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82)
일리노이의 꿈
L.A에서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했다. 그곳은 콘 벨트 남부의 중요 도시였다. 인디애나폴리스의 북부에 미래 농수산의 대규모 농장들이 모여 있었다
미래 농수산은 콘 벨트 전역에 많은 농장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중심은 인디애나주였다.
한때 인디언들이 말달리던 넓은 평야에, 지금은 육중한 트랙터와 콤바인이 대지를 누비고 있었다.
공항에서 3시간을 달려 미래 농업 학교에 도착했다. 인디애나주 최대의 농장이었다.
“부회장님을 뵙습니다.”
“먼 타향에서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부회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농업 학교의 교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래 농업 학교는 농업 기술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정식 학교라기보다는 농부들이 농장으로 배치되기 전에 기계화 농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 부근의 미래 농장의 중심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몇 명이나 있나요?”
“이 부근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 3백 명과 교육생 백 명이 이곳에 있습니다.”
농업 학교에 무려 400명이 넘는 농부가 생활하고 있었다. 정말 웬만한 학교에 못지않았다.
4백 명은 농사와 교육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나머지는 이곳에서 다 해 주었다.
이곳의 기숙사는 호텔이나 리조트와 비슷했다. 식사와 청소, 세탁 등은 이곳의 지원들이 챙겨줬다. 근무하는 이들만 20명이 되었다. 효율적인 시설이었다.
“반경 50km 이내의 농장은 이곳에서 출퇴근하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더 먼 곳은 그곳의 숙소에서 생활합니다.”
반경 50km, 지름 1백 km의 넓은 땅에 미래 농수산의 농장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대부분 이곳에서 차로 달리면 30분 이내의 거리였다.
더 먼 거리는 그곳의 농장에서 상주했다. 그들은 1주일에 한 번 이곳에 들러 볼 일을 처리했다.
미래 농업 학교는 인디애나에 있는 농장들의 중심이었다.
“농사짓는 데 필요한 종자와 비료, 농약, 사료, 기계 부품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농업 학교에 갖추어져 있었다. 이곳은 일종의 군대 보급 기지와 같은 역할이었다. 농업 학교에서 쉽게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었다.
“이곳에 대형 사일로가 5백 기가 있습니다.”
이곳은 보급창이자 농산물을 수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주변 농장의 수확물이 이곳으로 모였다. 농산물 집산지로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보관했다. 시카고 선물 거래소를 통해 곡물이 사일로에 보관 중인 채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이곳에 옥수수와 밀, 콩과 같은 곡물 외에 가축용 사료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농업 학교에서 축산업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육되는 소가 수천 마리였다. 돼지, 닭은 그 숫자를 세기도 어려웠다. 이곳에는 사료공장도 있어 그들의 먹이도 직접 생산했다. 여분은 인근의 축산 농가에도 팔았다.
곡물이 바로 축산용 사료로 전환되었다. 생산과 소비가 한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농업경영이 고도로 효율화되었다.
“길러지는 가축은 도축되어 인근의 도시로 공급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가공되어 S.P.A 매장으로 보내집니다.”
S.P.A는 최근 저렴한 농산물과 육류, 육가공 식품으로 유명했다. 그것의 대부분은 이러한 농업 학교에서 공급받는 것이었다. 농업 학교를 중심으로 공급망이 완성되었다.
미래 농수산과 S.P.A는 직거래를 통해 중간 상인을 배제했다. 양쪽에 이익이 되는 방법이었다.
곡물과 사료뿐만 아니라 축산물과 가공품도 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카길의 시스템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이러한 농축산의 순환 시스템 중앙에 이곳 농업 학교가 있었다. 학교 그 자체가 하나의 중견 기업이었다. 그런 곳이 콘 벨트 지역 전체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 * *
“이곳에 없는 것이 없군요.”
농업 학교에는 농구장과 축구장, 야구장, PT 실 등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직원을 위한 복지 시설도 잘되어 있었다. 만족한 직원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도출해 낸다. 물론 기업에 비용 절감은 중요했다. 하지만 그러다 서서히 몰락하는 회사를 많이 보았다. 비용 절감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곳에만 6백 명 이상이 거주합니다. 주변의 농장을 포함하면 천 명이 넘을 것입니다.”
