내고 구속된다. 나중에는 풀려나지만, 아버지가 굳이 그러한 고초를 겪을 필요는 없었다.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성장하는 방법은 수출로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방법밖에 없어.’
권력과 가까워지더라도 좀 더 오래가는 박정희 정권 시대부터 할 생각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정권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어졌다. 그들은 기업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과 척지고는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들과 문제가 생기면…… 사업을 외국에서 해야 해. 그러려면 달러는 무조건 필수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달러가 필수였다. 3회차보다 빠른 시기에 수출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첫 번째가 고철의 수출이었다.
아버지의 지인들이 열심히 고철을 모으고 있었다. 앤더슨 중령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철을 모으고 있었다.
“중령님, 자산으로 분류되는 고철도 모아 주십시오.”
“그러면 나에게 떨어지는 몫이 적어지잖아.”
“몫이 줄어도 양이 늘어나는 것이 더 이득이지 않습니까?”
“알겠어. 미군에 고철이라는 고철은 다 모아 보지.”
고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일본에서 지금 철이 귀하고 비쌌다. 미국에서 주문이 쏟아지는데 그것을 만들 철이 부족했다. 일본은 2차대전 때 국내의 철을 싹싹 긁어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일본은 지금 국내의 고철 자원이 적었다.
일본에 제철을 할 수 있는 제철소가 있지만 새로운 철을 만드는 데는 철광석뿐만 아니라 일정량의 고철이 있어야 했다. 그러한 고철을 전쟁으로 많은 고철이 생기는 한국에서 대규모로 수입했다. 고철 사업이 첫 번째 수출 사업이었다.
‘고철 수출이 이 시기에는 엄청 큰돈이 되는 사업이야. 돈을 제대로 쓸어 모아 보자고.’
* * *
평일에 군무원과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근처의 산으로 갔다. 현재 부산은 수많은 피난민으로 북새통이었다. 주말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곳이 산이었다.
민둥산이지만 승학산의 꼭대기에는 억새도 자라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중간에 피난민들이 산 중턱에 세운 꽃마을에서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 한잔하는 것도 일품이었다. 승학산 정상에 올라가면 부산 전체와 앞바다, 가덕도와 거제도, 대마도 낙동강의 하류와 중류까지 다 보였다.
멀리 낙동강의 중류에서는 뭔가 번쩍이는 게 주말에도 전선에서 전투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손들어!”
산 정상을 지키는 군인들이 총을 겨누었다. 손을 들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미군의 군무원입니다.”
“미군의 군무원이 이곳에 왜와!”
“주말이라…… 갑갑해서 잠시 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나의 품을 뒤져서 군무원의 신분증을 보았다.
“미군의 군무원들을 팔자가 좋군. 주말이라고 쉬고 말이야.”
“뭐…… 어쩌겠습니까? 미군이 쉬는데요.”
미국은 기독교가 강한 국가라 전방에서 전투 중인 부대가 아니면 주말에 쉬고 예배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그들과 함께 쉴 수가 있었다. 거기에 평상시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주 업무상의 핑계로 영외에 나갈 수가 있었다.
‘미군 군무원이 정말 꿀보직이야.’
덕분에 군무원의 일과 사업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것이 동시에 군무원으로서의 일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면서 미군 병사와 장교들의 불편한 일들을 해결해 주었다. 미래 상사가 하는 일 중에는 그런 그들을 돕는 일도 포함되었다.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었다. 그 일을 위해서 한국인 군무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그 일이 아니면 미군이 한국인 군무원을 쓸 이유가 없지.’
미군에서 아주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미래 상사는 그들의 불편한 일들을 처리해 주고 돈을 벌었다. 서로 주고받기였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어.’
그 일이 금은방과 국수 공장, 오뎅 공장과 함께 미래 상사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알겠소. 이곳은 민간인들이 함부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내려가시오.”
“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부산 전체를 볼 수 있는 주요한 산의 정상은 군사적인 요지였다. 함부로 민간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다.
내가 미군의 군무원이 아니고 일반인이라면 곤욕을 치렀을 것이었다. 덕분에 민둥산인 이곳에서 산 정상만은 그늘을 피할 몇 그루의 나무와 억새가 펼쳐져 있었다.
산 정상에서 느긋하게 쉬다 가려다가 병사들의 등쌀에 밀려 내려갔다.
‘이제 저들도 알 때가 되었는데…… 아니, 계속 병사가 빠르게 변해서 모르나?’
지금은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가 소모전 양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병사가 많이 죽고 새로 충원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곳도 새로운 병사가 오고 가고 변화가 심했다.
‘나도 두 번이나 저기에서 죽었지……. 피의 능선들이야.’
산에서 내려가면서 바다를 보았다. 미래의 그곳에는 바다를 메울 듯이 배가 가득해진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항구로 발전한다.
아직 그곳에 배들이 별로 없었다. 저곳에 배들이 가득한 날이 곧 올 것이었다. 그 일에 나도 크게 이바지할 생각이었다.
