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169)
성을 예측하여 준비하다
페어차일드 회장과의 만남과 협상이 이학수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것 같았다.
“부회장님의 설득 기술에 감탄했습니다. 그가 거의 넘어왔더군요.”
“아직 확답을 들은 것은 아니니 미리 설레발을 치지는 마. 이제 관심을 가진 정도야.”
셔먼 페어차일드는 노련한 사업가였다.
“제가 보기에는 곧 연락이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자고 할 것 같은 분위기던데요.”
“학수, 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결정을 쉽게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야. 한참 동안 직원들과 그 사안에 대해서 검토할 거야.”
셔먼 페어차일드는 후계자가 없기에 이사회의 힘이 막강했다.
“그런가요?”
“아마 내 말이 맞을걸?”
“그걸 부회장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그 회장은 오늘 처음 본 사람 아닙니까?”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
‘미래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그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떨 때 보면 마치 신기가 있어서 미래를 보는 것 같으시더라고요.”
“하하, 진짜 내가 신기가 있을지도…….”
그를 오늘 처음 보았지만, 페어차일드의 회사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회사는 지금부터 내리막이었다.
항공기는 록히드 마틴과 보잉 같은 대형 항공사에 치이고, 다른 군수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음향 기기도 일본의 음향 기기 회사에 밀렸다.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페어차일드 반도체도 마찬가지였다.
이사회는 경쟁사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가운데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건비가 아니었다. 결정에 책임지는 사주가 없는 것이었다.
투자를 공격적으로 안 하니. 연구 비용의 감소와 연구원들에 대한 대우가 안 좋아졌다. 쇠퇴하는 회사의 전형적인 절차를 밟았다.
* * *
한국에도 그러한 그룹이 많았다. 지나친 투자와 무모한 도전으로 위기에 무너진 기업도 많지만, 소극적인 투자로 경쟁에서 밀려 사라진 회사도 많았다.
그런 경우 망하지는 않았지만…… 회사로서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페어차일드는 후자에 가까웠다.
서서히 순위가 내려가면서 경쟁에서 도태되었다. 그것은 소극적인 투자 때문이었다.
페어차일드 회사는 27년에 항공기 회사를 창립한 후 승승장구했다. 마침 불어 닥친 2차대전의 파고와 연이어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어진 전쟁으로 군수 사업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벌리는 시대였다. 마침 추가로 확장한 음향 기기와 사업에서, 반도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페어차일드 회장과 이사회는 너무 신중해.”
그러는 사이에 그도 나이를 먹었다. 사람이 보수적으로 되고 점점 위험을 회피하는 성격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그는 사업에서 실패나 적자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사회는 더욱더 보수적이었다.
“그러면 적기에 회사가 제대로 투자를 못 해.”
진짜 시키기만 하면 연구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손쉽게 뚝딱 만들어 내는 줄 알았다. 실제로 미국의 전쟁이 이어질 때는 그것이 가능했다. 애국심으로 연구 개발을 하고 물건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손쉽게 신제품을 만들어 내자 연구 투자비가 줄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경쟁사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에 비해서 신제품 출시가 늦어지게 된 것이다.
“반도체 사업은 지속해서 많은 투자를 해야 해.”
반도체는 공정과 성능 싸움이었다. 경쟁사보다 성능 떨어지자 바로 주문이 격감했다. 그것은 매출 감소와 함께 바로 회사의 적자로 이어졌다. 결국 그러한 적자로 페어차일드 본사와 반도체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본사에서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반도체 연구원들에게 신제품을 만들어 내라고 닦달한 것이다.
쇼클리 반도체에서 뛰쳐나온 연구원들이 그런 대우를 받고 계속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대우가 안 좋아지자 바로 뛰쳐나가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이러한 역사가 바뀔 가능성은 적어.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야.’
그런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페어차일드 회장에게 제안한 반도체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해법은 잘못된 것이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아니지.’
가장 적절한 해법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투자 증대를 통한 신제품 개발이었다. 반도체 업체 간의 치킨 게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번 밀리면 지는 게임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으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지.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야.’
진실이 아닌 그가 원하는 답을 알려 주었다. 내가 제시한 해법은 미래 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방법이었다. 동시에 적자를 보게 될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를 인수할 방법이기도 했다.
‘내가 그를 속이거나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야. 다만 돕지 않고 이용하는 것뿐이야.’
투자하라고 권유한다고 해서 그가 투자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미 투자를 줄이기 시작한 페어차일드 회장이 한국에서 온 사람의 말만 듣고 반도체에 과감한 투자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에게 그것을 권유할 필요도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역사 속으로 사라질 회사였다. 해외에 공장을 세운다고 그가 손해를 보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개인적으로는 해외 공장의 수익으로 이득을 볼 것이다. 다만 미국의 페어차일드 반도체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방법이었다.
내가 이창동 사장을 옆에 두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회사에는 그런 사람도 필요했다. 달콤한 소리만 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했다.
‘어느 조직이든 보기 싫은 것을 보라고 하고 듣기 싫은 것을 들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해.’
조직의 다양성은 그래서 중요했다.
* * *
“그럼 미래 그룹과 페어차일드 합작 법인의 설립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내가 제시한 방안은 그에게 상당히 유혹적이거든.”
투자를 꺼리는 그와 이사회에 돈이 전혀 들지 않는 방법을 제안했다. 손쉽게 반도체의 생산 능력을 키울 이번 기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거기에 딱히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인건비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에 공장을 세우게 되면 미국보다 저렴하게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었다.
“한국에 합작 회사를 만들면 그곳에 많은 이익을 거둘 수가 있을 거거든.”
