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50)
현대화 사업
[어지간한 바보도 슈퍼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커다란 엔진을 집어넣고, 외관에 카본파이버를 덕지덕지 붙인 다음, 바보 같은 이름을 달아서 백만 파운드에 팔면 됩니다. 실내 공간이나 승차감이 좋으냐 에어컨이 잘 작동하느냐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매일 타고 다닐 운전할 맛 나는 차를 만드는 일은 다층 건물에 쉽게 주차되는 전투기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겁니다.―출처. 제레미 클락슨, 포르자 모터스포츠 5]“스포츠카를 사는 사람은 운전의 편리함이나 안락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재미로 사는 것이지.”
안락한 차를 살 것이면 고급 세단이나 리무진을 사면 된다. 그게 더 좋고 싸게 먹힌다. 재미로 타고 다니는 스포츠카는 시끄럽고 불편하면 오히려 운전할 맛이 난다고 더 좋아한다. 스포츠카는 일상에서 타고 다니는 차가 아니었다.
“스포츠카는 무엇보다 멋이 중요하지.”
스포츠카를 사는 사람은 재미와 함께 멋으로 산다. 디자인이 중요한 차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차량의 실내 공간을 희생해도 좋았다. 스포츠카 대부분이 2도어에 트렁크 공간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확실히 멋지긴 멋집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도 안 되는 고가로 가격을 책정하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사겠습니까?”
“명품은 왜 명품인지 알아?”
“잘 만들어서가 아닙니까?”
“그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쉽게 가지지 못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야.”
명품은 비싸면 비살수록 잘 팔리는 경향이 있었다. 명품의 포인트는 차별화였다. 성공한 사람 중 일부는 언제나 그것을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것을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설명해 주기는 어려웠다.
명품을 걸치고 멋진 스포츠카를 타면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금방 알 수 있었다.
칭찬과 찬탄, 부러움은 속물적인 감정이지만, 누구나 사회적인 동물로서 원하는 것이다.
다만 시발 자동차가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다. 명품은 기본적으로 품질이 좋아했다. 자동차는 쉽게 사는 물건이 아니었다. 써 보고 성능을 판단하게 하기를 어려웠다.
그런 물건이기에 성능을 쉽게 알 수 있는 행사를 개최했다. 그것은 스포츠카 경기였다.
“이것을 기반으로 포뮬러 1과 르망 24시에 참가할 경기용 차를 만들도록 하세요.”
“네, 부회장님. 멋진 놈들로 만들겠습니다.”
시발 자동차의 스포츠카 분야를 맡은 김삼만 연구원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내년에 그 두 경기에서 멋진 성과를 올리기를 바라요.”
시발 자동차의 스포츠카 분야를 살펴보았다.
“다른 곳도 보러 가죠.”
이곳에는 또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름 큰 사업이었다.
* * *
1965년이 시작하면서 바뀐 것이 있었다. 1964년 말 한일 기본 조약이 발표되었다. 1965년에 첫해 청구금 4천만 달러가 들어왔다.
정부는 그 돈으로 가장 먼저 농촌 현대화 사업에 들어갔다. 국민의 지지율을 올리는데 이것만 한 사업이 없었다.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자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후배님을 만나자고 했네.―
―아, 농촌 현대화 사업 말이군요.―
―그래. 새마을 운동 말이네.―
―선배님, 가능하면 호칭은 농촌 현대화 사업으로 하시죠.―
―왜? 새마을이라는 호칭에 뭔가 문제가 있나?―
―구호에 공산주의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북한 인민의 희생을 강조하는 천리마 운동하고 비슷하잖아요.―
두 사업은 은근히 비슷했다. 양극단은 서로 닮는다.
‘생각하는 것이 다 그렇지.’
―음……. 생각해보니 그렇군.―
―대통령님에게 이름에서 공산주의 느낌이 난다고 하면 마음을 바꿀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는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일제의 앞잡이, 공산주의자, 반공주의자 어느 것이든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반공주의자였다. 공산주의자 느낌이 난다고 하면 바로 이름을 바꿀 것이다.
―이제 일방적으로 국민의 희생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기계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인력으로 하려 하십니까?―
삽질은 그만해야 했다. 북한 노동자가 수천 명이 매달려야 할 수 있는 일을 대한민국은 수십 명이 기계로 다 해냈다.
