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3)
뚜쟁이가 되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이르자, 1952년 가을 부산의 거리는 조금씩 정돈되어 가고 있었다.
피난 시절 초기의 혼란은 줄어들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허름한 것은 여전했지만, 개중에는 나름대로 멋을 낸 사람도 많았다.
깔끔하고 허우대도 멀쩡한 남자와 세련된 양장으로 맵시 낸 여인이 함께 광복동 거리를 걸었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났다.
“날도 좋은데…… 이 분위기 좋은 카페, 아니, 다방에서 덩치 큰 시꺼먼 남자와 뭐 하는 건지…….”
“형님, 이거 말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니오.”
“아니, 내가 왜 그대의 형님이 되오.”
“미자 씨가 형님을 오라버니로 여긴다고 하니 형님이지요.”
‘갑순이, 아니, 미자가 머리가 좋아.’
갑순이는 부산에 와서 지내면서 개명했다. 갑순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고 이미자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촌스럽기는 마찬가지인데…….’
어쨌든 미자가 지금은 세련된 이름이었다. 그렇게 이름도 개명하고 이정재와 사귀었다. 그에게 나를 오라버니와 같은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모님과 같은 분으로 소개했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미자의 입지가 좋아지지.’
아무래도 이정재에 비하면 미자가 조건이 떨어졌다. 이정재는 종로파 조직에서 일했지만, 원래는 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이었다. 미자가 우리 가족을 자기의 뒷배로 삼았다.
그렇게 하면 미자의 입지가 이정재보다 위가 된다. 그가 미자를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을 허락했고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렸다. 물론 어머니는 반대했다.
“왜 우리가 미자의 뒷배가 되어야 하니?”
“어머니, 그래도 미자를 오래 데리고 있었잖아요. 그 정도는 해 줘요.”
“그래도 그런 건 함부로 해 주는 것이 아냐.”
“제비가 호박씨를 물고 올지 누가 압니까?”
“미자가 제비라는 이야기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그때 아버지가 대화에 끼어드셨다.
“여보, 강철이가 한 말 중에 틀린 것이 없으니 그냥 해 줍시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아버지의 신뢰가 높았다. 지금은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도 믿을 정도였다. 일을 진행하기에 한결 편해졌다. 결국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도 승낙하셨다.
‘외국으로 친다면 부모님은 대부나 대모인가? 나는 대빠……? 이건 이상하군. 그냥 대형으로 해야겠네.’
그렇게 되어 낙엽이 이쁘게 든 용두산 공원 맞은편의 다방에서 이정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 *
“그래서 나보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는 데 도움을 달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형님. 도와주십시오.”
“정말 나를 형님으로 모실 생각이 있는가?”
“미자 씨와 결혼하게 되면 당연히 형님으로 모셔야지요.”
‘몇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그가 쓸 만할 수도 있어. 그전에 먼저 다짐을 받아야지.’
“미자와 결혼을 하려면 몇 가지 약조를 하게.”
“아니, 형님. 아버님도 아니면서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내가 형님이라며.”
“그래도 형님, 이건 아니지요.”
“내 뜻이 아버님 뜻이네. 나에게 잘 보이게.”
“……알겠습니다.”
그도 내가 그룹 내에서 발언권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뜻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먼저 깡패로 살더라도 적정한 도리는 지키게.”
“아니, 형님. 깡패가 아니라 건달이라니까요.”
“그건 너의 행동에 달린 것이야. 네가 한량으로 행동하면 한량이고, 건달로 행동하면 건달이지. 반대로 깡패로 행동하면 깡패가 되는 거야.”
그에게 처신을 바로 하게 시켰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변화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미자와 결혼시키기로 한 이상 그녀를 과부로 만들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두 번째는 정치에 뛰어들지 말게.”
“아니, 형님. 제가 정치할 깜냥이 됩니까?”
“그건 모르지. 종로파의 두목도 정치에 기웃거리지 않나.”
김두한도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제2의 김두한이 나올 수 있었다. 더 안 좋은 것은 정치에 이용되다가 버려지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 정권이 들어설 건데, 그럼 바로 사형이야.’
군사 정권은 민심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깡패들을 처리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 억울한 사람도 생긴다.
‘가능하면 그쪽과는 멀어지는 것이 좋아.’