농업 학교가 하나의 소도시와 같은 역할을 했다.
“대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쇼핑몰과 농기계 정비소, 미용실, 식당, 영화관, 도서관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었다.
“직원들 모두 이곳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듣기 좋아하라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의 말대로 대부분은 만족할 것이다. 농업 학교의 학생과 농부들은 한국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업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농사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었다.
“1인당 경작 면적은 평균적으로 100헥타르가 넘습니다.”
한국도 기계화 농법이 보급되고 있지만,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이곳의 1인당 경작 면적은 축구장 크기의 백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반면에 한국의 1인당 평균 경작 면적은 4.4 헥타르였다. 규모에서 수십 배 차이가 났다.
그만큼 농업 학교 주변의 생산력이 높았다. 그것은 농업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농업의 강력한 점이 이것이야. 그 힘으로 언제나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지.’
저렴한 곡물로 세계 시장을 점령해 나갔다. 카길과 ADM(Archer Daniels Midlan)이 성장한 곳이 미국이었다. 미래 농수산은 그러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수익을 농부와 나누었다.
이곳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나, 수확물을 나누는 사람이나 모두 웬만한 근로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곳에 편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수입도 높으니 불만이 생기기가 어려웠다.
농업 학교의 위치가 외지다는 것이 단점인데, 근처의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면 S.P.A를 포함하여 웬만한 것은 다 있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미국 동북부의 대도시였다. 이러한 농업 학교가 인디애나주를 포함하여 수십 곳이 있었다. 미래 그룹은 농업 분야에도 차근차근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 * *
일리노이주 쿡스빌 부근에 미래 농수산의 농업 학교가 있었다. 그곳으로 한 사내가 수십 대의 탱크로리를 이끌고 찾아왔다. 그 탱크로리 안에는 옥수수와 밀, 콩이 가득 들어 있었다.
“철수 씨, 이번에도 많이 수확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곡물을 수납하고 거래하는 이 씨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최근 시카고 곡물 시세는 어떻습니까?”
이곳의 농부는 시카고 선물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곡물 시세에 따라 자신이 가져가는 수익이 달라졌다. 초미의 관심사였다.
“옥수수는 가격이 내리고 있고, 밀은 보합입니다. 대두는 조금 가격이 올랐네요.”
“음…… 애매하네요.”
“왜, 이번에 옥수수가 많습니까?”
“네. 그래도 대두도 많아 다행입니다.”
“그럼, 앞으로 대두를 많이 생산하시는 것이 낫겠네요.”
“그게 애매한 게…… 가격이 다소 내렸어도 옥수수의 수익이 나쁘지 않아서요.”
지금은 콘 벨트가 만들어지는 시점이었다. 많은 농장이 주요 작물을 밀에서 옥수수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옥수수 생산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었다.
“옥수수가 경작 기간이 짧고 수확량이 많다 보니까, 아직도 수익이 괜찮아요.”
옥수수의 생육 기간은 4~5개월에 불과했다. 다른 작물에 비해 짧았다. 옥수수를 기르면 다른 작물보다 1년에 한 번 더 수확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곡물은 1알의 씨앗에서 30~40개를 수확하는데 옥수수는 무려 3백 개였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타 작물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옥수수는 기계화 농법에 최적화된 작물이었다. 재배관리가 편했다. 씨를 뿌리는 알아서 자라났다. 대표적으로 광작(廣作)이 가능한 작물이었다. 옥수수 재배가 가지는 장점이 너무 많았다.
단점은 지력 소모가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학 비료가 널리 보급된 시점에서는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더욱이 옥수수의 소비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것은 육류 소비 증가로 사료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다. 옥수수는 대표적인 사료 작물이었다.
가격이 내리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그것을 극복했다. 옥수수 가격이 저렴해지는 만큼 생산 단가도 같이 내렸다.
결과적으로 수익성이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콘 벨트가 미 전역으로 확대되는 이유였다.
“대신에 비룟값이 많이 들지 않습니까?”
“최근에 대두와 섞어 짓기를 해서 비룟값이 생각보다는 많이 들지 않아요.”
“그래요? 옥수수와 대두는 섞어 짓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옥수수와 대두는 함께 끼우기가 힘들었다. 서로 생육 기간에서 차이가 났다.