불필요한 인력 동원은 피하는 것이 나았다. 그럴 시간에 다른 일 하고 휴식과 오락을 즐기는 것이 국가 경제에 더 이득이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는가? 중장비가 부족해서 그렇지.―
지금 한국에 농촌 현대화 사업을 하기 위한 충분한 중장비가 없었다.
―미래 그룹이 중장비를 공급하겠습니다. 그 일을 맡겨 주십시오.―
미래 자동차와 기계, 조선에서 다양한 중장비를 만들었다. 미래 그룹은 많은 중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생산 능력도 충분했다.
―누가 그것을 모르나. 돈이 문제지. 미래 그룹 말고는 그럴 여유가 안 돼.―
농촌 현대화 사업은 많은 소규모 건설회사들이 참여하는 사업이었다. 그들은 자본이 많지 않았다.
―저희가 저렴하게 중장비를 빌려 드리겠습니다. 구매를 원하는 회사에는 할부로 팔겠습니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군. 이 일을 잘 부탁하네.―
아파트와 자동차뿐만 아니라, 중장비도 할부로 팔기로 했다. 할부 금융&보험은 막대한 자본을 보유했다. 그 정도는 감당할 여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중장비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다.
‘미래 그룹 안에 캐터필러와 고마쓰, 테렉스를 능가하는 회사를 만들겠어.’
캐터필러는 세계 최대의 건설·광산 장비, 가스 엔진, 공업용 가스터빈 생산 업체였다. 일본의 고마쓰도 만만하지 않았다. 중장비 산업도 규모가 크고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베트남 전쟁과 중동 특수는 중장비 산업 도약의 기회야. 그걸 놓칠 수는 없지.’
임대와 할부를 통해 국내 중장비 시장을 먼저 키우기로 했다.
중장비 임대와 할부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 국내에 예정된 건설 사업이 농촌 현대화 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로와 고속도로, 철도 등 많은 사업이 있었다. 베트남전의 확전으로 해외 건설 사업도 늘었다.
여유가 안 되는 회사는 임대를, 자금에 여유가 되면 할부라도 사려고 했다.
재고를 모두 처분하고도 공장이 바쁘게 돌아갔다.
―앞으로 중장비 수요는 계속 늘 거예요. 생산 능력을 향상하세요.―
베트남에서 시작된 건설 붐은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절정이 된다.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건설은 세계에서 활발히 사업을 벌였다. 베트남전에 사용된 중장비가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다시 중동에, 세계 곳곳의 건설 현장에 사용된다.
‘그 시장을 남에게 줄 필요가 없어. 대한민국의 건설업체는 앞으로 미래 그룹의 중장비를 사용하게 될 거야.’
그렇게 1965년 초부터 본격적인 농촌 현대화 사업이 들어갔다.
* * *
시발 자동차는 스포츠카 사업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업이 있었다. 그것은 농기계였다. 농기계 사업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중장비 회사이기도 한 존디어(미국)와 CNH(유럽), 쿠보타(일본)의 매출은 연간 수백억 달러였다. 그 시장도 놓칠 수 없었다.
‘농기계를 한국에 널리 보급하는 데 농지 정리 사업만 한 것이 없어.’
농촌 현대화의 핵심 중의 하나는 농지 정리 사업이었다. 농기계를 사용하기 힘든 논과 밭을 평평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을 나누는 일이었다.
동시에 농기계가 들어갈 수 있게 농촌의 진입로와 논두렁길을 정비하는 일이기도 했다.
“트랙터와 콤바인, 이양기의 개발은 완료되었습니다. 양산을 위한 준비도 마쳤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한국형 농기계 양산 작업이 끝나면, 미국에 통용될 수 있는 농기계도 만드세요.”
한국형 농기계는 아시아권에서만 통용될 수 있었다. 벼농사 문화는 서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형으로 만든 벼농사 위주의 소형 농기계는 아시아 지역 전체에 팔 수 있었다. 기존의 미래 그룹의 판매망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농기계 시장을 장악해 나갈 것이다.
그래도 농기계의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규모의 기계화 농법이 일찍이 발달했다. 소형 농기계가 주력인 아시아와는 달랐다.
옥수수와 콩, 밀 농사의 규모가 엄청났다. 그에 맞추어 중장비와 같은 거대한 농기계를 사용했다. 대형 농기계는 호주와 캐나다 남미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시장이었다.