‘해운 선사도 언젠가는 해야 할 사업이야.’
* * *
산을 타고 집으로 가는데 멀리서 식모로 일하는 갑순이가 보였다. 그런데 그녀를 몰래 미행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녀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 지켜본 후 떠났다.
“갑순아, 오늘 너를 뒤따르던 남자가 있던데. 몰랐어?”
“에구머니나, 그랬어요? 요즘 따라오는 남정네들 때문에 걱정이에요. 도련님이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부산에 오자 어머니에게 말씀드려 갑순이에게 제대로 된 옷을 입히게 했다
“어머니, 저희도 이제 사업가예요.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옷차림도 신경 써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 집안의 격이 떨어져요.”
“그건 생각 못 했구나, 애야. 일하는 애의 옷차림도 신경 쓰마.”
‘집안의 체면이 있지. 옷 하나에 얼마 한다고…….’
이제는 그냥 알부자가 아니었다. 부산에서 큰 사업체를 하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식모라도 허름한 옷을 입힐 수 없었다.
‘나중에 재벌이 되면 전담 집사도 두고 그래야지.’
그 덕분에 갑순이도 좋은 옷을 입었다. 옷이 날개라더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거기에 전쟁 통에도 잘 먹어서 통통하고 피부도 좋았다.
‘통통한 애가 뭐가 좋다는 것인지…….’
미래의 감각을 가진 나와 달리 이 시기에는 통통한 사람이 인기였다. 통통하다는 것은 잘 먹고 산다는 증거였다. 복스럽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식모인 갑순에게도 많은 남자가 붙었다.
못 먹어서 마르고 지저분한 옷의 입은 여인들 사이에 통통하고 새 옷을 입은 갑순이 인기가 있을 만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를 따라온 녀석은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못 먹어서 몸은 말랐지만 덩치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녀석을 잡아서 단단히 혼내 주기로 했다. 김춘삼에게 동네 동생들을 3명 정도 불러오게 했다. 그들은 광복동, 남포동, 부평동에 있는 상점과 가게를 관리했다.
그들은 그곳에 날 파리들이 꼬이지 않게 하는 역할이었다. 부산에서 한주먹 한다는 사람들이었다.
“김춘삼 씨, 우리 집에 일하는 갑순을 따라다니는 덩치 큰 녀석이 있습니다. 그 녀석을 잡아서 제 앞에 대령하세요.”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감히 갑순 씨를 뒤 따라다니다니, 저희가 혼쭐을 내겠습니다.”
며칠 후 내 앞에 한 남자가 끌려왔다. 얼굴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독기가 풀풀 날렸다. 그를 잡으러 간 동네 건달 3명의 얼굴도 엉망이었다.
‘3 대 1로 저 정도로 싸웠다고…… 싸움 하나는 잘하는 모양이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녀석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외쳤다.
“당신이 누구인데 나를 이렇게 잡아 온 것이오!”
“자네가 내 집에서 일하는 갑순을 미행하지 않았나?”
그러자 멍들어 붉어질 것이 없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이름이 갑순이였소?”
“쯧쯧, 이름도 모르고 쫓아다녔다니.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오.”
“부산에 피난을 온 피난민이오.”
“그전에 한 일이 있을 것이 아니오.”
“종로에서 일했소.”
‘역시 내 추측이 맞구나.’
피난민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단순히 동네에서 노는 건달이라고 부르기보다 깡패, 폭력 조직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사람도 많았다.
‘나이를 보아하니, 간부는 아니겠군.’
“갑순이가 뭐 하는지는 아시오?”
“모르오.”
“내 집에서 식모살이하오.”
그 말에도 그는 큰 흔들림이 없었다. 확실히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다지 떳떳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오.”
“갑순이와는 이야기해 봤소?”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는 일도 없는지라 말도 걸어보지 못했소.”
“남자가 그래서야 쓰겠소. 내 밑에서 일해 보겠소?”
“일만 주신다면 형님으로 모시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형님은 그렇고 부사장님으로 부르시오. 그런데 형님은 따로 있지 않소?”
“큰형님이 하시는 일을 보니, 조만간에 일이 없어질 것 같소. 차라리 이번에 형님 밑으로 가겠소.”
‘음…… 김두한의 종로파인 모양이군.’
지금 종로파는 한창 내분을 겪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찬성하는 이들이 있었다.
반대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의견이 갈렸다.
김두한은 정치인이 되기 위해 조직폭력배의 색깔을 빼고 있었다. 김두한이 부산에 있는데도 따라가지 않은 것을 봐서는 그는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쪽 같았다.
“형님이 아니라 부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또 형님이라고 부르는군. 내 밑에서 일하려면 그 분위기를 빼야 할 것이오.”
“알겠소, 부사장님.”
갈수록 부산의 분위기가 혼탁해졌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도 필요했다.
‘나중에는 군인 출신들도 써야겠어.’
지금은 돈과 함께 사람도 모아가는 시기였다. 일하려면 쓸만한 사람이 많아야 했다.
“그래……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정재라 부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