“……알겠습니다.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그쪽으로는 눈 돌리지 않겠습니다.”
“이것 하나만 명심하게. 남을 찌르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야. 그러면 그 칼이 자네를 향할 것이네.”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아버님에게 인사는 언제 드릴 생각인가?”
“바로 드려야지요. 저도 이제 슬슬 서울로 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미자 씨와 결혼하면 바로 올라갈 것입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뭐를 할 생각인가?”
“저도 결혼하면 안정된 일을 해야지요. 따르는 동생들을 데리고 동대문에서 장사를 할 생각입니다.”
이정재는 예전에도 동대문에서 장사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곳으로 가서 시장을 장악했다.
“동대문 시장 상인회의 회장이 되면 딱 좋겠군.”
“제가 그럴 깜냥이 되겠습니까?”
그는 정말 상인회 회장이 되어 시장을 잘 이끌어 갔다.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불렀다.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다만 적당히 하게. 자네도 공부했으니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알지?”
“네, 압니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추락하는 법일세.”
태양은 지나친 욕망을 상징했다. 더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미자를 불행하게 하지 말게.”
“……네, 형님.”
미자가 결혼해서 잘살기를 바랐다. 이정재도 그 마음을 느낀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생각이 많아졌다.
“오늘 바로 아버지에게 가세.”
“감사합니다.”
이정재와 이미자의 결혼식은 부산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 결혼식의 신부 측 부모는 두 분씩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부와 대모로 참석했다. 부모님이 미자의 뒷배가 되자 많은 하객이 참석했다.
‘정승 집…… 뭐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들은 미래 그룹의 직원들과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결혼식에 많은 사람이 참석하자 신부와 신랑의 어깨가 올라갔다. 그들은 그것에 감사했다.
‘그래. 저들이 잘살면 나에게도 좋은 거야.’
이해득실을 떠나 주변 사람이 잘되는 것이 좋았다.
* * *
결혼식이 끝나자 부모님이 나를 찾았다.
“강철아, 다른 사람의 뚜쟁이만 하지 말고 가족을 챙겨.”
“아니, 어머니. 아들보고 뚜쟁이라니요. 큐피드의 화살이나 사랑의 주선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네 누나를 두고 엉뚱한데 힘을 쓰니 하는 말이잖아.”
부산 집에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온 누나가 있었다. 어머니가 답답해하실 만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제가 사랑의 주선자로서 누나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아줄게요.”
“그래, 아들. 너만 믿어.”
이번에 제대로 뚜쟁이가 되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나 대신에 누나를 재벌 집으로 시집 보내야지.’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기도 했다. 다른 재벌가와 미래 그룹이 결합하는 것도 괜찮았다.
나는 재벌 집 처자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누나를 재벌 집으로 시집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 누나의 결혼 상대로 이왕이면 비슷한 급이 좋겠지요.”
“그러면 좋은데…… 이미 한번 결혼한 처지라 그것이 가능하겠냐?”
전쟁으로 과부가 된 여인이 많았다. 좋은 집으로 시집가기는 쉽지 않았다.
“저에게 맡겨 주시면 해 보겠습니다.”
“너라면 믿고 맡길 수가 있지. 그래, 누나를 위해 네가 최선을 다해 보아라.”
누나를 대한민국 재벌 집안 중 한 곳에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다.
“어느 집안에 시집 보낼 생각인 거냐?”
“저번에 회사로 와서 운임을 한화로 받아 달라고 생떼를 쓴 그 그룹 있잖아요.”
“아, 거기. 그런데…… 그 집안에서 네 누나와 결혼하려고 하겠냐?”
“제가 성사시켜 보겠습니다.”
뚜쟁이로서 성사시킬 자신이 있었다.
* * *
직접 그 회장을 만나러 회사로 찾아갔다. 그곳도 시대의 흐름을 타고 번성하고 있었다.
사업도 커지고 일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이 시기에 흐름을 잘 탄 사람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전쟁이 많은 사람에게 불행이지만, 일부에게는 떼돈을 벌 기회였다. 전쟁 통에 부자가 된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미래 그룹의 부회장 이강철입니다.”
“아! 바로 회장님에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얼마 후 제일 그룹의 회장실로 안내되었다.
“공사다망한 미래 그룹의 부회장이 이곳에 무슨 일인가?”
‘살짝 비꼬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직도 그 일로 꽁해 있구나.’
