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179)
보다 어려운 설득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합작으로 한국에 공장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
“이번에 그곳으로 갈 연구원을 지원받습니다.”
“…….”
‘예상은 했지만……. 왜 이리 반응이 없어.’
역시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연구원들은 살기 좋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의 다른 도시로 가는 것조차 꺼리는 이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기후와 환경이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실리콘 밸리의 발전은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스탠퍼드 대학, 살기 좋은 환경이 결합한 결과였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이지.’
많은 IT 기업들이 그곳에서 탄생하고 자리를 잡은 것에는 그 세 가지가 큰 영향을 주었다. 실리콘 밸리에 땅을 사는 것은 확실한 투자였다.
살기 좋은 환경은 연구원들에게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그들에게 유럽에 가라고 해도 갈까 말까 한데, 이름도 모르는 한국에 갈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국가 이미지는 사업 추진에 큰 영향을 줘.’
그것은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합작 사업, 인재 유치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인이 기억하는 한국은 한국전쟁의 모습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와 낙후된 환경, 꾀죄죄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지금 미국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였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래 그룹이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점점 나아질 겁니다”
“아직 생활하기 불편한 후진국입니다.”
그러한 이미지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한국은 아시아에서 베트남이나 태국보다 못사는 나라였다.
전 세계에서 위에서 세는 것보다 아래에서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 그런 한국에 가는 일에 쉽게 지원할 연구원은 없었다.
‘쳇, 다른 걸로 꼬셔야지.’
“여러분들 중에 S.P.A로 목돈을 만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으로 간다면 더 많은 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보다 2배의 보수를 약속합니다.”
돈으로 그들을 유혹했다. 보수는 이직의 중요한 사유였다.
“S.P.A로 많은 돈을 번 것에 관해서는 부회장님께 감사합니다. 2배의 보수 제안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서 한국으로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쉽게 보수로 움직일 이들이 아니었다. 이미 S.P.A에 대한 투자로 각각 4~20만 달러 정도 벌었다. 그들이 보수를 두 배 준다고 쉽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본인이 S.P.A를 만들었습니다. 함께한다면 한국에서, 많은 기회와 성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회와 성공으로 다시 그들을 유혹했다.
“부회장님이 설립한 S.P.A가 성공한 것도 사실이고…… 미래 그룹의 부회장님과 함께한다면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뒷말은 달랐다.
“여기에도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굳이 한국까지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이곳 샌프란시스코에도 많은 기회가 있었다.
페어차일드 회사를 그만둬도 자신이 회사를 차리거나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것이었다. 여기에 기회가 많았다. 굳이 한국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 아직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잘 나가는 회사였다. 미래 반도체로 갈 이유가 더욱 없었다.
사람은 현재와 같은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상황이 변하고 어려워져야 그때 움직이려고 했다. 기본적으로 모험과 변화를 싫어한다.
실리콘 밸리를 만든 페어차일드의 연구원은 회사를 옮기거나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상황이 안 좋아지고 대우가 나빠지면 그때 회사를 나와 창업했다.
지금은 잘 나가는 회사를 나가거나 먼 나라까지 파견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들에게 한국은 아프리카의 나라나 마찬가지야.’
한국 사람에게 아프리카로 파견을 나가라고 하면 대부분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사를 그만둘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것만큼이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라는 것은 그들에게 실패로 여겨질 것이다. 일종의 좌천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 사람에게 한국은 그런 이미지였다.
지금의 한국은 특별한 사명감이 없다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미군과 연구원은 처지가 달라서 힘들어.’
미군이야 원래 전쟁터와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사명감이나 복지, 다른 갈 곳이 없기에…… 어디라도 가야 했다.
반면에 반도체 연구원은 대부분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고학력자였다. 돈을 많이 받는 고액 연봉자이기도 했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 정도가 아니면 한국까지 오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벨 연구소의 강대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서 도움을 주십시오.―
―미안하오. 벨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오.―
얼마 전 그가 아틸라 박사와 개발한 모스펫(MOSFET) 기술은 칩의 소형화와 포토 공정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였다. 지금은 플로팅 게이트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낸드 플래시메모리의 기초였다.
‘쉽게 포기할 수 없지.’
―알겠습니다. 한국에 벨 연구소 못지않은 연구 시설을 갖추어 놓겠습니다.―
―그건 그때 고민해 보겠소.―
페어차일드 반도체 연구원을 설득해서 한국으로 오게 하려면 고액 연봉과 기회, 성공 이상을 제시해야 했다.
‘설득이 쉽지 않군. 뭐가 좋을까? 이성이 아니면 감성이지.’
* * *
논리적으로 설득이 먹히지 않을 때는 감성적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해야 했다.
“그곳에 가는 사람은 미래 자동차에서 나오는 신차를 우선 제공하겠습니다.”
“…….”
“다들 미래 지프를 좋아하시죠. 미래 자동차에서 곧 새로운 픽업트럭이 나올 예정입니다.”
차로 꾀었다.
“한국은 비포장도로가 죽입니다. 거친 도로에서 한번 달려 보지 않겠습니까?”
한국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매력으로 꾸몄다.
“…….”
‘역시 이것으로는 안 먹히는군.’
설득이 힘들어지자 옆에서 보고 있던 전자의 구인희 사장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한국에 가시는 분들은 최고급 호텔에서 머무시게 될 것입니다. 번거롭고 귀찮은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구 사장이 말한 것처럼 부인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구인희 사장의 말에 연구원 중 몇 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들은 대부분 결혼한 유부남이었다. 돈보다 무서운 것이 아내였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더 큰 것을 제시했다.
