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6)
미래 주택
1953년 중순이 되자 휴전 협정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휴전선이 될 전선에서만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페이크야. 정부와 국군만 난리지. 미군은 전쟁에서 몸을 빼는 분위기야.’
전반적으로 전쟁 분위기가 옅어졌다. 후방에 해당하는 부산은 더했다.
얼마 전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가 한국전쟁의 종식이었다. 미군들은 이제 돌아가기만 바랐다. 이미 그들은 남의 나라 전쟁에서 3년을 보냈다.
최근 들어 앤더슨과 나누는 대화가 순전히 고향 이야기였다.
“콜로라도는 너무 지겨워.”
“덴버도 도시가 크지 않아요?”
“조그마해.”
“그곳은 자연 경관이 유명하잖아요.”
“매일 자연만 바라봐 봐, 그게 재미있는지. 전쟁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어디로 가려고요?”
“고민 중이야. 화려한 뉴욕이냐, 아니면 살기 좋은 샌프란시스코나 마이애미도 괜찮고.”
‘이건 사망 플래그잖아.’
“다 괜찮은 곳이죠.”
“어라? 아이언이 그걸 어떻게 알아?”
‘아차…….’
“잡지에서 봤어요. 잡지.”
“맨날 야한 잡지만 보던데…….”
“야한 잡지의 배경에 나와 있어요.”
“그런가?”
“그런 것 있잖아요? 황야에서 예쁜 여자가 벗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는 거요.”
“야, 아이언. 그런 잡지가 있으면 나도 보여 줬어야지.”
‘아차…….’
그런 사진이 있는 플레이보이지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 올해 10월에 나왔다.
앤더슨 중령은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벌써 기다렸다. 미군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전쟁이 끝났다.
“여기에서 오래 있었어. 이제는 돌아갈 때도 되었지.”
“그래도 아쉽지 않아요? 돈을 잘 벌었잖아요.”
“아이언, 사람은 돈을 벌기만 하면 안 돼. 쓸 줄도 알아야 해.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해……. 죽으면 그만인데.”
그의 말이 맞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소용이 없었다.
‘은근히 그 말이 설득력이 있는데…… 하지만 나는 경우가 틀리지. 이 게임의 Mission을 끝내야 하는데 말이야.’
앤더슨의 충고를 고려하기로 했다. 게임을 끝을 보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은 즐기기 위해서다. Mission의 완수와 게임을 즐기는 것을 동시에 하기로 했다.
* * *
“앤더슨 중령님, 미군이 한국을 떠나게 되면 공병대의 중장비들은 어떻게 되나요?”
“나는 그쪽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는데. 공병대에서 알아서 처리하지 않을까?”
“소문으로는 미 8군에 배속되지 않는 것은 민간에 매각할지도 모른다고 하던데요.”
미군이 떠나기 전에 먹을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런 건 먹어 줘야 해.’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죠. 그거를 팔면 큰돈이 될 거예요. 중간에 먹는 수수료도 상당할걸요.”
앤더슨의 욕심을 자극했다.
“그래? 음…… 괜찮겠는데. 한번 알아볼까?”
“네, 알아본다고 손해 볼 것은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크게 당기고 가야지요.”
“그런데…… 쉽지 않을 거야. 그건 노리는 사람이 많아.”
미래 그룹도 노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미군의 중장비를 싸게 살 기회였다. 문제는 그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냥 두고 보기는 아까웠다. 앤더슨 중령에게 잔뜩 바람을 넣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가 없죠. 그래도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된다면 얼마나 줄래?”
“수수료로 30%를 드릴게요.”
“좋아. 그런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우리가 하던 것과는 규모가 틀려. 높은 사람도 연관될 거야.”
‘아, 욕심은……. 그래, 더 줄게.’
“그럼 40% 드릴게요. 높은 분하고 20%씩 하세요.”
“알았어. 알아는 볼게.”
그가 그냥 알아는 본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이 건은 덩치가 컸다. 기존에 먹던 것하고 단위가 틀렸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따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더욱 노력하도록 수수료를 여유 있게 주기로 했다.
‘그래도 남는 장사야.’
미군이 사용하던 중장비를 신형으로 사려면 많은 돈이 들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중장비를 쓸 일은 많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전후 복구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었다.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해도 좋고. 건설 업체에 중장비를 빌려주기만 해도 남는 장사야.’
