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56)
광부와 간호사
본격적으로 LPG 공급이 시작되자, 대한민국의 가정집은 큰 격변을 겪었다.
어느 집에서나 간단하게 가스 밸브를 열어 불을 지피고, 그 불로 요리를 하고 몸을 씻을 수 있었다.
미래 그룹에서 한 많은 일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이롭게 했지만, LPG 공급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일이었다.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에구머니나, 이게 뭐라니. 내가 살면서 불씨를 안 지펴도 되는 세상을 보게 될 줄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건 어떻구요, 어머니.”
“그러게 말이다. 우리 며늘아기, 이제 더는 손 안 부르틀 테니 참 다행이다. 시집와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내가 정말 미안했는데…….”
“아유, 아니에요, 어머니. 아들 잘 낳아 주신 덕분에, 이렇게 깨끗한 집에서 살고, 가스레인지랑 가스보일러도 써 보잖아요.”
“우리 며느리는 말도 참 예쁘게 하지. 그래도 참, 미래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운이 좋은 거야.”
“그럼요, 어머니. 덕분에 얼마나 살기가 좋아졌게요.”
“그럼, 그럼. 예전엔 상인이라고 하면 천것들이라고 했는데, 미래는 세상을 바꾸고 있으니 참 신기해.”
미래는 전회차처럼 자신들의 배만 불리던 기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래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이번 유럽 방문에 이학수와 함께 상사와 전자, 자동차, 화학의 사장과 임원진들이 동반했다. 동시에 이번에 유럽으로 파견 나가는 직원들도 함께했다.
그들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미래 항공의 전세기를 띄웠다.
미래 그룹은 미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북해 유전 개발과 르망 자동차 경주 참여, 훽스트사로부터 석탄 사업부 인수, 영국에 S.P.A 매장 진출 등 유럽에서 할 일이 많았다.
‘시간이 되면 프랑스의 중요한 바이어도 만나봐야지.’
그렇게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계획을 점검하는데…… 옆에 앉은 이학수가 말을 걸었다.
“부회장님, 유럽을 미래 그룹의 전세기로 갈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뭐, 완전한 전세기도 아닌데……. 그래도 좋아하니, 기쁘군.”
이번에 독일로 가는 전세기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도 타고 있었다. 빈자리를 그들로 채웠다. 비용도 줄이고 먼 타향으로 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였다.
“그들도 일본을 거쳐 가지 않고, 비용도 더 저렴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학수가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일본을 거치지 않는 것만 해도 유럽까지 가는 비행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장거리 비행에서 이것은 컸다. 비행기 푯값도 40% 이상 저렴했다.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을 나가는 이들에게 큰 금액이었다.
‘그들의 월급이 한 달에 3백 불도 안 되는데…… 비행깃값을 싸게 해 줘야지.’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적기로 간다는 것에 자랑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먼 외국으로 일하러 가는 이들에게 국적기란 특별했다. 승무원들과 말도 통하고 고향의 느낌이 났다. 그들에게 머나먼 독일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먼 길을 가야 하는 그들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빨리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항공편을 만들어야겠어.’
* * *
“저 분이 미래 그룹 부회장님이시라고?”
“그렇대요! 우리, 가서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요?”
“것도 그렇지만, 우리가 가서 싫으시면 우짠대유.”
“으음, 대표로 광부랑 간호사 한 명씩 가서 인사드리세.”
함께 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쪽에서 뭔가 이야기 소리가 들리더니, 광부와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명씩 내 쪽으로 다가왔다.
“부회장님, 저희 같은 것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회장님 덕분에 너무 편하게 가고 있어요!”
“아니, 이러실 것 없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좋은 마음을 품는 것은 의도한 바였지만, 그렇게 대단한 호의는 아니었다.
과한 인사를 받는 것 같아 그들을 만류하고 응원했다.
“여러분이야말로, 정든 고향을 떠나 가족과 국가를 위해 큰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가셔서도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바라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대사관이나 미래 유럽 지사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그런 나의 모습을 미래 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품격 있고 소탈하면서도 자상하신 부회장님’에 대한 일화에 한 줄이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프랑크푸르트에서 오랜만에 훽스트사를 방문했다. 기술 협력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의 사업 중 하나를 인수하기 위함이었다.
“귀사의 석탄 사업부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음…… 적자가 나는 사업인데……. 미래 그룹은 왜 석탄 사업부를 인수하려고 하시오? ”
그들이 의문을 품었다.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는 것이 나았다.
“저희가 최근에 대한민국에 제철소를 건설했습니다. 그곳에 석탄을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훽스트사에 코크스 제조와 석탄 화학과 관련된 기술 특허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었다. 추가로 코크스 제조 시설을 증설하거나 액화 석탄 기술까지 사용하게 되면 사용료가 급증할 것이다.
더 사업의 규모가 커지기 전에 훽스트의 석탄 화학 부문을 인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라면 우리로서는 그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소. 다만 사업부를 쪼개서 팔지 않을 것이오. 판다면 우리가 보유한 독일 탄광도 함께 인수하는 조건이오.”
훽스트사의 석탄 사업부가 적자인 것은 그들이 보유한 탄광 때문이었다. 광부들의 임금은 오르고 석유에 밀려 석탄의 가격은 하락하고 있었다. 게다가 광부라는 직업이 자국에서는 기피(忌避)하는 일이 되었다.
‘막장 인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야. 광부는 극한 직업 중 으뜸이지.’