시발 자동차를 소형 농기구에서 대형 농기구까지 제작하는 농기계 업체로 만들 생각이었다.
‘스포츠카와 농기계를 동시에 만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람보르기니도 스포츠카 사업부와 트랙터 사업부가 별로로 있었다. 미래 자동차 그룹 산하에 시발 자동차가 있고 그 안에 스포츠카 사업부와 농기계 사업부를 둘 생각이었다.
‘연구 개발 시설은 통합하고 브랜드는 각기 다르게 가면 돼.’
한 회사의 밑에 수십 개의 브랜드가 존재하는 것은 미래에 흔한 일이었다. 자동차나 의류, 패션 산업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취향을 맞추어야 하는 산업들이었다. 둘 다 명품이라는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은근히 비슷한 점이 있었다.
* * *
“부회장님, 농업 현대화 사업이 은근히 돈 되는 사업 같습니다.”
이학수가 시발 자동차를 나오면서 감탄했다. 농업 현대화 사업이 중장비와 농기계와 연관된다는 것에 감명받은 듯했다.
“농업 현대화 사업은 다른 이득도 많아.”
“또 다른 이점이 있다는 것입니까?”
“미래 화학에서 만드는 제초제와 농약을 대량으로 소비하게 되지.”
제초제와 농약은 기계화 농법에 필수였다.
‘기계가 잡초와 해충을 제거(救濟)해 주지 못하지.’
기계화 농법을 한다는 것은 제초제와 농약을 쓴다는 말고 같았다. 론풀랑크사는 농화학 분야에 유명한 회사였다. 그 미래 화학은 회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았다.
‘제초제가 고엽제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야. 농업 분야가 더 커.’
농업 현대화 사업은 중장비와 농기계뿐만 아니라, 화학 산업에도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산업화를 위해서는 기계화 농업은 필수야.”
산업화를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노동력 확보는 필수였다. 농업 현대화 사업으로 농사를 짓는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 노동력은 도시로 와서 산업 노동자가 된다.
‘그렇게 나온 노동자들이 미래 그룹과 함께 세계로 뻗어 나가는 거야.’
부지런한 한국인은 국내와 베트남, 중동, 유럽, 미주를 거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 * *
부르릉, 부릉!
한국의 농업은 체계적인 기계화를 거쳤다.
그 결과, 농번기라고 수십 명이 달라붙어 모내기를 하는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미래 자동차의 트랙터 한 대면 온 마을의 논에 일주일이면 모를 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리를 숙여 가며 고생스럽게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장년층 인구들만으로도 충분히 농사가 가능했다.
“아버지, 그럼 저는 상사 쪽 일을 해 보겠습니다.”
“그래, 가업은 둘째가 잇는다고 하니,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거라.”
이전 같았으면 작은 땅 하나에 아버지부터 그와 동생까지 달라붙어 일하고, 겨우겨우 겨울을 나고 봄에는 굶주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미래 그룹의 도움을 통해 거의 한 마을에 한 대의 트랙터가 준비될 수 있었고, 기존 쌀농사에 더해 농민들이 특용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남는 인력이 생겨, 그들은 도시로 나가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열심히 준비한 끝에 미래 상사의 공채에 합격할 수 있었고, 몇 년간의 근무를 통해 성실함을 인정받아 유럽 지사에 파견되었다.
유럽은 일생을 한국의 작은 농촌에서 지냈던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평생 농사나 짓고 살 줄 알았던 내가, 비행기를 타고 런던까지 오다니…… 세상은 정말 모를 일이군.’
쌀 대신 빵과 피쉬 앤 칩스를 먹고, 조선의 기왓장과는 다른 벽돌 건물들을 보며 그는 매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차이에 절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비행기를 타고 먼 런던까지 올 수 있었다. 미래의 성장 속도는 말도 안 돼. 그런 미래가 있는 만큼, 대한민국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어.’
그는 미래 유럽 지사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고, 미래 전자의 가전제품들과 미래 식품의 레토르트 제품 계약을 수없이 맺었다.
소더비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 낙찰받아 채움 미술관으로 보내는 일은 덤이었다.
그리고 이런 한국인은 L.A에도, 베트남에도, 아랍에미리트에도, 브루나이에도 가득했다.
이번 회차의 한국인은 진작 세계 곳곳으로 퍼져서 활약하고 있었고, 그것은 미래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