매입 가격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미군이 물건을 알뜰히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한국에 버리는 가격으로 주고 갈 것이었다.
* * *
이런 분위기에 미군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흔들렸다.
“강철아, 우리도 이제 올라가야 하지 않냐?”
“네, 곧 휴전 협정이 조인되면 올라가야죠.”
“언제쯤 될 것 같으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방한하고 시간이 좀 흘렀으니, 곧 이루어지지 않겠어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은 미군과 한국민들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휴전을 종용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전쟁을 그만두기를 원했다. 오랜 전쟁으로 미국의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계속 휴전을 권유하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미국이 은근히 체력이 약해. 베트남에서도 오래 못 버텼지.’
미군은 지루한 소모전에 약했다.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면 바로 올라갈 거냐?”
“아직 군인 신분이라…… 상황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구나. 그게 마무리가 되어야지.”
아버지가 깜박할 정도로 편하게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 8군이 용산에 올라갈 때쯤이면 전역할 생각이었다.
‘용산으로 올라가면 손을 써서 전역해야겠어.’
그때쯤이면 미군의 단물을 다 빼먹었다. 더는 군대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도 지루한 소모전에 약해. 단숨에 해치워야지.’
최고의 재벌이 되기 위해서는 빨리, 빨리 성장해야 했다. 그것은 한국인의 특징이었다.
‘잠시 쉬었으니, 다시 달려야지.’
* * *
그사이에 부산에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한창 피난민이 북적거릴 때 비하면 썰렁해 보일 정도였다.
아직 피난민들이 남아 있지만, 거리에 활기가 부쩍 줄었다.
그런 영향으로 미래 식품과 부산에 있는 가게들의 수익이 줄었다. 다행히 서울로 이전한 금은방과 환전소가 그 빈자리를 메꾸어 주었다. 수산물로 벌어들이는 외화와 가발 원모의 수출 대금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든 삼척 시멘트 공장과 원양 어선의 대금은 가능할 것 같네. 다행이야.’
“이창동 사장님, 수고했습니다.”
그를 치하해 주었다. 미국 가발 업체를 찾아서 머리카락을 수출하고 산업 연수원들도 송출했다. 미래 상사가 상사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그런데 상사원들이 가발 업체에 잘 스며들어 갔습니까?”
“네, 산업 연수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상사원은 만능이어야 했다. 필요하면 첩보원처럼 업체에 잠입하여 기술을 가져와야 했다. 현재 한국에 가발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없었다.
패션 가발은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인모인 머리카락을 탈색과 염색 과정을 통해서 미국인이 원하는 색상으로 만들어야 했다.
염색뿐만 아니라 미용 기술도 필요했다. 패션 가발은 모양을 미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잘라서 형태를 잡아 주어야 했다. 가발이 간단한 것 같아도 손이 많이 가는 기술이었다.
산업 연수원을 모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미래 상사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미국에 심고, 가발 관련 기술을 얻기 위해서였다.
“산업 연수가 끝나고 그들이 돌아오면 가발을 생산할 것입니다.”
“그에 맞추어 부지와 공장을 준비하겠습니다.”
이제 이창동 사장은 일을 잘했다. 스스로 해야 할 것을 알아서 찾았다. 자리와 경험이 사람(인재)을 만들고 있었다. 더는 룸펜이 아니었다.
‘사업을 하려면 돈과 인재가 중요하지.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것과 키우는 일 둘 다 필요해.’
이창동 사장을 보내고 새롭게 미래 주택 사장에 임명된 정몽고를 불렀다.
* * *
정몽고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덩치도 커서 이정재와 나란히 놓으면 누가 건달인지도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공사 바닥에 구른 경력도 오래되어 사람도 잘 다루었다.
“부회장님, 벽돌 공장이 완공되어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택도 지어야죠.”
“그런데 부회장님, 주택 사업은 계획대로 하는 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야. 서울에 사람이 넘칠 것인데.’
“지금 서울에 일이 없어 노는 사람이 천지일 것인데요.”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어디에서나 문제구나.’
“그래도 집을 지어 본 사람이 있지 않아요?”
“부회장님이 지시한 대로 많은 집을 지으려면 그 사람들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막노동을 할 사람은 많은데, 집 짓는 기술자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어떤 기술자가 부족합니까?”
“목수, 미장이, 벽돌공 등 기술자는 다 부족합니다.”
“그건 문제로군요.”