임금을 올려 줘도 독일에서 쉽게 인력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탄광에 외국인 노동자(파독 광부)를 받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훽스트사의 적자 광산까지 저희가 맡죠. 그곳에 저희 나라 근로자들도 있으니까요. ”
“잘 생각했소. 탄광까지 인수한다면 싸게 넘기겠소.”
지금 석탄 사업부는 훽스트사의 골치였다. 큰 규모의 적자가 발생하는 광산을 폐쇄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했다.
석탄은 독일의 기간 사업이었다. 석탄 사업에 필요한 인원이 탄광의 광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석탄은 여러 산업에 연관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많은 인원을 고용했다. 석탄 산업은 동시에 에너지 자립에도 중요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은 몇 년 후에 변하게 된다. 석탄 채굴량이 줄고 사양 산업이 되면 독일 정부가 나서서 석탄 산업 구조 조정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대규모 적자는 오래가지 않을 거야. 몇 년만 기다리면 돼.’
독일 탈석탄 구조 조정은 1968년부터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석탄회사의 주주와 노동자 등 주요 이해 관계자들의 합의를 원칙으로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과 노동 조합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조 조정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퇴직자 문제와 피해 지역 경제 진흥)을 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돈으로 적자를 메꾸게 되었었다.
그러니 3년만 적자를 감수하면 훽스트의 석탄 사업부를 싼값에 통째로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특허의 가치를 몰라. 단지 지금의 적자에만 신경 쓰고 있지.’
“매입 가격은 얼마를 생각하고 있소?”
“글쎄요, 1마르크 정도면 어떠실까요?”
“뭐라! 지금 장난하시오? 없던 일로 합시다. 아무리 우리가 협력 관계라지만, 이런 식의 장난질은 곤란하오.”
“하하,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가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 보라는.”
“뭐요? 그래, 더 할 제안이 남았소?”
“물론이지요, 석탄 사업부를 사는 데에는 1마르크면 충분합니다. 왜냐면, 석탄 사업부의 부채도 당연히 저희가 인수할 것이니까요.”
“허, 정말이오? 후회하지 않으시겠소?”
“물론이지요. 훽스트사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저희가 얼마간의 적자는 감당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좋소! 골칫덩어리를 통째로 치워 준다는데, 1마르크면 차고 넘치지. 그 가격에 판매하겠소.”
* * *
훽스트사의 석탄 사업부의 누적 적자가 1억 마르크를 넘겼다. 달러로 치면 3천만 달러 정도였다. 더 문제는 이러한 적자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3년간 적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총 누적 적자가 5천만 달러 미만이야. 훽스트의 석탄 사업부를 먹는 것치고는 저렴한 가격인 거지.’
석탄 사업부가 가진 지적 재산만 해도 5천만 달러의 가치가 넘었다. 코닥은 카메라 사업을 접은 후에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로 1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원천 특허는 매우 중요했다.
미래 그룹이 훽스트 사의 석탄 사업부를 인수하면 특허 분쟁 없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훽스트사의 석탄 사업부를 단돈 1마르크에 인수했다.
“이것으로 파독 광부를 더 늘릴 수가 있겠어.”
“기존의 독일인 노조원들이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독일은 복수 노조가 가능해.”
“그 말씀은?”
“파독 광부들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
“하지만…… 독일인 광부들은 반발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독일의 노동법은 맹점(盲點)이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이학수에게 독일의 복수 노조의 문제를 설명했다. 그것은 단체 협약의 경합과 병존의 문제였다.
독일에서는 하나의 사업장 내의 근로자들에 대하여 복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각 노조는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의 근로 관계에 대해서는 하나의 단체 협약만 적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단일 협약 원칙’이 판례에 의해 확립되어 있었다. 그 결과로…….
“파독 광부가 만든 노조도 정식 노조로 인정받는다는 것이지. 그 노조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단체 협약을 할 수 있어.”
“그렇게 하면 독일인 광부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그 문제로 정부에서 나설 수도 있습니다.”
이학수의 말대로 이 일은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독일 탄광 노조는 강성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을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야. 미래 그룹에 대한 원활한 협조야.”
“아!”
“파독 광부를 더 받는 조건으로 다른 부분은 양보할 것이니까, 상관없어.”
파독 광부가 늘어나면 인건비 감소로 탄광의 적자가 다소 줄어든다. 그것보다 더 큰 이득은 독일 파견 광부 노조의 발언권이었다.
노조는 조합원이 많을수록 발언권이 더 강해졌다. 미래 그룹이 광산을 운영하기 더 쉬워졌다.
‘3년 후에는 파독 광부를 서서히 철수하면 돼. 어차피 그때는 독일 정부에서 적자를 부담할 테니.’
석탄 산업 구조 조정이 일어나면 파독 광부는 철수하는 것이 좋았다. 독일 정부도 외국인에 보조금(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빠져나오는 파독 광부는 쓸 곳은 많아.’
그때는 미래 상사가 본격적으로 자원 개발에 나설 시기였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호주에 대규모 석탄 광산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자, 학수. 이제 파독 광부들을 보러 가 볼까?”
“네, 부회장님. 그런데 어떤 일로 가시려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 줄 사람들인데, 여기까지 와서 얼굴도 안 보고 갈 수는 없잖아? 그리고…… 약간 염려되는 부분도 있고 말이야.”
“네? 염려되는 부분이라니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하하, 일단 가서 보자고.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으니까.”
훽스트 사의 석탄 사업부를 인수한 후 파독 광부가 일하는 광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