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16)
사업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민군들은 이북까지 밀렸다. 서울은 미군과 국군의 손에 수복되었다.
그 소식이 빠르게 부산까지 전해졌다. 많은 사람이 전쟁이 끝나간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마음이 흔들렸다.
“강철아, 우리도 서울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아버지, 아직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그럼, 정말 휴전 협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서울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냐?”
“우선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한 번 더 밀릴 것입니다. 서울로 가는 것은 그 뒤에 생각하시죠.”
저번 회차의 경험으로 서울은 휴전 협정이 맺어진 후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휴전 협정은 1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루어진다. 빠르게 성장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그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가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10대 그룹을 따라잡으려면 뭔가를 해야 하는데, 미래 수산과 미래 식품만으로는 뭔가 아쉽단 말이야. 삼백(三白) 산업을 미리 시작해?’
전쟁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삼백 산업을 미리 시작하는 것을 고민했다. 제분과 제당, 면직물 산업을 시작하는 데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제철과 정유 산업과 같은 대규모 장치 산업이 아니었다.
작은 제분기는 정미하는 기계나 국수 기계, 오뎅을 만드는 기계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런 사업을 소규모로 하려면 시설에 큰돈이 안 들었다.
그래서 그 업종에 대기업 말고도 소규모 회사들도 많이 뛰어든다. 한국에 많은 제분소와 제당, 면직물 사업체가 들어서게 된다.
다만 이것도 규모의 경제라 크기가 클수록 경쟁력이 높았다. 먼저 시작하면 유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시기에 뛰어들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아.’
현재 밀가루와 설탕은 미국에서 가공된 상태로 들어왔다. 삼백 사업은 전쟁 중에 원조 물자로 싸게 들어오는 시기에는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것들을 비싸게 수입해야 할 때 해야 하는 산업이었다.
‘문제는 원료의 수입이네. 결국 자본과 인맥의 싸움이야.’
전쟁이 끝난 후 정부에서 그 업종들을 수입 대체 산업으로 지정하여 원조와 차관을 빌려주어서 규모를 키웠다.
공장을 짓는 것과 원료를 수입하는 데 모두 달러가 필요했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들은 그런 기업이었다. 그것을 더 얻어 내기 위해 로비와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 아수라장에 뛰어들기는 싫었다.
‘원조와 차관으로 들어오는 달러는 10대 기업들이 먼저 가져가겠지.’
게다가 원조와 차관을 더 얻기 위해 한 로비들은 나중에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 약점으로 잡힌다. 군사 정권은 그런 이들을 부정 축재자로 만들어 희생양으로 삼았다.
‘부정 축재자들이 맞긴 맞지. 문제는 재벌의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야. 결국 처벌하면 경제가 안 돌아간다고 봐주었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 진짜 방법이 없었는지는 그 시기에 알 수 없었다. 벌금을 내고 끝나기는 했지만…… 대대적으로 재벌들의 순위가 교체되었다. 굳이 그런 일에 연루되긴 싫었다.
‘이승만 정권이 오래가는 것도 아니고 무리해서 지금 그럴 필요는 없어.’
4·19가 1960년이었다. 그 정권은 전쟁이 끝나고 7년 천하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뒤에 다가올 오랜 군사 독재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되지.’
지금 정권과 연관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정치와는 적당한 거리가 최선이야. 멀지도…… 가깝지도…….’
* * *
1950년대와 60년대, 70년대에는 재벌의 순위 변동이 심했다. 60년대 이후에는 군사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업들이 성장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지금부터 어느 정도 돈이 되고, 처음에는 외화가 들어가도 계속해서 들어가지 않는 사업이어야 했다.
‘수산이 그런 산업이긴 한데…… 그것만 가지고 부족해.’
외화가 나가지 않고 오히려 외화를 벌 수 있는 사업이면 더욱 좋았다. 70년대 급성장한 그룹들은 수출 업체이거나 해외 건설 사업으로 외화를 번 기업이었다.
외화는 무슨 사업을 하든 언제나 필요했다. 심지어 수출 산업도 시설과 원재료를 수입하려면 외화가 필요했다.
‘나중에 삼백 산업도 하려면 충분한 외화가 필요하겠지.’
삼백 산업은 시설비보다 원료 수입에 외화가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달러로 원료를 수입해와서 국내에서 원이나 환으로 돈을 벌었다. 달러를 구하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사업이었다. 삼백 산업은 외화가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삼백 산업도 돈이 되는데 안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러한 외화를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싶었다.
‘외화를 자체적으로 못 구하면 결국 정경 유착을 해야 해. 내수 산업은 그것이 어려워.’
밀과 원당을 수입하는 데 선박도 필요했다. 외국 선박을 이용하려면 운송료를 외화로 지급해야 했다. 모두 외화가 필요했다.
‘아, 유레카! 그래, 배가 있잖아. 외화도 아끼고 오히려 외화를 벌 수가 있지.’