“그가 한국 합작 법인을 인수하려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그럴 여유가 안 될걸……. 미국 반도체 공장에서 큰 적자가 날 것이니까.”
한국에 미래 그룹과 함께 합작으로 세운 공장은 많은 수익을 낼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페어차일드 공장의 수익을 개선하지 못했다.
페어차일드 이사회는 반도체 사업의 대규모 적자로 투자를 망설이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두 공장이 인건비만으로 그렇게 많은 손익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까?”
“두 공장은 단순히 인건비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야.”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문제는 인건비가 아니었다.
“두 공장은 반도체를 납품하는 곳이 서로 다르거든. 미국과 일본은 원하는 반도체의 수요가 달라.”
두 개의 공장은 생산한 반도체를 판매하는 시장이 달랐다.
페어차일드 캘리포니아 공장은 국가와 IBM과 같은 기업에 필요한 고사양 제품을 납품하는 곳이었다. 그러한 곳은 기술 경쟁에서 밀리면 바로 반도체의 주문이 급감했다.
“학수가 이야기한 대로 두 공장은 인건비 자체가 달라.”
반면에 한국의 공장은 일본의 전자업체에 납품할 것이다. 일본의 전자업체는 저가의 제품들을 생산하여 미국에 수출하는 업체들이었다.
그들은 트랜지스터부터 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도체 제품들을 소비했다.
“같은 제품을 생산해도 가격과 수익이 다르지.”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이 성장한 것은 그런 제품들을 저렴하게 생산하여 세계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전자 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상업용 트랜지스터와 반도체의 소비량이 많았다.
“한국의 합작 공장은 일본 업체들보다 저렴하게 더 고성능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거야.”
일본의 반도체 업체보다 미래 반도체가 더욱 고성능의 제품을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경쟁사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에게 고사양의 고가 시장에서 기술이 밀렸다. 그러나 일본의 업체에까지 기술이 밀린 것은 아니었다.
저렴하게만 생산한다면 일본 업체와 경쟁 상대가 안 되었다.
“저희가 경쟁하는 업체는 미국의 업체가 아니라 일본의 반도체 업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미국에 있는 공장과 서로 경쟁하는 상대가 다르지.”
일본 반도체 업체가 미래에 차지한 위치를 미래 반도체가 먼저 선점해 나갈 것이었다.
미래 반도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일본 반도체 업체들보다는 한동안 기술에서 앞설 것이었다.
“그런데…… 부회장님의 말씀대로 미국의 페어차일드 공장에서 적자가 난다면…….”
“보수적이고 투자를 꺼리는 그쪽에서 연구개발비를 삭감할 수도 있지.”
“저희에게도 영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니 나중에 그곳을 인수해서 대규모로 투자해야 할 거야.”
인수하면 그곳의 연구진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것이다. 그것은 반도체의 포토(Photo) 공정이었다.
포토 공정은 사람이 회로를 손으로 그리는 것을 판화로 찍어 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인력이 대폭 감소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목판과 금속 활자 기술이 있었어. 반도체야말로 대한민국에 적합한 사업이야.’
[정보의 기록 및 저장 장치라는 면에서 650년 전의 직지와 현대의 메모리 반도체가 상통한다’는 아이디어를 광고에 담아냈다. 출처―SK 하이닉스.]금속 활자와 메모리 반도체는 시대는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역할을 한 IT 기술이었다.
“페어차일드 회장이 설마 적자가 난다고 미국의 연구소와 공장을 팔겠습니까?”
“그건 모르지. 그들은 적자가 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이들이니……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가 그럴 것을 부회장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정말 신기가 있으십니까?”
너무 강한 확신은 위험했다. 역사는 바뀔 수 있었다.
“그럴 리가…….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 실제는 그때가 돼 봐야 알 수 있어.”
“결국 모두 부회장님의 가정이시군요.”
“그렇지만, 그런 가능성을 알고 준비한다면…… 그때 그를 설득할 수도 있겠지.”
“가능성을 예측하여 미리 준비한다라…….”
그 말이 이학수의 감정을 움직였다. 타이밍에 맞추어 적절한 말을 그에게 해 주었다.
“그것이 앞으로 전략 기획실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의 하나가 될 거야.”
“아! 이제야 전략 기획실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학수에게 전략 기획실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오늘의 일과 다음에 추진할 페어차일드 반도체 인수를 보게 된다면, 그도 크게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었다.
미래 상사를 책임지는 이창동 사장과 전략 기획실을 맡게 될 이학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달랐다. 그에 맞추어 키우는 방법도 달라져야 했다.
그렇게 성장한 그들이 미래 그룹 내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했다. 그래야 더 튼튼하게 미래 그룹이 성장한다.
학수를 페어차일드 회장을 만나는 곳에 데려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단순히 학수를 가르치기 위한 것만은 아니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인수하여 제대로 투자한다면 미국과 일본에 기술적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경쟁사보다 더 우수한 제품을 더욱 저렴하게 공급한다. 반도체와 같은 소재 산업에서는 질 수가 없는 필승의 전략이었다.
* * *
“아…… 그리고, 한국에 가게 되면…… 내 일의 뒤처리도 좀 해야 할 거야.”
“무슨 뒤처리요?”
“한국에 가 보면 알아.”
“별로 느낌이 안 좋은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거야. 페어차일드 반도체 인수보다 쉬운 일이야.”
그렇게 이학수와 다시 미국 지사가 있는 빌딩으로 향했다.
그곳에 S.P.A의 IPO를 준비하는 미래 투자 은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