“제가 공사다망하기는 하죠.”
“아직도 새어나가는 내 피와 같은 돈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네.”
저번에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운임을 외화로 달라고 했다. 그것에 아직 앙금이 남아 있었다.
“제가 회장님의 쓰린 속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자네가 쓰린 속을 어떻게 편하게 해 줄 건가?”
‘솔깃한 모양이군.’
“운임을 저희가 원화로 받으면 어떠시겠습니까?”
“공짜는 아니겠지. 그래 조건이 뭔가?”
‘눈치는 빨라.’
“서로 사돈이 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왜?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뀌었나?”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게 무슨 말인가?”
“저에게는 누나가 있습니다.”
“자네 누나는 한번 결혼하지 않았나.”
‘역시 정보가 빨라. 호구 조사를 다 했구나.’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아니, 그래도 좀 그렇지.”
‘이때는 강하게 나가야지.’
“결혼은 집안끼리의 결합입니다. 두 그룹이 서로 협력하자는 말 아닙니까? 그런 것으로 거절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와 사돈 하기 싫으십니까?”
강하게 나가자 그가 당황했다. 두 그룹은 사업으로 서로 묶인 것이 많았다.
“아니, 그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서로 협력하시죠. 미래 해운은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계속 비싼 외화로 운임을 치르실 생각이십니까?”
‘이 정도 조건이면…… 나쁘지 않지.’
그런데 단번에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첫째는 이미 혼처가 정해져 있네. 둘째는 아직 어리네.”
‘둘째가 그렇게 어리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과부는 싫다는 말이군.’
더 강하게 나갔다.
“그럼 셋째가 딱 좋겠네요.”
“야, 이 사람아. 그 애는 나이가 더 어리네.”
“예전에는 꼬마 신랑이라고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번 결혼한 여자와 애를 결혼시키다니.”
‘드디어 본심이 나왔군. 이제 본격적으로 제안을 해 볼까?’
“두 집안이 혼사를 맺으면 얻는 이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두 그룹은 협력하기에 서로 매력적인 사업 구조를 가졌다. 제일 그룹은 삼백 산업에 뛰어들었다. 수입 위주의 회사였다.
미래 그룹은 수출 위주의 회사였다. 이쪽은 외화를 벌어오고 저쪽은 썼다.
수출 위주의 미래 그룹은 제일 그룹에 매력적인 파트너였다. 해운에 수산, 식품, 시멘트까지 나중에 그에게 도움이 될 사업이 많았다. 반대로 서로 겹치는 분야는 많이 없었다.
두 집안이 맺어진다는 것은 상당히 솔깃한 제안이었다. 당장 그에게 피와 같은 외화를 운임으로 지급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멘트는 나중에 건설업을 할 때 도움이 될 것이었다. 수산과 식품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밀가루와 설탕을 쓰면 쓰지, 수입해 오지 않았다. 그런 물품의 구매처에 가까웠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아들과 자네의 누나는 그렇지. 자네가 내 딸과 결혼하는 것은 어떤가?”
‘또 그 소리네. 생각이 없다니까. 그럼 이건 어때?’
“딸도 자식입니다. 저에게 그룹을 물려주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그쪽에 들어가면 잡아먹겠다는 말이었다.
“……음. 그것은 좀 생각해 봐야겠네.”
그는 자신의 큰아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정말 제일이 미래 그룹에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그런데…… 딸도 자식이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집에 저와 누나밖에 없습니다.”
‘이제 구미가 당기죠? 덥석 물으세요.’
“……음.”
“귀여워하는 자식에 어울리는 혼처가 아니겠습니까?”
미래 그룹을 그에게 미끼로 내밀었다.
“한번 생각해 보겠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들렸다. 미래 그룹은 탐스러운 먹이였다. 아끼는 아들에게 주기 적당한…….
‘딸도 자식이지. 다만 회사의 주식은 대부분 내가 가지고 있어.’
그의 아들이 누나와 결혼한다고 해도 가져가는 부분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두 집안이 결합하면 나쁘지 않았다.
‘누나를 재벌가에 결혼시키면, 나는 해방이다.’
꼬마 신랑도 손해 보는 부분은 없었다. 누나는 미인이었다. 거기에 아직 20대 초반이었다.
‘성숙한 여인이 오히려 매력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