벌크선은 화물선 중에서 비교적 저렴했다. 소형 벌크선이라면 미래 그룹도 살 수 있을지 몰랐다.
곡물과 원당, 목화와 같은 원재료들은 벌크선에 실려 왔다. 지금 고철을 수출하는 것도 벌크선이었다.
벌크선을 사면 삼백 산업을 하더라도 외화를 아낄 수가 있었다. 다른 곳에 빌려주면 외화를 벌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사업들하고 연관성이 깊어. 서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는 게 좋아.’
* * *
해상 운송 사업에 관심이 끌렸다. 큰 배가 아닌 소형 벌크선이라면 지금의 자금으로도 가능할 것 같았다. 미래 상사의 이창동 사장을 불렀다.
“이창동 사장, 일본에서 소형 벌크선의 가격을 알아보세요.”
갑자기 상사에 벌크선 구매를 이야기하니, 그가 놀랐다. 화물선은 작은 어선과 금액 단위가 달랐다.
“소형 벌크선을 미래 상사에서 산다는 말입니까? 선박의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 회사로서는 무리입니다.”
“일본에 저축이 되어 있는 엔화를 확인해 보세요.”
“그것을 사용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면 모아 놓은 금과 달러를 사용해야지요.”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금은방과 환전소를 통해 금과 달러로 바뀌고 있었다. 달러는 이것 말고도 쓸 곳이 많지만 필요한 곳에는 사용해야 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수입과 수출의 물동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었다. 해운업은 앉아서 돈을 버는 장사였다.
문제는 선박의 가격이 워낙 고가라 자기 자본 없이 빚을 내서 선박을 사는 것이다. 심지어 수출입 물량이 많다고 비싼 임대료를 내고 배를 빌렸다.
해운 산업은 의외로 건설업과 비슷했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했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지만…… 위기에 취약했다.
IMF나 금융 위기에 기업들이 우수수 넘어갔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사업 대부분이 다 그런가?’
대한민국 재벌의 태생이 그랬다. 적산 자산 매각과 원조, 차관 등 남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남의 돈을 공돈으로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미국의 벤처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네.’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건 벤처 기업이나 그렇지. 투자금이 많은 데 비해서 운임 단가로 천천히 그 돈을 회수하는 해운을 남의 돈으로 하면 큰일 나.’
자본이 많이 든다고 남의 돈으로 하면 오일 쇼크나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경제 위기에는 막대한 이자와 선박 임대료를 내지 못해서 망했다. 해운은 철강과 정유 산업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대신에 자기 돈으로 한다면 해운보다 안전하고 앉아서 돈 버는 장사도 없었다. 한국의 물동량은 늘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것은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나의 개입에 큰 영향을 안 받았다.
‘아니, 개입하면 할수록 수익이 커지는 구조지.’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무리하게 빚을 내거나 비싼 선박 임대료를 주지 않고도 해운업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확실한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해야 했다.
“저번에 저희가 고철을 운반한 5천 톤급 소형 벌크선부터 알아보세요.”
“5천 톤급도 만만치 않은 가격일 것입니다.”
“알아보기는 알아봤어요? 먼저 알아보고 이야기합시다.”
‘해 보기는 해 봤어.’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한 번 따라 해 보았다.
‘그 사람이 허풍이 심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그런 것도 필요하지.’
벌크선을 알아보라는 지시에 따라 이창동 사장이 일본 회사 여러 곳을 접촉했다. 그중에서 저렴한 배들을 알아보았다.
“부회장님, 미쓰비시 해운에서 소형 벌크선을 판다고 합니다.”
‘뭐야. 죄다 미쓰비시야.’
“몇 톤짜리를 얼마에 판다는데요?”
“5천 톤짜리가 5억 엔입니다.”
“응? 왜 그리 저렴해요? 고철 가격하고 큰 차이가 안 나잖아요.”
저번에 고철을 2억 5천만 엔에 팔았다. 지금은 3억 엔이 넘을 것이다. 물론 고철 5천 톤하고 적재량 5천 톤짜리 벌크선은 달랐다.
선박의 톤수는 실을 수 있는 양을 말했다. 선박의 무게는 훨씬 적었다. 그래도 너무 싼 것은 의심해 봐야 했다.
‘싼 게 비지떡이야.’
“건조한지 20년 된 배라고 합니다.”
“그럼 그렇지. 자신들도 배가 필요한데 그렇게 싸게 팔 때는 이유가 있지.”
“그래도 잘만 쓰면 10년 이상 더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고, 이 사장님……. 행간을 읽으셔야지요. 10년 더 사용하면 뭐 해요. 애물단지인데…….’
미쓰비시 해운에서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10년이라면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잘하면 20년까지 사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뭐 하냐고, 고철인데……. 고철로 20년 동안 운항하라고…….’
“고철이야, 고철. 아니, 그건 짐 덩어리에요.”
“왜, 어선은 고철을 사셨지 않습니까?”