“원하신다면 부인들을 여기에 두고 혼자 오셔도 됩니다.”
몇 명이 관심을 보였다.
‘이들도 이제 밤이 무서워질 때가 되었어.’
“곧 한국에 리조트가 건설될 것입니다. 부인과 아이들은 한 번씩 한국의 최고급 리조트에 초청해서 만나시면 됩니다. 한국에서 자유로운 연구를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유부남들은 가끔 아내와 자녀에서 벗어난 자유를 꿈꾼다……. 이것은 상당히 강한 유혹이었다. 연구원 중에 눈빛이 흔들리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미래 그룹은 여러분들을 최고의 서비스로 대우할 것을 약속합니다.”
‘자유로운 연구든, 자유로운 사생활이든, 그것은 그들이 선택할 문제지.’
“음…… 자유로운 연구라……. 상당히 끌리기는 합니다만……. 이 부분은 집에서 한동안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부남은 자유를 원한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얻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들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한 번에 넘어오지 않았다.
‘더는 제안할 것이 없네. 일단은 후퇴다.’
연구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기는 쉽지 않았다. 말 몇 마디에 넘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설득하고 유혹해야 했다. 연구원들보다 좀 더 쉬운 사람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하십시오. 한국으로 오는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존 카터 사장에게 부탁했다.
“연구원들과의 면담은 이 정도에서 하고 한국으로 파견하러 갈 기술자와 노무자를 면담하기로 하죠. 그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술자와 노무자들은 연구원보다는 쉬웠다. 한국이 동남아시아에 기술자와 노무자를 파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기대하는 연봉과 기회, 성공은 연구원들보다 기대치가 낮았다. 같은 제안을 그들에게 하기로 했다.
“그들도 한국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입니다.”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사람마다 입장과 처지는 다 다릅니다.”
* * *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보다 2배의 보수를 약속합니다.”
이 말에 공장의 중간 관리자급 기술자 중에서 몇 명이 손을 들고 지원했다. 미국이라고 노동자의 대우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반도체와 전자는 아직 노동 집약적 사업이었다.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산업에 비교해서 임금이 그리 높지 않았다.
페어차일드 회장이 인건비에 마음이 흔들린 것도 그 부분이었다. 반도체 생산에서 생각보다 인건비의 비중이 높았다.
제품을 개발하는 고학력의 연구원들은 높은 보수를 받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무자이자 기술자인 중간 관리층의 급료는 그리 높지 않았다.
2배의 보수에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와 같은 저개발 국가에 가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에 좀 더 자극적인 말로 유혹했다.
“한국에서는 이곳에서 받는 월급으로도 왕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고도 월급의 반을 모아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정말 이곳에서 받는 급료의 두 배를 받는다면 그 반으로도 한국에서 왕처럼 살 수 있었다.
한국의 임금과 물가는 미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월급의 반은 충분히 모아 올 수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기술자들이 동남아시아에 지원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 시절 동남아시아 물가는 싸고 그들이 받는 보수는 많았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돈을 사용하고도 목돈을 모아 올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여러분에게 미래 자동차에서 나오는 신차를 우선 제공하겠습니다.”
그 말에 추가로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아무리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라고 하지만, 일반 노동자에게 자동차는 비싼 물건이었다. 그것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말에 지원하는 사람이 늘었다.
‘물론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내놓고 가야 하지만……. 성능 좋은 신차를 준다는 것은 나쁘지 않지.’
“한국에 가시는 분들은 최고급 호텔에서 머무시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자유입니다.”
이번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호텔과 자유(Freedom)는 미국인들이 꿈꾸는 삶이었다.
‘총기도 자유인 나라이니…….’
그러한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남자는 유부남이든 총각이든 자유(Freedom)를 좋아했다.
‘보수적인 한국도 자유 부인이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많이 샀으니.’
자유로운 삶은 남성의 본능이었다.
“유부남들은 부인들을 여기에 두고 혼자 오셔도 됩니다.”
수많은 기술자가 손을 들고 지원했다. 결국 기술자와 중간 관리자는 많은 지원자 중 열의가 넘치고 실력이 좋은 사람으로 뽑을 수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받은 대우가 이곳에 소문나면 연구원 중에서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많이 나올 거야.’
한국으로 오는 기술자에게 최고로 대우할 것이었다. 중간 관리자와 기술자에게 배울 것이 많았다. 연구원만큼은 아니지만, 기술 습득을 위해 그들은 필요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연구원들을 꾀기 위한 미끼였다. 연봉과 기회, 성공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자유(Freedom)에는 흔들렸다.
자유는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였다.
“여러분을 최고로 대우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한국에서 자유로운 삶을 즐기십시오.”
연구원은 실패했지만, 기술자는 손에 넣었다.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아.’
* * *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떠나기 전에 구인희 사장에게 당부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와의 조율을 잘하고 한국으로 오세요.”
“한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울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반도체 사업이 전자의 큰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반도체 사업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큰 사업이었다.
중앙 처리 장치와 램, 그래픽 카드, 저 장장치, 기업용 반도체, 특수 목적 반도체를 합하면 가전보다도 더 큰 시장이었다.
그것에 파생되는 LCD와 LED, 스마트폰, 태블릿까지 합하면 무지막지했다. 구인희 사장은 그 시장으로 뛰어드는 사업을 맡은 것이었다. 아무리 당부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큰일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는 열심히 할 것이었다. 구인희 사장에게 비전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