옥수수를 수확할 시기에 대두는 콩깍지 안에 알이 제대로 영글지 않았다.
그것을 그대로 수확하면 대두는 쭉정이가 되어 상품 가치가 없었다. 비룟값을 줄이기 위해 대두를 심는 것은 낭비였다.
하지만 미래 농수산에는 다 방법이 있었다.
“아! 최근에 미래 농수산에서 신품종을 개발했거든요. 생육 기간이 짧은 대두 종자예요.”
미래 농수산은 몬산토와 같은 종자 회사도 운영했다. 그곳에서 옥수수의 수확 기간과 겹치는 대두 종자를 육성해 내었다. 덕분에 동시에 두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두 작물을 동시에 수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인데요.”
옥수수와 대두는 씨앗이 맺히는 위치가 달랐다. 옥수수는 위에, 대두는 아래였다. 수확기, 콤바인의 형태도 달랐다. 두 번 작업하거나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그 문제도 시발 자동차에서 새로운 콤바인을 개발하면서 해결되었어요.”
시발 자동차에서 만든 콤바인은 위아래에 다른 수확기를 두어 동시에 두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다 같은 미래 그룹이라 업무 협조가 잘되었다. 미래 그룹은 오래전부터 각 계열사가 자원(정보와 기술, 자산 등)을 공유했다. 그것이 빛을 보고 있었다.
“아! 그러면 옥수수 농사도 괜찮겠네요.”
옥수수 가격이 내려가고 있지만, 대두의 가격은 오르고 있었다. 대두는 사료용이든, 식용이든, 옥수수보다 선호되는 곡물이었다.
옥수수와 콩의 재배는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았다. 두 작물을 동시에 수확하니 수익이 갑절로 늘었다. 거기에 비료 사용까지 줄어드니 이익은 더 늘어났다.
“하하. 나쁘지는 않지요.”
사실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우 좋았다.
“미래 농수산에서 밀 할당량만 줄여 주면 좋을 것인데요…….”
“그건 재배 작물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습니다.”
미래 그룹은 각 농가에 주력 작물 외 추가로 한 가지 이상 곡물을 일정량 이상 짓게 했다. 그것은 재배 작물의 쏠림 현상을 막아 곡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많은 농가가 경작이 쉬운 밀을 추가 작물로 선택했다. 덕분에 밀값이 안정되었다.
밀값의 안정은 미래 식품에 중요했다. 미래 그룹은 식품에서 많은 밀가루를 소비했다. 재배 쏠림 현상을 막는 것은 곡가 안정과 함께 이래저래 많은 이점이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박철수가 가져온 곡물은 탱크로리에서 사일로로 이동되었다.
“옥수수는 12,657부셸, 밀은 4,562부셸, 대두는 6,232부셸입니다. 현 시가로 계산하여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통장에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미래 농수산과 박철수는 경작지에서 나오는 곡물의 수익을 7:3으로 나누었다. 박철수의 몫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경작지와 농기계를 포함하여 농사짓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미래 농수산이 제공했다.
농번기에는 농업 학교에서 일손을 도와줄 인원도 파견해 주었다. 이번에 탱크로리를 농장으로 보내 곡물을 싣고 온 이들도 농업 학교 직원이었다.
수확량의 30%라고 해도 연간 한국 근로자 평균의 수십 배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박철수는 이대로 돈을 모아 직접 땅과 기계를 사서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아니면 모은 돈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고국도 좋지만…… 여기에서 이대로 농사짓는 것도 괜찮은 삶이야.’
이곳의 삶은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는 뭐 하실 것입니까?”
“오늘 수고한 사람들에게 맥주라도 돌려야지요. 그전에 축구 한 게임 먼저 하고요. 하하.”
“경기에 인원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오신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고향에서 손바닥만 한 땅을 부쳐 먹던 박철수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힘든 고향을 버리고 도시에서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마침 미래 농수산에서 미국에서 일할 농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먼 타국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막노동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막상 이곳에 와 보니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덜 힘들고 많은 돈을 벌었다.
‘미래 그룹은 참 고마운 존재야. 열심히 일하면 보상이 반드시 주어지니까 말이지.’
이제 한국에서 결혼할 처자만 데려오면 되었다. 미래 그룹과 함께 박철수도 꿈을 키워 가고 있었다.