“그건 다르지요. 어선보다 화물선이 기름을 더 먹어요. 게다가 저번에 산 어선은 선단 어업이잖아요. 화물선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요.”
어선은 그래도 짧은 거리를 운항하지만, 화물선을 장거리 운항이 기본이었다. 비용 중에 원료비, 기름값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굳이 오일 쇼크가 아니더라도 기름값은 계속 오른다. 미쓰비시 해운에서 오래되어 연비가 안 좋은 화물선을 넘기려는 것이다.
선박이 작아서 한 번에 많은 화물을 옮기지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만 톤, 20만 톤 급 초대형 화물선도 나온다.
지금 5천 톤급 고물선을 사면 큰일 난다. 그런 건 운항하면 할수록 손해가 커졌다.
‘나를 너무 초짜로 봤어. 이래 봬도 재벌 2회차야.’
이건 독이 든 사과였다.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아도 곧 적자가 날 것이다. 게다가 감가상각까지의 기간도 얼마 안 남았다.
이런 화물선은 제대로 사용도 못 하고 폐기해야 했다. 그러면 고철값도 받기 힘들어졌다.
“미쓰비시 해운 말고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미군이 쓰다 버리는 것을 싸게 얻어 와? 안돼. 그건 연비가 더 안 좋아. 고철값으로 팔면 몰라도, 그렇게는 미군도 안 팔지.’
상사의 이창동 사장이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곧 생각도 하지 않은 물건을 물어 왔다.
‘제비인가?’
“이마바리 조선에서 1만 톤급 벌크선을 판다고 합니다.”
“이마바리 조선이라고요? 그 회사 배라는 말이지요.”
“왜 그러십니까? 부회장님, 그 회사가 그렇게 유명합니까?”
“음…… 나름대로 이름이 있지요?”
“미쓰비시보다 더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뭐, 그건 넘어가시죠.”
‘나중에 더 유명해진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어떻게 아냐고 하면 할 말이 없어.’
이마바리 조선은 이 시기에 조선업계의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영국과 비슷한 수준의 화물선을 거의 3분의 2나 반값에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으로 세계 조선의 수주량이 집중될 것이었다.
‘그 회사가 한동안 세계 조선업계를 쥐고 흔들었어. 참 유명한 회사인데……. 이마바리 조선에서 만든 거면 괜찮겠지.’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일본인들은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이 벌크선을 왜 판다고 하는데요?”
“그리스 해운사가 인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인수를 거절했다고요?”
해운사가 인수를 거절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인수 안 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왜 인수를 거절했다고 하는가요?”
“자신들이 설계도로 지시한 공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공법을 사용했게요?”
“용접·블록 공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게 뭐가 문제야. 잠깐…… 하자가 있구나. 계약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공법을 바꾸면 안 되지.’
“그래요? 하자 있는 물건이구먼. 그래, 이마바리 조선소는 얼마를 달라고 합니까?”
“50억 엔입니다. 그리스 선사에서 그렇게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휘우~ 왜 이리 비싸. 하자 있는 물건을 그렇게 팔아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일본의 선사도 많은데 왜 우리에게 팔려고 할까? 아! 일본의 선사들도 아직 이 공법을 신뢰하지 못하는구나.’
“하자가 있으니 팍팍 깎으세요.”
“그래도 기준을 주셔야지요.”
“25억 엔에서 30억 엔 사이로 협상하세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용접·블록 공법은 1950년대 초 이마바리 조선소에서 개발한 공법이었다. 선박을 통째로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서 블록으로 만들어 용접 조립을 하여 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으로 이마바리 조선은 건조 단가를 3분의 2에서 절반으로 낮추어 세계의 수주량을 쓸어버렸다.
나중에는 이 공법이 너무나 당연하여 이렇게 안 만드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렇게 만든 선박의 신뢰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이후로 만들어지는 배들은 다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벌크선이 그 공법으로 처음으로 시도된 선박인 모양이군.’
나중에 이 배가 아무 문제 없이 운항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 건은 새로운 공법으로 건조된 신형 배를 싸게 먹을 기회였다.
‘이런 건 먹어 줘야 하지 않겠어. 하하.’
“저번에 말한 협상을 기억하시죠. 상대를 알고 덤벼라……. 이마바리 조선에서 최대한으로 깎아 줄 수 있는 가격을 알아보세요. 거기서 10% 정도는 융통성 있게 협상하세요.”
“네, 이마바리 조선소와 협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배는 반드시 먹기로 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다.
‘이건 최신형 선박을 거저먹는 거야. 50억 엔도 1~2년 전에 수주할 때 가격이잖아.’
잘하면 원래 판매가의 반값에 살 수도 있었다. 더 좋은 것은 새 배를 기다리지 않고 사는 것이었다.
이마바리 조선소에 발주를 내어도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했다.
선박을 바로 인도받아 지금 당장이라도 해운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시간도 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