기능공이 좀 부족해도 집을 한두 채를 짓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내가 요구하는 것은 수백 채, 수천 채, 대규모로 집을 찍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기능공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방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능공을 적게 쓰고 일반 공사장 인부도 쉽게 지을 수 있는 주택을 고안해야 했다. 미래에 아는 기술 중 해결 방안을 찾아보았다.
‘그래, 그 방법이야. 유레카!’
“견본 주택, 즉 본보기 주택(모델 하우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보기 주택이 무엇입니까?”
“미리 완성된 모습을 보여 주는 집입니다.”
“그게 기능공 부족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주택의 규격화에 도움이 되지요.”
“집을 규격화시킨다는 말씀입니까??”
“주택의 크기에 맞추어 다양한 본보기 주택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과 기능공 부족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에게 쉽게 설명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예가 있었다.
“예를 들면 기성복 양복과 맞춤 양복을 비교하죠.”
“그런데 기성복이 뭐입니까?”
‘아차, 아직 기성복이 안 나왔지.’
“미리 만들어진 옷입니다. 양복은 손님의 체형에 맞추어 양복 장인이 맞추어주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미리 양복의 모양과 규격을 만들어 두면, 공장에서 장인이 아닌 이들도 양복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공장에서 양복을 만든다는 말씀입니까?”
그가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한국에 기성복 양복이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역시 미군에서 일하셔서 아는 게 많으십니다.”
‘그것과 별 상관은 없다고. 그래도 그렇게 착각해 주면 더 편하지.’
한국대나 미군이나 어려운 말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군대 하면 더 쉬운 예도 있었는데.’
“군복을 생각해 보세요.”
“아! 그렇군요. 군복.”
군복은 공장에서 몇 가지 크기로 찍어 낸다. 그것이 대표적인 규격화였다.
‘사람들이 자기 몸을 군복에 맞추지.’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도 줄여서 입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재봉하는 간단한 기술만 알고 있어도 군복을 만들 수 있어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틀이 만들어져 있으면 비숙련공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시대가 흐르면 아파트 건축이 그렇게 된다. 반복되는 단순한 작업이 늘어 숙련공이 아닌 단순 노동자들도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아파트도 지을 것이니.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지.’
“부회장님,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십니까? 역시 한국대 상학과 출신이십니다.”
‘이거, 우락부락한 사람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니 심히 부담스럽군.’
“정 사장, 좀 거리를 두지 않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아이디어가 혁신적이라…….”
‘뭐, 나중에는 다 하는 건데…….’
“본보기 주택은 다른 장점도 있어요.”
“또 다른 장점이 있습니까? 경청하겠습니다.”
“아…… 거리를 두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러면 말도 못 하겠네.”
경청한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 그를 뒤로 물렸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본보기 주택은 자신이 살집을 미리 보여 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곳을 멋지게 꾸며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그곳에 살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견본 주택의 주목적이 그것이었다.
“생각보다 똑똑하시네요.”
“부회장님보다는 못하지만, 저도 대학 나온 사람입니다.”
‘얼굴을 보면 믿지 못하겠지만…… 이력서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그도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장래에 미래 주택&건설이 대형 공사를 할 경우를 대비해서 뽑은 인재였다. 외모가 무식하게 보여도 무식하지는 않았다.
“슈퍼 진열대에서 물건을 고르듯 집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슈퍼가 뭡니까? 엄청나게 큰 것입니까?”
‘아! 이 시대에는 다르게 부르지.’
“Supermarket이라고 미국에 대규모로 물건을 파는 곳이 있어요.”
“역시 부회장님은 뭔가 저희하고는 다르십니다. 존경합니다.”
딸랑― 딸랑―
그는 외모와 다르게 아부도 잘했다.
“서울의 요지, 눈에 잘 띄는 곳에 본보기 주택을 지어 놓으세요. 이름은 미래 주택입니다.”
주택의 표준이 미래 주택이 될 것이었다. MSG가 미원이라고 불리듯, 미래 주택의 사명이 추가로 나올 아파트의 보통 명사가 되게 만들 생각이었다.
‘아파트라고 하면 미래 주택이 되는 거지. 그러면 아파트라는 이름이 사라지려나? 그 이름이 입에 착착 감기는데…….’
마음을 바꾸었다. 명품 아파트만 미래 주택으로 불리게 할 만들 것이다.
‘OOO 아파트처럼 브랜드화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